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4)
신마의선-364화(364/500)
신마의선 (364)
깊은 삼매에서 벗어난 단악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껏 느껴 본 적 없던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던 것도 잠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주장명을 발견한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를 건넸다.
“기분은 어때? 불편하거나 이상한 점은 없어?”
“네. 설명하긴 어렵지만 평소보다 훨씬 좋아요. 전처럼 나른하거나 어지럽지도 않고요.”
주장명의 맥을 확인한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 장명아.”
“예?”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그럼…….”
주장명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되어 단악선을 바라봤다.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벅차올라 일순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자신을 위해 헌신해 온 아버지.
아무리 어리다 해도 어찌 그걸 모를까.
자신이 내색하면 그만큼 아버지가 더 아파할 것을 알기에 애써 모르는 척 철없는 아이를 연기해 왔을 뿐이다.
그런 주장명을 단악선이 토닥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도, 주 의원님도.”
“정말……, 감사합…….”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하던 주장명을 단악선은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물을 거두고 다시 미소를 되찾은 주장명이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형은요? 형은 괜찮아요?”
“나? 보다시피 멀쩡해.”
단악선의 대답에 주장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전 형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내가?”
“네. 형 머리 위로 눈부신 기운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거든요.”
“아! 그건 운공을 하며 깊은 삼매에 빠져들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야.”
무심코 대답하던 단악선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에는 불그스름한 창밖의 풍경이 새벽녘의 일출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어느새 주변은 짙은 노을이 감싸고 있었다.
온전히 한나절을 깊은 무아지경의 삼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단악선은 문득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깨달음을 좇아 일 년 넘게 선정(禪定)에 든 상태로 지냈던 소림의 계율원주 법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그 역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악선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장명에게 말했다.
“그런 나를 위해 계속 같이 있어 준 거구나.”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분들에게 알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왜?”
“형이 웃고 있었거든요.”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염화미소(拈花微笑)처럼,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미소였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도 좋은 일이 있었거든.”
“좋은 일요?”
“벽을 드디어 넘어섰어.”
“와! 진짜요? 축하해요!”
“고마워. 네 덕분이야.”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주장명이었지만 단악선을 보며 자신도 따라 웃었다.
“그럼 이제 나갈까?”
지금쯤 밖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세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역시나.
주장명과 함께 전각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이 달려왔다.
“단 의원 괜찮아?”
다짜고짜 단악선의 어깨를 감싸 쥔 범계위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건네 왔다.
반면 초악량과 한설화는 놀란 표정으로 단악선을 주시했다.
마주하자마자 대번 단악선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한발 늦게 이를 알아챈 범계위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하루 만에 키가 더 커진 것 같은데?”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커진 것은 키가 아니라 존재감이다.”
초악량이었다.
“어? 그럼?”
“단 의원이 비로소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선 거지.”
범계위가 와락 단악선을 끌어안았다.
“축하해! 단 의원! 저 둘은 몰라도 나는 단 의원을 믿고 있었어.”
그 말에 한설화가 코웃음을 쳤다.
“흥! 가장 좌불안석하던 게 누구였는데?”
초악량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반면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전에는 그저 아득하고 막연하기만 할 뿐이어서, 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의 경지를 어느 정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자신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괄목상대할 만한 일이었다.
한참 앞서 걷고 있는 그들의 경지.
그 초입에 비로소 자신도 발을 올리게 된 것이다.
단악선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신마곡의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저 문을 열어도 되겠네요.”
단악선이 세 사람을 향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 기다려 주셔서 고마워요.”
이로써 드디어 길고 길었던 수련이 종료되었다.
* * *
어슴푸레한 어둠이 밀려드는 시각.
종리추와 장철우는 완전히 해가 기울고 나서야 식사를 위해 객잔을 찾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면을 주문했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후.
“제길!”
“여기도냐!”
점소이가 주문했던 음식을 내오자 두 사람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일반적인 크기를 벗어나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릇.
그 안에 산처럼 수북이 올라간 소면을 마주한 그들이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객잔 안을 가득 메운 식객들의 음식.
그중에서도 특히 소면의 양을 확인한 두 사람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보시게, 점소이.”
장철우의 손짓에 부리나케 달려온 점소이가 이어진 그의 질문에 묘한 미소를 말아 올렸다.
“어째서 우리 음식만 이렇게 양이 많은 것인가?”
“저야 모르죠. 저는 그저 숙수님께서 내시는 대로 가져다드릴 뿐인걸요.”
종리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지 않나?”
대답은 주방에서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의 것은 사파인이 먹는 소면이고, 그건 정파인이 먹는 소면이니까.”
종리추와 장철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것들이 진짜! 차라리 대놓고 시비를 걸든가! 사람을 이런 식으로 차별해?”
그 말에 숙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게 왜 차별이야? 벽 대고(大姑) 체면을 봐서 호의를 가지고 대접해 준 거지. 이것들은 기껏 잘해 줘도 지랄이야.”
그 말에 종리추와 장철우는 난감한 탄식을 흘렸다.
대고는 벽화령을 향한 무위 사람들의 존칭.
범계위와 정식으로 혼인을 한 배우자인 만큼 나이를 떠나 자연스럽게 이곳 무위 내에서 가장 높은 배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두 사람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몇몇 이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안 드십니까? 면이 불어나면 더 먹기 힘드실 텐데요.”
그 말에 두 사람은 눈앞의 점소이도 이 안의 놈들과 모두 한패라는 걸 직감했다.
“망할!”
“그래! 먹는다, 먹어!”
그들은 별수 없이 꾸역꾸역 소면을 입 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대체 며칠째 주야장천 소면만 먹고 있는 건지 헤아릴 정신도 없었다.
그나마 소면은 후루룩 삼켜 욱여넣을 수라도 있지, 매번 산처럼 쌓여 나오는 다른 음식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악랄한 자식들.’
‘두고 보자.’
전에 방문했을 때처럼 차라리 시비를 걸어올 때가 좋았지, 호의를 가장한 과잉 친절은 그들로서도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음식을 남기면, 투덜거리며 소문을 낸다.
―무위의 호의를 무시하는 두 놈이 있다.
한 번은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친 동네 꼬마한테 음식을 남긴 못된 어른들이라며 일장 연설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황급히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동전을 탁자 위에 올린 뒤 재빨리 객잔을 벗어났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점소이의 눈빛 때문이었다.
조금만 지체했다간 후식이랍시고 또 어마어마한 양의 다른 음식을 내올 것이 뻔했다.
“후우.”
객잔을 빠져나와 골목길에 접어든 종리추가 산처럼 부푼 배를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헉헉대며 식은땀을 흘리는 장철우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터트렸다.
“부문주님때문에 먼저 손을 쓸 수도 없고.”
처음 벽화령이 수련을 위해 신마곡 안으로 사라졌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 텃세를 부리는 사파인들과 충돌한 적이 있었다.
보다 못한 사무심이 사파인들을 꾸짖었고, 이에 앙심을 품은 놈들은 방법을 달리해 이런 식으로 골탕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음식값보다 소화제 구입하는 돈이 더 나갈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쉬익.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갑자기 무언가가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래! 시원하게 한번 붙자!”
호기롭게 외치며 투지를 끌어 올린 두 사람의 눈에 이내 낭패한 감정이 자리 잡았다.
암기인 줄 알고 낚아챘건만…….
‘만두?’
그것도 일반적인 만두보다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여, 정파 친구. 그거 하나 먹고 가. 방금 쪄 낸 거라 아주 뜨끈뜨끈해.”
만두를 던진 노점상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무공을 지닌 사파 고수가 분명했다.
결국 종리추가 분통을 터트렸다.
“차라리 싸우자!”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이겼어.”
“뭐?”
“내가 졌다고.”
만두 쪄 내던 노점상.
한때 청금귀수(淸琴鬼手)라 불렸던 이한영이 씩 웃었다.
“이건 항복했다는 의미로 바치는 선물.”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날아드는 만두를 얼떨결에 붙잡은 두 사람이 울상을 지었다.
가뜩이나 배가 불러 힘들어 죽겠는데 졸지에 커다란 만두 두 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종리추와 장철우가 콧김을 내뿜었다.
“부문주님만 내려오면 당장 여기 뜬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 앞으로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거야!”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이한영이 이죽거렸다.
“딱 봐도 벽 대고께서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인데?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 듣자니 벽 대고를 봉행하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지? 그런 의리 없는 수하들은 나라도 버리겠다.”
그 말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발끈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부문주님은 우리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아무렴! 어릴 때부터 우리가 얼마나 애지중지 보살폈는데!”
“피가 다를 뿐이지, 부문주님에게 있어 우리는 오라비나 마찬가지야!”
깜짝 놀라는 이한영의 모습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껏 놀려 대던 사파 놈의 시선이 자신들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이야. 오라버니들.”
난데없이 날아든 벽화령의 음성에 두 사람이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스산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마주하고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와 벽화령을 찾았다.
“상단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벽화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적산이 달리 자신을 찾을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소적산의 수하로 짐작되는 사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단 의원을 비롯해 신마삼존 세 분은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벽화령이 고개를 돌려 종리추와 장철우를 노려봤다.
“나중에 보자고. 오라버니들.”
섬뜩한 엄포를 남긴 채 돌아선 벽화령이 그대로 신형을 날려 신마상단의 본단이 위치한 전각으로 향했다.
가장 높은 꼭대기 층.
단주의 집무실에 내려선 벽화령은 마침 단악선을 향해 무언가를 보고하는 소적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개방에서 석 달 전부터 만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개방에서요?”
“네. 녹림과 갈등이 불거졌는데 마찰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만나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