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5)
신마의선-365화(365/500)
신마의선 (365)
녹림의 총표파자인 악호군은 어이가 없었다.
모종의 이유로 이곳 검단산에 위치한 거령채(巨嶺砦)로 총단을 옮긴 것이 작년이었다.
그런데 처음 맞는 손님이 고작 저딴 거지 떼라니.
산채 근처에서 거지 몇 놈이 얼쩡거린다는 보고가 최초로 올라왔을 때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천하에 퍼진 개방 방도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만큼 가끔 길 잃은 거지가 산을 해멘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방과 녹림은 지금껏 서로를 소 닭 보듯 무시해 왔다.
녹림은 주로 표물을 털어 먹고 사는 이들.
반면 개방은 길거리에서 동냥을 업으로 삼은 자들이었기에 서로 부딪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 특수성 때문에 정사대전이 반발하지 않는 한, 직접 개방과 충돌할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이처럼 다짜고짜 대가리를 밀고 들어와 생떼를 써 댈 줄이야.
진입로에 새카맣게 몰려와 진을 친 거지들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시끄럽기는 얼마나 시끄러운지, 여기가 산속인지 저자 한복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수하들을 보내 좋게 타일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단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피곤한 부류가 바로 개방의 화자(花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힘으로 밀어 버릴 수도 없었다.
일단 피를 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저 거지 떼를 이끌고 있는 자가 개방의 방주라는 점이었다.
‘쾌수여의…….’
전대 방주였던 이립의 사망 이후, 개방은 한동안 방주의 자리를 비워 둔 채 호법장로였던 홍적문이 임시로 개방을 이끌었다.
그런데 최근 개방대회를 통해 그가 정식으로 방주 자리에 올랐다.
길게 한숨을 내쉰 악호군이 수하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명분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상황.
내공을 꾹꾹 눌러 담은 악호군의 쩌렁한 일갈이 검단산을 뒤흔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거적을 뒤집어쓴 채 늘어져 있던 인영 하나가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났다.
홍적문이었다.
까치집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던 홍적문이 악호군을 향해 히죽 웃었다.
“집들이하러 왔소이다.”
“뭐?”
“최근 총표파자께서 총단을 옮기셨다 들었거든. 함께 무림에 몸담고 있는 강호의 동도로서 이를 모른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싶어서.”
“헛소리!”
짧게 코웃음 친 악호군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홍적문을 노려봤다.
“아무리 귀방이 예의라곤 쥐뿔도 없는 거지 소굴이라 하나 엄연히 강호의 방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소. 더구나 우린 당신들을 초대한 적도 없소.”
“불청객은 손님 아닌가?”
홍적문이 능글맞은 미소로 악호군의 질책을 받아넘겼다.
“염치없이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이렇게 선물도 가져왔소만?”
선물이랍시고 홍적문이 들어 올린 건 삶은 개 다리 한 짝이었다.
이를 일별한 악호군이 눈썹을 꿈틀했다.
“필요 없소!”
“그리 말하니 정말 섭섭하구려. 나름 최고의 호의를 보인 것인데.”
“성의는 감사하나 사양하리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시오. 우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당분간 손님은 받지 않소.”
“그러지 말고 나만이라도 살짝 들여보내 주시오. 먼 길을 급히 달려왔더니 목이 말라서 그러우. 갈 때 가더라도 물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소?”
“절대 불가!”
“거참. 인심 한번 야박하다. 산전 두목 배포가 이리 작아서야 수하들이 어찌 믿고 따르겠나 그래?”
홍적문의 비아냥에 악호군의 인내심도 점차 한계에 달했다.
‘하긴…….’
애초에 거지를 상대로 말싸움을 하려 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
자신은 말싸움을 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말장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악호군과 녹림이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구나.”
살기를 끌어 올린 악호군이 홍적문을 노려봤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이곳은 녹림의 영역. 방주는 수하들을 물려라.”
“싫다면?”
“뭐라?”
“거, 뭐 대단한 산채라고 구경도 못 시켜 줘? 혹시 그 안에 우리가 알면 안 될 거라도 숨겨 놓으신 건가?”
“……!”
정곡을 찔린 것일까.
농담처럼 던진 홍적문의 말에 악호군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쩌렁한 노호성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꺼져라! 이미 최후 통첩을 했으니 이후의 일은 내 손이 무정타 원망치 못할 것이다!”
“에이, 무섭게 왜 이러시나? 우리가 안면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닥쳐라! 홍적문! 쾌수여의라는 알량한 명호를 믿고 뻗대는 것이라면 너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린다면 명년의 오늘, 너 역시 홍두타와 함께 나란히 제삿밥을 먹게 될 것이다!”
그 말에 갑자기 홍적문의 얼굴에서 거짓말처럼 웃음이 걷혔다.
홍두타는 전대 방주였던 이립의 별호.
서늘한 홍적문의 시선을 마주한 악호군은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전대 방주였던 이립과 홍적문의 각별했던 관계를 모를 악호군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흥분한 나머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눈앞의 서 있는 홍적문도 온전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듣자니 그는 모든 장로가 만장일치로 추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방주직을 사양했다고 한다.
귀찮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명색이 거지들이 모였다곤 하나 개방은 명실공히 강호제일 방파.
역사나 구성의 숫자를 떠나 방주의 지위가 강호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런 자리를 그딴 이유로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일단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홍적문은 방주직을 수락했다.
전대 방주였던 이립이 남겼던 유언장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자신의 신변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홍적문에게 방주의 지위를 이양한다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홍적문이 살기를 담아 으르렁거린 것도 그때였다.
“감히 개방을 모욕해?”
“경고를 듣지 않은 건 네놈이다.”
악호군은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어느새 눈앞에 짓쳐들어온 홍적문이 대뜸 주먹을 날려 왔기 때문이다.
“미친!”
악호군도 물러서지 않고 허리춤의 박도를 꺼내 마주 휘둘렀다.
“기어이 피를 보겠다는 말이냐?”
악호군의 외침에도 홍적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세를 높여 개방의 절학들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그야말로 쾌수여의라는 명호에 부족함이 없는, 신랄하기 짝이 없는 손속이었다.
선공을 내어 준 탓에 악호군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서로가 직접 손을 섞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악호군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초악량, 법료와 더불어 홍적문이 중원 삼대권사에 이름을 올린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앞선 두 사람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에는 다소 손색이 있지만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수.
더구나 홍적문은 마치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수비를 도외시한 채 오직 공격에만 몰두했다.
반쯤 눈이 돌아간 저 미친놈을 떼어 놓을 방법이 그야말로 전무한 상황.
이쯤 되니 악호군도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체하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쪽이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기 때문이다.
찌지직.
악호군이 거머쥔 박도 위로 푸른 뇌전이 엉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꽈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허공에 흩어지는 푸르스름한 뇌광의 잔재.
그 너머로 연달아 날카로운 소성과 폭음이 이어졌다.
“그래도 산적 두목이랍시고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었구나!”
“닥쳐라, 거지 왕초!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아 있구나!”
서로를 향해 던지는 날 선 음성 뒤로 섬뜩한 맹공이 뒤따랐다.
개방의 방도들도.
그리고 거령채의 녹림도들도.
시야를 차단한 희뿌연 분진 때문에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반면 정작 그 안에서 살초를 주고받는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작 십대악인 중 한 명이라 악호군을 경시하던 홍적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디서 주워 배운 근본 없는 무공을 앞세운 거지 나부랭이라 얕보던 악호군도 마찬가지.
막상 전력을 다해 부딪치고 보니 상대의 실력이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상처가 늘어 가고 있을 때였다.
“멈추세요!”
웅혼한 내력이 담긴 한 줄기 짜랑한 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한 줄기 빛으로 화한 아담한 인영 하나가 먼지구름을 뚫고 뛰어든 건 그 직후였다.
격돌하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양 진영에 포진하고 있던 개방도와 녹림도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시퍼런 도기와 수영이 어지럽게 뒤얽혀 있는 곳으로 뛰어드는 소년의 모습은 그만큼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엇!”
“헉!”
먼지구름 속에서 엇갈린 당혹성이 터져 나오나 싶더니.
잠시 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먼지를 걷어 냈다.
수십 개의 벽력탄이 동시에 터진 것처럼 곳곳이 폐허가 되어 있는 정중앙.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홍적문과 악호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나 정작 중인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년의 양손에 각각 홍적문의 손과 악호군의 칼이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이놈!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단 의원! 물러서게!”
자신을 향해 동시에 소리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단악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두 사람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래도 총표파자의 체면이 있어 늘 단정하게 묶어 넘겼던 악호군의 머리칼은 봉두난발이 되어 귀신처럼 산발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찢겨 나간 의복 역시 땀과 핏물에 절어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원래부터 남루한 차림의 홍적문도 마찬가지.
길게 베여 나풀거리는 앞섶과 소맷자락은 옷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었고, 뇌기에 그을려 벌겋게 변한 피부 위로는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빼곡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두 사람이 단악선을 떨쳐 내기 위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이 기이하게 움직였다.
양손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진기를 능숙하게 흘려 무마시킨 뒤 오히려 두 사람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
“……!”
홍적문과 악호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순간에 생과 사가 엇갈리는 흉험한 영역.
그 안에 이토록 과감하게 몸을 던져 넣을 줄이야.
급히 진기를 거두어들인 두 사람의 얼굴이 술 취한 사람처럼 벌겋게 물들었다.
그만큼 뿌리는 것보다 회수가 어려운 것이 경력이었다.
처음 단악선이 난입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예상치 못한 훼방꾼의 등장에 홍적문과 악호군은 본능적으로 상대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그러고 나서야 뒤늦게 단악선의 얼굴을 확인했고,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트렸다.
“일단 두 분의 허락 없이 비무에 개입한 건 사과드릴게요. 그래도 일단 제 말부터 들어 주세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발끈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총표파자께서는 제게 빚이 있으시죠? 제가 저지른 결례를 그 빚으로 상쇄하시는 건 어때요?”
“……!”
악호군이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