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6)
신마의선-366화(366/500)
신마의선 (366)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자신을 포함한 녹림은 단악선과 무위에 큰 신세를 졌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언급할 줄이야.
‘이…… 영악한 놈.’
악호군이 침음성을 흘리며 물러서자 단악선이 이번에는 홍적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절 부른 사람이 아저씨라는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죠?”
“이곳으로 부른 것은 아니었다만…….”
“그렇다고 정확한 장소를 알려 주신 것도 아니죠.”
홍적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이제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군요.”
그러나 그 바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에 도착한 세 사람 때문이었다.
신마삼존의 등장에 홍적문과 악호군의 얼굴에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그만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범계위가 달려와 단악선의 온몸을 살피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단 의원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전 괜찮아요.”
단악선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범계위는 홍적문과 악호군을 향해 살기를 담아 으르렁댔다.
“생채기 하나라도 있으면 전부 죽는 거야. 산적이고 거지고 전부.”
그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단순한 엄포라기에는 눈빛이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범가야, 분위기 파악 좀 하자.”
결국 초악량이 나서 범계위를 단악선에게서 떼어 냈다.
“단 의원이 두 사람을 만류한다 했을 때 너도 동의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다짜고짜 뛰어들 줄은 몰랐지.”
“단 의원도 자신이 있으니 그런 게다. 실제로도 막아 냈고.”
그 말에 홍적문과 악호군이 해연해 단악선을 바라봤다.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니 비로소 냉정하게 되짚어 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늘이 도왔다 생각했건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당시의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단악선을 대신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신들의 공격을 그토록 수월하게 받아 낼 수 있을지 그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홍적문은 새삼 단악선의 기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크게 될 무재(武才)라 생각하곤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고수의 반열에 들어설 줄이야.
오래전부터 단악선과 친분을 다져 온 홍적문은 그 사실이 매우 기꺼웠다.
단악선의 올바른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정파 무림.
‘아니지.’
강호 전체의 흥복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 악호군은 지금의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괴물들이 괴물을 키워 냈어!’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리하게 흐르고 있음을 직감한 악호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장 단악선만 해도 개방과 친분이 깊었다.
게다가 초악량과 범계위는 한때 개방에 몸담았던 적도 있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아무리 시간을 끌어 봐야 결국 저들이 개방의 손을 들어 줄 게 뻔했다.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악호군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그때.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먼저 대답한 사람은 악호군이었다.
“저 거지들이 먼저 녹림의 영역을 허락도 없이 침범했다. 건방지게도 자신들이 산채를 조사하겠다더군.”
“아무런 이유도 없이요?”
“흥!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모함을 뒤집어씌우더군.”
단악선은 의아함을 담아 홍적문을 바라봤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개방은 제대로 된 명분도 없이 타 문파를 압박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홍적문이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십 년 전쯤부터 산을 개간하던 화전민들이 단체로 행방불명 되는 일이 잦아졌소. 대부분이 부역황책(賦役黃冊)에 등록되지 않은 유민들이었지.”
부역황책은 조세를 위해 조정에서 작성해 기록한 일종의 호적이었다.
홍수나 가뭄, 혹은 전염병의 창궐 등을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중원을 떠도는 유민들을 조정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원활한 세금 징수를 위해서는 부역황책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았고, 중원 전역으로 조사를 확대해 갔소. 그 결과, 그렇게 사라진 화전민 마을만 백여 곳이 넘는다는 것을 파악했소.”
짐짓 정중해진 말투로 홍적문이 설명을 이어 갔다.
개인적인 자리에서야 상관없지만 지금은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
무위의 실질적 책임자인 단악선의 위치를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라진 마을들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소.”
“공통점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홍적문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운 마을에 외지인이 며칠간 머물렀다는 점이오. 우리는 그자를 마교의 주구라 판단하고 있소. 게다가 화전민이 사라진 곳 인근에는 어김없이 노인들의 시신이 묻혀 있었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개방은 본격적으로 수색과 자체적인 조사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실종 인원만 이천 명이 넘소. 본 방은 그들의 실종에 마교가 깊이 개입했다 의심하고 있소.”
홍적문이 고개를 돌려 악호군을 노려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라진 다섯 개의 화전민 마을과 녹림 산하의 산채들이 인접해 있었소. 해서 조사를 위해 협조를 요청했건만, 보시다시피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
그 말에 악호군이 벌컥 역정을 냈다.
“그 다섯 군데 중 이미 네 곳을 확인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뭐? 이곳 총단까지 멋대로 들어가 뒤지겠다고?”
홍적문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무엇을 숨기기에 한낱 거지의 방문을 막는 게요? 정말 마교와 손이라도 잡으셨소?”
“감히 사람을 뭘로 보고! 감히 마교 따위와 우리를 엮으려 들어?”
“그럼 길을 터 주면 그만 아니오?”
결국 단악선이 나서 두 사람을 중재했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개방은 이미 의심되는 녹림의 산채 네 곳의 조사를 마쳤다는 거죠?”
녹림은 나름대로 충분히 배려를 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입장.
반면 개방은 남은 하나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 서로 다른 입장 차이가 지금과 같은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것이다.
단악선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일단 마교가 언급된 이상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정말 마교와는 관련이 없으신 거죠?”
“물론……이오.”
신마삼존 쪽을 힐끗 바라본 악호군이 마지못해 공대를 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물음에 눈에 띄게 안색이 굳어졌다.
“그럼 제가 확인해 봐도 될까요?”
“…….”
“개방에서 확인하려는 건 마교와 관련되어 있는지, 그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잖아요. 그 외에는 특별히 녹림의 행사에 관여할 생각은 없고요. 제 말이 맞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악호군을 향해 재차 물었다.
“그러니 제가 마교와의 연관성을 확인한 뒤 그 결과를 개방 방주님에게 알려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악호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이 얼마나 무례하고 무리한 요구인지 곡주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믿소.”
단악선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전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요?”
“……?”
“총표파자를 비롯한 녹림의 영웅분들께서 무위에 머무실 때 말이에요. 전 숙소와 식사까지 제공했지만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끄응…….”
악호군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어지간히 얼굴 두껍다 자부하는 그였지만 단악선이 이리 나오니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부탁드려요. 서로의 오해를 종식하기 위해 제가 거령채 안에 들어가는 걸 허락해 주세요.”
악호군이 입술을 깨물며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신마삼존을 힐끔거렸다.
저들이 개입한 이상 어차피 방법이 없었다.
강제로 물리력을 동원하면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윽고 악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어 줄 건 내주더라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비밀은 지키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다.
“그럼 하나만 약속해 주시오.”
“말씀하세요.”
“마교와 관련 유무를 제외한 그 어떤 정보도 외부에 발설하지 않아야 하오.”
그 말에 단악선은 확실히 악호군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녹림과 개방 사이에 불거진 갈등의 중재 때문.
“그럴게요.”
단악선의 대답에 악호군도 마지못해 한쪽으로 비켜섰다.
“이 정도면 개방도 불만은 없으시겠죠?”
“물론.”
홍적문도 선선히 대답했다.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준다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 차례 홍적문을 쏘아본 악호군이 이내 신형을 돌려 거령채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단악선과 신마삼존이 뒤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 걷던 악호군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때 이곳에도 화전민이 꾸리던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것도 이미 오 년이 지난 이야기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었기에 다시 편하게 말을 놓는 악호군이었다.
그래도 단악선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홍 방주님의 말씀대로 외부인, 아니 마교도의 소행인가요?”
“아니.”
악호군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들 모두를 녹림이 거두었다. 억지로 강제한 것이 아닌,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력을 앞세워 표물을 터는 녹림이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짓는 화전민을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죠?”
단악선의 반문에 악호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도 그 이유를 깨달았다.
높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거령채 안에 들어서자 펼쳐진 풍경.
깊은 산속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드넓게 펼쳐진 광활한 분지 때문이었다.
한눈에 봐도 빼곡했던 산의 수림을 밀어 버리고 새로 개간한 것이 분명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범계위가 낮게 투덜거렸다.
“뭐야? 그냥 허허벌판이잖아?”
이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총표파자가 직접 나서 드잡이질까지 해 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면 초악량은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이곳에서 대규모 경작이 이루어졌군.”
어떤 작물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확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듯, 곳곳에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식물의 줄기가 즐비하게 흩어져 있었다.
이때 단악선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이래서 그토록 개방의 조사를 막으셨던 거군요.”
화전민들이 먼저 녹림의 일원이 되기를 자처한 이유.
그리고 그런 그들을 녹림이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 모두가 단번에 납득이 갔다.
단악선이 허리를 숙여 말라비틀어진 식물의 줄기 부분을 집어 들었다.
“앵속(罌粟)이에요.”
“앵속이라면……. 양귀비?”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통 효과가 뛰어나 의원이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 약재로 많이 쓰곤 해요. 이질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탈항(脫肛) 증세의 치료제로도 쓰이고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범계위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토록 좋은 약재를 보고도 어째선지 단악선이 평소와 반응이 달랐던 것이다.
“쓰기에 따라서는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사용을 남발한 경우 심한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본래 양귀비 자체는 중독성이 없었다.
단맛이 감도는 껍질이나 씨앗은 양념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쌉싸름한 잎사귀는 특유의 맛과 소화를 돕는 효과가 있어 채소로 사용될 정도.
하지만 열매는 이야기가 달랐다.
덜 익은 열매에 상처를 내면 하얗고 끈적한 진액이 맺히는데, 이를 모아 말린 갈색의 앵속분(罌粟粉)이 강렬한 진통 작용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반복해 복용하면 환각과 무기력을 동반한 극심한 중독 증상을 야기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앵속은 무림에서 몽혼약(夢魂藥)과 미약(媚藥)의 재료로도 쓰이기도 했다.
어딘가 침울한 표정으로 단악선이 말했다.
“의원인 저조차도 섣불리 쓰기 주저하는 약재 중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