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7)
신마의선-367화(367/500)
신마의선 (367)
단악선은 한동안 말없이 악호군을 응시했다.
녹림과 마교의 연관성.
그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정작 그 문제는 둘째 치고, 당장 눈앞의 상황부터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양귀비 열매에서 채취한 앵속분은 일반적인 농작물에 비해 월등하게 시세가 높았다.
게다가 다른 농작물과 달리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았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목숨 걸고 불을 놓아 산림을 밀고, 땅을 개간하던 화전민들이 그 유혹을 떨쳐 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게다가 이 정도 규모의 양귀비밭이라면 그 수확량도 상당할 게 분명했다.
약재로 사용하기 위한 용도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양이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악호군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애써 이를 떨쳐 내듯 악호군이 호기롭게 외쳤다.
“이로써 우리가 마교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른 비밀은 발설치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주리라 믿는다.”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단악선의 눈빛이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앵속을 잘못 사용하면 마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반복된 앵속분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중독을 초래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예의 행동이 그러하듯 한번 깊게 빠져든 중독은 벗어나기가 몹시 어려웠다.
특히 다른 여느 중독과 다르게 앵속분은 의존성이 매우 높아 그 폐해의 심각성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무너트리고 인성마저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천권(振天拳) 염숙의 경우가 그랬다.
한때 중원 사대권사로 불리던 권장의 고수.
소림의 법료에게 패배한 뒤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그리고 단악선은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치료를 성공했음에도 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천령개를 내려쳐 죽고 말았다.
그 정도 되는 고수가 그러할진대 일반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물며 그 피해는 비단 본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주변의 모든 사람까지 나락으로 끌어들여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단악선이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따로 있었다.
총표파자 정도나 되는 인물이 앵속의 폐해에 대해 모를 리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악호군에 대해 단악선은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뻔뻔하기 짝이 없는 악호군의 태도에 단악선은 결국 참았던 말을 쏟아 내고야 말았다.
“아니요. 약속을 했으니 개방에 이 사실을 알리진 않겠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악호군의 검미가 꿈틀했다.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와 전면전이라도 하겠다는 뜻이냐?”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돌아왔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범계위였다.
“생각해 보니 이참에 녹림의 총단을 밀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어차피 얘들 별로 쓸모도 없었잖아?”
“……!”
악호군의 낯빛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그 말이 그냥 던져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문제는 초악량이나 한설화도 딱히 그를 만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망할!’
악호군은 내심 경악성을 터트렸다.
만약 저들이 마음먹고 손을 쓴다면 이곳 총단이 쑥대밭이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신은 어찌어찌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이곳은 그대로 피에 잠길 터.
총단을 포기하고 달아난 총표파자의 권위 역시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악호군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단악선의 입을 주시했다.
결국 모든 건 단악선의 결정에 달린 셈이다.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초조함을 억누르길 잠시.
이윽고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서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방법을 찾아봐야죠.”
살짝 안도하던 악호군이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흠칫했다.
“그래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 또한 기꺼이 감내할 거예요.”
단호하기 그지없는 단악선의 눈빛에 악호군은 일순 기가 질렸다.
하지만 이내 단악선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를 이렇게 몰아넣은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느냐?”
“네?”
“바로 너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악호군이 원망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최근 신마상단으로 인해 우리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어진 악호군의 설명에 단악선이 멈칫했다.
“산채가 유지되는 두 가지 수입원은 통행세와 표국의 상납금이다. 그런데 최근 표국들이 신마상단과 동행하며 통행세를 면제받고 상납금마저 낮추고 있다. 아예 신마상단 아래로 들어간 표국도 부지기수지.”
이로 인해 녹림의 자금이 마르면서 조직 자체가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녹림은 애초에 이익을 추구하는 산채들의 연합.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정파와 달리 오직 실리만을 따르는 조직이다.
“그나마 앵속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간신히 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 유일한 수입원인 앵속을 포기하라는 건 녹림을 해체하란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군요.”
“굶어 죽으나 칼을 맞고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 그럴 바엔 원 없이 칼이라도 휘둘러 보고 가는 게 낫겠지.”
악호군이 선언하듯 물러서지 않고 응수했다.
물론 단악선 뒤에 버티고 있는 신마삼존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녹림을 다스리는 총표파자로서, 그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통행세라는 것 자체가 올바른 사업은 아니었어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흥! 잉어가 창공의 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매 역시 물속의 잉어를 이해할 수 없지. 그러니 너의 알량한 가치관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가늠하지 마라.”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일단 녹림이 마교와 관련이 없다는 건 확인했어요. 개방에도 그렇게 전달할게요.”
“여기서 본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지키리라 믿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천천히 돌아섰다.
악호군은 그런 단악선과 신마삼존을 배웅하지 않았다.
그대로 거령채를 내려온 단악선은 산채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개방 일행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홍적문에게 사실을 고했다.
물론 악호군과의 약속대로 앵속에 관한 정보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거 참……. 상황이 멋쩍게 되었군.”
곤란한 듯 뺨을 긁던 홍적문이 서한을 작성해 경계를 서고 있던 녹림도들에게 전했다.
결례를 범했다 인정하는 사과 서한이었다.
서한을 받은 녹림도가 산채 안으로 사라졌지만 한참이 지나도 답신은 없었다.
“쯧. 아주 단단히 삐친 모양이야.”
홍적문은 별수 없이 개방도를 이끌고 철수했다.
그렇게 검단산을 함께 내려오며 홍적문이 단악선을 향해 질문을 건넸다.
“마교와 연관이 없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조사에 불응한 겐가?”
단악선이 난감한 듯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저와 총표파자 사이의 약속을 방주님께서도 들으셨잖아요. 양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간 쌓아 온 정이 있기에 슬쩍 귀띔이라도 해 주지 않을까 싶었던 홍적문이었다.
이를 눈치챈 단악선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화전민들의 실종이 마교와 연관된 것이 확실한 건가요?”
개방의 성격상 단순한 심증만으로 이처럼 녹림을 압박하진 않았을 터.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이 분명했다.
“높은 확률로 그렇다 보네. 그리고 배후에는 우리가 추적하던 수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네.”
“근거는요?”
“사라진 화전민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 때문일세.”
“생존자가 있다고요?”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염수사(血染修士) 조옥기. 한때 광동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던 무림공적이었지.”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하자 나란히 걷던 초악량이 설명을 덧붙였다.
“유생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으나, 실상은 피에 미친 색정광이다. 무림인과 일반인 가리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사람을 베어 넘기던 미친놈이지. 한동안 놈과 관련된 소문을 듣지 못해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 생각했거늘…….”
그 말을 홍적문이 받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라진 화전민 마을에는 공통점이 있었네. 외지인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가 사라지면 마을도 통째로 사라졌네.”
“사라진 마을에 조옥기라는 사람이 숨어 있었던 거군요.”
“무림맹의 토벌이 시작되자 곧장 깊은 산속으로 달아났다더군. 그리고 화전민과 섞여 신분을 감추고 있었지.”
하지만 개방은 결국 그를 찾아냈다.
“그자가 말하길, 의문의 사내가 마을을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수의 무인들이 합류했다고 하네. 노인들은 죽여 땅에 묻고, 남은 화전민들을 어디론가 데려갔다더군. 그만이 겨우 탈출했고, 우리가 신원을 확보할 때까지 죽은 듯이 숨어 지내고 있었네.”
“당연히 마을을 찾아온 사내들은 마공을 사용했겠군요. 혈염수사 그자도 나름 고수인 만큼 이를 몰라볼 리 없었을 테고요.”
비로소 단악선은 삼 개월 전부터 개방이 자신을 만나고자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홍적문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몇 년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이 사라졌네. 그런데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네.”
단악선은 홍적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곧바로 눈치챘다.
황궁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교의 수보라는 자는 정보를 다루는 데 매우 능한 자일세. 또한 우리 못지않은 정보 단체를 거느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체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단악선이 그 말에 동의했다.
“중원 전체에 흩어져 있는 화전민촌을 찾아내려면 웬만한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었겠죠.”
“실제로 우리 개방 역시 조사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네. 파악한 화전민 마을 절반 이상이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으니 말 다 했지. 그나마 목적을 가지고 추적했으니 가능했던 것일세.”
“그건 마교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홍적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그 정도라면 절대 이름 없는 정보 단체는 아니겠네요.”
눈치 빠른 단악선이 가려운 곳을 긁어 주자 홍적문은 그제야 혼자 앓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네. 그 정도 저력을 갖춘 조직이 이토록 오랫동안 이름 없이 활동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단악선은 당장 정보 단체, 혹은 조직들을 떠올렸다.
흑점과 하오문, 그리고 동창까지…….
그런 단악선의 생각을 짐작한 듯 홍적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개방은 이미 자체적으로 내부 감찰에 들어갔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의심스러운 정황은 찾지 못했네.”
“아무리 봐도 방주님이 수보 같진 않은데요?”
“내가 수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조사 중이네.”
홍적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악호군과 직접 손을 섞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난 조사를 계속하겠네. 점점 좁혀지고 있으니 조만간 그놈을 찾아낼 걸세.”
“아저씨. 조심하세요.”
“걱정 말게. 먼저 간 그놈처럼 당하지는 않을 테니.”
홍적문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