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8)
신마의선-368화(368/500)
신마의선 (368)
무위로 돌아오는 내내 단악선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눈빛과 표정이 너무 무거워 넉살 좋은 범계위조차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할 정도였다.
길게 이어지던 침묵을 깬 사람은 초악량이었다.
“걱정 마라. 개방이 목표를 잡은 이상 곧 마교에 대한 흔적을 찾아낼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 의원. 녀석들이 좀 허술해 보여도 한번 문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거든. 그건 나랑 초 형이 누구보다 잘 알아. 알지? 우리도 한때 개방에 있었다는 거.”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는 거냐?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발끈하려던 찰나.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범위가 점점 좁혀지고 있네요.”
초악량이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했다.
단악선의 표정이 여전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초악량은 단악선이 고민하는 이유가 단순히 마교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걱정이 있는 게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녹림…… 아니, 총표파자의 행보가 마음에 걸려서요.”
“지금이라도 가서 박살 내 버릴까?”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미 앵속분은 시중에 유통이 되고 있을 텐데요.”
게다가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따로 있었다.
“우리가 봤던 양귀비밭만 해도 수확량이 상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재배지가 하나일 리가 없어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의 생각도 단악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녹림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놈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총표파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게지.”
“그렇겠죠. 이미 명성이 크게 떨어졌으니까요.”
기존의 십대악인 체계는 이미 무너진 상황.
더구나 생존을 위해 무위에 일신을 의탁하기도 했다.
그 결과 신마상단은 녹림의 영역을 거침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녹림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중원 전역에 퍼져 있는 산채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었고, 악호군은 어떻게든 휘하 채주들을 달래야 했다.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끼어든 것도 그때였다.
“뭘 그렇게 신경 써?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한 것뿐인데.”
“그렇다면 마교와 녹림, 어느 곳이 더 나쁠까요?”
갑작스런 단악선의 질문에 세 사람이 당황했다.
“그게 비교할 가치가 있느냐?”
“당연히 마교지.”
“…….”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여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단악선의 생각은 달랐다.
“제 입장에서는 둘 다 최악이지만, 그래도 굳이 더 나쁜 곳을 선택하라면 저는 녹림이라 생각해요. 앵속분은 마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니까요.”
마교와 전면전이 벌어진다 해도 죽거나 다치는 사람은 대부분 무림인이었다.
반면 앵속분으로 인한 폐해는 무인과 일반 백성을 가리지 않는다.
“악호군 그놈이 확실히 선을 넘긴 했구나.”
“그럼 뭘 기다려? 이렇게 말만 할 게 아니라 이참에 확실히 쓸어버리자고.”
초악량과 범계위의 말에 한설화도 말없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단악선의 말이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신형을 뽑아 올릴 기세였다.
“악호군을 처리한다고 녹림이 사라질까요?”
단악선의 물음에 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개방과 하오문.
그다음으로 중원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하는 집단이 바로 녹림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신마삼존 모두가 작정하고 나선다 해도 일망타진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살아남은 인원이 음지로 숨게 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 피해를 가장 먼저 받을 사람은 신마상단이 될 테고요.”
녹림의 질긴 생명력은 잡초와도 같았다.
아무리 솎아 낸다 해도 누군가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 터.
그들도 지금처럼 신마상단과 협력적인 태도를 취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척을 졌으니 대놓고 적대할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지금은 악호군이 통제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일단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신마상단을 향해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우선은 녹림이 유통시킨 앵속분을 제 눈으로 봐야겠어요.”
초악량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직접 말이냐? 그냥 능 지주나 소 단주에게 맡겨도 될 텐데?”
“앵속분이 얼마나 위험한 형태로 만들어졌는지는 저만큼 파악하지 못할 거예요.”
“그건 그렇겠구나.”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악선이 물었다.
“제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의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한 단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가장 어두운 밑바닥을 파헤치기에 그들보다 전문적인 정보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닷새 후.
단악선과 신마삼존은 섬서성 서안으로 들어섰다.
앞서 일행을 안내하던 초악량은 망설임 없이 수많은 기루가 늘어선 거리로 향했다.
마침 해가 떨어지고 기루들도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터라 거리 곳곳에서는 붉은 홍등이 즐비하게 내걸렸다.
또한 술과 웃음을 파는 곳답게 온갖 군상들로 떠들썩했다.
짙은 화장으로 삶의 고단함을 감춘 기녀들은 미소와 교태로 손님들을 유혹했고, 호객꾼들은 가격을 흥정하는 손님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이미 술에 취해 길거리 구석으로 나가떨어진 취객도 보였고, 이따금 기루 안에서 욕설과 함께 집기 부서지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코끝을 찌르는 지분 냄새와 음식 냄새, 거기에 온갖 악취와 노랫가락이 한데 뒤섞인 어지러운 공간.
그 적나라한 밤의 환락가를 마주한 한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아미를 찡그렸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넌 가서 화산의 말코나 만나고 오는 건 어때?”
“왜? 화령이 몰래 기루라도 가려고?”
한설화의 핀잔에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큰일 날 소릴! 이제 내 인생에 여자는 오직 화령이뿐이야! 뭐, 단 의원을 위해서라면 잠깐 두 눈 질끈 감고 갈 수야 있지만…….”
석연치 않게 말끝을 흐리는 범계위를 쏘아본 한설화가 단악선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한설화의 눈빛에 범계위가 움찔하는 사이.
초악량이 우려를 담아 한설화를 바라봤다.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되더라도 절대 먼저 손을 써서는 안 된다.”
한설화가 차갑게 응수했다.
“내가 너희들 같은 줄 알아?”
그 순간 초악량과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흐흐. 과연 참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한설화가 범계위를 노려봤지만 이미 저만치 앞서간 범계위는 어두운 뒷골목을 돌아 사라진 뒤였다.
말없이 그 뒤를 따르던 한설화는 곧바로 위기에 직면했다.
“오오! 어떻게 이런 우물(尤物)이?”
술에 잔뜩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그녀를 향해 수작질을 걸어오는 중년인 때문이었다.
“얼마면 되느냐? 응? 얼마면 되냐고. 내 오늘 기꺼이 너를 품어……. 헙!”
비틀거리며 한설화를 향해 다가서던 중년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설화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대로 숨이 턱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한마디를 던진 것도 그때였다.
“역시 못 참겠지?”
“……!”
흠칫한 한설화가 출수하려던 손을 거두며 낮게 침음했다.
그러곤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면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인적이 드문 골목.
그곳에는 온갖 쓰레기와 토사물이 즐비했다.
심지어 벽에다 대놓고 용변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사방에 진동하는 악취와 불결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진저리 치기를 한참.
결국 참다못한 한설화가 다른 두 사람을 향해 쏘아붙였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지?”
그녀의 날 선 눈빛에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그 성격에 이만큼 참은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한 누이, 차라리 객잔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
“…….”
“앞으로 한참은 더 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래서야…….”
그 말에 한설화가 멈칫했다.
“절대 기루는 안 돼. 만약 반 시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찾으러 올 거야.”
“약속하마. 범계위 저 녀석이 허튼짓 못 하게 철저히 감시하지.”
그 말에 한설화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초악량의 약속만큼은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한설화의 모습에 범계위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좋아! 반 시진이면 충분하지. 단 의원, 어디가 좋아?”
“네?”
“오면서 쭉 둘러봤잖아. 그 중 눈여겨본 기루가 있을 거 아니야. 난 개인적으로 천향루라는 곳이 마음에 들던데.”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범계위를 향해 한 소리 하려던 찰나.
단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기억나요. 그렇지 않아도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그치? 그럼 그곳으로…….”
“얼핏 지나치며 봤을 뿐인데도 안색이 나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짙은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면 지닌 병이 결코 가볍지 않을 거예요.”
범계위가 순간 흠칫했다.
단악선을 기루에 데려갔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아니야.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상대가 마녀라도 약속한 건 지켜야지.”
범계위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듯 연신 입맛을 다셨다.
이윽고 세 사람은 골목 끝자락에 이르러 굽이진 곳을 돌아 방향을 꺾었다.
그러자 더욱 좁아진 소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지저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바닥에 가지런한 벽돌이 깔려 있는 깔끔한 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유독 이곳만큼은 등을 밝히지 않아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제야 단악선은 초악량과 범계위가 주고받던 눈빛의 의미를 깨달았다.
“한 아주머니를 떼어 내려고 일부러 뒷골목으로 온 건가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한 누이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 곳이라 그랬다.”
잠시 후.
골목 끝자락의 작은 문 앞에 도달한 초악량이 입구에 걸려 있는 붉은 방울 하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맞게 찾아온 것 같군.”
“여기가 어딘가요?”
“하오문(下五門)의 서안 지부다.”
단악선은 깜짝 놀랐다.
비록 문파로 분류하지만 문파라 부르기 애매한 조직이 바로 그들이었다.
실제로 하오문은 사회의 가장 낮은 하위 계층들이 모여 결성한 일종의 연합 단체였다.
마부와 뱃사공, 가게의 사환, 그리고 짐꾼과 기녀.
그들의 직업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하오문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소매치기와 도둑, 노름꾼과 사기꾼도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간혹 하오문(下汚門)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낮지 않았다.
비록 무력을 내세울 수는 없으나 개방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지닌 정보 단체였기 때문이다.
특히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멸시받는 직업을 가진 만큼 그들의 유대감과 협동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들이 앵속분을 유통하고 있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이 거리에 나돌고 있다면 이들이 분명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질을 떠나 다루는 정보의 양만큼이라면 중원 제일의 방대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자체적인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닌 문파라 할지라도 하오문에 대가를 지불하고 정보를 구입하곤 했다.
교차 검증을 통해 정보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정보의 출처는 밑바닥의 하류 인생들.
가장 어두운 밑바닥을 가까이 마주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신분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