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69)
신마의선-369화(369/500)
신마의선 (369)
까마귀가 울부짖는 것처럼 거칠고 탁한 음성.
게다가 좁은 골목길에 목소리가 어지럽게 반향 되어 위치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요음난희(妖吟亂戱)를 만나러 왔다.”
초악량의 말을 들은 상대의 목소리에 언짢음이 묻어났다.
“신분을 밝히라 했을 텐데?”
피식 웃은 초악량이 순순히 대답했다.
“초악량.”
“……!”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인영이 화들짝 놀랐다.
단지 이름 세 글자를 들은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대체 어떻게…….’
평소라면 의심을 했겠지만 상대는 마치 어둠을 꿰뚫어 보듯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고수의 이목도 피할 수 있다 자부하던 하오문의 비전이 이토록 쉽게 간파당하다니!
그런데 충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혈수존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두 사람도 은신하고 있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망산초자까지!”
뒤늦게 범계위를 알아본 사내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심지어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의 존재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하나같이 그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한 명만으로도 끔찍한, 더없이 불길한 존재들.
저들이 동시에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그로선 감히 짐작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가서 전해라. 내가 좀 보잔다고.”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린 사내가 황급히 대답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빠르게 안쪽으로 사라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리 없이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옥빛이 감도는 하늘하늘한 능라의.
그 위로 자줏빛 주단을 아슬하게 걸쳐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내비치는 화려한 의상을 걸친 여인이었다.
“천첩 설난영이 감히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를 뵙습니다. 강호의 명숙 두 분을 이처럼 모실 기회를 얻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옵니다.”
날아갈 듯 대례를 올리는 여인.
삼십 대 중반 정도나 되었을까.
고스란히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와 살짝 드러난 속살.
거기에 감출 수 없는 고혹적인 자태가 묻어나는 미소는 뭇 사내로 하여금 아찔함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색정적인 분위기만 지닌 것도 아니었다.
짙은 화장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청초함과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품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넌지시 시선을 던져 오는 설난영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단악선이라고 해요.”
설난영이 깜짝 놀랐다.
“아! 공자께서 바로 그 유명한 신마의선이셨군요. 천첩의 부족한 안목을 사과드립니다.”
예의를 갖춰 사과한 설난영이 슬며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어둡고 우중충하던 일대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초악량이 나직하게 경고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멈칫한 설난영이 이내 순진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감히 두 분 앞에서 제가 그럴 리가요.”
그러곤 공손하게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그녀의 안내를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선 세 사람은 미리 준비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차부터 한잔 내올까요? 아니면 미주(美酒)를?”
“아니. 용건만 간단히 하지.”
“그러시다니 천녀로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겠군요. 이렇게 천금 같은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설난영이 단악선을 향해 묘한 눈빛을 던졌다.
철석간장(鐵石肝腸)조차 녹아내릴 것 같은 고혹적인 미소였다.
상대를 유혹해 정신을 흔드는 수법.
정파의 무인들은 사술(邪術)로 치부하는 미염공(美艶功)의 일종인 섭혼소(攝魂笑)였다.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미염공이 먹히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설난영 본인이었다.
눈앞의 소년은 이성 앞에 한창 피가 끓어오를 나이.
한데 동요는커녕 맑은 찻물처럼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설난영이 미미하게 아미를 찡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비록 사술이라 하나 미염공은 결코 얕은 공부가 아니었다.
작게는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동요하게 만들고, 나아가 심혼을 구속해 지배 아래 두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너무 나빴다.
단악선과 그녀 사이에는 뚜렷한 무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입술을 삐죽이던 설난영이 초악량을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천첩에게 용건이 있으시다고요?”
“최근에 앵속분이 거리에 나돈다 들었다. 그걸 유통시키는 놈이 누구지?”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넘겨짚은 말이었지만 다행히 반응이 있었다.
설난영은 곤혹스러운 눈빛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꽤 민감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불편한 자리일수록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상책이니까.”
“초 대협께서는 천첩이 불편하신가 봐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다시금 고혹적인 미소를 건네 오는 그녀를 향해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짜증이 살짝 묻어나는 초악량의 눈빛에 설난영이 한발 물러섰다.
“글쎄요. 어디서부터, 그리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질 않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천첩이 아무리 밑바닥 하류 인생이라 하나 이토록 강압적인 거래에 응할 마음은 들지 않는군요.”
“거래?”
초악량의 반문에 설난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보를 거래하기 위해 천첩을 방문하신 것 아닌가요?”
“그건 달리 말해 하오문에서는 직접 앵속분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로군.”
“…….”
허를 찔린 듯 설난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래서 경험 많은 고수를 상대하는 건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이처럼 짧은 대화만으로 그 안에 내포된 정보를 정확히 포착해 내다니.
“거래할 의향이 없으시다면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대가 없이 정보를 제공하는 건 본 문의 금기. 그것도 가장 큰 굴욕으로 여기는 일이랍니다.”
“흐…….”
범계위가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알아야겠다면?”
설난영 역시 물러서 않고 화사하게 웃었다.
“차라리 절 죽이세요. 그 어떤 협박으로도 제가 본 문의 금기를 어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내 앞에서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은 많았지. 하지만 끝까지 그 말을 지킨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과연 너는 어느 쪽일까?”
범계위가 손을 뻗어 설난영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나 설난영은 말없이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범계위를 상대로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그 고집스런 모습에 초악량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문 따위에 굴할 여인이 아니다.”
초악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범계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단 의원의 자백 침으로…….”
“그럴 수는 없어요.”
단악선도 고개를 젓자 범계위가 툴툴대며 물러섰다.
“쳇! 초 형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법이 없어. 그럼 대체 뭐 하러 여길 온 거유?”
초악량이 발끈했다.
“뭐 인마? 그러는 넌? 달리 이쪽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뭐?”
“지나가는 하오문도 아무나 붙들고 하나씩 죽이다 보면 점점 높은 놈이 나오겠지. 그러다 보면 결국 하오문주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다 죽이자고?”
범계위가 순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가 뭔데?”
초악량이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먹질 못하니 자신의 입만 아픈 것이다.
반면 설난영은 등줄기에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망산초자의 광기.
이를 처음 경험한 그녀는 그저 속으로 기함할 뿐이었다.
그나마 이 자리에 초악량이 함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단악선이 나선 것도 그때였다.
“어떤 거래를 원하시나요?”
애써 놀란 마음을 다스린 설난영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무위에 하오문 지부를 만들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
“지부요?”
단악선은 언젠가 능소밀에게 들었던 보고를 떠올렸다.
“이미 몇 번 시도하셨다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그곳 지주 대인께서 방해하셔서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밀이 무위에서 하오문을 철저히 배제한 이유는 간단했다.
뼛속 깊이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한때 능소밀은 하오문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돌림병으로 가족을 잃은 능소밀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열다섯이 되던 해 그곳을 탈출했다.
하오문에서 운영하던 도박장.
그곳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 연루되고 나서였다.
하오문의 상부는 그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고, 그 대가로 더 높은 지위를 약속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능소밀은 상부의 회유를 믿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쓰다 버려진 이들의 말로를 아는 까닭이다.
이제는 무위의 행정 책임자가 된 능소밀이 그런 하오문을 쉽게 용서할 리 없었다.
물론 자신이 부탁한다면 내키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테지만 단악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은 제 권한 밖이에요.”
그렇게 처음부터 못을 박고 시작한 단악선이 재차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제가 원하는 정보의 가치에 비해 무리한 요구인 것 같네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거래가 과연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요?”
“역시 그렇죠?”
설난영도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더니 예의 화사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렇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가지를 더 얹어 드리면 어떨까요?”
“……?”
“저와 하룻밤을 보내는 건 어떠세요?”
대놓고 던지는 그녀의 유혹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범계위는 팔짱을 낀 채 설난영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괜찮을지도?”
초악량이 정색하며 범계위를 노려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럴 때 보면 초 형도 참 치사한 구석이 있어.”
“뭐가?”
“언젠가 그랬잖수. 그토록 최선을 다해 구애하는데 이쯤에서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라며? 초 형은 되고, 단 의원은 왜 안 되는데?”
“……!”
그게 대체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인가!
당황한 초악량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다 배웠어요.”
단악선이 손을 내밀자 설난영이 다소 놀란 듯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미염공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던 단악선이 이처럼 쉽게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소문과 다르게 풍류를 아시는 분이셨군요.”
배시시 웃으며 내민 설난영의 손을 잡은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방주님이 언급했던 조건에 하오문도 해당이 돼.’
처음 설난영의 미소를 마주하던 순간 느껴졌던 묘한 이질감.
진맥을 통해 그 이질감의 정체를 파악하려 한 것이다.
확실히 정보력으로 하오문이 개방을 앞서는 부분도 있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개방은 구걸을 하며 직접 목표에 접근해 탐문하는 방식으로 깊게 파고든다는 점이었고, 하오문은 각 분야에 넓게 퍼진 정보망을 통해 무작위로 정보를 긁어모은다는 정도.
설난영이 묘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나쁜 남자로군요.”
“네?”
반문하는 단악선을 향해 설난영이 아찔한 미소를 건넸다.
“달콤한 말로 꼬드겨 여인의 마음을 흔드는 나쁜 남자 말이에요.”
“아!”
자신의 의도가 들켰다는 걸 깨달은 단악선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순간.
거두어 가던 단악선의 손을 설난영이 오히려 붙잡았다.
“괜찮으니 마음껏 살펴보세요.”
단악선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걸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견고한 아성과도 같던 평정심.
순간 흔들린 그 찰나의 틈을 교묘히 비집고 파고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때였다.
“단 의원, 그 여자 조심해. 요사스런 무공을 익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