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
신마의선-37화(37/500)
신마의선 (37)
“청화은옥으로 만든 침대라면…….”
남궁백의 시선을 받은 수하가 별도로 작성해 놓은 창고 보관 물품 목록을 가져와 확인했다.
“북쪽 두 번째 창고에 있습니다.”
“가 보지.”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궁백이 단악선 일행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 들어선 초악량의 얼굴에 언뜻 실망의 감정이 떠올랐다. 무림맹의 창고라고 해서 기진이보와 영약이 쌓인 창고를 기대했건만 이게 웬걸. 온갖 잡동사니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남궁백의 지시에 창고를 관리하던 무인이 보관 중인 침대 앞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게 원인이란 말입니까?”
남궁백의 물음에 침대의 먼지를 쓸어 낸 단악선이 그 위에 누우며 말했다.
“확인해 봐야죠.”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무언가에 집중했다.
남궁백이 굳은 얼굴로 단악선을 기다리는 사이 초악량은 주위를 둘러봤다.
‘저것들은 최근에 들어온 모양이군.’
다른 물건들과 달리 먼지가 쌓여 있지 않았다.
붉은 글씨로 증제(證題)라 적힌 쪽지가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대 세력으로부터 압류한 물품인 듯싶었다.
단악선이 눈을 떴다.
“확실히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침대를 유심히 관찰하던 단악선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잠시 뒤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래? 단 의원.”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침대를 가리켰다.
“침대 근처에만 거미줄이 없어요.”
“어? 그러고 보니…….”
단악선이 곤란한 표정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여길 잘라 봤으면 좋겠는데요.”
수월한 원인 확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남궁백 앞에서 범계위의 무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때 남궁백이 앞으로 나섰다.
단악선이 침대에서 내려오자 한 줄기 유백색 섬광이 별 무리처럼 반짝였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놀라움이 떠올랐다.
―방금 그거 검강(劍罡) 아니요?
범계위의 전음에 초악량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속단하긴 일렀지만, 눈앞의 정황상 검강이 분명했다.
‘이 자식, 정말 음흉하네.’
천년 묵은 능구렁이, 함황사(黃頷蛇)가 따로 없었다.
지금까지 강호에 부각된 남궁백의 모습은 무공보다는 무림맹주로서의 정치 감각과 과감한 행적에 치중되어 있었다. 한데 이제 보니 놈은 날카로운 무기 하나를 더 숨기고 있었다.
소리 없이 잘려 나간 옥석.
그 매끄러운 단면이 놈이 아주 위험한 존재라 경고하고 있었다.
‘일 검에 언덕을 베고 일 검에 강물을 자른다.’
심하게 과장되었다 여겼던 단능단제(斷陵斷湍)라는 명호가 이제 보니 오히려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거 보이시죠?”
잘린 침대의 단면을 유심히 살피던 단악선이 한 곳을 가리켰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옥 사이로 회백색의 광물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단악선이 고개를 들어 남궁백을 바라봤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내 주실 수 있나요?”
남궁백의 검이 부드럽게 옥석을 파고들었다.
툭, 데구르르.
떨어져 나온 회백색 광물을 집어 든 단악선이 곰곰이 생각하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꿀이 담긴 종지 두 개와 벌집이 필요해요.”
영문을 몰랐지만 남궁백이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그의 수하 중 한 명이 그물로 감싼 벌통을 가져왔다.
단악선이 꿀이 담긴 종지를 멀찍이 떨어트려 놓았다.
그리고 종지 하나에 들고 있던 광물 조각을 집어넣은 뒤 벌통을 감싸고 있던 그물을 벗겼다.
잠시 후 벌통을 벗어난 꿀벌들이 주변을 날아다니다 꿀이 담겨 있는 종지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광물 조각이 담겨 있는 종지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역시…….”
단악선이 손바닥에 광물 조각을 올린 뒤 남궁백을 향해 내밀었다.
“사기(死氣)가 흘러나오고 있어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증상은 전형적인 절맥인데, 기맥은 멀쩡했으니까요. 다른 의원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도 이해가 가요.”
“그럼 절맥이 아니라는 겁니까?”
“네, 기맥 자체에는 이상이 없어요. 다만 피가 탁하고 균형이 심하게 깨진 상태죠. 그 바람에 진기에 힘이 없어 기맥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원인은 이 사기 때문이고요.”
원래 몸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피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힘을 잃어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탁기가 계속 쌓여 독이 된 거고요.”
남궁백이 탄식을 흘렸다.
딸의 병인(病因)이 된 침상은 본래 자신의 선물로 들어온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아끼고 예뻐했던 딸이라 직접 선물한 것인데, 그 선택이 남궁향을 이 지경에 처하게 했다.
뜻하지 않았다곤 하나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치료가 가능하겠지요?”
“최선을 다할게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남궁백이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놈의 최선, 최선. 수많은 의원이 하나같이 지껄였던 지긋지긋한 단어를 또다시 듣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살리시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남궁백의 눈빛을 단악선은 흔들림 없이 받아 냈다.
“저를 위협하시는 건가요?”
남궁백의 눈빛이 흔들리는 찰나.
“이렇게 저를 몰아붙인다고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진 않아요.”
단악선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지금과 같은 행동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고요.”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는 단악선의 태도에 남궁백은 내심 침음을 삼켰다.
‘이 무슨 추태를…….’
뒤늦게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강렬한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오랜 세월 무인으로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본능이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
남궁백이 놀라 돌아보는 순간 소름 끼치는 살의를 정면에서 맞닥뜨렸다.
단악선과 동행한 서생과 거한.
서늘한 그들의 눈빛이 비수처럼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이곳이 무림맹이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을 만큼 맹렬한 적의였다. 그 기세에 놀라 남궁백은 자신도 모르게 기파를 개방했다.
그만큼 상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옆에서 날아든 단악선의 외침에 남궁백이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 돕고자 찾아온 사람에게 보일 모습인가요?”
“그, 그게…….”
남궁백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기백에 한순간 움찔한 것이다. 남궁백이 끌어 올렸던 진기를 황급히 흩어 냈다.
“맹주님께서 원하는 건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따르는 사람들인가 보군요.”
단악선이 휙 돌아서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우린 이만 돌아가겠어요.”
차가운 단악선의 태도에 남궁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돌팔이들을 참아 내며 이제 겨우 딸을 치료할 의원을 찾았는데, 겨우 붙잡은 희망의 끈을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둘러 입을 연 남궁백이 단악선을 막아섰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딸아이 일로 조급한 나머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체면 따위 모두 내던진 남궁백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 딸 향이, 가엾은 그 아이를 위해 한 번만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거봐, 의술이 최고라니까?
갑자기 날아든 범계위의 전음에 초악량이 피식했다. 그러나 이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동에 휩싸였다.
남궁백을 향해 단악선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대신 두 번 다시 우리 아저씨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남궁백은 입맛이 썼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당장은 그저 납작 엎드릴 수밖에.
“앞으로 치료가 끝날 때까지 별채에는 무림맹과 관련된 그 어떤 인물도 접근할 수 없어요. 물론 맹주님도 마찬가지고요.”
“네? 하지만…….”
단악선이 미간을 찡그렸다.
남궁백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관여하셔서도 안 되고요.”
“알겠습니다. 의원님과 그 일행이 무엇을 하시건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남궁백은 단악선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그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보다 실리를 더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왕 한번 구겨진 자존심,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내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담판을 지은 단악선은 현정전을 벗어났다.
전각에서 멀어지자 단악선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 의원, 화는 좀 풀렸어?”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처음부터 화는 나지도 않았어요.”
“……?”
“환자의 상태가 나쁠 때 극도로 예민해지는 게 환자의 보호자니까요.”
이번엔 초악량이 물었다.
“만약 맹주가 사과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이대로 이곳을 떠나려 한 것이냐?”
“그럴 리가요. 제가 떠나면 환자가 죽을 텐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범계위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단 의원, 이럴 때 보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야? 천하의 무림맹주를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두 분이 모욕을 받는 건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두 사람의 눈 위로 한순간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열 받네. 그냥 콱 죽여 버릴까?”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래! 단 의원, 치료고 뭐고 다 때려치워! 단 의원이 말만 하면 내가 가서 맹주 그놈 대가리를 깨 버리고 여기도 전부 불 질러 버릴게!”
“하하. 빈말이어도 고마워요.”
“어? 빈말 아닌데?”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올려다보다 순진한 미소로 화답했다.
“여러분이 제 곁에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정말 든든해요.”
완전히 기분이 풀린 단악선이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초악량이 슬쩍 뒤로 빠졌다.
“어디 가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맹주 그자가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해 볼까 해서. 금방 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
* * *
단악선 일행이 돌아간 뒤, 남궁백은 태사의에 몸을 묻은 채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행동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본능이 먼저 반응할 만큼 지독하리만치 강력한 기세였다.
“일개 의원이 보일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어.”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자들의 신원 내력을 조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약속을 한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녀석이 약속 파기의 책임을 묻는다면 이번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협이나 회유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향이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끓어오르는 노기를 애써 다스린 남궁백이 가까운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말입니까?”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하게 쐐기를 박은 남궁백이 피곤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때였다.
“맹주님!”
곤혹스런 표정으로 남궁백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은밀하게 몸을 숨긴 채 그를 호위하던 창천대의 대주였다.
“무슨 일이냐?”
창천대주 양불위가 잠시 대답을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 악공이라는 의원이 오줌을 누고 있습니다.”
남궁백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게 뭐라고 창천대주 정도씩이나 되는 자가 보고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진 양불위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현정전 입구 기둥에 말입니다.”
“뭐?”
남궁백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각 밖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어흐! 시원하다! 여기 뒷간이 어디야? 너무 넓어서 찾을 수가 없네?”
남궁백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 모습에 양불위가 입을 열었다.
“어찌할까요? 지시를 내려 주신다면 속하가…….”
“내버려 둬라.”
“……!”
“저들의 행사에 관여하지 말라하지 않았더냐. 나를 일구이언하는 소인배로 만들 셈이냐?”
그 순간, 전각 밖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드드득!
양불위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것도 동시였다. 밖에 대기하던 수하로부터 날아든 전음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지?”
“그, 그것이…….”
남궁백의 물음에 양불위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자신이 전해 들은 말을 그조차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악일이라는 자가…….”
남궁백은 단악선과 함께 있던 거한을 떠올렸다.
“그자가 왜?”
남궁백의 다그침에 모든 이의 시선이 양불위에게 모아졌다.
“하아…….”
길게 한숨을 터트린 양불위가 입에 담는 것도 송구스럽다는 듯 질끈 눈을 감았다.
“현정전 입구에 똥을 누고 갔다고 합니다.”
“헉!”
“컥!”
현정전 곳곳에서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미친놈들이?”
황당해 말을 잇지 못하는 남궁백을 대신해 누군가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황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밖의 수하로부터 전음이 날아든 탓이었다.
“빙옥선자가 오고 있답니다.”
“……!”
남궁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설마?”
“에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