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0)
신마의선-370화(370/500)
신마의선 (370)
“요사스러운 무공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저 여자가 예뻐 보일 수도 있어.”
초악량이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무공이라기보다 상대의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좌도방문(左道傍門)의 술법에 가깝다. 그렇다고 얕볼 수도 없지. 심공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눈빛과 표정, 거기에 나긋나긋한 몸짓과 달콤한 음성이 더해지면 그 자체로 몇 배의 효과를 발휘하곤 하니까.”
절정에 이른 섭혼소는 단순히 상대의 의지를 꺾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신마저 지배할 수도 있었다.
설난영의 성취가 그리 대단치 않아 미리 경고하지 않았을 뿐.
“혹시……?”
짙은 의혹이 담긴 단악선의 시선을 마주한 설난영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공은 아닙니다. 거친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녀들의 생존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것도 한나라 시절 이름 높은 유학자였던 유향이 저술한 열선전(列仙傳)에 언급될 만큼 역사 깊은 심공이었다.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도색 서적으로 전락해 버린 소녀경(素女經).
본래 그 안에 담겨 있던 심오한 이치 중 일부가 구전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랬군요. 오해해서 죄송해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설난영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순식간에 차분한 눈빛을 회복한 단악선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금 강호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신마의선이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이토록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니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허락 없이 아무나 꺾어 가는 노류장화(路柳牆花)의 삶이 그러하듯, 세상 모진 풍파를 헤쳐 나온 탓에 어지간한 협박에는 굴하지 않는 것이 기녀들이지요.”
설난영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내의 진심 앞에 알면서도 또 속아 주는 여자가 기녀들이기도 하고요.”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돈한 설난영이 자세를 바로 하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방금 전의 색기 넘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분한 미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좋아요. 어느 정도 의도한 바가 있었다 해도 제가 먼저 실례를 범한 건 분명한 사실. 그런데 오히려 사과를 받았으니 저 역시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런 의미에서 원하시던 정보를 알려 드리죠.”
초악량이 차갑게 웃으며 그 말을 잘랐다.
“아니, 값을 치르지.”
모처럼의 순수한 호의를 짓밟힌 설난영이 상처받은 눈빛으로 초악량을 쏘아봤다.
“그런 표정에 안 속는다. 하오문과의 공짜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우리의 첫 거래는 서로에게 큰 만족을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범계위가 깜짝 놀라 끼어들었다.
“만족? 설마 초 형 이 여자랑……?”
초악량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래가 아니다!”
초악량은 부정했지만 범계위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에 설난영이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예외로 하도록 하죠.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설난영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흑암방(黑巖幇). 그자들이 앵속분을 조직적으로 퍼트리고 있어요.”
“흑암방? 처음 듣는 놈들인데?”
초악량의 반문에 설난영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거예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흑도문파인가?”
“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에 내세운 이름일 뿐, 흑암방 뒤에 숨어 그들을 움직이는 진짜 실세는 따로 있어요.”
이어진 설난영의 말에 초악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백사회(白沙會)가 바로 그들이에요.”
“백사회라면…….”
단악선은 언젠가 능소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위관에서 도박장 운영을 전담하는 흑경방 사람들이 원래 백사회 소속이었다고 했죠?”
본래 산서에서 활동하던 그들이었지만 백사회에 바치는 상납금을 견디지 못하고 무위에 귀의했다 들었다.
초악량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가 녀석의 사업장을 집어삼키려 했던 적도 있지.”
염사인이 운영하던 염직물 사업에 꼬였던 귀찮은 파리들.
청성파의 속가 무관이었던 청성제일관은 자신의 위세를 앞세워 무리한 납기를 종용했고, 백사회 소속이었던 암룡방의 방주는 밀염(密鹽)을 유통시킬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초악량은 두 세력을 충돌시켜 서로 상잔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청성제일관의 관주 반여해와 암룡방주인 독염사 곽언은 동귀어진.
그 과정에서 청성칠자 중 한 명인 청명산인이 생존해 있다는 걸 알게 된 초악량은 두 번째 청성혈사를 일으켰다.
범계위가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백사회건 흑암방이건, 눈에 띄는 대로 족족 처죽이면 그만 아닌가?”
그 말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습게 볼 놈들이 아니다. 목숨 내놓고 당장만 사는 자들이니까.”
백사회는 불법적으로 소금을 밀거래하는 염효(鹽梟) 집단.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흑점조차 감히 밀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소금은 조정이 거두어들이는 세금의 큰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백사회의 독기와 집요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나 놈들이 뿌려 대는 독 소금은 무림에서 금기시된 금용독(禁用毒)인 당가의 부시독(腐屍毒)만큼이나 지독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다 문득 초악량은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 염적(鹽賊) 놈들이 굳이 흑암방이라는 유령 방파를 앞세워 움직이는 이유가 있나?”
그 물음에 설난영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백사회가 지나치게 커졌거든요. 그래서 만약을 위해 언제든지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새로운 문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죠.”
“백사회가 커졌다고?”
“네. 여러분들 덕분에요.”
뜻밖의 대답에 단악선뿐만 아니라 초악량과 범계위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위와 백사회가 크게 얽혔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설난영의 설명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파 무림인들 중 무위에 정착한 사람들은 전체에 비해 극히 일부예요. 오갈 데 없어진 나머지 사파인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설마?”
“네. 마교에 포섭된 일부 고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백사회가 고스란히 흡수했어요. 종재쌍흉(宗災雙凶)이 그들을 이끌고 있죠.”
“어?”
범계위의 입에서 당혹성이 흘러나왔다.
“그 노괴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지?”
한때 흑목애 일대에서 십대악인 이상의 악명을 드날리던 쌍둥이 형제.
그들에게 종재혈우(宗災血雨) 일신쌍흉(一身雙凶)이라는 불길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매번 지독한 혈풍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습을 감춘 지도 이미 이십 년이 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호인들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그들이 진즉에 어딘가에서 업보를 치렀으리라 믿어 왔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있고, 그것도 모자라 백사회의 회주를 맡고 있다니.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설난영이 아니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정도로 초악량과 범계위는 오랜만에 듣는 그 명호에 적잖이 당황했다.
“종재쌍흉, 그들 원씨 형제를 필두로 무위에서 쫓겨난 사파의 고수들이 합류하면서 빠르게 백사회를 장악했어요. 힘과 돈이 모이니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했고, 지금은 중원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그 과정을 가늠하던 초악량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금 강호의 정세를 감안하면 저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터.
구파일방이 건재한 데다 상당수의 사파 고수들을 무위와 마교가 흡수한 상태이다 보니 정사의 균형은 진즉에 무너졌다.
그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력 아래 뭉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력은 그렇다 치고 놈들에게 돈이 많다니? 밀염으로 돈을 버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그들은 더 이상 밀염만을 다루지 않아요. 전에 비해 훨씬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게 되었죠. 그것도 여러분께서 도와주신 것이나 다름없어요.”
“우리가?”
“정확히는 능 지주 대인의 업적이죠.”
가뜩이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하오문과 능소밀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설난영의 설명에 단악선은 그녀가 능소밀을 비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전 앞에서 이루어진 정쟁. 거기서 패배하고 밀려난 상단들이 백사회와 손을 잡았거든요.”
특히 중원 제일 상단으로 이름 높았던 금룡상단이 백사회에 힘을 실어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초악량은 내심 기가 막혀 마른 웃음을 흘렸다.
“결국 우리에게 밀려난 자들이 하나로 뭉쳤다는 건가?”
설난영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백사회에게 복속한 군소 방파는 스무 곳에 달하고, 신설된 사업 단체만 열 곳이 넘어요. 사파인들이 마교에 포섭되고 일부는 무위에 자리를 잡으면서 무주공산이 된 지역이 많아졌어요. 백사회는 그런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자신들의 거점을 구축했죠.”
“그다지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군.”
“맞아요. 그리고 그건 저희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설난영이 무거운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뒤가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어요. 이미 사파 최고 연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그런데 왜 지금까지 우리는 몰랐지?”
“염효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 겉으로는 독립적 문파를 앞세워 은밀하게 움직이죠.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최근의 강호 동향. 그 때문에 군소 방파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만큼 여유 있는 정보 단체가 없다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고요.”
하지만 하오문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개방이나 동창 등과는 다르게 저들과 활동 범위가 겹치기 때문이다.
이를 짐작한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백사회와 하오문이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다툼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들이 일방적으로 저희를 굴복시키려 하는 반면, 저희는 그들과 정면에서 싸워 줄 의향이 없으니까요.”
그런 설난영을 범계위가 비웃었다.
“흥! 겁쟁이들 같으니.”
그러나 설난영은 태연하게 미소로 응수했다.
“거친 비는 피해 가라는 것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온 하오문의 가르침이에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이해가 일치한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군요.”
설난영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대로 저들을 그냥 두면 언젠가 우리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될 테니까요.”
설난영이 어딘가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백사회와 관련된 자료를 상세히 정리해 가져오도록.”
“복명.”
어둠 속에서 들려온 대답을 뒤로한 채 설난영이 단악선을 향해 다시금 화사한 미소를 건넸다.
“자료가 방대해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적어도 내일 아침은 돼야 받아 보실 수 있을 테죠. 기다리시기 무료하실 테니 그때까지 천첩이 모실…….”
“아니.”
초악량이 대번 그녀의 말을 잘랐다.
“사양하지.”
설난영이 새치름하게 눈을 흘겼다.
“설마 아직도 저를 원망하고 계시는 건 아니시죠? 그때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제공한 정보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고스란히 의뢰인의 몫이라고요.”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저게 무슨 뜻이유?”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초악량이 가만히 노려보자 설난영이 딴청을 피우며 말을 돌렸다.
“하긴, 순수한 호의라 해도 어떤 분은 오해하실 수도 있겠네요.”
의뭉스럽게 한설화를 걸고넘어지는 그 모습에 초악량이 잠시 복잡한 감정을 눈에 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재앙은 세 치 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이 돌아섰다.
반면 단악선은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정보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 단악선을 향해 설난영 역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외람되오나 천첩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이요?”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공짜라 했지만 그녀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이상 얼마든지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었다.
“그들과 관련된 일을 처리함에 있어 부득이하게 손을 쓰시게 된다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설난영이 처량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올려다보았다.
“부디 우리 아이들에게는 손속의 자비를 남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이들? 애가 있었어?”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하오문에 속해 있다가 백사회 쪽으로 넘어간 분들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설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을 하진 않겠습니다만…….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단악선의 대답에 설난영이 진심을 담아 대례를 올렸다.
“그럼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곧장 사람을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