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1)
신마의선-371화(371/500)
신마의선 (371)
사흘 후.
단악선과 신마삼존은 섬서와 산서 경계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향했다.
설난영이 제공한 정보.
이를 토대로 흑암방의 본거지로 가장 유력한 곳을 찾아낸 것이다.
태행산(太行山)과 여량산맥(呂梁山脈) 사이로 흐르는 분강(汾江)의 지류를 끼고 어업과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던 마을이었다.
“너무 조용한데요?”
멀리 보이는 마을을 눈에 담은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한창 농번기를 맞아 분주할 시기였다.
쌀을 재배하는 장강 이남 지역과 달리 하북 지역은 예로부터 밀 농사를 주력으로 삼았다.
특히 이곳 일대는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는 봄밀 대신 늦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늦봄이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겨울 밀을 재배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밀밭 어디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에 묘한 정적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때 물을 대지 않아 말라붙은 밭.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 시든 농작물이 눈에 들어왔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린 것도 그때였다.
밀밭 근처로 다가서자 고약한 악취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시취(屍臭)로군.”
초악량이 눈앞의 밀밭을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바짝 말라 있던 밀 줄기가 경력에 휩쓸려 몸을 누이며 파도처럼 갈라졌다.
그 사이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썩어 가는 시신 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릉.
시신을 에워싼 채 살점을 뜯어 먹고 있는 들개 무리.
그중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들개 한 마리가 일행을 향해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퍼억.
그 순간 들개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이 개새끼들이 어디서 함부로 이빨을 들이대?”
대뜸 권풍을 날려 우두머리를 처리한 범계위가 나머지 무리도 망설임 없이 죽이기 시작했다.
한번 인육에 맛을 들인 짐승은 계속해서 사람을 노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깨갱!
운 좋게 살아남은 몇 마리가 혼비백산해 밀밭 사이로 달아나 숨어 버렸다.
하지만 일행은 추적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복잡하고 착잡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시신은 한 구만이 아니었다.
밀밭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썩어 가는 시신만 수십 구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늘도 드리우지 않는 뙤약볕 아래 맥없이 널브러진 사람들.
하나같이 초점 없는 눈으로 미약한 숨을 헐떡일 뿐, 그 어디에서도 온전한 활력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첨벙.
마을 옆에 위치한 강물에 몸을 던지는 인영이 단악선의 눈에 들어왔다.
“……!”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람이 강물에 뛰어들었건만 어느 누구도 만류하거나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힘없이 늘어진 채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볼 뿐.
단악선이 재빨리 신형을 날려 강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한바탕 물을 들이켜 혼절한 중년인을 단악선이 강가로 끌고 나왔다.
단악선이 중년인의 상체를 세운 뒤 장심에 진기를 불어 넣어 몇 차례 등을 두드렸다.
“쿨럭!”
기침과 함께 강물을 토해 낸 중년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하지만 초점 없이 흐리멍덩한 눈빛은 묘한 광기로 번들거릴 뿐,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팔다리는 고목처럼 바짝 말라 있었고, 두 눈은 샛노란 황달기가 가득했다.
진맥을 통해 중년인의 상태를 확인한 단악선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간을 비롯한 장기가 호전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것도 기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용왕……. 어서 용궁에 돌아가야…….”
그렇게 중얼거린 중년인이 단악선을 뿌리치며 강물을 향해 다시 꿈틀대며 기어가기 시작했다.
단악선이 중년인의 목뒤 근처, 혼혈을 짚었다.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상대를 내려다보길 잠시.
어느새 곁에 다가선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육신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환각을 동반한 심한 기갈을 느끼는 증세도 이 때문이고요.”
“치료할 방법은 있느냐?”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모르겠어요.”
힘없는 단악선의 대답에 초악량이 미간을 찡그렸다.
천하의 단악선이 이처럼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일행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덜컹.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던 모옥 문이 열리고 새카만 무복을 걸친 사내 둘이 키득대며 나서는 모습이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크흐흐. 거봐, 내가 뭐랬어. 아무리 콧대 센 도도한 계집이라도 이거 한번 맛보면 탕부(蕩婦)가 된다니까?”
허리춤을 여며 매던 쥐 수염의 사내.
그 뒤를 따라 나오던 사내도 비열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흐흐. 이것만 있으면 우리가 여기서 옥황상제나 다름없군.”
“아무렴. 괜히 이름이 극락산(極樂散)이겠어?”
“누군지 몰라도 이름 하난 기가 막히게 지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
“이게 그렇게 기분이 좋나? 눈이 뒤집힐 정도로?”
동료의 물음에 쥐 수염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서라. 자고로 과욕이 화를 부르고 호기심이 명을 단축하는 법이야. 약 기운이 돌 때나 극락이지, 깨어나면 나락이야. 얼마 전에 자진한 목가 놈 꼴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아, 실실 쪼개며 발광하다 칼로 스스로 배를 그어 내장을 끄집어냈던 그 미친놈?”
“그래. 그 꼴 되기 싫으면…….”
쥐 수염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모옥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와 그의 다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약관 남짓 되었을까.
헝클어진 머리칼과 흐트러진 옷매무새.
이를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치부를 드러낸 여인이 쥐 수염 사내에게 매달려 애원했다.
“제발 극락산을 더 주세요.”
쥐 수염 사내가 비열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러곤 품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내 여인의 눈앞에 흔들었다.
“하는 거 봐서.”
흐리멍덩하던 여인의 눈 위로 기이한 열기가 일렁였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흐흐. 뭐든지 한다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키득대던 사내가 흠칫하며 굳어졌다.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서 있었던 것이다.
말없이 자신들을 노려보는 단악선과 신마삼존을 뒤늦게 발견한 사내가 정색하며 외쳤다.
“누구……!”
그 순간 단악선은 이미 사내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극락산이라고 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쥐 수염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대체 언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들고 있던 목갑이 어느새 눈앞의 소년 손에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가공할 배수(扒手) 실력에 기함하던 그때.
“극락산!”
뾰쪽한 외침과 함께 여인이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잃고 힘없이 고꾸라졌다.
어느새 뒤에 나타난 초악량이 그녀의 수혈을 짚은 것이다.
쓰러지는 여인을 부축해 받아 든 초악량이 그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모옥 안에 데려가 눕혔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서던 초악량은 깜짝 놀랐다.
“안 돼! 단 의원!”
“그걸 왜 단 의원이 먹어?”
비명에 가까운 한설화와 범계위의 외침 때문이었다.
목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던 단악선이 냄새를 맡는 걸로도 모자랐던지, 그 일부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고집스럽게 극락산을 혀 위에 올렸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린 건 그 직후였다.
단악선이 침과 함께 극락산을 뱉어 냈다.
이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당가타주(唐家陀主)였던 당령.
그와의 내기에서 승리해 얻은 피독주(避毒珠)였다.
잠시 후 피독주를 뱉어 낸 단악선이 나직이 침음성을 흘렸다.
본래 새하얀 옥빛이었던 피독주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단 의원, 괜찮아?”
걱정 가득한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아요. 문제는 이 극락산이죠.”
단악선이 목갑을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새하얀 가루를 보여 주었다.
“원래 앵속분은 짙은 흑갈색인데, 이건 소금처럼 새하얘요. 분명 무언가 정제 과정을 거쳐 환락 효과를 극대화한 게 분명해요.”
그 위력은 단악선조차 깜짝 놀랄 정도.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전 여인처럼 한번 복용한 것만으로 이처럼 심각한 의존 증세를 야기할 리 없었다.
누군가의 손을 거친 앵속분은 본래보다 훨씬 지독한 마물(魔物)이 되어 있었다.
단악선이 질린 표정으로 목갑 안의 극락산을 응시했다.
“약성을 확인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어요.”
말없이 서 있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것 말고도 확인하는 방법은 있지.”
한설화가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주위를 에워싼 섬뜩한 기파에 파랗게 질려 있던 흑의 사내들.
그들의 신형이 갑자기 한설화 쪽으로 끌려간 것도 동시였다.
“으헉!”
“으악!”
가공할 격공섭물(隔空攝物)의 신위에 경악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한설화의 손에 넘어간 목갑을 발견한 두 사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사내들의 턱을 움켜쥐어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한 한설화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남아 있던 극락산을 모조리 그들의 입 안에 쏟아부었다.
“아, 안 돼! 쿨럭!”
“케헥! 사, 살려……!”
비명을 지르며 격렬히 반항하던 사내들의 신형이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동시에 동공이 크게 확장되나 싶더니.
“크헤헤.”
“크큭.”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흐느적대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종전의 앵속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마약의 위력에 기가 질린 것이다.
이윽고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신형을 돌렸다.
그렇게 마을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서자 곳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오물과 쓰레기 더미, 그 사이로 들끓는 악취와 벌레 떼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옥도가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거리 곳곳에 약에 취해 멍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집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향로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들은 나른한 눈빛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자신의 입에서 게워 낸 토사물에 얼굴을 묻은 채 히죽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광경에 단악선은 소름이 끼쳤다.
“약은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의원인 단악선에게는 더없이 낯설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마을 내부를 살피며 걸음을 옮기던 단악선이 흠칫하며 멈춰 선 것도 동시였다.
길바닥 한가운데 널브러진 여인.
풀어 헤쳐진 옷과 피부 곳곳에 남겨진 멍 자국은 한눈에 봐도 난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건 따로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여인의 시신 옆에 놓여 있던 강보 때문이었다.
설마 하며 강보를 조심스럽게 풀어 헤치던 단악선은 일순 숨이 턱 막혔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강보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아기가 누워 있었다.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 아기였다.
젖을 빨지 못해 아사한 아기의 주검을 마주한 단악선의 눈에서 차디찬 한광이 쏟아졌다.
“이승에 지옥을 만들어 놨어요.”
빠득.
절로 이가 갈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가공할 살의를 도저히 억누를 방법이 없었다.
처음 마주하는 단악선의 살벌한 눈빛에 신마삼존 역시 표정이 굳어졌다.
이때 어디선가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제발! 극락산을 더 주십시오!”
“꺼져! 극란산이 필요하면 돈이 될 만한 걸 가져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단악선이 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공터.
그곳에서 한창 실랑이를 벌이는 흑색 무복을 걸친 애꾸 사내와 비쩍 마른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악! 퇘앳!”
어깨를 걷어차 노인을 넘어트린 애꾸 사내가 엎드려 애걸복걸하는 노인의 뒤통수를 향해 가래침을 내뱉었다.
그러곤 분주하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커다란 수레에 시신들을 던져 넣는 흑의인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강물에 빠진 놈부터 건져! 떠내려가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고 몇 번이나 말해?”
애꾸의 명령에 흑의인들 몇 명이 황급히 강물 쪽을 향해 달려갔다.
단악선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한눈에 봐도 눈앞의 애꾸 사내가 흑의인들의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그런 단악선의 모습을 확인한 초악량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자들은 우리가 처리하마.”
그러나 그 순간.
단악선은 이미 애꾸 사내 앞에 이르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