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3)
신마의선-373화(373/500)
신마의선 (373)
원지극은 곧장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을 향해 다가섰다.
짙은 감색 화의를 걸친 중년인.
그가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상단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중원 제일의 상단이었던 금룡상단의 주인이자 전설 속의 부자인 석숭 이후 가장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 거부, 금대룡이 바로 그였다.
“이거 면목이 없소이다. 본 회의 귀빈들께서 모처럼 친히 왕림하셨는데, 산적한 일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마중조차 못 했소.”
원지극의 너스레에 금대룡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실 것 없소. 우리 중 가장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 바로 회주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너그러이 해량해 주신다니 이 원모, 다시 한 번 금 대인의 배포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구려.”
“그래 봐야 고작 한 시진 남짓 지체되었을 뿐이오. 먼저 급히 뵙자 청한 쪽이 우리들이니 이 정도는 기꺼이 감내해야지요. 이 자리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오이다.”
예의 바른 태도로 완곡하게 돌려 비꼬는 금대룡의 모습에 원지극이 입매 한쪽을 말아 올렸다.
“혹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제가 귀한 손님들을 홀대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소.”
말없이 웃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정도 하지 않는 금대룡이었다.
이에 원지극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큰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내 나름 예의를 다해 부회주를 미리 보내 그대들을 맞이하라 일렀거늘.”
금대룡의 눈에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그들로선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저런. 설마 아직까지 인사도 나누지 않으신 게요?”
히죽 웃은 원지극이 금대룡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금대룡이 순간 멈칫했다.
처음에는 흔들리는 유등 불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눈앞의 어둠이 한차례 크게 출렁이나 싶더니, 그 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인영 하나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기다란 팔과 구부정한 어깨.
치렁치렁한 회색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거구의 노인이었다.
일반적인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체구 때문에 이질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따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한 쌍의 눈이었다.
흰자위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두 눈을 가득 채운 커다란 동공.
게다가 어둠 속에 녹아 있던 때와는 다르게 일단 모습을 드러내자 형언하기 힘든 압도적인 존재감이 회의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대체 언제부터?’
상단주들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한 시진 넘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상대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문제는 자신들이 나눈 험담을 저자가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 부회주가 낯을 워낙 심하게 가리다 보니 매번 이렇습니다.”
원지극의 너스레에 금대룡을 비롯한 상단주들이 뒤늦게 알은척을 했다.
“이제 보니 회주님의 아우분이셨구려.”
“인사가 늦었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심 의아하던 참이었소. 항상 한 몸처럼 같이 다니신다는 두 분께서 오늘은 어찌 한 분만 오셨나 하고.”
종재쌍흉의 나머지 다른 한 명.
백사회의 부회주인 원무극이 상단주들의 얼굴을 뜯어보며 히죽 웃었다.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입술만 비틀어 말아 올린, 그래서 더욱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는 섬뜩한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쿠웅.
원무극이 한 손에 들고 있던 육중한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항아리 안에 담겨 있던 무언가를 한 움큼씩 집어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오도독.
처음엔 의아해하던 상단주들의 안색이 이내 해쓱해졌다.
원무극이 씹어 삼키는 것이 백사회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독염(毒鹽)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견하기에도 끔찍한 시커먼 독소금.
이를 아무렇지 않게 우적우적 씹어 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로써 완벽하게 기선을 내어 주게 된 금대룡이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누구보다 회주께서 바쁘신 것을 익히 알고 있으니 굳이 시간 낭비 않으리다. 우리가 회주를 뵙자 한 이유를 알고 있소?”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었소. 외부의 시선 때문에 왕래가 뜸했던 대인들께서 어째서 이 원 모를 보자 한 것이오?”
대놓고 시치미를 떼는 원지극의 모습에 금대룡이 미간을 찡그렸다.
“흑암방이 문제를 일으켰다 들었소만.”
흑암방이 멸문했다는 소식에 그들은 나름의 정보망을 총동원해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흑암방의 멸문을 주도한 이들이 단악선과 신마삼존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이 하나같이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였다.
바로 두려움과 불쾌함이었다.
만약 저들이 흑암방의 배후 세력인 백사회를 거슬러 추적해 온다면 최근에 백사회와 손을 잡은 자신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대룡을 위시한 상단 연합은 처음부터 흑암방이 주도하는 사업에 반대했었다.
“극락산이라 했던가요?”
금대룡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애초부터 뒤를 기대할 수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극구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소탐대실(小貪大失),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허벅지 살로 배를 채우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의미 모를 웃음을 머금고 있는 원지극을 향해 금대룡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괜한 짓을 벌여 신마곡이 움직일 명분만 만들어 준 셈 아니오?”
실제로 단악선과 신마삼존은 한동안 대외 활동이 잠잠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신마상단이 주축이 되어 개방을 비롯한 중원의 정보 단체들이 흑암방과 관련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온 중원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나 모든 사태를 백사회가 배후에서 주도한 이상 자칫 이쪽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질책에 가까운 추궁을 가만히 듣고 있던 원지극이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난 또 뭐라고.”
원지극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고작 그런 일로 호들갑 떠실 필요 없소. 대인들께서 신경 쓸 일 없도록 이쪽에서 알아서 깔끔하게 정리하리다.”
너무나 태연자약한 그의 태도에 상단주 몇 명이 불만을 드러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이오?”
“애초에 그런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소.”
그 순간.
삐걱.
유령처럼 회의장 구석에 서 있던 원무극이 움직였다.
“……!”
“……!”
금대룡을 도와 원지극을 압박하던 상단주들의 낯빛이 그대로 굳어졌다.
마치 자신들의 머리를 움켜쥐려는 것처럼 느리게 손을 뻗어 오는 원무극.
새카만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살기에 그대로 온몸이 얼어 버린 것이다.
“그만.”
우뚝.
자신들의 머리 위.
고작 한 자 정도의 거리만을 남겨 둔 채 멈춰 선 커다란 손을 올려다보던 상단주들이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원무극이 자신을 제지한 원지극을 의아하단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그에게 원지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선뜻 손을 내밀어 준 더없이 고마운 분들일세. 그러니 부회주도 그만 진정하도록. 이 정도면 저분들도 충분히 알아들으셨을 게야.”
그래도 여전히 상단주들을 노려보는 동생의 모습에 원지극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야.”
“……!”
서늘하게 식은 형의 음성을 마주한 원무극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제야 전신을 찍어 누르던 가공할 압력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두 상단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일하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금대룡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회주께서는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소.”
“세이경청(洗耳傾聽) 하리다.”
“우리는 회주의 괴뢰(傀儡)가 아니오.”
원지극이 펄쩍 뛰었다.
“허허, 누가 들을까 겁나는 말이외다, 어떤 간 큰 작자가 감히 중원 대부분의 상단을 움직이는 귀하들을 그리 평가할 수 있단 말이오?”
물끄러미 원지극을 응시하던 금대룡이 무거운 눈빛을 흘렸다.
“그렇다니 돌려 말하지 않으리다.”
“……?”
“회주께서는 분명 신마상단을 꺾을 묘안이 있다고 하셨소. 우리가 회주와 손을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오. 그러니 이제 약속을 지키시오. 그것만 해낸다면 지금과 같은 무례는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소.”
“무례라…….”
말끝을 흐리던 원지극의 눈 위로 기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날 믿지 못하는 것이오?”
“믿소. 그래서 지금까지 참아 온 것이오. 그러니 그 믿음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회주께서도 이제 결과를 가져다주시오.”
침묵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기를 잠시.
원지극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시키지 않으리다.”
“따로 생각해 둔 복안이 있으시오?”
금대룡의 물음에 원지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에게 아주 골치 아픈 일을 던져 줄 것이오.”
“골치 아픈 일?”
“지켜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요.”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못하는 금대룡을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드러내 보이는 원지극이었다.
“미리 알면 그만큼 나중의 재미도 줄어들지 않겠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금대룡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떠났다.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서는 상단주들의 모습을 응시하던 원지극의 얼굴 위로 보일 듯 말 듯 한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것들.’
놈들은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이 어떤 괴물인지 모른다.
복수를 위해서는 가진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저들은 아니었다.
여전히 헛된 미망에 사로잡혀 무서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질긴 거미줄처럼 저들에게 드리운 음모는 부질없는 희망에 발버둥 칠수록 저들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끌어 내릴 터.
원지극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 * *
단악선과 신마삼존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경공을 펼쳐 깊은 산속을 달리고 있었다.
백사회의 본단이 위치해 있는 곳을 결국 알아낸 것이다.
목적지는 이제 지척.
이대로 일다경 정도만 달리면 도착할 거리였다.
전면을 응시하던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놈들이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단악선이 삼엄한 눈빛을 드러냈다.
“힘으로라도 막아야 해요.”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차분한 초악량과 달리 범계위는 들뜬 음성으로 희희낙락했다.
“드디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손맛을 느낄 수 있겠군!”
반면 한설화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차갑게 식은 두 눈만큼은 이미 짙은 살기를 베어 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당당하게 백사회 본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절벽이 일행을 막아섰다.
절벽 곳곳에 입을 벌린 동혈들과 주변에 배치된 함정.
거기에 기척을 감춘 채 은신한 무인들의 존재들이 더해지니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요새를 방불케 하는 장소였다.
높은 망루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보초들이 단악선 일행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헉!”
헛바람을 들이켠 백사회 소속 무인들이 황급하게 경종을 두들겼다.
절벽에 위치한 동혈 곳곳에서 새카맣게 쏟아져 나오는 무인들을 마주하고도 단악선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오직 범계위만이 기대에 찬 얼굴로 연신 더운 콧김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대치는 아주 잠깐이었다.
돌연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지는 백사회 무인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백사회의 회주, 원지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