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4)
신마의선-374화(374/500)
신마의선 (374)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거리낌 없이 자신들을 맞이하는 원지극의 당당한 태도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범계위와 한설화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범계위는 그만 맥이 탁 풀려 버렸다.
“흥! 서로 뭐 그리 반가운 얼굴이라고? 그 머저리 같은 동생 놈은 어디 가고 혼자야?”
아쉬운 마음에 범계위가 원지극을 긁어 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여유로운 웃음뿐이었다.
단악선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인사조차 생략한 단악선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흑암방을 백사회에서 관리한다 들었어요.”
그 말에 원지극이 과장스럽게 한숨을 터트렸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아무리 흑암방이 본회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하나, 그들의 관리를 소홀히 한 본회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
몇 마디 말로 단번에 꼬리를 잘라 내는 원지극이었다.
그 뻔뻔함에 단악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흑암방의 일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당연히 후속 조치를 취해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지.”
“정확히 어떤 조치를 말씀하시는 거죠?”
원지극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금 강호에 신진 영웅으로 급부상한 신마의선께서 우리처럼 하찮은 소금 장수들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구려.”
누가 봐도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단악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대답 여부에 따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사가 결정될 테니까요. 물론 당신을 포함해서요.”
원지극의 새하얀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안색을 회복하며 빙그레 웃었다.
“좋소. 그럼 내 물으리라. 혹 본회에 원하는 바가 있으시오?”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단악선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원지극이 재차 말했다.
“나 또한 본회의 책임을 통감하는 만큼, 서로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 보리다.”
그 어떤 제안이라도 수용하겠다는 듯 한발 물러서는 원지극의 태도에 단악선의 눈빛도 살짝 누그러졌다.
“유통된 극락산을 전량 회수해 폐기하세요.”
“허허. 이미 유통된 분량까지 말이오? 그건 꽤 품이 많이 들 텐데…….”
“그리고 향후 앵속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어떤 약재도 취급해선 안 돼요.”
“만약 거절한다면 어찌하실 참이요?”
단악선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 묶여 있던 묵룡을 천천히 움켜쥐며 위화신공을 끌어 올렸다.
명확하게 전의를 드러내는 그 모습에 원지극은 내심 코웃음 쳤다.
동행한 고수들의 위세를 믿고 설쳐 대는 저 건방진 꼬락서니라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점점 강해지는 단악선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거절해도 돼.”
범계위였다.
퍽.
초악량이 범계위의 정강이를 한껏 세게 걷어찼다.
“왜 또?”
“아주 그냥 제를 올리지 그러냐.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저놈 봐라. 방금까지만 해도 한번 붙어 볼까 고민하던 놈이 너 때문에 바로 꼬리를 말지 않느냐?”
범계위가 홱 고개를 돌려 원지극을 노려봤다.
“에이, 그래도 명색이 백사회의 회주인데 체면이 있지. 여기서 물러나면 수하들한테 권위가 안 설 텐데? 왜 악호군 그놈도 그래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잖수.”
“쯧. 이미 텄다.”
혀를 찬 초악량이 원지극을 가리켰다.
“저놈 표정 봐라. 이미 다 내려놓은 얼굴 아니냐.”
아니나 다를까.
원지극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 귀하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리다. 아울러 흑암방과도 완전히 관계를 정리하겠소.”
단악선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에겐 분명 무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선뜻 받아들일 줄이야.
무언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건 분명한데 당장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생각에 잠긴 단악선을 대신해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맹세할 수 있느냐? 말만 그렇게 하고 뒤에서 다른 짓을 꾸밀지 어떻게 알고?”
“정 못 믿겠다면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 이곳에 상주시키시오.”
상대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초악량도 더 이상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원지극이 내공을 실어 외친 것도 그때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흑암방을 본회에서 축출한다. 앞으로 그들과 어떤 교류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기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본회의 율법에 따라 염열형(鹽熱形)에 처할 것이다.”
염열형은 온몸을 결박한 뒤 그대로 소금에 묻어 산 채로 염장하는, 그들만의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이로써 원지극은 자신이 뱉은 말을 싫어도 지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백사회에 몸담은 이상 염열형의 맹세는 그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원지극이 문득 생각난 듯 단악선을 향해 묘한 눈빛을 던졌다.
“귀하는 혹 사파의 종주(宗主)를 꿈꾸고 계시오?”
“네?”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원지극이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다른 문파의 일에 이처럼 깊이 관여한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지금껏 이런 일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사파의 생리상 도의적인 책임은 기대할 수 없는 노릇.
염왕채를 비롯한 인신매매 등.
온갖 지탄을 감수하고도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들은 지금도 중원 전역에 널리고 널렸다.
이어진 원지극의 말에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다 언젠가는 우리 밥줄인 밀염도 금지시키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오.”
“이번 일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도를 지켜 가며 사업을 한다라…….”
묘하게 말끝을 흐리던 원지극이 피식 웃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사파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테지.”
단악선도 일순 반박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아주 일리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던 것을 얻은 이상 굳이 그와 날 선 언쟁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약속은 꼭 지키시리라 믿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단악선이 돌아섰다.
“안 돼! 이렇게 그냥 돌아간다고?”
괜히 미적대며 버티는 범계위를 초악량이 잡아끌었다.
그렇게 백사회의 영역을 벗어난 일행은 다시금 무위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왜 그리 표정이 어두운 것이냐?”
한설화의 물음에 초악량과 범계위도 단악선의 표정이 굳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 석연치가 않아요.”
찜찜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어 고민하길 잠시.
“아!”
갑자기 멈춰선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의아한 눈빛을 던지는 일행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당했어요.”
“당하다니?”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그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어요.”
“애초에 한탕 크게 하고 정리할 셈이었단 말이냐?”
“네. 이대로 백성의 피해가 커진다면 관에서도 절대 좌시하지 않을 테니까요.”
회주인 원지극이 백사회를 장악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 들었다.
그런 만큼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을 터.
금룡상단을 비롯한 상단들과 손을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으니 이제는 포기해도 되는 사업인 거죠. 아니, 향후 미래를 생각해서도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사업이었어요. 조정이 개입하기 전에요.”
크게 선심을 쓰는 듯했지만 정작 원지극 본인이 손해 보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에요.”
“응? 또 뭐가 있어?”
의아한 얼굴로 되묻던 범계위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자는 일부러 우리가 찾아온 순간에 흑암방을 포기했어요. 마치 우리 때문에 포기한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한 거죠.”
“그게 왜?”
“이로써 그들은 녹림에게 할 말이 생기는 거죠. 우리 때문에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을 얻은 거예요.”
가장 큰 수입원이 사라진 녹림.
총표파자인 악호군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명약관화했다.
“우리와 녹림을 갈라 치려는 이간계(離間計)예요.”
답답한 마음에 단악선이 재차 한숨을 흘렸다.
“결국 우린 녹림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 새끼들! 감히 우리 단 의원을 속여?”
돌아서는 범계위를 단악선이 막아섰다.
“지금 그들을 죽이면 우리와 신마상단 모두가 비난을 면치 못할 거예요. 어쨌거나 우리는 조건을 제시했고, 저들은 전적으로 수용했으니까요.”
여기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
“그럼 이대로 놔두자고?”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없죠. 그래도 우선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어차피 백사회 역시 힘을 모을 때까지는 섣불리 이쪽을 도발해 오지는 못할 터.
그보다는 당장 눈앞의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 * *
“방금 뭐라 했지?”
태사의를 박차고 일어난 악호군이 호목을 부릅떴다.
악호군의 맞은편에 시립해 있던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한숨을 터트렸다.
총사(總師)직을 맡고 있는 석단평이었다.
“백사회가 흑암방을 포기했습니다. 회주인 원지극과 신마의선이 직접 만나 담판을 지었다더군요. 이로써 흑암방은 강호에서 완벽하게 지워졌습니다.”
방금 올라온 보고를 통해 상황을 인지한 그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자금줄이 단번에 잘려 나간 셈.
지금껏 숱한 위기를 넘겨 왔지만 이번만큼은 달리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석단평의 수하가 그에게 서신을 건넨 뒤 서둘러 빠져나갔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석단평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지?”
악호군의 물음에 석단평이 들고 있던 서신을 와락 구겼다.
“와호채주 전굉이 녹림총회를 요청했습니다.”
악호군의 눈썹이 꿈틀했다.
녹림은 열여덟 곳의 주요 산채가 연합해 결성한 세력.
그중에서도 와호채는 전통적인 강자였다.
총타를 제외하면 규모나 세력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곳이었다.
따라서 채주인 전굉의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총표파자인 악호군의 위상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추된 상황.
무력과 권위를 앞세워 사자처럼 군림하던 그였지만 무위에 일신을 의탁하는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신마삼존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우두머리의 모습에 그를 따르던 채주들 역시 덩달아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신마상단과 맺은, 녹림에게 불리한 협약이 결정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마상단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맹약.
표국의 간교한 놈들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표행에 신마상단 인원을 포함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표국은 녹림과의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해 버렸고, 전과 달리 더 이상 녹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표사들이 노골적으로 녹림도를 무시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강호 내에서 좁아진 녹림의 입지.
이로 인해 각 채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실제로도 자신들이 신마상단의 지부냐는 채주들의 항의 서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드는 형국이었다.
앵속에 손을 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약조로 인해 그들이 입은 손해를 어떤 식으로든 보전해 줘야만 했다.
하나 이제 이마저도 막혔으니 그야말로 사면초가.
이런 상황에서 긴급하게 녹림총회를 요구한다니, 그 안건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뿌득.
움켜쥔 악호군의 손아귀에 의해 태사의의 팔걸이 부분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다.
“나를 끌어내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