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78)
신마의선-378화(378/500)
신마의선 (378)
해일 같은 검기의 파도를 가닥가닥 와해하며 거슬러 오르는 묵빛 섬광.
이를 발견한 악호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악호군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순간 깨달음을 얻어 높은 경지로 비상하는 것을 가리켜 흔히 대오각성(大悟覺醒)이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마치 폭우에 불어나는 강물처럼, 단악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섭게 강해지고 있었다.
무기를 맞대고 있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상황.
실제로도 단악선은 이후로도 수많은 위기에 직면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을 모면해 나갔다.
상황이 이쯤 되니 되려 조바심이 나는 사람은 악호군 쪽이었다.
“빌어먹을!”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악호군이 욕설을 터트렸다.
“이 망할 꼬맹이가 감히 나를 상대로 수련을……?”
악호군은 말을 맺지 못했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자신을 압박해 오는 단악선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악호군은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어찌나 화가 치솟는지, 온몸의 진기가 날뛰며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질 것만 같았다.
대체 얼마나 얕잡아 보였으면 천하의 그가 이런 수모를 당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악호군의 칼과 단악선의 봉이 정면에서 부딪쳤다.
지금껏 서로의 무기가 직접 격돌하는 것만은 피해 왔던 악호군이었다.
단악선의 무기 자체가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그에게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쩌엉!
육중한 소성과 함께 악호군의 박도가 그대로 박살 나 흩어졌다.
그 흩어진 파편에 휩쓸린 악호군의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날카로운 통증에 악호군은 뒤늦게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돌아왔다.
계속해 시린 눈빛을 한 채 다가오는 단악선을 발견한 악호군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을 때 악호군은 이미 절반밖에 남지 않은 칼을 휘둘러 단악선을 베어 가고 있었다.
스스로 위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방어는 의미가 없었다.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공격으로 뒤집힌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단악선 역시 지지 않고 묵룡을 마주 휘둘렀다.
꽈앙!
육중한 폭음과 함께 단악선의 옆구리를 노리던 박도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일순 팔 전체가 마비되는 충격에 악호군은 그만 박도를 놓쳐 버렸다.
“……!”
악호군은 아연실색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그의 입에서 두려움과 당혹감이 뒤섞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단악선의 신형은 이미 그의 면전에 이르러 있었다.
경악한 악호군이 바닥을 걷어차 흙모래를 뿌리는 것과 동시에 황급히 물러섰다.
그러나 단악선은 슬쩍 신형을 틀어 젖히는 것만으로 간단히 이를 피해 버렸다.
얍삽한 실전 수법은 이미 충분한 경험을 통해 숙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호군을 좇지도 않았다.
대신 묵룡을 벼락처럼 휘둘렀을 뿐.
그 순간 악호군은 돌연 세상이 크게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쿠웅.
사납게 바닥에 나뒹굴고 나서야 악호군은 오금 어림이 욱신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날아든 일격은 그만큼 뼈아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떨어트렸던 칼을 다시 쥘 수 있다는 것 정도.
“크읍!”
이를 악문 악호군이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곤 눈을 향해 짓쳐 드는 묵룡을 무시한 채 전력으로 칼을 내밀었다.
그의 신형이 빛살처럼 단악선을 향해 쏘아졌다.
살을 내어 주고 상대의 뼈를 베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고육책.
아니.
양패구상(兩敗俱傷)을 넘어 동귀어진(同歸於盡)에 가까운 한 수였다.
실제로 상황을 관전하던 신마삼존의 얼굴이 한순간에 해쓱해졌다.
절반밖에 남지 않은 악호군의 박도.
그 위로 꿈틀대는 유형화된 진기는 분명 도강(刀罡)이었기 때문이다.
“위험……!”
이번에는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놀라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단악선과 악호군이 격렬하게 뒤얽히고 있었다.
‘맙소사!’
뒤늦게 단악선이 휘두르는 묵룡을 발견한 초악량의 두 눈에 경탄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단악선은 의지가 향하는 곳에 묵룡이 이르러 있는, 완벽한 검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손을 따라 어김없이 묵룡이 도강을 두들기고 있었다.
찍고, 후려치고, 흘려 내며, 두드리고, 누르는…….
하나같이 기초적인 수법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일거에 쏟아 내니 그야말로 신공절학이 따로 없었다.
초악량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이건 마치 나의……?’
비록 무기를 통해 구현했다고는 하나 그 안에 담긴 요체는 분명 자신의 금나수였다.
언젠가 보았던 것을 고스란히 묵룡에 녹여 낸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악호군이었다.
그 무엇도 베어 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강기가 연이은 충격에 조금씩 와해되는 것을 마주하자 그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왁!”
한 움큼이 넘는 피를 토하며 악호군이 맥없이 주저앉았다.
단악선의 묵룡이 강기를 두들길 때마다 반드시 돌아온 반탄진기.
내부를 뒤흔든 충격은 고스란히 내상으로 누적되었고,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진기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희미한 잔재를 남기며 허공에 흩어진 도강.
그 사이로 섬뜩한 묵룡이 가슴을 향해 작렬하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경력을 얹은 채로.
퍽!
그리 크지 않은 소리.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피를 토하며 널브러지는 악호군을 목도한 신마삼존 모두의 눈 위로 놀라움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설마 단악선이 악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아……. 하아…….”
어깨를 들썩이며 뒤늦게 거친 숨을 고르는 단악선을 향해 신마삼존이 다가섰다.
“너무 무모했다.”
잔뜩 눈살을 찌푸린 초악량의 모습에 단악선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단악선의 사과에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러곤 말없이 단악선의 온몸 곳곳에 자리 잡은 부상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벌어진 피부를 봉합하고, 그 위에 지혈제를 뿌린 뒤 면포로 단단히 동여매는 솜씨가 의원 뺨치게 능숙했다.
묵묵히 치료를 이어 가는 초악량을 대신해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이번만큼은 나 역시 초 오라버니와 같은 생각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하지만 그를 멈추려면 제가 나서야만 했어요.”
“……?”
“아저씨들이나 아주머니라면 손쉽게 그를 이겼겠지만, 그로 인한 여파가 적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부터 그는 죽을 각오로 이곳에 남아 있었으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분명 녹림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했어요.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녹림 전체의 분노를 이끌어 내려 했을 게 분명해요.”
당연히 그들의 증오는 신마삼존과 단악선에게 향했을 것이고, 이제껏 힘들게 쌓아 왔던 녹림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될 터.
반대로 단악선은 악호군보다 어리고 대외적으로도 훨씬 뒤떨어지는 무공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히려 악호군이 약자를 핍박한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그런 상황인 만큼 신마상단을 향한 녹림의 명분도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악선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도 그때였다.
“흥! 실망이야! 단 의원!”
범계위였다.
평소와 다른 범계위의 태도에 단악선이 일순 당황했다.
언제나 자신의 편을 들어 주던 범계위가 이처럼 다짜고짜 꾸짖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죄송해요.”
“그럼! 당연히 죄송해야지! 무려 열다섯 번이야!”
“예?”
영문 모를 말에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뜨거운 콧김을 뿜어냈다.
“죽을 뻔한 위기가 열다섯 번이나 된다고! 그거 때문에 내 수명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 십오 년…… 아니, 백오십 년은 줄었을 거야! 이러다 단명하게 생겼다고!”
초악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핀잔을 던졌다.
“백오십 년이 줄었다고? 그럼 대체 얼마나 살려고?”
“여기 마녀보다는 오래 살아야지? 내가 더 고수인데 쟤보다 먼저 가는 것도 웃기잖아.”
한설화의 눈에서 차가운 광망이 일렁였다.
다른 건 참아도 나이를 가지고 지껄이는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모처럼 마주하는 한설화의 진짜 살기에 초악량도 살짝 긴장하며 진기를 끌어 올렸다.
“넌 눈치라는 게 없는 게냐?”
초악량의 질책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뭐?”
“원래 강한 사람은 눈치 따윈 보지 않아. 마치 우리 단 의원처럼. 그런 면에서 우린 무척이나 서로를 닮았지. 으하하하!”
범계위가 단악선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죽였어, 단 의원.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릴 만큼 아주 속 시원한 일격이었어!”
“그게…….”
“응? 왜 그래?”
단악선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총표파자를 죽이지 않았어요. 아니…….”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죽일 수가 없었어요.”
“아니, 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계획을 완성시키려 했으니까요. 그를 죽이면 그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갔을 거예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악호군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나요? 총표파자.”
꿈틀.
길게 뻗어 있던 악호군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크으…….”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온몸에 맺혀 있던 통증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 댔기 때문이다.
“목숨 하나는 질긴 놈이군. 그걸 맞고 살았네?”
범계위의 감탄을 뒤로한 채 악호군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당황스러운 눈빛을 흘리던 그가 단악선을 노려봤다.
“왜지?”
침묵하는 단악선을 향해 악호군이 으르렁거렸다.
“왜 마지막에 내력을 거두었느냔 말이다!”
“명예로운 죽음을 핑계로 총표파자 혼자 달아나는 걸 두고 볼 수 없으니까요.”
단악선의 대답에 악호군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서? 나를 인질로라도 잡겠다는 것이냐?”
“녹림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군요.”
“소용없다. 그 정도에 흔들릴 만큼 녹림은 의리 있는 집단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방법을 달리할 수밖에요.”
악호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앞의 꼬맹이는 결코 허언을 입에 담을 녀석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빛과 목소리에 확실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제길!’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악호군이 내심 침음했다.
비록 마지막에 단악선이 내력을 거두었다곤 하나 현재 그는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육신과 정신이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악호군의 생각을 읽어 낸 단악선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포기하세요.”
“뭐?”
“이미 저와 싸워 패배한 시점부터 명예로운 죽음은 물 건너갔으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닥쳐!”
단악선이 차가운 미소로 응수했다.
저벅.
이내 악호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핏발 가득한 눈에 가득 담긴 적개심.
이를 마주한 단악선이 불쑥 입을 열었다.
“바닥 밑에 더 깊은 나락이 존재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니 이제부터 총표파자도 느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