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
신마의선-38화(38/500)
신마의선 (38)
현정전 여기저기서 걱정과 우려가 담긴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콰앙!
현정전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한설화였다.
휘이이잉.
휘몰아치는 한기의 중심에 선 채 그녀가 오연한 눈빛으로 남궁백을 응시했다.
“수하들을 물려라.”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섬뜩함이 느껴지는 차가운 음성이었다. 이에 당황한 남궁백이 약간 주저하는 사이, 한설화가 온전히 기파를 개방했다.
쩌저적.
그의 발밑에서 시작된 새하얀 서리가 순식간에 바닥을 타고 번지나 싶더니 기둥과 벽을 빠른 속도도 뒤덮었다.
“쿨럭!”
현정전 내부의 무인 몇이 피 기침을 토한 것도 그때였다.
남궁백이 황급히 명령을 내렸다.
“전원 밖으로 물러서라!”
“하오나 맹주님!”
“어서!”
쩌렁한 남궁백의 일갈에 모든 무인이 현정전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한설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그 아이에게 살기를 겨눈다면…….”
긴장한 남궁백을 향해 한설화가 말을 이어 갔다.
“그때는 십대악인에 내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
한설화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녀가 사라진 곳을 한참 응시하던 남궁백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태태선자가 아니라 호구태태(虎口太太)였던 것인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곳마다 재앙을 옮긴다는 여자 귀신.
이 순간만큼은 한설화가 그렇게 느껴졌다.
* * *
별채로 돌아온 단악선은 곧장 풍진성을 찾았다.
그동안 알아낸 병의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고 치료 방향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
“조혈의 회복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천진기를 활성화시켜야 하고요.”
“선천진기를 깨우면 균형이 더욱 기울어질 텐데요?”
풍진성의 우려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양기가 강한 영약으로 핏속의 불순물을 날려 버릴 생각이에요. 그것도 일거에.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치료가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발병할 테니까요.”
“너무 위험합니다. 이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어요. 특히 지금처럼 쇠약해진 상태로는, 영약의 기운조차 독이 될 수…….”
“네, 양기의 조절이 관건이죠.”
풍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영약이 흡수되는 시간과 효과가 발현되는 시간 사이의 간극. 그 격차가 너무 큽니다.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걸 어떻게 대처한단 말입니까.”
거기에 다른 이유도 언급했다.
“그렇게 상태가 호전된다 해도 여전히 문제가 남습니다. 한쪽으로 크게 기운 음양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지금 남궁 소저의 상태로는 절대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 음양의 변화에 대응이 가능하다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그 어떤 영약도…….”
“영약으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사람이라면 가능해요.”
풍진성이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범계위와 한설화에게 향했다.
“두 분이 도와주신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설화가 음기로 오장육부와 기맥을 보호하고, 범계위가 양기로 몸 안의 독기를 모조리 태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번 뒤 영약으로 선천지기를 깨우는 거죠.”
“그런 방법이라면…….”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을 이어 가던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반대의 성질을 지닌 음한기공과 극양기공.
이를 극성으로 연마해 이미 일대종사의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다. 거기에 단악선의 의술이 더해지고 자신이 곁에서 돕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하다.
단악선이 범계위와 한설화에게 말했다.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애초에 단악선의 부탁을 거절할 두 사람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그러다 문득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묘한 눈빛을 던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저놈이 사람 살리는 일에 손을 보태다니.”
범계위가 발끈했다.
“나도 사람 많이 살려 봤수!”
“네가?”
“그럼! 죽일 놈 안 죽이고 놓아준 게 몇 명인데?”
“그게 이거랑 같냐?”
“뭐가 달라? 엎치나 메치나, 결과적으로는 그게 그거지.”
그러다 범계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초악량을 향해 씨익 웃었다.
“나이 먹고 이 무슨 추태요?”
“뭐가 말이냐?”
“딱 보니 알겠고만, 뭘. 초 형이 나설 자리가 없어 심통 부리는 거 아뇨?”
풍진성과 구체적인 치료 방법과 세세한 순서를 상의하던 단악선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초 아저씨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요?”
“초 형이?”
당황한 범계위와 달리 초악량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이번 시술은 약간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아요. 게다가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악선이 세 사람을 향해 눈빛을 빛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합을 맞춰야 해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거냐?”
한설화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초 아저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거죠. 그나마 환자와 상태가 가장 비슷하니까요.”
한설화와 범계위.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초악량은 갑자기 불길함에 휩싸였다.
“쟤들을 믿어도 될까?”
우려를 금치 못하는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단 의원은 물론 믿지. 다만 저 둘이라서 문제지.”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어요. 서로를 믿는 수밖에요.”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악선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발을 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때 풍진성이 입을 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군요.”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풍진성에게 모아졌다.
“이리 어려운 일을 하는데 대가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범계위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영약!”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치료비도 두둑이 챙겨야겠죠.”
그 역시 남궁백과 일행들 간의 마찰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에누리 없이 싹 다 받아 내야지.”
범계위의 말을 초악량이 받았다.
“아무렴. 천하에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단 의원이 유일하니까.”
* * *
보고를 듣던 남궁백이 태사의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콰직.
단단한 자단목이 그의 손아귀 아래 그대로 으깨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단상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찾지 못했다는 건가?”
무림맹의 눈과 귀인 정보 단체. 천이단의 단주, 제갈연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인원을 총동원해 찾고 있으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행방이 묘연한 자라…….”
실망을 드러내는 남궁백의 모습에 제갈연이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내가 할 일이 맞나?’
무림맹의 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장 세가끼리의 관계를 생각하여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속내를 숨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결연한 눈빛으로 남궁백을 바라봤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남궁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갈연이 물러가고 남궁백은 식은 차를 들이켰다. 연이어 세 잔을 마셨는데도 가슴속의 불덩이는 여전했다.
청화은옥으로 만든 침상을 진상한 자.
비룡상단의 상단주를 향한 분노였다.
십 년 전, 처음 자신을 찾아온 그는 막대한 재물을 바치며 안휘성 내에서의 이권을 보장받았다. 그 뒤 수완을 발휘해 안휘성 내의 상단들을 하나씩 밀어냈는데, 개중엔 남궁세가와 연이 깊은 상단들도 꽤 존재했다.
남궁세가는 그들의 싸움에 침묵했다.
이미 막대한 재물을 받은 탓도 있겠으나, 실상은 안휘성의 패자였던 남궁가에게 비룡상단은 기존의 이권 이상으로 살뜰하게 챙겨 줬기 때문이다.
한데 무림맹주가 되어 세가의 일에 잠시 소홀한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단의 주인은 이미 바뀌어 있었고, 그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남궁백은 속이 뒤집혔다.
그때 창천대 대주 양불위가 말했다.
“진성의가의 가주가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남궁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현정전 문이 열리고 풍진성이 들어섰다.
“진성의가의 풍가 진성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변함없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는 풍진성이었다.
“듣자니 작은 오해가 있었다고요.”
“오해? 오해였던가요?”
남궁백이 실소했다.
하지만 굳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 가지는 않았다.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딸의 안위를 묻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향이, 그 아이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맹주님을 찾아뵌 것입니다.”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남궁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치료 방향을 잡았습니다.”
“치료가 가능하단 말씀이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
“그것이 소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가주를 믿겠소! 그러니 부디 그 아이를 살려 주시오!”
풍진성이 모호한 미소를 지은 채 남궁백을 바라봤다.
“방금 하신 말씀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아시다시피 치료를 주관하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저희 의가 사람들은 옆에서 손을 보탤 뿐, 전반적인 모든 치료는 곡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풍진성이 말을 이어 갔다.
“원래대로라면 곡주님께서 오셔서 직접 치료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도 치료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해서 제가 대신 온 것입니다.”
남궁백이 손을 내저었다.
“부디 살려만 주시오!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소.”
“은혜라니요. 의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요.”
“내가 도울 만한 일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맹주님께 도움을 청할 것이 있습니다.”
풍진성은 대략적인 치료 방법을 설명했다. 물론 범계위와 한설화의 무공 부분은 다른 내용으로 대체했다.
그 과정에서 영약의 필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영약이라면…….”
풍진성이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창천대의 무인 한 명이 그 종이를 받아 남궁백에게 건넸다.
그런데 종이 위에 빼곡하게 적힌 약재 목록을 확인하던 남궁백이 어느 순간 침음을 흘렸다.
처음엔 흔한 약재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조차 놀랄 정도의 영약들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음설련과(天陰雪蓮果)에 천 년 이상의 하수오라니…….”
거기에 소림의 대환단과 매화신단이라 불리는 화산의 자소단, 무당의 태청신단까지. 하나만으로도 강호가 들썩일 영약과 영단들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가장 마지막 줄에 적혀 있는 한 단어.
“공청석유?”
남궁백이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풍진성이 예의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구할 수만 있다면 이번 치료의 성공 가능성이 일 할 이상 올라갈 것입니다.”
남궁백이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맹주님.”
무림맹의 재정 기획과 집행을 담당하는 조직.
청화단의 단주인 사공운이었다.
“풍 가주가 요청한 영약들은 본 맹에서도 특별한 경우에 한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허가되는 전략 자산이옵니다. 부디 결정에 신중을 기하시…….”
남궁백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이 약들은 내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것이니, 남궁 세가의 자산으로 구할 것이다.”
사공운은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인지, 바로 물러났다. 이를 본 남궁백이 다시 풍진성을 보며 물었다.
“원래 성공 확률은 얼마입니까?”
“오 할입니다.”
“겨우?”
기껏해야 반반의 확률이라는 말에 남궁백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러나 풍진성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조차 다른 이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겠소.”
남궁백이 결정을 내렸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련해 드리리다.”
딸의 생명이 걸린 이상 일 할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향이, 그 아이만 살려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