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2)
신마의선-382화(382/500)
신마의선 (382)
영순 공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볼수록 능소밀은 여러모로 특이한 사내였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든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아등바등하기 마련.
한데 그는 반대였다.
자신이 세운 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기 바빴고, 그것도 모자라 매번 반려될 걸 알면서도 자신의 사임을 주청하곤 했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이전투구를 벌이던 자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녀였기에 처음에는 그 같은 기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단악선과 떨어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걱정 마세요.”
안도하는 능소밀을 향해 영순 공주는 비로소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단 의원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나요?”
“아! 이틀 전 새벽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 번도 절 찾아오질 않으시네요.”
“그야 당연히…….”
실망으로 흐려지는 영순 공주의 모습에 능소밀이 재빨리 대답을 바꾸었다.
“……정신이 없으셨으니까요. 무림에 아주 큰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굉장히 위험한 약이 백성들 사이에서 나돌았다고요?”
“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요. 그걸 수습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더군요.”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네. 아주 건강하십니다.”
영순 공주는 무언가를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능소밀이 재빨리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는 이만……. 살필 것이 많아서요.”
그 말을 끝으로 능소밀이 번잡한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영순 공주는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 후.
“오오! 저게 바로 천자께서 타신다는 어가(御駕)인가?”
무위로 향해 온 황제의 행렬.
멀리서부터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는 화려한 가마를 목도한 사람들의 입에서 저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일반 백성인 그들이 이처럼 직접 황제를 마주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쯧쯧. 저건 옥로(玉輅)라 부르네. 바퀴도 달려 있는 데다가, 앞에서는 여섯 필의 말이 끌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아는 척을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그 시선을 즐기며 한껏 뻐기던 그가 설명을 이어 갔다.
“폐하를 위한 탈것을 거가(車駕)라 하는데, 거가에는 오로(五輅)와 치거(輜車)가 있네. 오로는 바퀴가 있고 말이 끌지만 치거는 바퀴가 없지. 저건 오로 중에서도 옥로라 부르는 정거가라네.”
확실히 그의 설명대로 황제가 탄 가마 앞에는 붉고 흰 자백마(赭白馬) 여섯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가마 전체를 둘러싼 화려한 장식이었다.
수레는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위에 얹어져 있는 가마 역시 금과 은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서리와 지붕의 처마 부분에는 상아를 세공해 만든 용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역동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정교한 솜씨에 사람들이 탄복하는 사이.
이윽고 황제의 행렬이 가까워졌다.
이미 수많은 사파 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무위였다.
그런 만큼 황제가 타고 있는 거가 주변으로는 황실의 고수들이 대거 투입되어 철통같은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림친위를 비롯해 금군 내에서도 추리고 추린 정예들까지.
거기에 하나로 묶인 삼엄한 군기(軍氣)가 더해지자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 기세와 위용에 일반 백성뿐 아니라 무위에 자리를 잡은 사파의 고수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미리 무위 입구에 나와 황제를 기다리고 있던 능소밀 역시 마찬가지.
‘대단하긴 대단하군.’
능소밀이 내심 침음했다.
이 정도 수준의 고수들을 이토록 즐비하게 동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실의 저력을 새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를 잠시.
능소밀이 그 자리에 부복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신 무위 지주 능소밀과 백성들이 천하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를 배알하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능소밀 뒤에 도열해 있던 무위 사람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의 행렬이 멈추고 거가를 장식한 주렴을 헤치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때였다.
그러자 곧장 행렬 뒤쪽의 인파가 갈라지며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그 숫자는 열다섯.
그들은 저마다 어깨로 가마 하나를 떠받치고 있었는데, 옥로만큼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화려함은 그에 못지않았다.
황제가 허공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바퀴가 없는 속거(屬車)인 대량보련(大凉步輦)이 황제의 발을 떠받쳤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그 일련의 동작은 매우 매끄럽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작은 가마로 옮겨 탄 황제가 능소밀을 향해 다가왔다.
“능 지주는 고개를 들라.”
“황공하옵나이다.”
고개를 들어 황제와 시선을 마주한 능소밀이 멈칫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황제의 표정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기가 나쁘지 않군. 썩 잘 어울려.”
이곳 무위를 대표하는 행정 관료에 걸맞게 완벽한 정복을 갖춰 입은 능소밀의 모습을 확인한 황제가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긴 황제의 눈빛에 능소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영순 공주가 합류했다.
능소밀 입장에서는 참으로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공주 영순이 황상을 뵙습니다.”
“흠.”
영순 공주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황제가 묘한 눈빛을 흘렸다.
“이 지역의 기운이 좋은 것인가? 공주도 얼굴이 좋아졌군.”
“그, 그건…….”
“전보다 훨씬 생기도 돌고 말이야. 가르침을 받을 때는 시들어 가는 꽃 같더니, 가르침을 베푸는 건 다행히 적성에 맞는 모양이야.”
그제야 황제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영순 공주가 슬쩍 얼굴을 붉혔다.
그런 영순 공주를 향해 황제가 손짓했다.
“공주는 연(輦) 위로 오르라. 이곳에 머문 시간이 적지 않았으니 안내자로서 그대만 한 적임자도 없겠지.”
영순 공주가 나직이 한숨을 흘리며 호위들의 도움을 받아 가마 위로 올랐다.
어차피 황제와 나눈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신분은 들통난 상태.
가마가 다시 이동하자 황제는 영순 공주의 근황을 비롯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고, 영순 공주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능소밀은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서 행차를 인도했다.
그렇게 무위의 가장 큰 상가 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황제를 호위하던 금군의 기세가 갑자기 달라졌다.
저자 양쪽으로 엎드려 있는 백성들 사이에 섞여 있는 상당수의 무림인들 때문이었다.
높아진 긴장감만큼이나 더욱 서슬 퍼런 눈빛을 뿌려 대는 삼엄한 분위기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백성들은 숨이 턱 막혀 왔다.
이에 사파 무림인 몇 명이 은은히 진기를 일으켰다.
칼날처럼 날아들어 온몸을 헤집는 섬뜩한 기파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호위군은 더욱 기세를 높여 압도적인 기파로 주변을 찍어 눌렀다.
“황상.”
이를 보다 못한 영순 공주가 황제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잠시 의아해하던 황제는 두려움에 질린 백성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영순 공주의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하도록. 누가 보면 내가 친정이라도 나선 줄 알겠군.”
그 한마디에 황제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황급히 기파를 갈무리했다.
하지만 칼을 움켜쥔 손과 눈빛만큼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폐부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비로소 숨통이 트인 백성들이 엎드린 채 만세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황제 역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많은 대규모의 인원이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는 모습은 황궁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때였다.
엎드려 있던 백성들 사이로 돌연 누군가가 걸어 나온 것이다.
“황제 폐하!”
환호성 사이로 들려온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황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대략 여덟 살쯤 되었을까.
커다란 눈망울과 발갛게 달아오른 양 볼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지는 소녀였다.
“무엄한!”
채채채챙!
황제를 호위하던 어림친위의 손에서 일제히 금도가 뽑혀 나와 소녀를 겨누었다.
딸꾹.
그 기세에 놀란 소녀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 순간, 소녀 가까이 부복해 있던 사내가 황급히 소녀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그저 철없는 아이일 뿐이옵니다. 아무것도 몰라 실수한 것이오니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외친 장곡은 등줄기가 서늘했다.
딸의 옷을 만들어 주기 위해 포목점을 찾았다가 인파에 갇혀 졸지에 이곳에 발이 묶인 그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겁도 없이 황제에게 말을 건넨 꼬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그 역시 딸을 둔 아비인 이상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자신의 품속에서 버둥대던 소녀가 갑자기 이렇게 소리친 것이다.
“몰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
장곡이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소녀가 황제 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황제 폐하께 제 보물을 드리려고 그랬단 말이에요!”
뒤늦게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황제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금의위장.”
이어진 황제의 명령에 호위를 책임지던 도독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어린 백성이 헌상한 보물을 짐에게 가져오도록.”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독인 그가 직접 장곡과 소녀에게 다가섰다.
아이의 손에서 천으로 감싼 물건을 건네받은 금의위장이 조심스럽게 천을 벗겨 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나무에 종이를 이어 붙인 바람개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심 긴장하던 금의위장의 눈 위로 당혹감이 번졌다.
하지만 이내 신중하게 바람개비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렇다 할 위험이 없다 판단했던 것일까.
금의위장이 황제에게 바람개비를 공손하게 바쳤다.
바람개비를 만지작거리던 황제가 의미 모를 미소를 말아 올렸다.
그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조잡스러운 물건이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어린 백성에게 짐의 알현을 허하노라.”
금의위장이 소녀를 가까이 데려오자 황제가 불쑥 물었다.
“이게 네 보물이냐?”
“네. 그 안에 말린 꽃잎을 넣었어요. 그래서 바람이 불면 향기가 나요. 폐하께 드리려고 어젯밤부터 열 개도 넘게 만들었거든요. 그중에서 제일 잘 만들어진 걸 드리는 거예요.”
묻지도 않은 말까지 쫑알쫑알 늘어놓는 아이의 모습에 황제가 웃으며 영순 공주를 바라봤다.
눈앞의 아이와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이 일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황족의 방계로서 제위와는 거리가 멀던 어린 시절.
나름 평범한 삶을 구가하며 유년기를 보내 온 그에게 있어 바람개비는 그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물건이었다.
“어째서 이런 보물을 내게 주는 것이냐?”
황제의 물음에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폐하께 큰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폐하 덕분에 배고프지 않고, 학관까지 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선생님.”
아이의 눈빛을 받은 영순 공주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반면 근엄하던 황제의 얼굴 위로는 흡족한 웃음이 자리 잡았다.
“좋은 스승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았구나.”
“황상!”
노을이 내려앉은 듯 목덜미까지 붉어진 영순 공주의 모습에 황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이토록 귀한 보물을 진상했으니 당연히 그에 따른 하사를 해야 할 터. 혹 짐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
의중을 떠보듯 넌지시 묻던 황제는 이어진 아이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에요. 전 은혜를 갚으러 온 거예요. 여기서 더 은혜를 입으면 며칠이나 밤을 새워야 할지 몰라요. 제가 어젯밤에 졸린 걸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시죠?”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린 황제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든 원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말하라.”
가마가 다시 움직이기 전.
영순 공주가 아래로 내려와 아이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가마에 오르고 행렬이 출발하자 아이가 쪼르르 능소밀에게 달려갔다.
“응?”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아이를 향해 능소밀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아이가 귓속말로 영순 공주의 전언을 전달했다.
“지금 분위기면 뭐든 들어주실 것 같으니, 원하는 게 있으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얻어 내래요.”
능소밀이 가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영순 공주가 기다렸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