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4)
신마의선-384화(384/500)
신마의선 (384)
신마곡 한편에 마련된 연무장.
종리추와 장철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연신 비지땀을 쏟아 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알겠냐?’
입술을 벙긋거리는 장철우를 향해 종리추 역시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소금기 푸석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두 사람이 내심 한숨을 삼켰다.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온 벽화령을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 차원 더 무서운 고수로 변모한 벽화령의 신위!
향후 그녀로 인해 해남검파의 역사가 다시 쓰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축하를 건네는 그들에게 대번 벽화령의 질책이 날아든 것이다.
나름 열심히 수련해 온 그들로서는 몹시 억울했지만 감히 벽화령의 심기를 거스를 순 없었다.
안 그래도 지은 죄가 있었던 두 사람은 그날부터 연일 쏟아지는 벽화령의 질책과 다그침에 하루하루가 지옥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검을 휘두르는 팔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고, 호흡 역시 한계에 달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전력을 다해 펼치는 남해삼식육검.
그 연계를 서른 번이나 연달아 반복해 펼치는 건 그만큼 육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검을 던지고 그대로 대자로 누워 뻗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익히 아는 까닭이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날 지경인데도 검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러다 주화입마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넣는 수련.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의 시선은 연신 한 곳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연무장과 십 장쯤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아름드리나무 아래.
뙤약볕 아래서 먼지 나게 구르는 자신들과 달리 벽화령은 시원하게 드리워진 그늘 아래 누워 있었다.
아예 작정한 듯, 기다란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느긋하게 쉬고 있는 벽화령의 모습에 종리추와 장철우는 울상을 지었다.
졸린 듯 하품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서늘한 시선은 자신들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
종리추가 움찔했다.
벽화령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일까.
하필 마지막에 검로가 꼬여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벽화령 쪽을 슬쩍 보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길!’
머잖아 날아들 불호령을 예상하며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던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시 해 봐.”
“예?”
“마지막에 검기를 뿌릴 때 호흡이 달려 충분한 힘이 실리지 않았어. 궤적을 짧게 그린다는 기분으로 호흡을 나누어 끊으면서 시전해 봐.”
의외로 차분한 벽화령의 지적에 종리추는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이, 이렇게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한 종리추가 재차 마지막 초식을 시연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벽화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에 미치진 못하지만, 나쁘진 않네.”
“어……, 감사합니다?”
“좀 쉬었다 할까? 가서 목이라도 축이고 와.”
종리추와 장철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얽혔다.
서둘러 연무장을 내려온 두 사람이 벽화령과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방금 뭐였지?”
“글쎄?”
“그러고 보니 요즘 부문주님 좀 이상해. 뭐랄까, 억지로 화를 참고 있는 느낌?”
“차라리 평소처럼 화를 내는 게 낫지. 저러시니 더 불안해서 못 살겠다.”
“솔직히 말해. 너 무슨 짓 했어?”
“했겠냐! 무슨 짓을 할 시간이나 있고?”
“하긴…….”
“그렇다면 짚이는 사람은 범 선배님뿐인데…….”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흘렸다.
애초에 부부 사이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우스울뿐더러 특히나 범계위는 상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저렇게 참다가 폭발하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한숨을 터트렸다.
지금 그들에게 허락된 건 그저 신세 한탄뿐.
이쯤 되니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부부에게는 작은 다툼도 일상일지 모르나 그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하는 건 힘없는 자신들인 것이다.
그때였다.
무심코 신마곡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철우가 멈칫했다.
어슬렁거리며 계곡 안으로 들어서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춘 채 벽화령 쪽으로 향하는 범계위는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왔어. 내 여자.”
쭈뼛거리며 다가서는 범계위를 벽화령이 화사한 미소로 맞았다.
“어서 오세요, 가가.”
“어? 어…….”
“등 뒤에 감춘 건 뭐예요?”
“아, 이거? 오다 주웠어.”
한 아름 꺾어 온 꽃을 내민 범계위가 멋쩍은 듯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벽화령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아미를 찡그린 채 소매를 들어 코를 가리고 있었다.
“가가.”
“응?”
“그것 좀 치워 주실래요?”
“……!”
범계위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답지 않게 잔뜩 풀이 죽은 모습에 벽화령이 당황했다.
“가가?”
“그냥 말해 주면 안 될까?”
“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잠시 의아해하던 벽화령이 이내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가가는 잘못한 게 없는걸요.”
“그런데 요즘 왜 날 멀리하는 거야?”
“글쎄요.”
모호한 미소와 함께 벽화령이 손을 뻗어 가만히 범계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범계위가 움찔하며 벽화령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화가 난 것 같진 않은데, 그럼에도 그녀의 묘한 눈빛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단 의원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어? 응. 내 여자 보려고 서둘러 먼저 왔지.”
벽화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상냥한 눈빛을 건네 왔다.
“그럼 여기 앉아 조금만 기다려요. 그늘이 시원해 무척 기분 좋아요.”
“그, 그럴까?”
조심스럽게 벽화령 옆에 앉은 범계위가 움찔했다.
나란히 앉기 무섭게 벽화령이 슬쩍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기 때문이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뭐지?’
아무리 봐도 자신에게 화가 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특별히 무언가를 잘못한 거 같지는 않은데.’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종리추와 장철우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세 남자가 짙은 의혹에 사로잡혀 있기를 잠시.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이 도착했다.
“어? 화해하신 거예요?”
이미 초악량과 한설화에게 저간의 사정을 들어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상황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바닥을 나뒹구는 꽃다발.
그런데 정작 범계위와 벽화령 부부의 분위기는 오붓하기만 했다.
벽화령이 웃으며 대답했다.
“화해라뇨. 우린 처음부터 다툰 적도 없는걸요.”
어리둥절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벽화령이 손을 내밀었다.
“단 의원님.”
“네.”
“오신 김에 진맥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단악선의 눈에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어디 편찮으세요?”
복잡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벽화령의 모습에 단악선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녀 정도 되는 고수가 먼저 진맥을 요청할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단악선은 곧장 벽화령의 손목에 손가락을 올렸다.
“어?”
단악선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왜 그래? 단 의원. 정말 문제가 있는 거야? 어디가 아픈 건데?”
“잠시만요.”
안절부절못하는 범계위를 진정시킨 단악선이 다시금 진지한 눈빛으로 벽화령의 맥을 짚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단악선이 길게 탄성을 터트렸다.
“뭔데? 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거야?”
쩔쩔매며 다그치는 범계위를 무시한 채 단악선이 벽화령과 시선을 마주했다.
벽화령이 수줍게 웃으며 얼굴을 붉히자 비로소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환한 웃음을 건넸다.
“축하드려요.”
영문을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회임(懷妊)하셨어요.”
“응? 그게 뭔데?”
벽화령이 대신 대답했다.
“아이가 생겼다는 뜻이에요.”
“아이? 누가? 누구의?”
멍한 표정으로 엉뚱한 말을 늘어놓던 범계위는 잔뜩 뺨을 부풀린 채 눈을 흘기는 벽화령의 모습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누구겠어요?”
“……!”
범계위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일순 넋이 나간 듯, 우두커니 서서 벽화령을 응시하던 범계위가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내 여자가 내 아이를 가졌다는 거야?”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드려요.”
그때였다.
“가가?”
벽화령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왜 우세요?”
“어? 내가 운다고?”
단악선 역시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종리추와 장철우 역시 마찬가지.
살면서 눈물을 흘리는 범계위의 모습을 목도할 줄이야!
“이거 왜 이래? 내가 왜……?”
당황한 범계위가 손을 들어 눈 주변을 훔쳤다.
그러나 한번 터진 눈물을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느새 음성까지 잦아드는 범계위의 모습에 벽화령이 가만히 다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범계위 역시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벽화령을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범계위가 울먹이며 말했다.
“고마워. 내 여자. 정말 고마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단악선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종리추와 장철우 역시 마찬가지.
그들 부부를 뒤로한 채 멀찌감치 떨어졌지만 이 순간 코끝이 찡해지는 것만큼은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단 의원, 미안해. 저 인간들에게 단 의원을 맡기려니 마음이 안 좋아.”
신마곡을 떠나는 단악선을 배웅하던 범계위가 복잡한 눈빛을 건넸다.
남궁세가의 일을 조사하기 위해 신마곡을 떠나는 단악선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안정기로 접어들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는 단악선의 조언에 차마 벽화령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흥! 울보 주제에.”
대번 날아든 한설화의 조소에 범계위가 움찔했다.
초악량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지금 네가 있을 곳이 어딘지 잊지 마라.”
“쳇.”
괜히 머쓱해진 범계위가 애써 무안함을 감추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단악선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던 범계위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고백할 게 있어.”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던 범계위가 미안한 눈빛을 건넸다.
“뭔데요?”
범계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울상을 지었다.
“원래 나한테는 단 의원이랑 내 여자가 똑같이 일 순위였거든? 그런데 이제 단 의원은 이 순위가 될 것 같아.”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에요. 그게 당연한걸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멈칫했다.
“어차피 아이가 태어나면 삼 순위가 될 텐데요.”
“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도 삼 순위는 좀 너무한가?”
그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전 괜찮아요. 그러니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걱정하지 마! 삼 순위는 꼭 지켜 줄게! 약속해!”
“나중에 둘째가 생기면요?”
“어? 그, 그건…….”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당부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요. 그보다는 제게 조카가 생긴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죠. 그러니 아주머니 잘 부탁드려요.”
“그렇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단악선이 언급한 조카라는 말에 범계위가 헤벌쭉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