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5)
신마의선-385화(385/500)
신마의선 (385)
“조심해. 남궁세가 놈들 믿지 말고. 그리고 저 인간들도 절대 믿지 마.”
초악량과 한설화가 흰소리를 늘어놓는 범계위를 지그시 노려봤다.
하지만 머지않아 애 아빠가 될 사람을 두고 악담을 퍼부을 순 없는 노릇.
애써 속으로 화를 삭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결국 단악선이 나섰다.
“걱정 마세요.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제가 드린 약은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그리고 보름에 한 번씩 풍 아저씨께서 아주머니 진맥을 위해 방문하실 거예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곧바로 신마의가로 가시고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자신 있게 고개를 주억이는 범계위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신마곡을 나섰다.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초악량이 질문을 던져 온 것도 그때였다.
“범가 저놈 완치된 것이 아니었느냐?”
오랫동안 범계위를 괴롭혀 왔던 광증.
분명 단악선은 오래전에 완치를 선언했었다.
그런데 따로 약을 챙겨준 이유가 의아했던 것이다.
“혹시 몰라서요.”
범계위가 익힌 극양의 내공심법인 도반삼양진기(導反三陽眞氣).
지금은 익힌 사람이 범계위가 유일해 심도 있게 연구하기 어려웠지만 그 연원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단악선의 대답에 초악량이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말 남궁세가에서 앵속분을 구입한 걸까?”
한설화의 말에 뒤늦게 이번 여행의 목적을 떠올린 단악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전체적으로 유통된 규모에 비해 그렇다 할 뿐이지, 적은 양은 결코 아니에요.”
확실한 건 직접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곧장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로 향했다.
한편 그 시각.
능소밀은 무역관을 둘러보는 황제를 직접 앞장서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신마상단 소속의 행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재빨리 수신호를 보내오는 상대의 모습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이 방금 남궁세가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능소밀의 보고에 황제가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어지간히 내가 불편했나 보군. 이토록 빨리 움직인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하교하신 일이니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지체 없이 대답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황제는 살짝 어이없단 눈빛을 흘렸다.
“자네 이름에 들어가는 밀 자는 틀림없이 꿀 밀(蜜) 자일 게야.”
“…….”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만 조아리고 있는 능소밀을 향해 황제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이내 무역관을 둘러보며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가히 훌륭하구나. 남송의 불야성도 감히 이곳과 견주지 못할 게야. 덕분에 예산을 다루는 호부에서 신이 났다더군. 이곳에서 걷히는 세수가 황실 예산의 오 할에 달한다지?”
“이 모두가 하해와 같은 폐하의 은덕…….”
“아니. 말은 바로 해야지. 이건 어디까지나 능 지주의 능력이야.”
이어진 황제의 말에 능소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새삼 이곳에 묶어 두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드는군.”
어느새 능소밀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구겨진 표정은 들키지 않았지만 뒤통수에 와 닿는 황제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했다.
“감히 바라옵건대, 부디 재고하여 주소서.”
“응? 무엇을 말인가?”
황제의 반문에 능소밀이 질끈 눈을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자칫 이대로 강제로 끌려가 조정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앞뒤 계산 없이 일단 질러 버렸다.
“제가 없으면 이곳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필시 망할 것이옵니다.”
“뭐라?”
“어디까지나 이곳은 소신의 역량으로 이끌어 가는 곳이옵니다. 장담하건대 조정의 그 어떤 관리도 소신을 대신해 이곳을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짐의 신하들이 무능하다 비꼬는 것이냐?”
“그저 냉정한 현실을 말할 뿐이옵니다.”
황제를 설득하기 위해 능소밀이 재빨리 설명을 이어 갔다.
“소신은 파사어를 비롯해 아라사어와 남만의 언어에도 능통하옵니다. 각국의 상단으로부터 상신되는 서류 대부분은 신속한 결정을 요하는 바, 통역관을 거치면 그만큼 절차가 복잡해지고 민첩하게 사안을 처리할 수 없사옵니다. 더구나 이곳에 머무는 고수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사옵니다. 까다로운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한 노릇이옵니다. 무엇보다…….”
“되었다.”
손을 들어 말을 자른 황제가 지그시 능소밀을 쏘아봤다.
“어째선지 협박으로 들리는구나?”
능소밀이 그 자리에 부복해 납작 엎드렸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소신이 어찌 감히 폐하 앞에서 삿된 마음을 품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리 느끼셨다면 소신의 목을 베소서. 폐하를 향한 충정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이 목숨 하나쯤 기꺼이 바쳐 올리겠나이다.”
“하…….”
이번에도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리던 황제가 뒤쪽에서 자신을 봉행하던 사례태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가? 짐의 말이 틀리지 않지? 이자에게 있어 권력은 하등 쓸모없는 짐일 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목숨까지 걸고 한사코 승진을 고사할 리 없지. 참으로 보기 드문 청백리(淸白吏)의 표상 아닌가.”
그제야 능소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사례태감과 황제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걱정 마라. 널 억지로 조정 대신으로 임명할 생각은 없느니라. 저마다 쓰임은 다른 법이겠지.”
그 말과 함께 황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안도하며 신형을 일으킨 능소밀은 문득 따가운 눈빛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유심히 자신을 응시하는 사례태감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비록 웃고는 있었지만 그의 눈빛 너머로 번뜩였다 사라지는 섬뜩한 무언가를 능소밀은 놓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능 지주는 가까이 오라.”
황제의 부름에 부리나케 다가간 능소밀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창의 위사들이 이곳 무위에 머문다 들었다.”
그렇게 운을 뗀 황제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재차 물었다.
“맞느냐?”
“네. 그렇습니다.”
능소밀은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황태후마마를 위해 신마의가에서 의술을 전수하는 한편 이곳 무위의 정보를 모은다 하였나이다.”
“짐이 이곳을 감시한다고 생각했겠구나.”
“당연한 일이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거리낄 것이 없으니 오히려 저는 마음이 편합니다.”
능소밀의 당당한 태도에 황제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지시한 일이 아니다.”
“예?”
당황한 능소밀을 향해 황제가 진지한 눈빛을 흘렸다.
“정보 수집을 이유로 동창에서 황태후마마에게 부탁한 일이다. 그들이 황태후마마를 설득한 명분은 짐을 위한 것이라 했고.”
“그렇다는 건…….”
말끝을 흐리던 능소밀이 더욱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가 따로 조사를 진행해 보고하도록 하겠나이다.”
자신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한 능소밀의 눈썰미에 황제는 새삼 감탄했다.
“역시 아깝구나. 내 마음을 이리 잘 알아주는 사람을 멀리 둬야 한다니.”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능소밀이 씨익 웃었다.
“저 없으면 여긴 망합니다.”
다음 날 아침.
시찰 일정을 마친 황제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무위를 떠났다.
허리를 숙인 채 끝까지 황제를 배웅하던 능소밀은 황제의 행렬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곧장 걸음을 돌려 신마상단으로 향했다.
“소 단주. 동창 놈들의 움직임은 어떻지?”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 왔지만 사실 능소밀은 그들이 무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곳 무위에 들어온 이상 누구도 감시망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신마상단의 상단원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보다 오감이 발달한 사파의 고수들과 곳곳에 깔려 있는 백성들의 눈과 귀를 통해 천라지망 같은 정보망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렇다 할 특별한 사항은 없습니다. 의가에서 지내다가 식사는 꼭 객잔에서 먹고, 저녁이 되면 기루에 들러 회포를 푸는 정도입니다.”
“흠……. 너무 무난한데? 그래서 더 의심스러워.”
“딱히 수상한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찾는 객잔과 기루는 매번 다른 데다, 특별히 누군가와 밀담을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
“혹시 그들의 동향을 정리해 둔 자료가 있나?”
소적산이 씨익 웃으며 품속에서 두툼한 책자를 꺼냈다.
아예 일지 형태로 그들의 이동 경로와 움직임을 소상히 기록해 둔 문서에 능소밀이 감탄했다.
“역시나, 소 단주. 예나 지금이나 꼼꼼하군.”
“남는 건 기록뿐이니까요.”
한참 동안 일지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던 능소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루를 방문한다?”
“그렇습니다. 거기다 부르는 기녀도 매번 다릅니다. 슬쩍 알아보니 술자리에서는 달리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흥청망청 놀다 간다고 하더군요.”
“흥청망청이라……. 그런 것 치고는 그 뒤의 행적이 너무나 멀쩡하군. 혹시 그자들이 잔뜩 취해서 나온 적이 있나?”
“그러고 보니…….”
소적산도 비로소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매일같이 기루를 방문한 데에는 확실히 무언가 목적이 있군.”
잠시 고민하던 능소밀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기루에 정보원이 있는 거야. 접촉한 사람이 한정적이니 정보원은 필시 기녀일 확률이 높고.”
“네? 그렇다면…….”
“기녀로 위장한 누군가가 있다는 거지. 그 기녀를 찾아내야 해. 그럼 놈들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적극적인 감시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가 없으면 그냥 내버려 두라고 지시하셨고요.”
“상황이 바뀌었네. 무엇보다 든든한 뒷배가 생겼으니까.”
“뒷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뒷배라네.”
무심코 대답하던 능소밀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곡주님을 제외하고 가장 큰 뒷배지.”
* * *
초악량, 한설화와 함께 안휘성으로 들어선 단악선은 잘 닦인 관도를 따라 곧장 남궁세가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관도와 떨어진 인근 숲에서 부산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누군가가 관도를 벗어나 경공을 전개해 이쪽 방향으로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한 초악량과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느낀 것을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시기가 공교로웠다.
단악선이 방향을 틀어 숲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달려오던 십여 명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헉!”
단악선을 발견한 일단의 무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신형을 멈추었다.
그러곤 곧장 일사불란하게 재빨리 각 방위를 점하며 수비진을 구축했다.
“어?”
“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단악선과 무인들 사이에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개방의 영웅들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세요?”
“그러시는 단 의원님께서는 어떻게 여길?”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이동하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개방 소속의 화자들이었다.
뒤늦게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초악량을 발견한 거지들이 일제히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개방의 오결 제자 구화자가 본 방의 청의빈객 왕 장로님을 뵙습니다. 한데 석 장로님은 어째 안 보이십니다?”
“끄응.”
미간을 찌푸린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왕칠과 석두.
그로서는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구화자라 자신을 밝힌 개방의 분타주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세가들 사이에서 큰 사달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세가? 정확히 어느 세가 말인가?”
이어진 구화자의 대답에 단악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궁세가의 현 가주가 황보세가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