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6)
신마의선-386화(386/500)
신마의선 (386)
“남궁세가의 현 가주라면…….”
단악선은 언젠가 보았던 남궁백의 아들, 남궁호를 떠올렸다.
서글서글한 눈빛과 호감 가는 태도.
명문가의 적자인 소가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자질과 곧은 심지를 지닌 청년이 바로 그였다.
“황보세가는 분명 무림맹이 와해되며 봉문에 들어갔을 텐데?”
초악량의 물음에 구화자가 한숨을 터트렸다.
“분명 그랬죠. 그래서 더 당혹스럽습니다.”
봉문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스스로 맹세한 기간 동안 해당 문파나 가문은 일절 대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일종의 위리안치(圍籬安置)인 셈이다.
심지어 봉문 기간 동안은 새로운 제자를 들일 수도 없었다.
그만큼 향후 입지가 크게 위축되고 미래를 담보한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한다.
어느 정도 세를 지닌 문파나 가문이 봉문을 두려워하는 이도 이 때문이었다.
스스로 큰 형벌을 자처한 만큼 직접적인 공격은 받지 않았지만, 거느리고 있던 사업과 관련된 이권을 빼앗기거나 가신들을 빼돌리는 것처럼 간접적인 피해에는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신 봉문 기간 동안은 그 어떤 무림 세력도 직접 그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것이 오랜 세월 무림을 지탱해 온 불문율이었다.
따라서 남궁세가가 이미 봉문한 황보세가를 공격한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무림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대체 왜?”
단악선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초악량이었다.
“원한이겠지.”
“원한이요?”
“제갈연이 남궁세가를 축출한 뒤 무림의 세가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무림맹을 결성하지 않았느냐? 거기에 힘을 실어 준 곳이 기존의 오대세가였지. 그 주축이 황보세가고. 남궁세가의 입장에서는 믿었던 아군에게 등을 찔린 셈이니 분명 원한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지.”
초악량이 잠시 틈을 주고 말을 이었다.
“그들이 남궁세가를 오대 세가에서 축출했지 않느냐?”
명예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시기였다.
“봉문한 황보세가를 공격하면 남궁세가 역시 몰락의 길을 밟게 되지 않나요?”
불문율이 괜히 불문율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금기를 어기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
향후 남궁세가는 철저하게 무림의 배척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전에 보았던 남궁백의 아들은 제법 사리가 분명해 보였거든. 대체 왜 이런 악수를 둔 것인지…….”
초악량의 시선을 받은 구화자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직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사안입니다만…….”
그렇게 운을 뗀 그가 그간 수집한 정보를 언급했다.
“남궁백의 장례를 치른 이후 가주직의 승계가 이루어지자마자 곧장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폐관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건 최근이었고요.”
무림맹 시절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어쨌든 개방은 남궁세가에 빚이 있었다.
방주였던 이립의 죽음.
그 흉수인 칠절마군 노단양을 처단해 원한을 갚아 준 이가 바로 남궁백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주가 폐관 수련을 마친 이상 의례적으로라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했죠.”
개방에서는 곧장 사람을 보내 축하를 건넸다.
한데 남궁호와 조우한 대부분의 개방도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상한 점?”
초악량의 반문에 구화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전에 알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눈빛이 살벌했습니다. 전신을 감싼 예기 역시 심상치 않았고요. 마치 남궁세가의 독문 검법인 제왕검형을 온몸에 두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감정과 행동이 불안했습니다.”
단악선이 질문을 던진 것도 그때였다.
“혹시 앵속분이 남궁세가에 흘러들어 간 정황에 대해 파악하고 계신가요?”
구화자가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저희도 최근에서야 그 정보를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확인차 남궁세가를 방문했지요. 하지만…….”
말끝을 흐린 구화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주인 남궁호는 이미 닷새 전에 산동으로 향했다더군요. 그것도 남궁세가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창궁검대 전원을 대동하고요.”
“그래서 그쪽에서 달려오던 것이었군?”
초악량의 물음에 구화자가 쓰게 웃었다.
“그들에게 빚이 있는데 몰락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초악량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죠.”
어차피 이대로 남궁세가에 간들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판단한 일행은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곧장 황보세가가 터를 잡은 산동으로 향했다.
‘제때 도착해야 할 텐데.’
단악선은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애써 억누르며 경공에 박차를 가했다.
워낙 무공의 격차가 나는지라 뒤따르던 개방 일행은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상태.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단악선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제발 늦지 않기를.’
* * *
예로부터 산동 지방에는 이름 높은 호한(好漢)이 많기로 유명했다.
지금은 몰락을 거듭해 사라졌지만 한때 중원 제일의 세력을 지녔던 태산파(泰山派)가 활동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뒤늦게 이곳에 하나의 무학세가(武學世家)가 생겨났으니, 그들이 바로 황보세가(皇甫世家)였다.
비록 다른 오대세가에 비해 역사는 짧다 하나 그들의 저력은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경시할 수가 없었다.
산맥을 끼고 내달리는 거대한 평야.
게다가 바다와도 인접해 있어 풍부한 물산을 지닌 그들이 쌓아 올린 재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체로 신력을 타고난 그들의 핏줄은 패도적인 무공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흩어져 있던 태산파의 무공을 흡수해 더욱 발전한 황보세가는 이 지역의 패주로 군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만큼 비록 봉문을 했더라도 그들이 지닌 영향력은 여전히 이 지역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사도 오늘까지였다.
“어째서…….”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언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째서 이런 공멸의 길을 택했단 말인가…….”
지척에서 차가운 눈빛을 뿌리는 청년은 그 역시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전대 가주이자 한때 무림맹의 맹주였던 남궁백의 유일한 후계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남궁호였지만 황보언은 이 순간 더없이 그가 낯설었다.
자신들을 향해 남궁호가 선전 포고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황보언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 봉문을 자처한 만큼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남궁세가가 얻어 낼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남궁호는 그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했다.
세가와 세가의 전면전이라는 미친 짓을 실제로 감행할 줄이야!
고작 반 시진.
그토록 자신하던 세가의 정예들이 모두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검조(劍祖) 남궁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검의 조종(祖宗)을 자처하는 그들의 검은 실로 무서웠다.
“미쳐 버린 것이냐…….”
남궁호와 시선을 마주한 황보언은 상대의 눈빛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눈빛 자체는 지극히 차가웠지만 그 너머로 점철된 짙은 살기는 소름 끼치는 집착과 일그러진 광기로 너울거리고 있었다.
남궁호는 침묵했다.
황보언 역시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대답 대신 남궁호가 그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검을 천천히 비틀어 그어 올렸기 때문이다.
“……!”
울컥울컥 핏물을 게워 내던 황보언이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오랜 세월 이 지역의 패주로 군림해 온 황보세가.
그곳의 가주치곤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남궁호는 비처럼 쏟아지는 피를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숨이 끊어진 황보세가의 가주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던 남궁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시신이 즐비한 참혹한 광경.
한 폭의 지옥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죽음의 냄새만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산혈해.
“크윽.”
남궁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문 남궁호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자기병을 꺼내 들었다.
병의 마개를 연 남궁호가 그 안의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그의 눈빛 위로 감출 수 없는 자괴감이 묻어났다.
“왜냐고?”
황보언의 주검을 내려다보던 남궁호가 천천히 돌아섰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남궁호는 피에 잠긴 황보세가를 나섰다.
검기에 사정없이 찢겨 무너져 내린 정문.
그 잔해를 밟으며 밖으로 나온 남궁호를 향해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누이.
남궁향이었다.
그녀 뒤로는 오십을 헤아리는 검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남궁세가의 정예인 창궁검대였다.
피에 절은 악귀처럼 걸어오는 남궁호를 눈에 담은 남궁향이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터지며 그녀의 턱을 타고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정작 남궁향은 고통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락 같은 눈빛을 흘리는 오라비의 모습이 그보다 더욱 아팠기 때문이다.
“제발 그만두세요.”
눈물로 애원하는 누이의 만류에도 남궁호는 그저 메마른 웃음을 풀썩일 뿐이었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오라버니…….”
“세가를 부탁한다.”
그 말과 함께 남궁향을 지나치던 남궁호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엄청난 속도로 이곳을 향해 접근하는 기파를 느낀 것이다.
‘둘……. 아니, 셋인가.’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범상치 않은 존재감.
남궁호는 폐관을 마친 이후 처음으로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창궁검대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순간.
빠르게 달려오는 인영들의 선두에 서 있는 단악선의 얼굴을 확인한 남궁향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그리워하고 다시 보길 바랐던 단악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원치 않았다.
“아아!”
도착하기 무섭게 황보세가 안을 살핀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물씬 풍겨 오는 짙은 혈향에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자 그만 아연해진 것이다.
최대한 서둘러 달려왔지만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와 여자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단악선이 침통한 눈빛을 흘리며 남궁호를 응시했다.
남궁가의 피를 이었음이 분명한 수려한 이목구비는 부친인 남궁백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전의 진중하던 눈빛과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친 호흡과 불안정한 기파.
몇 번이고 거듭 확인했지만 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시신들에게 남겨진 흔적을 떠올린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세가의 검법이라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잔인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주화입마!’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로 앵속분이 흘러들어 간 시점도 남궁호가 폐관을 마친 시기와 일치했다.
자기병을 꺼내 그 안의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는 남궁호의 모습이 단악선의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지금 뭘 드신 건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남궁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앵속분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이것도 소용이 없군.”
“설마…….”
“왜? 문제라도 있소?”
단악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남궁호가 앵속분을 진통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양이 심상치 않았다.
한 번에 복용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그 정도 양도 소용이 없을 만큼 남궁호의 상태가 악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아직까지 이성을 붙들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거죠?”
단악선의 물음에 남궁호가 피식 웃었다.
“아버님의 복수요.”
그 순간 남궁호의 눈빛이 더없이 스산해졌다.
“그리고 이건 귀하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