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7)
신마의선-387화(387/500)
신마의선 (387)
그 단호하고 서슬 퍼런 모습에 단악선이 침음했다.
그사이 남궁호가 도열해 있던 창궁검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향이를 지켜라.”
자신을 따르지 말라는 말에 창궁검대가 대답을 주저했다. 이에 남궁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명령이다.”
“복명!”
대답을 듣고 홀로 신형을 날리려는 남궁호를 단악선이 서둘러 막아섰다.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해요.”
이미 남궁호는 앵속분으로도 고통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
사실 그 정도 양을 복용하고도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초인적인 그의 의지는 대단했지만, 이조차도 얼마나 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앵속분이 소용없어진 이상 끔찍한 고통이 결국 그의 의지와 정신을 갉아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귀하가 관여할 일이 아니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리다.”
연이어 방해를 받은 것이 기분 나빴던지 남궁호는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냈다.
보다 못한 남궁향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라버니. 단 의원님 말을 들으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단악선을 힐끗한 그녀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 의원님이라면 이미 몇 번이고 오라버니와 비슷한 상태의 환자들을 치료하신 전력이 있으니까요.”
직접 주화입마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단악선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궁호는 요지부동이었다.
“복수를 그만두라 말하는 것이냐?”
“과거의 은원은 이미 아버님께서 전부 짊어지셨어요. 아버님께서 바란 건 이런 식의 복수가 아니었어요.”
연이은 남궁향의 설득에도 남궁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남궁향이 단악선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던졌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뎌 남궁호를 정면에서 막아섰다.
이대로 남궁호를 보내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필연적인 죽음뿐이었다.
‘그다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단악선은 남궁백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언젠가 남궁백이 일러 주었던 심득.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남궁호가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남궁호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묵룡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남궁호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런가. 귀하도 손에 넣었군.”
“……?”
의아해하는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하며 남궁호가 중얼거렸다.
“검즉심(劍卽心), 아즉검(我卽劍). 의지가 곧 검이 되니…….”
무학의 정수가 담긴 가결.
이를 읊는 남궁호의 눈 위로 기광이 일렁였다.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검이 이르러 있으니, 베지 못하는 것이 없도다.”
단악선은 순간 소름이 쭉 끼쳤다.
“어제도 오늘도 닭은 울고 별은 그곳에 있나니, 하나는 벗 삼고 하나는 죽장(竹杖) 삼아 그저 나아갈 뿐.”
남궁호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내가 그 진의에 더 가까이 다다른 것 같군.”
단악선은 혼란스러웠다.
광망이 이글거리는 남궁호의 눈빛.
분명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똑같은 가결이었음에도 남궁호의 그것은 어딘가 크게 엇나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제왕검형.’
이미 남궁백을 통해 한번 겪어 본 남궁세가의 독문검법.
그 특유의 검기가 남궁호의 전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남궁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남궁백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태산을 마주한 것 같은 위압감이 아닌 지독하리만치 음습한 살기가 이를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안에서 물씬 느껴지는 짙은 피 내음은 단악선조차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무엇보다 계속 자신을 막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단악선이 묵룡을 움켜쥔 손에 힘을 넣었다.
위화신공을 한껏 머금은 묵룡.
표면을 감싸고 있던 무늬가 더욱 선명해지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웅혼한 경력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검기를 밀어냈다.
그때였다.
“그만.”
상황을 주시하던 초악량이 단악선을 만류했다.
“그의 명분은 정당하다.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복수를 천명한 이상 그를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앵속분에 취해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이지가 뚜렷한 이상 아무리 단악선이라 해도 그를 강제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많은 사람이 죽을 거예요. 본인도 필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테고요.”
초악량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마음에 단악선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남궁호가 물었다.
“만약 눈앞에 마교도들이 있다면 단 의원께서는 어찌하시겠소? 내 상태가 나쁘니 그대로 발길을 돌릴 것이오?”
일순 대답하지 못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남궁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슬쩍 웃었다.
“나 역시 귀하와 같소.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단악선이 묵룡을 늘어트리며 탄식을 흘렸다.
더 이상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만큼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이제 더 이상 앵속분은 구할 수 없어요. 흑암방은 사라졌고, 녹림에서도 더 이상 양귀비를 재배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남궁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 앵속분을 판매한 자는 흑암방이 아니라 흑점이었소. 일견하기에도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사내였지.”
단악선이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흑암방을 통해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황실에서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그건 나 역시 알지 못하오. 관심도 없고. 무엇보다…….”
잠시 말끝을 흐리던 남궁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내게 더 이상 앵속분은 필요 없소. 이 일도 곧 끝이 날 테니까.”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던 남궁호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누이를 살려 준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그 말을 남기고 멀어지는 남궁호의 뒷모습을 보며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남궁향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지만 초악량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이는 어디까지나 세가 사이의 일. 외부인이 끼어들 명분이 없다.”
남궁향은 창궁검대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이제는 거대한 무덤으로 변한 황보세가.
이를 눈에 담은 단악선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정말 저들을 도울……. 아니,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네가 끼어들면 저들의 복수를 함께 하게 되는 셈이다. 그로 인한 업과 남궁세가의 적 모두를 떠안게 되겠지. 그리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혼란이 야기될 터. 이를 오롯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
“…….”
단악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보름 뒤.
비보 하나가 도착했다.
남궁세가의 현 가주, 남궁호.
그가 제갈세가의 정예 오십 명의 목숨과 맞바꾸어 장렬히 산화했다는 소식이었다.
* * *
남궁호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남궁세가는 일절 외부 손님을 받지 않았다.
일단 과거의 문제야 어찌 되었든 남궁세가는 정파의 한 축을 담당한 오대세가의 한 곳.
각 정도 문파에서도 조문객을 보냈지만 어느 누구도 남궁세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단악선 역시 마찬가지.
조의를 표하기 위해 방문했지만 정중한 거절에 대문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거지들은 남궁세가 주변에 모여 저마다 비통한 곡소리를 내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도를 표현했다.
덕분에 남궁호의 행보로 인해 원한을 지닌 자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남궁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안휘의 객잔.
개방의 인물을 대동한 초악량이 곧장 이 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올라섰다.
이미 식어 버린 차를 앞에 두고 침울한 눈빛을 흘리던 단악선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떻게 되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과 함께 온 구화자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남궁호가 언급했던 자는 사라졌습니다. 흑점과 흑암방 모두에게 그런 자가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흑암방의 잔당을 심문했던 관부의 인물과도 접촉했는데, 그들 역시 크게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분명 신병을 구속하고 있었는데, 안개처럼 행방이 묘연해졌다더군요.”
단악선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남궁호가 앵속분을 구입했다던 흑점 소속의 사내.
한데 관부의 심문을 받았을 때는 흑암방 소속이라 밝힌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건 관부에서 받은 용모파기입니다. 이제 조사하지 못한 곳은 백사회뿐입니다.”
구화자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호가 앵속분을 구입했을 당시 흑암방은 백사회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
“흑점에 그자가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한가요?”
구화자를 대신해 초악량이 대답했다.
“내가 직접 가서 물었다. 달리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흑점이 대단한 곳이라 해도 초악량을 상대로 감히 거짓 정보를 고할 수는 없을 터.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우호적인 관계를 감안해도 그들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궁호 정도나 되는 사람이 착각을 했을 거라곤 믿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이미 죽은 이상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을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현재로서 확실한 건 앵속분이 남궁세가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에요. 그 정도 양을 거래할 수 있는 곳은 흑암방뿐이었고요. 무려 남궁세가와 접촉하는데 윗선에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흑암방의 배후인 백사회의 회주는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초악량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거래에 흑암방이 관여했다면 반드시 백사회주의 허락을 얻어야만 했을 게다.”
“직접 찾아가 추궁한다 한들 사실대로 대답하지는 않겠죠?”
“그렇겠지.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으니까. 그리고 있다 해도 그냥 허락했다고 인정하면 그만이다. 이미 앵속분과 관련된 문제는 손을 털고 선을 그었으니 달리 추궁할 명분도 없지.”
잠시 무언가를 고심하던 단악선이 마음을 굳혔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아요. 백사회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어요. 제가 백사회주라면 굳이 남궁세가와 접촉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보이거든요. 필시 무언가 다른 이유가 존재할 거예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누군가가 단악선 일행이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아!”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단악선이 반색하며 일어났다.
언젠가 남궁세가를 방문했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남궁세가를 위해 충성해 온 총관, 단리웅풍이었다.
“아가씨께서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노총관이 건넨 물건을 받아 든 단악선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건 남궁호가 들고 있던 약병이었다.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 노총관을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귀가의 불행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단악선을 향해 마주 예를 갖추는 단리웅풍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회한의 감정이 묻어났다.
삼대에 걸쳐 모시던 가주 셋.
그들 모두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자신의 지독한 팔자가 원망스러운 눈치였다.
그런 노총관을 향해 단악선이 더없이 안타까운 눈빛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