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8)
신마의선-388화(388/500)
신마의선 (388)
정오 무렵.
밀려 있는 정무들을 뒤로한 채 능소밀은 서둘러 관사를 나섰다.
그리고 곧장 소적산을 찾아갔다.
집무실에서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을 처리하던 소적산은 갑작스런 방문에도 반갑게 능소밀을 맞이했다.
“혹시 곡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도착하셨네.”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한 장의 용모파기를 소적산에게 내밀었다.
“지금부터 우린 이자를 찾을 것이네. 중원 전체를 샅샅이 훑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하네.”
“이자가 누굽니까?”
“흑점…… 아니, 어쩌면 흑암방 소속일 수도 있고…….”
말끝을 흐리던 능소밀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중요한 건 곡주님께서 이 자를 찾고 계신다는 점일세.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곡주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사람들이지.”
결의가 느껴지는 능소밀의 표정에 소적산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어째 황제의 명을 받았을 때보다 더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아무리 황제의 명이 지엄하다 한들 단악선의 지시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그렇게 소적산에게 임무를 맡긴 능소밀은 그대로 집무실을 나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곳 무위의 흑점 지부인 기루였다.
“어서 오십시오.”
능소밀의 방문에 지부장인 유기진이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능소밀은 괜히 그가 불편했다.
이전 책임자인 고벽운과 다르게 상대하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표정과 달리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빛은 그 속내를 짐작키 어려웠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능소밀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흑점이 앵속분을 판매했다는데, 사실이오?”
유기진이 태연히 대꾸했다.
“저희도 그와 관련해 다시 내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남궁가주와 접촉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는지요.”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남궁가주 본인이었소.”
“그렇다니 더 의심스럽군요. 듣자니 그는 앵속분을 복용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환각과 섬망을 동반하는 앵속분의 부작용은 지주께서도 익히 아시리라 봅니다만……. 무엇보다 제 관할 밖에서 발생한 일인지라, 저도 들은 바를 전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뭐야? 이게 끝이야?’
능소밀의 눈이 가늘어졌다.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유기진의 태도가 어딘가 수상쩍었다.
사안의 심각성과 평소 그의 능력을 감안해도 너무나 성의 없는 답변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유기진의 대답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이미 조사를 끝냈다고?’
물론 자체적인 조사는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범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 조사를 끝냈다는 건 흑점의 방식이 아니었다.
“뭐, 할 수 없지. 그나저나…….”
능소밀이 잠시 말끝을 흐리다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 신마의가를 드나드는 의원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다른 의원들과 달리 의가에서 상주하지 않고 외부에 머무는 자들 말이오.”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기진이 능소밀이 언급한 의원들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언급했다.
이름은 물론 출신과 나이, 그들의 경력.
“동창에서 보낸 자들이라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숨기고 있는 배경까지.
능소밀이 짐짓 반색하는 척 다시 물었다.
“그럼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조사하는지는 밝혀냈소?”
“그것까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 아쉽구려. 만약 무언가 성과가 있다면 바로 언질해 주실 수 있겠소?”
유기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건 착수금이요.”
늘 그래 왔던 선금으로 몇 장의 전표를 꺼내 탁자에 올린 능소밀이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나 기루를 나서는 능소밀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지극히 찰나의 순간에 떠올랐다 사라진 미묘한 눈빛의 변화.
실실거리는 와중에도 그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능소밀은 그 미세한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한편 능소밀을 배웅하던 유기진의 얼굴 역시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여기까진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그가 한 줄기 고소를 머금었다.
흑점 지부를 나선 능소밀은 다시금 소적산을 찾았다.
“흑점 놈들에 대한 최근 정보를 전부 모아 주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소적산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능소밀의 표정이 그만큼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해 왔던 흑점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능소밀이 그들의 뒷조사를 지시할 리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이곳 지부장, 그자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네.”
깜짝 놀라는 소적산을 향해 능소밀이 말을 이어 갔다.
“동창에서 파견한 자들의 신상을 속속들이 꿰고 있더군.”
“그런데요?”
그게 뭐 이상하냐는 듯 되묻는 소적산과 달리 능소밀의 눈빛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런데 흑점과 관련된 사안을 남궁호의 착각으로 몰아가 그대로 덮는다?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앞서 진실을 규명해야 할 자들의 대응이라기에는 너무나 안일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보를 다루는 자들은 그런 식으로 허술하게 대응하지 않아. 철저하게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하지.”
자신도 그들과 같은 부류인 만큼 유기진의 태도는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흑점이 이곳 무위에 지부를 설치한 이유는 곡주님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일세. 곡주님의 동향을 빠짐없이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지.”
만약 자신이 유기진이었다면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단악선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발을 빼고 물러서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 거로군요.”
소적산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함부로 밝힐 수 없는 비밀을 숨기고 있거나.”
그것이 유기진 혼자만의 문제인지, 흑점 전체와 관련된 문제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볼 일이었다.
“흑점을 제외한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해 최근 그들과 관련된 동향과 정보들을 모두 파악하게.”
“알겠습니다.”
능소밀의 분위기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소적산이 그대로 집무실을 나섰다.
그날 밤.
개방과 하오문, 그리고 신마상단의 상단원들을 통해 시시각각 도착하는 정보들을 취합하던 능소밀은 소적산이 올린 보고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흘렸다.
“눈에 띄는 특별한 동향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곳 무위에 은신해 있는 흑점 소속의 정보원들 역시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고 합니다.”
“총력을 기울여 움직여야 당연한 일인데, 다른 점이 없었다?”
소적산이 난감한 눈빛을 흘렸다.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예?”
“더 이상의 조사는 의미가 없다는 말일세.”
자리에서 일어난 능소밀은 곧장 신마곡으로 향했다.
“흑점의 지부장이 수상하다고요?”
단악선의 반문에 능소밀은 낮에 유기진과 만났던 상황을 자세히 언급했다.
“곡주님께서 혈운사를 토벌하기 위해 장성을 넘어 초원으로 향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책임자로 새로 온 자입니다. 당시 지부장이 교체되는 과정이 미심쩍었지만 여러 사안들이 밀려 있어 조사를 뒤로 미뤄 두었습니다.”
“그가 이번 사안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거죠?”
“그리 확신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물증은 없으나 제 감은 오로지 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녀석이 저리 자신한다면 그냥 넘겨짚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쪽으로는 누구보다 촉이 날카로우니까.”
“그렇다니 일단 그와 대면해 이야기를 나눠 보죠.”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해 단악선은 초악량, 한설화와 함께 곧장 흑점 지부로 향했다.
능소밀 역시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응?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뒤늦게 처소 쪽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범계위가 단악선 일행을 배웅하던 사무심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사무심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
“글쎄요. 저리 서두르시는 걸 보니 무언가 급한 일이 있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사무심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당연히 따라나서리라 생각했던 범계위가 뜻밖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잠시 움찔하기는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함께 가고 싶지만 애써 꾹꾹 눌러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뒤늦게 범계위의 처소 쪽을 바라본 사무심이 그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이 중요한 벽화령을 두고 차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도 금나수 계열의 무공을 익혔지?”
“네.”
무심코 대답한 사무심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럼 추궁과혈도 할 줄 알겠네?”
“추궁과혈 말입니까? 아!”
사무심은 범계위가 질문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냈다.
기본적으로 금나수는 뼈와 근육, 관절의 움직임에 대한 높은 이해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범계위가 추궁과혈을 언급한 이유는 필시 벽화령 때문이리라.
“저보다는 초 선배님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사무심의 반문에 범계위가 대번 인상을 찌푸렸다.
“자존심 상하게 어떻게 그래?”
사무심은 단번에 그 말을 수긍했다.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누구보다 가까이 봐 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사무심은 범계위에게 금나수를 응용한 안마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무심의 동작을 따라 하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하라고?”
“그러면 뼈가 부러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렇게?”
“그리하면 근육이 찢어질 텐데요.”
사무심이 한숨을 흘렸다.
추궁과혈과 분골착근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
응용하는 방법을 조금만 달리해도 그 결과는 이처럼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아, 씨!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일단 제가 해 드릴 테니 요령을 기억하십시오.”
“뭐? 화령이 몸을 네가 주무른다고?”
사무심이 물끄러미 범계위를 응시했다.
“선배님께 해 드릴 테니 직접 방법을 숙지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뭐라고.”
“…….”
“뭐야? 그 눈빛은.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냐?”
“……그럴 리가요.”
사무심이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범계위의 몸에 손을 올렸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몸 곳곳을 누르고 당기며 돌리던 사무심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그야말로 동피철골(銅皮鐵骨).
이건 마치 금강불괴의 완성을 목전에 둔 사람의 몸 같지 않은가!
호신강기를 두른 것처럼 단단한 피부는 어지간한 힘으로는 눌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상당한 힘과 내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추궁과혈의 요령을 입으로 설명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추나와 도수를 병행하던 그때.
“어우. 너 좀 한다?”
“……외우고 계십니까?”
“아, 맞다! 그랬었지?”
“…….”
“다시 해 봐. 처음부터.”
“…….”
* * *
같은 시간.
한 줄기 바람처럼 어둠을 가르는 인영 하나가 있었다.
거침없이 어둠 속을 헤치며 질주하던 사내 앞을 누군가가 막아선 것도 그때였다.
“……!”
자신을 막아선 상대를 알아본 사내의 눈 위로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반면 무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문지기 곡운경은 그런 사내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난 또 누구라고.”
흑점의 무위 지부장, 유기진이 애써 태연하게 응수했다.
“외부에 파견했던 정보원의 신변이 노출되어 급히 그를 구조하러 가던 중이오.”
“지부장 정도 되시는 분이 직접 말이오?”
유기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우리가 무위를 드나드는 과정에서 따로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소만.”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오.”
이미 소적산의 지시에 의해 신마상단 소속의 정보원이 그에게 다녀간 참이었다.
흑점에 소속된 자들의 출입 여부와 분위기를 캐묻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는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지부장이 무위를 벗어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은 일이었다.
“문지기가 들어오는 사람만 막는 건 아니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