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89)
신마의선-389화(389/500)
신마의선 (389)
“잠시만 기다리시오. 번거롭더라도 확인을…….”
곡운경은 말을 맺지 못했다.
유기진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랫배를 향해 한 줄기 음유하기 짝이 없는 경력이 날아든 건 그 직후였다.
“감히!”
바닥에 낮게 엎드려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오는 유기진을 확인한 곡윤경이 쩌렁한 일갈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내뻗은 주먹.
강맹하기 짝이 없는 권풍이 유기진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
곡운경의 눈빛이 흔들린 것도 그때였다.
상대가 너무나 수월하게 이를 막아 낸 것이다.
흐트러진 앞섶을 정리하듯 가슴 부근을 방비하는 자연스러운 동작.
그 간단한 한 수에 한 치 두께의 철판조차 가볍게 찢어발기는 그의 권풍이 맥없이 가로막혔다.
그와 동시에 유령처럼 흔들린 상대의 손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곡운경이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미 그때는 그의 가슴팍에 상대의 장심이 닿은 뒤였다.
쩌엉!
“크읍!”
가슴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곡운경이 그대로 삼 장이나 밀려났다.
“…….”
곡운경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상대는 더 이상 흔한 흑점의 지부장이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고수인 것이다.
흑점의 악명이 자자한 이유는 그들의 잔혹성과 물불 가리지 않는 집요함 때문이지, 이처럼 특별한 고수를 보유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 명성이 무림 전체에 진즉에 알려졌어야 했다.
그래서 더 소름 끼쳤다.
이런 고수가 진정한 힘을 숨기고 마음껏 무위를 활보하고 다녔다니!
‘망할!’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재차 거리를 좁혀 오는 상대의 모습에 곡운경이 내심 침음했다.
무공 수준 자체는 비슷했지만 놈은 영리하고 교활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부류.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지능적으로 싸움의 흐름을 주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자신의 특기인 권각을 봉쇄하기 위해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 상대의 노련함은 치가 떨릴 만큼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방향을 짐작하기 어려운 음유한 경력은 쉬지 않고 그의 몸을 두드려 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반격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곡운경도 나름의 대응법이 있었다.
무수한 생사결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새겨진 승부사의 감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결국 최후의 한 수를 욱여넣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퍽.
자신의 손이 곡운경의 옆구리에 틀어박히자 유기진은 곧바로 결정타를 날리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
방금 공격으로 늑골 두어 대는 부러졌을 터.
한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유기진이 본능에 따라 황급히 물러섰다.
그 순간 곡운경의 손이 그의 가슴 부근을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갔다.
찌이익.
그 바람에 그의 앞섶이 뜯겨 나가 훤한 맨살이 드러났다.
“쿨럭!”
한 움큼의 피를 토하는 곡운경의 모습에 유기진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살을 내어 주고 뼈를 취하려던 이대도강의 수법.
제때 피하지 않았다면 승부의 향방이 뒤바뀌었을지도 모를 만큼 위협적인 한 수였다.
반면 곡운경은 유일한 기회였던 마지막 한 수가 빗나가자 패배를 직감했다.
‘틀렸군.’
그런데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완벽하게 승기를 거머쥔 상대가 당황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의 승부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기진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곡운경은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한 자루 섭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대의 분위기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섭선이었다.
원래 품속에 지니고 있었는데, 방금 전의 격돌로 떨어진 모양.
곡운경과 유기진의 시선이 한순간 어지럽게 뒤얽혔다.
곡운경은 흔들리는 상대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의 표정을 가득 메운 당혹감과 동요를 읽어 낸 곡운경이 본능적으로 떨어진 섭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유기진은 거리를 바짝 좁혀 오고 있었다.
턱.
두 사람이 동시에 부채를 움켜쥐었다.
상대를 떨쳐 내기 위해 곡운경이 맹렬히 손을 휘두르자 유기진 역시 다른 한 손을 마주 내밀었다.
퍽.
장력과 장력이 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소음은 적었다.
그러나 곡운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절정의 기공을 정면에서 받고도 상대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필생의 공력을 쏟아붓고도 오히려 손해를 본 사람은 자신이었다.
웅혼한 기세의 장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나 싶더니 돌연 음습하고 섬뜩한 기운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것이 암경(暗勁)의 일종인 침투경(浸透勁)임을 깨달았으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기맥을 파고든 차갑고 끈끈한 기운이 어느새 단전 근처까지 이르러 있었다.
곡운경이 이를 악물었다.
이리된 이상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력을 다해 버티는 수밖에.
한 손은 섭선을 움켜쥐고, 다른 손은 서로 맞댄 채 두 사람은 내공 싸움을 이어 갔다.
유기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여기서 시간을 끌어 봐야 불리한 건 자신뿐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
한껏 끌어 올린 십이성 전력을 맞댄 장심을 통해 그대로 쏟아부었다.
이대로 곡운경의 심맥을 갈가리 찢어 버릴 심산이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내력에 곡운경의 눈 위로 암담함이 떠올랐다.
그런데…….
“……!”
“……!”
두 사람의 전신에 소름이 쭉 돋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기파 하나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특히 유기진은 정신이 날아갈 것처럼 놀랐다.
‘고수!’
그것도 감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고수였다.
그런데 하필 달려오는 방향이 무위 쪽이었다.
“칫!”
유기진이 섭선을 움켜쥔 손에 힘을 불어 넣었다.
어떻게든 곡운경을 뿌리쳐 낼 심산이었다.
그 순간.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곡운경도 섭선을 움켜쥔 손에 진기를 주입했다.
비록 패색이 짙었지만 예상치 못한 우군의 등장에 어떻게든 버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순간 유기진은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죽어 가던 놈의 내력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반발력이 자신의 진기와 충돌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뚝.
양쪽에서 한꺼번에 밀려든 내력으로 인해 섭선의 중간 부분이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유기진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섭선의 손잡이 부분뿐이었다.
반대로 부챗살 부분은 곡운경의 손에 넘어간 상태.
유기진이 원독 어린 눈으로 곡운경을 노려봤다.
“네놈이!”
그러나 더 이상 이곳에서 미적거릴 수 없었다.
으스러져라 이를 악문 유기진이 그대로 돌아서서 어둠 속에 신형을 던졌다.
잠시 후.
털썩.
유기진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바닥에 주저앉은 곡운경이 한바탕 시커먼 피를 게워 냈다.
그런 곡운경 곁으로 누군가가 내려선 것도 그때였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곡운경은 피 칠갑을 한 채로 씨익 웃었다.
예상치 못한 아군의 정체 때문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채 못마땅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물.
바로 주광도귀 강위룡이었다.
* * *
밤늦은 시각.
곳곳에 홍등을 밝힌 채 한창 영업을 이어 가던 기루에 세 사람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손님인 줄 알고 반색하며 달려오던 기녀들은 이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이런 홍등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기진, 그 사람은 어디에 있죠?”
“총관님을 찾아오신 건가요?”
단악선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한 기녀 한 명이 내원 쪽으로 이어진 입구로 사라졌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둘러 달려왔다.
“지금 안 계시는데요?”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녀가 황급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숙소의 모습이 이상해요. 어수선하고 정리 안 된 모습이 마치…… 급하게 야반도주라도 한 것 같아요.”
잠시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과 초악량이 곧장 유기진의 집무실로 향했다.
기녀의 말대로 집무실 안은 엉망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그게…….”
단악선의 물음에 기녀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그 순간.
초악량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사방으로 뻗은 날카로운 기감의 그물에 희미한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이다.
살짝 늦긴 했지만 단악선 역시 이를 분명하게 느꼈다.
두 사람이 밖으로 신형을 날리자 이미 한발 앞서 저만치 달려가는 한설화의 뒷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 역시 서둘러 그 뒤를 따라 경공을 전개했다.
잠시 후.
그들이 무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뒤였다.
운기조식을 취하느라 눈은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곡운경과 그 옆에서 호법을 서고 있는 강위룡을 발견한 단악선은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단악선의 인사에 강위룡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왈칵 죽은 피를 토해 낸 곡운경이 천천히 눈을 떴다.
단악선을 발견한 곡운경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부족해 놈을 놓쳤습니다.”
“아니에요. 일단 치료부터 해요.”
물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부상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한 곡운경을 탓할 수는 없는 일.
단악선이 진맥을 하려 하자 곡운경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섭선이 단악선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뭔가요?”
“놈이 지니고 있던 물건입니다. 굉장히 신경 쓰는 눈치였는데, 그만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심코 섭선을 받아 든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섭선의 모양과 재질이 어딘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아!”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단악선이 급히 섭선을 펼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투(神偸)라 불리기 좋아하며 자신에게 투도술을 전수한 귀영마자(鬼影魔子).
언젠가 슬쩍 떠난 그가 선물이랍시고 남긴 섭선과 동일했다.
문제는 그 섭선을 신마곡 안에 위치한 자신의 전각에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 신마곡 안으로 잠입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러느냐?”
문득 시선이 마주친 한설화의 물음에 단악선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애초에 눈앞의 부채가 다른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신마삼존과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신마곡 안을 드나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역시.’
섭선 위에 그려진 선인도를 응시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분위기와 화풍은 같았지만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음? 그건?”
섭선 위에 그려진 그림을 알아본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한 그 모습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일단 내상부터 다스릴게요.”
품속에서 침을 꺼내 든 단악선이 곡운경의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초악량과 한설화가 주변을 살폈지만 그 어디에도 유기진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상당한 고수로 보이는군.”
곡운경 정도가 당했을 정도니 굳이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곡운경의 치료를 마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마곡으로 돌아가요. 확인할 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