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
신마의선-39화(39/500)
신마의선 (39)
“휴우, 이제 좀 쉬죠.”
단악선이 초악량의 몸에서 마지막 침을 뽑으며 한숨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한설화와 범계위도 초악량의 팔을 놓았다.
두 사람 모두 한바탕 악전고투를 치른 표정이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섬세한 일은 나랑 안 맞아.”
그런 두 사람을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다독였다.
“사람 살리는 일이잖아요. 쉬울 리 없죠.”
한설화가 단악선의 얼굴을 살피다 짧게 혀를 찼다. 이 중 누구보다 힘들었던 사람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우선 네 몸부터 챙겨야겠다.”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 탓에 단악선은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눈 밑은 퀭한 음영이 드리워 있었고, 입술도 푸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적어도 며칠 안에는 치료법을 완성해야 해요. 그 이상은 환자가 버티지 못할 거예요.”
단악선의 목소리엔 단호한 의지가 역력했다.
그런 단악선을 두 사람이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아! 좋구나!”
감았던 눈을 뜨며 초악량이 탄성을 흘렸다.
이에 한설화와 범계위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초악량을 보고 있자니 괜히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효과가 있는 것 같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가볍게 몸을 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태라면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힘이 남을 것 같구나!”
극양과 극음.
극한에 이른 두 가지 내공을 이용한 치료 효과는 초악량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오장육부를 비롯한 근골.
거기에 기맥과 온몸의 신경이 제자리를 잡아 가는 기분이었다. 진기의 흐름 역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원활해졌다.
“누군 개고생하는데, 팔자 좋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날 선 음성에 초악량이 싱긋 웃었다.
“건강한 본인들을 탓해야지.”
“뭐?”
“아니면 나만큼 아프든가?”
한설화와 범계위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 풍진성이 탕약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말씀하신 방법대로 구지선엽초를 달였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단악선이 탕약을 받아 새끼손가락으로 톡 찍어 맛을 봤다.
“역시 풍 아저씨의 약제 실력은 최고예요.”
단악선의 칭찬에 풍진성이 겸손한 미소로 화답했다.
“마시고 곧장 운기행공을 하셔야 해요. 무리해서 단전에 담으려 하지 마시고 몸 전체로 퍼트린다는 느낌으로요. 최대한 세맥 끝까지 골고루 퍼지도록 신경 쓰세요.”
단악선이 내민 탕약을 받아 든 초악량이 머쓱하게 웃었다.
“허허, 이 귀한 걸 혼자 어찌 먹누.”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것을 느낀 초악량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살기까지 흘리며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두 악귀를 향해 씨익 웃어 준 초악량이 탕약을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곧장 좌정한 채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단 의원.”
“네?”
“초 형 이제 많이 좋아진 거지?”
“그럼요.”
“그럼 딱 한 대만 때리면 안 될까? 죽지 않을 만큼만.”
“그렇게 고생해서 치료했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단악선의 만류에 범계위가 잠시 갈등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효과가 놀랍군요.”
눈에 띄게 혈색이 회복된 초악량의 얼굴을 보며 풍진성이 감탄했다.
“정말 획기적인 치료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창안할 수 있는 분은 천하에 오직 곡주님밖에 없을 겁니다.”
“저도 놀라는 중이에요. 그리고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죠.”
단악선이 여전히 초악량을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 공을 돌렸다.
“세상에 오직 저 두 분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무림 역사상 전례가 없는 내가 치료법이 탄생한 건 분명합니다.”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우리가 해낸 거예요.”
“그 우리에서 초 형은 빠진 거지?”
“당연하지. 저 인간은 한 게 없잖아.”
그 순간 한설화가 재빨리 손을 뻗어 쓰러지는 단악선을 붙들었다.
풍진성이 황급히 단악선의 맥을 잡았다.
“탈진이군요. 너무 무리하신 것 같습니다.”
범계위가 안타까운 눈으로 혼절한 단악선을 보았다.
“그 탕약은 단 의원이 먹었어야 했는데.”
한설화가 손을 들어 단악선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반드시 살려야지.”
그 말에 범계위와 풍진성이 굳은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풍진성이 건넨 탕약을 단숨에 비워 낸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만들어 주는 탕약은 이상하게 달게 느껴져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약 기운이 돌면 애써 버티지 마시고 느긋하게 푹 주무십시오.”
“네, 그럴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범계위가 슬쩍 다가섰다.
약이 달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릇 바닥에 남은 탕약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으로 가져간 범계위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단 의원이 미쳐 가는 것 같아. 이게 달다니.”
“그런가요? 음미하면서 마시면 단데…….”
“약을 왜 음미하면서 마셔? 일단 그것부터가…….”
범계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단악선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단악선을 잠시 내려다보던 풍진성이 뒤늦게 그릇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약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풍 가주가 제일 바쁘군그래.”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범계위의 칭찬에 풍진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 방 한편에서 운기행공을 끝낸 초악량이 천천히 눈을 떴다.
“후우.”
길게 내뱉은 그의 호흡에서 안정된 힘이 느껴졌다.
“많이 좋아지셨군요.”
풍진성의 말에 초악량이 겸연쩍게 웃었다.
“고맙네. 풍 가주가 애써 준 덕분이지.”
초악량은 처음 신마곡을 찾아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
이를 누구보다 체감하는 사람이 바로 초악량 본인이었다.
단악선이나 풍진성이 보기에도 놀랄 만큼 그 회복 속도가 경이적이었다.
“그런데 초 형.”
“응?”
“왜 나한테는 인사 안 하는 거요?”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다, 그래.”
그리곤 한설화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건넸다.
“한 누이도 고마워.”
“말로만?”
평소와 다름없는 냉랭한 태도도 초악량은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고마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림맹에서 얻게 될 약재를 사용하면 회복이 더 빨라질 겁니다. 다른 두 분도 마찬가지고요.”
초악량이 잠든 단악선을 보았다.
“그렇겠지. 단 의원 성격에 약재를 아끼진 않을 테니까.”
풍진성이 쓰게 웃었다.
단악선이 약재를 소모하는 양은 분명히 경이적이었다. 풍진성의 표정에서 그의 속내를 짐작한 초악량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신의와 마의께서도 그랬나?”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으셨죠.”
“그러고도 살림이 유지가 되던가?”
“그래서 제가 총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린 풍진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약재의 배분 문제를 놓고 두 분이 어찌나 싸우시던지……. 결국 곡 운영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제게 일임하기로 합의를 하셨죠. 적어도 그 뒤로는 운영 문제로 다투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중간에서 제가 죽어 나갔죠. 양쪽에서 압박이 엄청났거든요.”
“자네……. 참 고생 많이 했군그래.”
“그땐 분명 그랬는데, 지나고 나니 그립기만 합니다.”
그때였다.
“그거 괜찮은데?”
범계위가 눈빛을 반짝이며 한설화를 바라봤다. 최근 들어 부쩍 가까워진 두 사람이었다.
“우리도 총관을 구하자!”
시큰둥한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설명을 이어 갔다.
“총관에게 곡 운영권을 몽땅 맡기는 거야. 그럼 우리가 굳이 단 의원과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잖아. 원망을 하더라도 총관을 원망할 테니까 말이야.”
“물색해 둔 사람은 있고?”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풍진성을 향했다.
이에 풍진성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곡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연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허락하시지 않을 겁니다.”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아, 어디 돈 계산 밝은 놈 하나 없나? 보이면 당장 가서 잡아 올 텐데.”
순간 초악량의 뇌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 놈이 있긴 하지.”
“누구?”
“얼마 전에 만났잖아.”
“아아! 그 돈 귀신?”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라면 딱이지. 그런데 그놈을 어떻게 찾지?”
초악량이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마.”
“문지방 닳겠수. 매번 어딜 그렇게 뻔질나게 쏘다니는 거요? 나 모르게 여자라도 하나 꼬신 거요?”
“그냥 거닐며 생각 좀 정리하는 거다.”
“쳇, 팔자 좋네. 우리는 누구 덕에 기진맥진인데.”
초악량이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가자 한설화가 범계위에게 핀잔을 던졌다.
“저게 그냥 산책 가는 걸로 보여?”
“그럼?”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어디긴 어디야. 무림맹…….”
무언가를 떠올린 범계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쳐들어올 때를 대비해 미리 살펴보는 거군? 그렇다면 나도 빠질 수 없지.”
신이 나서 밖으로 나서려는 범계위를 한설화가 막아섰다.
“바보는 그냥 여기 있어.”
“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잖아.”
그 말과 함께 한설화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빤히 응시하던 범계위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이래?”
“잡아.”
“고백이라면 정중히 사양하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한테 관심 없…….”
범계위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설화의 어깨너머로 피어오르는 살기의 구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뭘 그렇게 역정을 내? 살다 보면 차일 수도 있지!”
한설화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짜증이 솟구쳤다.
“연습해야지. 단 의원이 저렇게 매번 쓰러지게 둘 거야?”
“뭐야? 그런 거였어? 진작 말을 하지.”
두 사람의 내공을 이용한 치료법은 무엇보다 서로의 호흡이 핵심이었다.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만 치료 시간이 단축되고 효과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운기를 시작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풍진성이 조용히 웃으며 잠든 단악선을 바라봤다.
‘좋은 분들을 만나 다행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인복만큼은 차고 넘치는 단악선이었다.
* * *
‘이런 구조였군.’
산책하듯 무림맹 내부를 둘러보던 초악량은 건물의 배치와 구조를 비롯해 연못과 바위를 비롯한 정원수의 위치까지 철저히 눈에 새겼다.
다행히 무림맹을 오가는 대부분의 무인들이 자신을 알고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초악량이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무림맹 입구로 들어서는 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저놈?’
초악량의 눈 위로 자욱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같이 말을 섞기도 싫은 사파의 변절자.
한때 칠절마군이라 불렸던 노단양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노단양에 대한 초악량의 감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야 있었지만 악인 중 그런 점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도리어 행한 일 몇몇을 보면 자신과 꽤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여겼었다.
무공도 나름 쓸 만하고 말하는 것 또한 고집과 강단이 있는 사내였던 터라 처음 그가 무림맹에 투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파사단을 직접 이끌고 있었다니.
생각 같아선 당장 이 자리에서 목을 꺾어 버리고 싶었지만 초악량은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