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0)
신마의선-390화(390/500)
신마의선 (390)
신마곡으로 돌아온 단악선은 곧장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예상대로 가두달이 선물했던 섭선은 그 자리에 온전히 놓여 있었다.
눈앞의 섭선을 펼쳐 그 안에 그려진 선인도를 유심히 바라보던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섭선을 가지고 밖으로 나온 단악선은 초악량이 보관하고 있던 부러진 섭선을 받아 그림과 그림의 끝부분을 맞댔다.
“역시 그랬어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 폭의 선인도.
두 자루의 섭선은 처음부터 한 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게 뭐야? 단 의원.”
어느새 슬쩍 다가온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나씩 존재할 때는 단순한 산수화였는데, 이렇게 하나로 모아 놓고 나니 마치 특정 위치를 가리키는 지도처럼 보여요.”
단악선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고민이 드러났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만 밝혀낸다면 이를 지니고 있던 유기진의 정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유력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가두달 그놈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전 중원을 떠돌며 보물들을 훔쳐 온 그라면 당연히 이 물건의 내력도 알고 있을 터.
문제는 가두달의 행방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란 점이었다.
“어떻게 찾죠?”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와 한설화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단악선 역시 마찬가지.
그날 이후 넓은 호수에 던진 돌멩이처럼 종적도 없이 사라진 그였기에 달리 그를 찾아낼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한참.
“그놈만 알아볼 수 있도록 경고문을 뿌리는 건 어떠냐?”
초악량의 제안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걸로 될까요?”
“분명 반응이 있을 게다.”
신묘한 묘책은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사무심이 신형을 일으켜 무위로 향했다.
소적산에게 방금 결정된 사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는 흑점의 지부들을 확인하고 오마. 각 지부장들을 추궁하면 단서가 될 무언가를 얻어 낼 지도 모르니.”
그 말에 범계위가 반색했다.
종일 벽화령 옆을 지키느라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으하하! 그런 거라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지. 그냥 싸그리 납치…… 아니, 데려오면 되는 거지?”
“죽여서는 안 된다.”
범계위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참 나. 사람을 뭘로 보고. 나 예전의 그 범계위가 아니야.”
“그런데 화령이 두고 마음대로 움직여도 돼?”
별 뜻 없이 말을 던진 한설화가 흠칫했다.
갑자기 범계위가 잡아먹을 듯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잠시.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마녀 네가 하면 되겠네.”
“……?”
“나 대신 화령이 지켜 주라고. 넌 어차피 이런 일 못하잖아.”
“뭐?”
“단 의원이 이번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지? 그런 단 의원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셈이야?”
“…….”
한설화는 어이없고 기가 막혀 일순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자신이 실패하리라 단정 짓는 범계위의 행태도 황당했지만 더 기분 나쁜 건 따로 있었다.
범계위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초악량이었다.
“이것들이?”
한설화가 발끈하는 찰나.
범계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저 멀리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범계위.
“그럼 부탁하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초악량도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쩌적.
한설화의 발밑으로 퍼져 나가는 새하얀 서리만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했다.
* * *
흑점 산서 지부.
지급(至急) 표시가 된 전서를 다리에 매단 비둘기가 날아들자 산서 지부 소속의 정보원들이 바빠졌다.
그중 한 명이 전서의 진위를 판단한 뒤 곧장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지부장님! 지급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던 엽단영은 난데없는 수하의 외침에 눈살을 찌푸렸다.
일 년에 고작 두어 번 날아들까 말까 한 등급의 명령서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쯧.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전서를 받아 들던 엽단영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버린 것도 그때였다.
콰드득.
갑자기 천장이 송두리째 박살 나며 거대한 인영 하나가 뚝 떨어져 내린 것이다.
문제는 그 인영이 그가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말을 더듬는 엽단영을 향해 씩 웃어 보인 범계위가 불쑥 손을 뻗어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전서를 낚아챘다.
“여기 뭐라 쓰여 있는 거냐?”
“네? 어……. 그러니까…….”
전서 안의 내용을 확인하던 엽단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각 지부를 모두 폐쇄하고 지정되어 있던 안가(安家)로 은밀히 몸을 숨겨라?”
“뭐야. 그런 거였어?”
“……!”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엽단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서의 내용은 흑점의 고위 인사들만이 알 수 있는 암어(暗語)로 적혀 있었다.
자신이 잡아떼면 아무리 범계위라도 당장은 그 내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만 범계위에 대한 공포와 그 압도적인 위세에 눌려 순순히 털어놓고 만 것이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난데없는 범계위의 등장과 전서에 담겨 있는 경악스러운 내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때.
덥석.
범계위가 엽단영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일단 넌 나랑 가자.”
“예? 대체 어딜……?”
“가 보면 알아. 허튼수작 부리면 알지?”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엽단영이 안쓰럽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때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범계위가 엽단영을 향해 물었다.
“아, 맞다. 다른 지부장 놈들 어디 있는지 알지?”
“아시다시피 저희는 점조직 형태라…….”
“그래서 모른다고?”
스산해지는 범계위의 눈빛에 엽단영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시커멓게 죽어 갔다.
그 순간 범계위가 힘껏 발을 굴렀다.
꽈앙!
육중한 충격이 다루로 위장하고 있던 오 층 전각 전체를 뒤흔드나 싶더니.
우지끈.
건물이 송두리째 폭삭 주저앉은 건 순식간이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천재지변과 같은 재앙.
그 앞에 아연실색하던 엽단영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느새 범계위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다시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몰라?”
* * *
같은 시각.
초악량은 서안에서 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요음난희 설난영.
하오문의 서안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는 그나마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보통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흑점의 위치를 알고 싶다.”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는 초악량을 향해 설난영이 가볍게 눈을 흘겼다.
“무리한 요구라는 건 알고 계시죠?”
“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저희라고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잠시 고민하던 설난영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교태 어린 눈빛을 던졌다.
“하지만 이곳 서안으로 한정 짓는다면 천첩의 이목을 피해 갈 수 없죠.”
다음 날 오후.
초악량이 정신을 잃고 혼절한 사내를 데리고 신마곡으로 복귀했다.
“운 좋게도 흑점의 서안 지부장이 이자였다.”
초악량이 수혈을 짚어 기절시킨 오십 대의 장년인을 가리켰다.
고벽운.
유기진 이전에 이곳 무위 지부를 책임지고 있던 자였다.
“범가는 아직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설마 실패한 건 아니겠지?”
걱정 어린 초악량의 표정에 한설화가 실소했다.
“애초에 그 멍청이를 믿은 건…….”
한바탕 핀잔을 쏟아 내려던 한설화가 일순 멈칫했다.
저 멀리,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기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털썩.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범계위가 짊어지고 있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짐짝 던지듯 바닥에 내려놨다.
“어떤 놈이 필요할지 몰라서 전부 다 데려왔어.”
의기양양한 범계위의 표정에 한설화는 입을 다물었다.
초악량 쪽을 힐끗 바라본 범계위가 피식 실소했다.
“뭐야? 겨우 한 놈뿐?”
눈썹을 꿈틀하는 초악량이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범계위가 곧장 쏘아붙였다.
“뭔 일을 그렇게 대충하슈? 이래서야 어디 단 의원이 믿고 의지할 수 있겠어?”
“뭐, 인마?”
초악량이 발끈했지만 이미 범계위는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단악선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어때? 단 의원. 나한테 맡기길 잘했지?”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사내들을 바라봤다.
“저들이 전부 흑점의 지부장들인가요?”
“그렇다던데?”
“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거예요? 흑점은 점조직이라 상급자가 아니고서는 다른 지부의 위치를 알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거?”
범계위가 쓰러져 있던 사내들 중 한 명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얘가 잘 알고 있더라고.”
핏기 한 점 없는 얼굴로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엽단영이 한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나마 이 중에서 유일하게 친분이 있다고 할 만한 인물.
능소밀이었다.
“도, 도와주시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능소밀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비로소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겁이 많고 신중한 성격상 엽단영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본래 알아서는 안 되는 상위 정보들까지 파악해 놓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달아나기 위해 미리 파 놓았던 굴이 오히려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그와는 어디까지 사업적으로 엮인 관계.
게다가 흑점의 수상한 정황이 포착된 이상 친한 척해서 좋을 게 없었다.
특히나 그를 잡아 온 사람이 범계위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괜한 불똥이 튈세라 어느새 슬쩍 시선을 외면하는 능소밀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
심문을 마친 단악선이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탁.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단악선은 작은 자기 병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남궁호가 복용하던 약이 담겨 있는 병이었다.
“이 안에 있던 약의 성분을 분석했어요.”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터트렸다.
“단순한 앵속분이 아니었어요. 미량의 사향과 수은이 포함된, 일종의 강력한 각성제였어요. 그래서 그토록 많은 양을 복용하고도 정신을 유지했던 거고요.”
“그 약이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일조한 게 분명하구나.”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약을 건넨 사람은 남궁가주의 그런 행동을 유도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짚이는 바가 있으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단악선의 시선이 초악량에게 향했다.
“초 아저씨가 그러셨죠? 남궁세가의 일에 제가 개입하면 그 자체로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는 혼란을 야기할 거라고요.”
“설마 그걸 노렸단 말이냐?”
초악량이 깜짝 놀랐다.
단악선의 입지를 흔들기 위해 남궁세가를 이용하려 했다니…….
“분명 유기진이라는 자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커요. 우리가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그자에 대한 정보가 워낙 부족해 진정한 내막을 알아낼 수 없어요.”
“그거라면 내가…….”
슬그머니 신형을 일으키던 범계위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머쓱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지부장들을 고문해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거예요. 실제로 흑점의 조직 특성상 각 지부장의 신원은 서로 알지 못하는 게 원칙이니까요. 다만 고벽운이라는 분을 통해 약간의 소득이 있었어요.”
“소득?”
“유기진이라는 자를 조직 내의 상급자로 짐작하고 있더군요.”
능소밀의 눈이 반짝였다.
저들의 조직 체계상 지부장보다 높은 지위를 지닌 자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바로 흑점의 총수인 흑점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