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1)
신마의선-391화(391/500)
신마의선 (391)
“설마 그가 흑점주 본인이라는 말입니까?”
능소밀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요.”
“아니요.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도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일개 지부장치곤 너무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흑점의 주인이 우리를 적대하는 걸까요?”
곰곰이 생각을 이어 가던 능소밀이 입을 열었다.
본디 이런 문제는 어렵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법.
의외로 해답은 단순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 외에 다른 자와 손을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흑점은 강호의 도리나 명예는 신경 쓰지 않고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그런 만큼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막대한 이익만 보장된다면 언제든 칼을 거꾸로 쥘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설마…….”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단악선이 말끝을 흐렸다.
지금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 중 자신들과 비교될 만큼 강한 곳은 하나뿐이었다.
“이 역시 수보라는 자의 계략일까요?”
단악선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우선은 그자가 지니고 있던 섭선에 대해 알아내는 게 급선무겠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가 아저씨를 먼저 찾아내야 하고요.”
문제는 과연 가두달이 신마상단을 통해 포고한 경고문을 보고 자신들을 찾아올까 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범계위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때 그 자식 발목을 부러트려 놨어야 하는 건데.”
능소밀은 헛웃음이 났다.
가두달이 알아볼 수 있도록 신마상단을 통해 중원 전역에 퍼트린 포고문.
그런데 이 자리의 대부분은 그리 크게 기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능소밀의 생각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 생물이었다.
명예와 도리를 중시하는 명문정파의 인물이 아닌 이상 반드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토록 자신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자신의 처지도 한때 가두달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흑점의 산서 지부장인 엽단영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다른 지부장들의 신분과 위치를 실토한 것만으로도 그는 흑점을 배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능소밀은 그런 그를 십분 이해했다.
초악량이나 범계위를 겪어 본 이들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으니까.
정작 당사자인 그들만 자신들의 악명이 지닌 공포의 무게를 모르고 있었다.
능소밀이 묘한 미소를 말아 올렸다.
“일단 기다려 보시지요.”
* * *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중원의 어느 산골 마을.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어 이따금 이곳을 찾는 외지인은 사냥꾼과 약초꾼이 대부분인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닦고 뿌리를 내려온 소수 민족은 유독 중원인을 경계했다.
이 때문에 가두달도 이들과 친해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타고난 그의 넉살과 중원 전역을 떠돌며 몸에 밴 친화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환심을 살 수 있는 약간의 선물까지.
덕분에 가두달은 이들의 인정을 받아 손님으로 머물고 있었다.
외부의 시선을 피해 은신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역시 이 맛은 어딜 가도 못 느낀다니까.”
오랜 세월만큼 낡은 객잔.
구석진 자리에서 젓가락을 놀리던 가두달이 감탄성을 흘렸다.
나름 미식가라 자부하는 그였지만 중원 그 어디에서도 이처럼 뛰어난 미미(美味)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곳을 은신처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때 객잔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가두달은 재빨리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곁눈질로 상대를 관찰하는 건 잊지 않았다.
‘신마상단?’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산을 타는 자들 외에도 간혹 외부에서 상인이 찾아오곤 했다.
이런 산속 외지야말로 소금과 차를 팔아 높은 이문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마상단은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있었다.
“……?”
가두달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가 객잔에 온 이유가 식사 때문이라 짐작했는데, 이게 웬걸.
신마상단 소속의 상인은 객잔 곳곳에 벽보를 붙이고 있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가두달은 상인이 사라지자 벽보를 향해 슬쩍 다가섰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기내취활(自己來就活),타기내취사(躲起來就死).
별 뜻 없어 보이는 열 글자.
그런데 그 밑에 찍혀 있는 수결 하나가 더해지자 그 의미가 명확해졌다.
“이런 씨부럴!”
화들짝 놀란 가두달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비명에 가까운 경악성을 터트렸다.
수결의 주인이 바로 초악량이었기 때문이다.
가두달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마디로 직접 찾아오면 살려 주겠지만, 잡혀서 끌려오면 죽인다는 뜻이었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가두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객잔 안의 손님은 자신뿐이었다.
부욱.
가두달이 황급히 벽보를 떼어 냈지만 이미 그의 손바닥 안에는 땀이 흥건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냥 버텨 볼까?”
침식도 잊은 채 한숨만 푹푹 내쉬던 가두달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 괴물들이 어떤 인간들인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초악량과 범계위가 일단 마음먹으면 전 중원을 이 잡듯 뒤져서라도 자신을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인데, 본능은 맹렬하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신마상단까지 동원한 이상 상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이것도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최근 녹림이 단악선과 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사실을 그 역시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래 장성을 넘어 초원으로 숨어들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 역시 미봉책(彌縫策).
혈운사가 토벌된 이후 장성과 가까운 초원 부족들은 이미 단악선의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모든 걸 감안하니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이 넓은 천하에 숨을 곳이라곤 없는 상황인 것이다.
며칠째 잠을 설쳐 푸석한 피부와 눈 밑에 검게 드리운 음영.
중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며칠 사이에 퀭해진 얼굴로 고심을 거듭하던 가두달이 이윽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살려 준다니 알아서 가야겠지.”
실제로 지난번에도 무사히 목숨을 부지하지 않았던가.
“하아……. 대체 내 팔자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거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마을을 나선 가두달은 오늘따라 유난히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 * *
무위 입구를 지키고 있던 곡운경은 난데없이 길게 늘어선 행렬에 몹시 당황했다.
유기진과의 일전에서 얻은 부상을 온전히 추스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인 만큼 더욱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방금 누굴 만나러 왔다 하셨소?”
그래도 당장은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했기에 곡운경은 끝없이 늘어선 행렬의 선두에 선 노파를 향해 다시 반문했다.
칠십 대쯤 되었을까.
젊은 시절의 미태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노파가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초악량, 그 버러지 같은 놈을 만나러 왔다!”
“초 선배님을 뵈러 오셨다는 말씀이시오?”
“흥! 선배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선배. 그깟 소인배가 어찌 그리 불릴 자격이나 될까.”
노파의 독설에 곡운경이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사이.
누군가를 발견한 노파가 들고 있던 죽장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흥! 저기 있군. 얼마나 심보를 고약하게 썼는지 늙지도 않았어. 세월조차 저 성질머리를 버티지 못하고 비껴간 게지!”
노파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곡운경은 놀란 얼굴로 서 있는 초악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심히 노파를 응시하던 초악량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그때였다.
“심 소저?”
“그래, 나다! 고작 고백을 거절했다고 이제 와서 나를 죽인다고 으름장을 놔? 대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강산이 바뀌었어도 다섯 번은 바뀌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초악량의 반문에 노파가 들고 온 종이를 들어 올렸다.
신마상단을 통해 중원 전역에 내건 포고문이었다.
“이 미친놈!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내 가족은 건들지 말아라. 적어도 사람이라면 그 정도 양심은 있겠지!”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파의 모습에 초악량은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오해가?’
겨우겨우 노파를 진정시킨 곡운경이 이번에는 뒤쪽의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도 초 선배님을 만나러 온 것이오?”
“……예.”
힘없이 대답한 육십 대의 초로인이 초악량 쪽을 향해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삼십 년 전쯤에 그분께 영약을 속여서 판 적이 있습니다. 뼈저리게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부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게 시작이었다.
곡운경이 따로 묻지도 않았건만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전에 소매치기하려다가 잡힌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분명 용서를 받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전에 음식을 만들 때 몰래 침을 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걸 지켜보던 점소이 놈이 얼마 전에 달아났습죠. 그래서 혹시 그놈이 몰래 발고한 것이 아닐까 싶어…….”
곡운경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정말로 너무나 어이가 없어지면 헛웃음이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반면 초악량은 입장이 달랐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술 취한 사람처럼 벌게져 있었다.
살다 살다 오늘처럼 망신살이 뻗친 날은 맹세코 없었다.
잊고 지내던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처럼 집요하게 따라올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자리에 범계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놈이 봤다면 배를 잡고 낄낄대며 자신을 비웃었을 터.
“대체 얼마나 염문을 뿌리고 다닌 거야? 쓸데없는 은원은 대체 얼마나 쌓은 거고?”
“……!”
등 뒤에서 들려온 한설화의 음성에 초악량이 흠칫했다.
그녀가 가까이 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범계위보다는 그나마 나았지만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지는 한설화 역시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당혹감은 이내 분노가 되었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한 사람에게 향했다.
바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가두달이었다.
‘이놈, 어디 잡히기만 해 봐라.’
그렇게 속으로 이를 갈던 그때.
초악량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다.
길게 늘어선 행렬 가장 끄트머리.
쭈뼛거리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향해서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놈의 얼굴을 확인한 초악량이 창노한 일성을 터트렸다.
“이노옴!”
천지를 뒤흔드는 쩌렁한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이미 초악량은 가두달 앞에 서 있었다.
“저, 저였습니까?”
사색이 된 가두달의 얼굴을 향해 초악량의 살기가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느냐?”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가두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 앞에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요. 또 뒤에도…….”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지금도 가두달 뒤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악량은 기억도 못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보고 저마다 흠칫하는 것을 보니 과거에 안면이 있었던 모양.
“다른 자들은 포고문에 해당되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웅혼한 내공이 실린 일갈에 사람들이 크게 안도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헤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초악량의 스산한 눈빛에서 위기를 직감한 가두달이 애써 친한 척을 했다.
“그래도 제 발로 찾아왔으니 살려는 주시는 거죠?”
“물론.”
밀려드는 안도감에 화색이 돌던 가두달의 얼굴은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금세 핏기가 가셨다.
“목숨만은 붙어 있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