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2)
신마의선-392화(392/500)
신마의선 (392)
초악량에게 붙잡혀 신마곡에 들어선 가두달은 넋 나간 듯한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누구보다 많은 곳을 둘러본 그조차도 이처럼 신비함을 품은 풍광은 처음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던 가두달이 흠칫했다.
목덜미와 뒤통수가 몹시 따가워 슬쩍 고개를 돌리니 분노로 이글거리는 초악량의 눈빛을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단 의원!”
때마침 전각에서 걸어 나오는 단악선을 발견한 가두달이 애처롭게 외쳤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가서는 가두달의 모습에 모두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방금 전 무위 입구에서 벌어진 한바탕 촌극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저래?”
고개를 갸웃하는 능소밀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누구라도 오랜만에 단 의원을 만나면 반갑고 기쁜 법이지.”
뒤쪽에서 코웃음을 치는 한설화만 봐도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능소밀은 굳이 묻지 않았다.
당장은 단악선이 그에게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가두달을 향해 오래전 그가 남기고 갔던 섭선을 내밀었다.
“이게 뭔지 솔직히 말해 주세요.”
섭선을 마주한 가두달이 움찔했다.
“그, 그건…….”
당황한 가두달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더듬었다.
그렇게 대답을 망설이길 잠시.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나운 기세와 서슬 퍼런 눈빛에 결국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천마의 물건입니다.”
“응? 누구?”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 범계위가 되물었다.
“천마? 기련산 너머로 도망쳤던 그 천마?”
“예, 그 천마요. 당금 강호에 그 말고 감히 천마를 자처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자리의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분위기에 머뭇거리던 가두달이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자 그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오래전에 기련산에서 마지막 일전이 벌어졌을 때 말입니다. 저는 홀로 마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교주전에 잠입했죠. 거기서 가지고 나온 물건입니다.”
“네? 어째서요?”
단악선의 물음에 가두달이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도둑이 물건 훔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저 보물이 거기 있으니 가져오는 거죠. 무엇보다 천마의 물건을 훔친 도둑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으니, 제가 천하제일의 신투(神偸)라는 걸 증명할 유일무이한 업적이 될 테니까요.”
“하!”
초악량이 어이없단 웃음을 흘렸다.
“원래부터 제정신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훨씬 더 미친놈이었군?”
세상에 어디 훔칠 게 없어서 천마의 물건에 손을 댄단 말인가?
이때 단악선이 차분한 모습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런데 그 귀한 물건을 어째서 제게 주신 거죠?”
“그야…….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에…….”
“아저씨.”
단악선이 궁색한 이유를 주워 담는 가두달의 말을 잘랐다.
“거짓말을 하시면 제가 보호해 드릴 수가 없어요.”
뒤늦게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들을 깨달은 가두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가두달이 황급히 대답했다.
“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아무 데나 버릴 수는 없고, 중원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여기 세 분 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두달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맡기고 갑자기 떠난 이유는요?”
“절 추적하는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도망간 겁니다.”
“그 추적자들은 필시 마교도였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가두달을 향해 단악선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천마의 물건인 섭선을 회수하기 위해 추적해 온 마교도를 피하기 위해 이걸 우리에게 맡기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네요?”
“시간이 지나면 놈들도 포기하고 돌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놈들에게 잡힌다 해도 섭선의 위치를 실토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저를 죽이지 못할 테고요. 여기까지 저를 쫓아온 것만 봐도 꽤나 귀중한 물건이라는 뜻이니까요.”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를 오해한 가두달이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니, 사지 멀쩡하게 살려 주십시오!”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가두달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당분간은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울상을 지은 가두달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런 가두달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일행을 둘러보며 무거운 눈빛을 흘렸다.
“본래 한 쌍이었던 천마의 섭선. 그중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유기진이 마교와 연관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요.”
말을 마친 단악선이 근처의 약재 창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다들 들으셨죠?”
창고에 갇혀 있던 흑점의 지부장들의 얼굴이 당혹감과 공포로 얼룩졌다.
어쩌면 흑점주일 수도 있는 유기진이 마교와 관련이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사색이 되기엔 충분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아시리라 믿어요.”
“…….”
“머잖아 중원 전체의 칼이 흑점을 가리킬 거예요. 마교의 주구로 전락한 흑점을 도려내기 위해서요.”
서로 복잡한 눈빛을 주고받기를 잠시.
지부장들 사이에서 엽단영이 일어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마교도가 아님을 증명하셔야죠. 하지만 서둘러야 할 거예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엽단영이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부장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이내 끝까지 숨겨 왔던 비밀들을 남김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원하던 정보들을 취합한 단악선은 다시 한 번 일행과 회의를 진행했다.
“모두 그자의 짓이었어요.”
능소밀이 침음성을 흘렸다.
“화전민 마을의 대규모 실종을 직접 실행한 자들이 흑점이었다니…….”
거기에 현 개방 방주, 홍적문이 언젠가 언급했던 조건과도 일치했다.
정보를 조작하고 은폐하기 위해 중원의 정보 조직 중 어느 한 곳이 깊이 관여했을 거란 그의 예상이 정확히 적중한 것이다.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등하불명(燈下不明).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간과한 셈이군.”
협력 관계를 지속하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의심을 배제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지금 문자 쓰며 여유 부릴 때요?”
툴툴대는 범계위와 그런 범계위를 노려보는 초악량을 만류하며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문제는 흑점의 지부장을 포함한 흑점에 소속된 자들이 스스로 마교의 명령을 수행했다는 걸 모른다는 점이에요.”
상급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조직의 단점이었다.
오직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중간에 상급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하부 조직원은 이를 알아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유기진은 마공을 사용하지도 않았죠. 누구라도 눈치채기 어려웠을 거예요.”
능소밀이 그 말을 받았다.
“개중의 일부는 수상한 정황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다만 이미 발을 빼기 늦었기에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요.”
개방과 녹림 사이에 직접적인 갈등 원인이 된 화전민의 실종.
그리고 지부장들의 자백을 통해 중원에 뿌려진 불완전한 마공 비급에도 흑점이 직접 관여했단 게 밝혀졌다.
이 모든 흑점의 행보 이면에는 결국 마교가 도사리고 있었다.
단순히 손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단 의원, 이럴 게 아니라 백사회부터 족쳐야 하지 않겠어? 지체하면 꼬리를 자르고 잠적할 텐데.”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회와 흑점이 관련되어 있다는 걸 밝혀낸 건 정말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었다.
녹림총회 이후 설 자리를 잃고 녹림에서 축출된 와호채의 채주, 전굉.
그와 관련한 흑점 지부장들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악호군에게 앵속 재배를 부추긴 자는 다름 아닌 전굉이었다.
그런 그와 백사회주와 사이를 오가며 연락을 담당한 곳이 흑점이었던 것이다.
앵속분을 이용해 중원을 흔들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
마교밖에 없었다.
백사회의 행사에 흑점이 깊게 관여한 정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회주를 갈아 치우고 새롭게 회주로 등극한 원지극.
그 과정에서 흑점이 정보를 제공했고, 다수의 살수를 동원해 암암리에 원지극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지부장 중 한 명이 실토한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도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이상 우리가 움직이면 눈치채고 곧바로 숨어 버릴 거예요.”
“달리 방법이 있느냐?”
한설화의 물음에 고심하기를 잠시.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단악선이 일행을 둘러봤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요. 비단 마교는 우리만의 적이 아니잖아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한설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초악량과 범계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 * *
풀벌레 소리도 그친 야심한 시각.
자신의 처소에서 심란한 표정으로 연거푸 술을 들이켜던 원지극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주변을 에워싼 짙은 밤안개를 뚫고 자신을 찾아온 누군가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 떨어진 어둠 속에서 눈빛만 드러내고 있는 복면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이처럼 가까이 접근해 온 상대였지만 원지극은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교에서 무슨 볼일이지?”
“…….”
원지극의 물음에도 복면인은 침묵했다.
대답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복면인이 천천히 물러나 그대로 다시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원지극이 복면인이 서 있던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턱.
격공섭물을 이용해 바닥에 놓여 있던 물건을 회수한 원지극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흥!”
그것이 손가락 크기의 작은 원통이라는 걸 깨달은 원지극의 얼굴 위로 못마땅한 기색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내 원통을 열어 그 안에 말려 있던 작은 종이를 꺼냈다.
마교의 고위 인사끼리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특수한 방법으로 처리해서 일정 조건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감응지였다.
언젠가 들었던 방법대로 원지극이 손을 쓰자 텅 비어 있던 백지 위로 핏빛 글씨가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원지극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백사회를 포기하고 교로 복귀하라고?”
원지극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껏 힘들게 쌓아 올린 것을 버리고 다시 숨어 지내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듯 서한을 움켜쥔 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렇게 방 안을 가득 메웠던 살기가 걷히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솟구치는 노기를 겨우 다스린 원지극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교의 명령은 지엄한 법.
이미 명령이 내려온 이상 모른 척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원지극이 신형을 일으켜 처소를 나서자 그를 수행하는 수하들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선 원지극은 수하들을 대동한 채 본단 구석에 마련된 으슥한 장소를 찾았다.
삐걱.
몇 겹으로 덧댄 육중한 강철 문을 열자 경첩이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원지극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았다.
당장은 눈앞을 떠도는 짙은 독무 사이로 날뛰는 맹렬한 살의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지극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나다, 아우야.”
“크으……. 혀, 형?”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한 쌍의 안광.
도깨비불처럼 흔들리는 원무극의 눈을 마주 보며 원지극이 말했다.
“가자. 돌아갈 시간이다.”
“하, 하지만 나…… 적들 죽여야…….”
원지극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둠에 눈이 익자 손에 쥐고 있는 독 소금을 우적우적 씹으며 침을 질질 흘리는 원무극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올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은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원 없이 날뛸 수 있을 게야.”
그 말에 원무극이 부스스 신형을 일으키더니 말없이 원지극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선 원지극이 자신을 수행하는 수하 중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교인들을 모두 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