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3)
신마의선-393화(393/500)
신마의선 (393)
원지극의 수하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하면 백사회는……?”
“버린다.”
“복명.”
잠시 후.
원지극 뒤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시립했다.
백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교에서 파견한 정예들이었다.
“신마곡 놈들의 움직임은 어떠하냐?”
원지극의 물음에 수하들 중 한 명이 곧장 대답했다.
“계속 무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
“그랬다면 무위에 잠입해 있던 간자들로부터 바로 연통이 있었을 겁니다.”
“아쉽군.”
원지극이 쓴 입맛을 다셨다.
이 정도 전력을 지닌 채로 여기에서 그냥 돌아서야 한다는 미련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시가 우선.
교에서 내려온 명을 차마 거스를 순 없었다.
“이동한다.”
원지극이 수하들을 이끌고 백사회의 본단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저 멀리.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인영 하나가 자신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파르라니 깎은 이마 위로 선명한 여섯 개의 계인.
거기에 핏빛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붉은 가사.
무엇보다 상대는 한 손을 바로 세워 반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처럼 특이한 예법을 지닌 곳은 중원 무림을 통틀어 오직 한 곳뿐이었다.
이를 확인한 원지극의 눈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소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지극 일행을 막아선 승려가 반개하고 있던 눈을 떠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아미타불.”
나직하게 불호를 읊조린 승려가 조용히 웃었다.
“빈승 법료가 종재쌍흉 원씨 형제를 뵙소이다.”
“……!”
원지극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 알려진 천하오절.
당당히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림의 계율원주를 이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보다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이렇게 마주치기 전에는 상대의 기척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필설로도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실봉 자락에 처박혀 있어야 할 땡중이 어째서 이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지?”
원지극의 물음에 법료는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정녕 몰라서 묻느냐는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빈승만 독야청청 산사를 지키고 있기에는 차마 염치가 없어 이리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몰라 의아해하던 원지극은 이어진 법료의 말에 안색을 달리했다.
“이미 화산과 무당, 아미를 비롯한 정도의 협사들이 각 지역의 뿌리를 내린 귀회의 지회들로 향하고 있습니다.”
개방을 통해 각파로 전해진 단악선의 협조 요청에 구대문파가 기꺼이 산문을 나선 것이다.
“그런…….”
원지극이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쿵쿵.
육중한 거구를 이끌고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원무극이었다.
“적……. 죽인다!”
법료가 지닌 불문 특유의 기파가 거슬렸던 것일까.
광기 어린 눈빛을 줄기줄기 흘리는 원무극 주위로 끔직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안개가 흘러나와 일대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치익.
전신을 에워싼 채 짙은 안개로 화해 너울거리는 운무.
여기에 닿은 모든 것이 섬뜩한 연기와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소름 끼치는 광경에 원지극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그라도 눈앞에서 너울거리는 독장(毒瘴)을 경시할 수 는 없었던 것이다.
“큭!”
뒤쪽에 도열해 있던 마교의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
갑자기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러 오자 황급히 뒤로 물러서 각자 지니고 있던 해약을 삼켰다.
법료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독공(毒功)!”
그것도 단순히 독을 살포하는 하독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진기에 녹여 의지대로 독기를 다루는 경지에 이른 고절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의 독을 정상적인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야말로 육신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수준.
아니나 다를까.
광기와 살기로 점철된 원무극의 눈빛에서는 그 어디에도 온전한 이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주, 죽엇!”
법료를 향해 달려드는 원무극의 모습에 원지극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리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흉성이 발작한 이상 아무리 형인 그라 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등 뒤에 도열해 있는 한 명 한 명은 교 내에서도 추리고 추린 고수들.
아무리 상대가 천하오절이라 하더라도 거꾸러트리기엔 충분한 전력이었다.
“발을 뻗더라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지.”
동요하는 법료의 모습에 원지극이 의기양양한 눈빛을 흘렸다.
그러나 그런 엄포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법료의 모습에 원지극은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원무극이 법료를 향해 손을 뻗은 것과 그를 에워싼 채 너울거리던 독장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법료를 향해 짓쳐 든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콰앙!
“크악!”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폭음과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법료를 향해 달려들던 원무극이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왁!”
그리곤 갑자기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원무극이 토한 피에 닿은 흙바닥이 부글부글 끓으며 이내 새하얀 연기와 함께 녹아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크아아!”
괴성과 함께 원무극이 재차 법료를 향해 달려들었다.
선공을 했음에도 뼈아픈 일격을 허용한 것이 더욱 흉포함을 자극한 모양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쾅!
달려들던 그대로 턱을 강타한 충격에 원무극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았다.
휘청이며 신형을 바로잡은 원무극의 눈 위로 희미한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법료를 바라봤다.
온화하고 진중한 태도와 달리 저 중놈이 휘두르는 손속은 지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법료가 특이하게 그러쥔 수인을 발견한 원지극의 낯빛이 해쓱해졌다.
‘그러고 보니…….’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대기 일부가 뒤틀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격공장(隔空掌)……!”
뒤늦게 법료가 사용한 무공의 종류를 깨달은 원지극이 침음성을 흘렸다.
적에게 타격을 가할 때 기를 모아 위력을 배가시키는 것을 발경이라 한다.
회선장(回旋掌)과 전사경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다.
거기서 더욱 나아가 경력을 유지한 채 밀고 나아가 상대를 타격하는 것이 이른바 장풍, 혹은 권풍이라 불리는 수법이었다.
반면 격공장은 차원이 다른 무공이었다.
임의의 한 점에서 경력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돌연 눈앞에서 폭발하는 경력 앞에서는 손쓸 방법이 전무한 것이다.
이때 문득 원지극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소림의 칠십이종절예(七十二種絶藝).
그 가운데 이와 비슷한 무공이 있었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아니나 다를까.
법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주의 안목은 실로 대단하구려.”
원지극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수많은 호사가들이 괜히 그를 보장경(步藏經), 걸어 다니는 무공서라 하는 게 아니었다.
일신에 지닌 수많은 절예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실전된 무공을 복원할 경지에 이르러 있을 줄이야.
하지만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흥! 그 허명이 얼마나 부질없는 미망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마.”
그 말과 함께 원지극이 신형을 날려 원무극과 합류했다.
당장은 독기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또한 오랜 시간 원무극과 가까이 지냈던 만큼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잠깐이라면 버틸 수 있을 터.
그의 소매에서 긴 채찍이 풀려 나왔다.
지금의 그를 고수의 반열로 끌어올려 준 그만의 독문병기인 교룡편(蛟龍鞭)이었다.
쾌애액!
순식간에 사위를 가득 메운 어지러운 편영이 쏟아지는 비처럼 법료를 두들겼다.
원무극도 때를 같이해 재차 법료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원지극은 돌연 가슴 부근이 뻐근해지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황급히 채찍을 회수해 전면을 방비했지만 이미 그의 신형은 거대한 철퇴에 맞은 것처럼 훌훌 날아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예의 그 백보신권이었다.
실제로 그 역시 당하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어떤 기세도.
심지어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당하고 나서야 그 위력을 뼈아프게 절감할 뿐이었다.
시전하는 순간 이미 상대를 타격하는 절정의 무학.
고수들의 겨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격과 호흡이다.
거기서 우위를 점하는 순간 승부는 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신공절학 앞에서는 그조차도 의미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도 모르는 공격을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인정하긴 싫지만…….’
법료는 고수였다.
그것도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그나마 그가 어떻게든 버티는 건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호신강기 덕분이었다.
‘놈도 언젠간 한계에 달할 터!’
제아무리 천하오절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피와 살을 지닌 인간.
백보신권 같은 상승무공을 연거푸 사용하다 보면 분명 내공이 달리는 때가 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법료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표홀한 신법에 원무극의 독장은 헛되이 법료가 서 있던 곳을 두드릴 뿐이었다.
“지금이다!”
원지극의 외침에 마교의 고수들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렸다.
완벽하게 전열을 갖춘 일사불란한 움직임.
거기에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가 더해지니 마치 거대한 철벽을 연상시켰다.
그 순간 원지극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이 상황에도 태연하기 그지없는 법료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의 정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미타불!”
쩌렁한 불호와 함께 다수의 인원이 장내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그 숫자를 헤아리던 원지극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곳에 온 사람은 비단 법료만이 아니었다.
나한당주 료공을 필두로 교의 고수들을 향해 마주 쇄도하는 중들.
바로 소림의 정예, 십팔나한이었다.
원지극이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 이 자리엔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겠군.”
콰콰콰쾅!
“크아악!”
“커헉!”
연이어 들려오는 폭음과 비명 소리.
원지극으로서는 믿기 싫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의 고수들.
철벽을 방불케 할 만큼 견고하던 그들의 전열이 나한들과 부딪치기 무섭게 젖은 문풍지처럼 맥없이 푹푹 뚫리고 있었다.
꽝!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기운 없이 널브러지는 원무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그 직후였다.
“아우야!”
원지극이 부르짖었지만 원무극은 이미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울컥거리며 피를 게워 내던 것도 잠시.
단말마의 경련을 마지막으로 힘없이 축 늘어진 것이다.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즉사였다.
“이노옴!”
분노한 원지극이 법료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선장을 휘둘러 원무극의 가슴을 송두리째 짓이겨 버린 법료 역시 원지극을 향해 마주 손을 뻗었다.
그러곤 눈앞을 가득 메운 어지러운 편영 속으로 불쑥 손을 밀어 넣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원지극은 여유가 있었다.
비록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몸을 빼 달아날 수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지 깨닫게 되었다.
콰득.
법료가 자신의 채찍을 움켜쥐어 버린 것이다.
뒤이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법료가 손날을 내리그었다.
우드득.
“……!”
순식간에 자신의 어깨를 부수며 파고드는 수도.
그토록 자신하던 자신의 호신강기가 두부처럼 무너져 내리는 순간 원지극은 법료의 손에 맺혀 있는 금빛 서광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 대단한 초악량조차 고전을 면치 못했던, 호신강기의 천적인 사자모니인(獅子牟尼印).
거기에 불광멸겁뢰(佛光滅劫雷)의 묘리를 녹여 낸 한 수였다.
‘괴물…….’
실로 모골이 송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순간에도 원지극은 천하오절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또 절망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