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6)
신마의선-396화(396/500)
신마의선 (396)
금의위가 사례태감을 포박하여 끌고 나가자 윤흠이 한설화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지극히 경건한 윤흠의 태도에도 한설화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별실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럽게 뒤얽혀 싸우는 단악선과 유기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단악선인 시종일관 유기진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꽈앙!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 분명한 장력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장내를 집어삼킨 거대한 충격파와 비산하는 흙먼지.
그 사이를 뚫고 유기진의 신형이 깊은 고랑을 새기며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 단악선은 가볍게 한 걸음 물러섰을 뿐이다.
“허헉.”
가쁜 숨을 몰아쉬던 유기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대의 손에 들려 있던 시커먼 묵봉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깨달았을 때는 지면과 바짝 붙어 날아온 묵봉이 그의 발목을 으스러트린 뒤였다.
빠악.
“……!”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을 뒤로한 채 유기진이 그대로 몸을 굴렸다.
방금 그가 서 있던 자리 위로 소름 끼치는 위력을 담은 묵봉이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거리를 좁힌 단악선이 묵룡을 회수해 벼락같이 휘두른 것이다.
이미 발목을 앗아 가고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방향을 틀어 재차 날아드는 묵빛 섬광을 발견한 유기진의 눈 위로 깊은 절망이 뒤덮였다.
콰직.
늑골을 으스러트리며 파고드는 충격과 함께 유기진의 신형이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쿨럭!”
연신 피 기침을 토하던 유기진이 그대로 길게 뻗어 버렸다.
단악선이 이상함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유기진의 숨이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에게 캐내야 할 정보들이 있었기에 일부러 손속에 약간의 여유를 둔 단악선이었다.
방금 전 일격도 마찬가지.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지 치명상을 가한 건 아니었다.
“아!”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단악선이 황급히 유기진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유기진의 얼굴은 이미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독!’
단악선이 서둘러 유기진의 맥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얼굴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당황한 단악선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던지 유기진이 히죽 웃었다.
그러곤 이내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다 축 늘어졌다.
절명한 유기진의 몸을 살피던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유기진의 턱 안쪽.
어금니 근처에서 일그러진 독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결할 생각이었다고?’
눈앞의 정황으로 미루어 그는 자신과 마주친 순간 이미 독단을 깨문 것이 분명했다.
자신과 싸운 것도 독이 퍼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한 사람이 장내로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그는 곧장 단악선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입을 열지 않았을 자입니다.”
한숨을 흘리는 단악선을 향해 윤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사례태감은 북진무사의 조옥으로 옮겼습니다. 그를 심문하면 필요한 걸 알아낼 수 있을 테니 이제 제게 맡기시지요. 저희가 얻은 정보들은 반드시 공유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단악선이 죽은 유기진을 향해 복잡한 눈빛을 던졌다.
그날 밤 단악선은 황제와 대면했다.
“사례태감과 마교가 내통했다니……. 그와 관해 아는 바를 고하라.”
누구보다 믿고 총애하여 늘 곁에 두던 신하였던 만큼 황제의 충격은 매우 큰 것 같았다.
그런 황제에게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주청했다.
“폐하, 신하들을 물려 주실 수 있나요? 폐하께만 간언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 말에 대번 어림친위와 근신 환관들이 즉시 반발했다.
“폐하, 아니 될 말이옵니다.”
“이는 결코 윤허하실 사안이 아니옵니다.”
황제의 호위를 담당하는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례태감을 추포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단악선의 신위 때문이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를 황제와 단둘이 남겨 놓을 수는 없는 일.
물론 단악선도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었다.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황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짐의 신하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로구나?”
그 말에 문무백관들의 얼굴이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하지만 황제는 신하들의 감정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필묵을 가져오라.”
황제의 지시에 따라 환관들이 가지고 온 지필묵을 단악선 앞에 내려놓았다.
“이 자리에서 상신을 올리도록. 오직 나만이 내용을 확인할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장문의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단악선이 붓을 내려놓자 새로운 근신 환관으로 내정된 환관 한 명이 단악선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단악선이 적어 놓은 상신안을 가져가 황제에게 올렸다.
황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건…… 소학의 글귀 아니더냐?”
송나라 시절 유자징이 지은 수양서.
한데 어딘가 이상했다.
내용도 뒤죽박죽이었고 간간이 틀린 글자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뚫어져라 상신안을 들여다보았다.
단악선의 영특함은 이미 충분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분명 무언가 의도가 담겨 있을 터.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오기(誤記)된 글자를 거꾸로 되짚어 읽으시면 됩니다.”
황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모래 속에 바늘을 숨긴 것인가?”
탄성을 흘린 황제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의 눈이 반짝인 것도 그때였다.
이 순간 유독 흔들리는 한 사람의 눈빛을 확인한 것이다.
이 넓은 정전 안에서 오직 그 한 명만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황제가 상신안을 접더니 직접 걸음을 옮겨 정전을 밝히고 있는 대황촉을 향해 다가섰다.
화르륵.
친히 문서를 태워 버린 황제가 빙긋 웃으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사례태감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라. 짐이 직접 그를 친국(親鞠)하겠노라.”
뜻밖의 말에 문무백관들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지엄한 황제의 명에 감히 반대할 만큼 담이 큰 자는 없었다.
잠시 후.
온몸이 결박된 사례태감이 정전으로 끌려왔다.
북진무사의 조옥에 갇혀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상당한 고초를 치른 듯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던지던 황제였지만 이내 추상같은 음성으로 국문을 시작했다.
“내 너를 귀히 여기고 매우 아꼈거늘, 어찌 역적인 도당의 무리와 결탁해 짐을 능멸하고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힌단 말이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례태감이 천천히 눈을 들어 황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감히 고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부디 빈직의 억울함을 헤아려 주소서.”
흔들림 없이 꿋꿋한 그의 눈빛에 황제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사례태감을 고발한 자는 앞으로 나서라.”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을 주도한 윤흠의 부친이자, 사례태감의 뒤를 이어 황제의 새로운 근신환관으로 내정된 윤봉이었다.
윤봉은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사례태감의 혐의가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저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렷다?”
이어진 황제의 물음에 사례태감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들이 오롯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이는 전부 모함. 빈직은 그저 억울할 뿐이옵니다.”
“그렇다면 유기진이라는 자는 왜 만난 것이냐?”
사례태감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고발한 윤봉을 노려봤다.
“빈직은 오래전부터 윤봉과 흑점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었나이다. 나아가 흑점과 협력하는 무위에 또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나이다.”
단악선은 그 말에 황제와 함께 무위를 방문했을 당시 근시 환관인 사례태감이 던졌던 석연치 않은 눈빛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기진이라는 자는 저기 서 있는 윤봉 부자와 자신 사이의 관계를 자백하겠다 하였나이다. 그래서 만나러 간 것입니다. 기실 빈직은 그자를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윤봉이 코웃음을 쳤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무슨 말을 못 할까. 고작 그따위 치졸한 변명으로는 폐하의 진노를 비껴가지 못할 것이다.”
한순간 사례태감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뚝뚝 떨어졌다.
“죽음은 두렵지 않사오나 빈직이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남은 힘을 쥐어짜 외치듯 사례태감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빈직은 죽음으로 폐하를 향한 충정을 증명하겠사오니, 부디 제 뒤를 이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자만큼은 경계하소서!”
“어째서냐?”
황제의 물음에 사례태감이 대답했다.
“빈직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이기에 그렇사옵니다.”
“그대를 발고한 저자를 오히려 이 자리에서 발고하는 것이냐?”
황제가 고개를 돌려 단악선을 바라보았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가 슬쩍 웃었다.
황제의 쩌렁한 목소리가 정전 안을 울린 것도 그때였다.
“사례태감과 윤봉은 짐 앞에 나란히 서도록. 그대들이 서로를 발고한 이상 진실을 가리는 건 짐의 몫이겠지. 다행히 짐에게는 그 진실을 가릴 방법이 있노라.”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윤봉이 놀란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윤봉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단악선이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황제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유기진 그자는 매우 신중한 자였어요. 심지어 흑점에 몸담고 있는 지부장들조차 그의 진정한 내력을 알지 못할 정도로요. 심지어 무위에 머무는 동안에도 완벽하게 우리를 속였죠. 게다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철두철미한 자였어요.”
거기까지 설명한 단악선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 이곳 북경에서 무림인도 아닌 일반인에게 정체가 드러났어요.”
정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갑자기 허술해진 그의 행적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자가 무위에서 도주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어요. 그런데 이곳에 계속 머물렀다는 게 이상해요. 그리고 제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례태감을 만난 것도요.”
단악선이 결론을 내렸다.
“제가 판단한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였죠.”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왕왕 실수를 하기 마련이오. 특히나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나서 혼란스러웠을 터.”
단악선이 윤봉의 말을 잘랐다.
“과연 그럴까요?”
단악선은 죽기 직전 유기진이 흘리던 웃음을 언급했다.
죽음을 앞둔 자의 눈빛만큼은 그 여느 때보다 솔직한 법.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해 왔던 단악선이었기에 그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 확인을 해 봤어요.”
윤봉을 향해 다가선 단악선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마교의 고위 인사들이 연락을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감응지가 들어 있는 원통 모양의 보관함이었다.
단악선이 윤봉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북진무사의 조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례태감에게 은밀하게 이것을 전달했어요.”
단악선은 직접 감응지 위에 물로 글씨를 쓴 뒤 글자가 나타나도록 시연했다.
―자시에 교대하는 조옥의 위사에게 현 위치를 전달할 것.
선명하게 나타난 글자에 좌중이 술렁였다.
그런 소요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례태감은 이걸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빈 종이만 봤기 때문에 자시에 교대해 투입된 조옥의 관리에게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죠.”
감응지의 용도를 설명한 단악선이 이번에는 다른 한 사람을 언급했다.
“반면 감응지에 적힌 지시를 충실히 따른 사람도 있었죠.”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윤봉이 흠칫했다.
“설마?”
윤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정 시각과 장소를 적어 둔 감응지를 누군가의 책상에 몰래 올려 두었죠. 그리고 그 시각에 그자는 그곳에 정확히 모습을 드러냈고요.”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전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설화였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는 마혈이 짚혀 있는 누군가가 끌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