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7)
신마의선-397화(397/500)
신마의선 (397)
“……!”
윤봉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설화에 의해 끌려온 사람은 자신의 양자인 윤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런 거짓을 입에 담느냐!”
단악선을 향해 호통친 윤봉이 황제를 향해 부복했다.
“폐하! 이자는 저 간교한 무리와 필시 한통속이옵니다! 감히 감언이설로 폐하의 혜안을 흐리는 저 반역자 무리를 일벌백계로 다스리소서!”
이에 황제가 단악선을 향해 말했다.
“분명 짐에게 진실을 밝혀낼 방법이 있다 했으렷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결백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단악선은 곧장 사례태감을 향해 다가섰다.
그의 손목을 잡고 진맥하길 잠시.
단악선이 빙긋 웃으며 윤봉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공공을 진맥해 봐도 될까요?”
“……!”
윤봉이 움찔했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저 마공을 익혔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뿐이에요. 방금 이분 공공의 맥을 짚은 것처럼요.”
윤봉이 파리해진 안색으로 단악선을 노려봤다.
그러기를 잠시.
“네놈이!”
벼락같은 일갈과 함께 윤봉이 단악선을 향해 일 장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단악선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재빨리 비켜서 장력을 피한 단악선이 그대로 윤봉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이에 윤봉이 그대로 신형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이미 그의 눈앞에는 어느새 한설화가 서 있었다.
쩌적.
한설화가 소매를 휘두르자 윤봉의 전신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냉기가 그대로 마혈에 스며 얼음처럼 굳어 버린 것이다.
“폐하. 이 자리에서 윤봉이 작성했던 서류들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환관들이 서둘러 한 다발의 서류를 가지고 달려왔다.
단악선은 품속에서 백사회주가 지니고 있던 감응지를 꺼냈다.
그리고 과거 초원에서 자신을 암습했던 흑야벌 살수들의 우두머리가 지니고 있던 감응지도 꺼냈다.
그 두 장의 감응지와 윤봉이 작성했던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길 잠시.
필적 대조를 마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마교의 수보였군요.”
필적이 정확히 일치하는 이상 잡아뗄 방법이 전무했다.
단악선이 윤봉과 윤흠 부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우리는 꽤 긴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네요. 당신들에게 듣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거든요.”
* * *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조옥.
흔들리는 유등 불빛을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가 음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단악선은 이미 동창의 심문에 만신창이가 된 윤봉을 마주했다.
천하의 단악선도 그의 의지와 독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교의 군사 정도나 되는 사람이 황실에 잠입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를 하고 환관이 되었다니.
그래서 더욱 그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황실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애초부터 무림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윤봉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들에게 수보의 역할을 맡겼더군요.”
이미 단악선은 윤흠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은 뒤였다.
생각보다 윤흠은 대가 세지 못했다.
동창 내에서 심문을 전담하는 기술자들이 솜씨를 발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 콧물 쏟아 내며 제발 죽여 달라 애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악선의 말에 윤봉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 순간에 대업을 망친 어리석은 놈 말이냐?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놈이다. 놈을 이용해 나를 흔들 생각이라면 어림도 없다.”
항상 황실에 머물러야 했던 윤봉은 대외적으로 그를 대신해 움직일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양자인 윤흠에게 수보의 이름을 맡겨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다.
“그건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요.”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며 자신을 노려보는 윤봉을 향해 단악선이 질문을 이어 갔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번거롭고 복잡한 음모를 꾸민 거죠? 당신 정도라면 얼마든지 폐하를 암살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황제 곁을 허락받은 근신 환관으로 내정되었던 만큼 그는 사례감 내에서도 지위가 결코 낮지 않았다.
게다가 그 정도 무공을 지니고 있는 이상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황제를 암살하는 것이 가능했다.
중원을 흔들고 혼란을 획책해 왔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것이 단악선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윤봉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 시도를 해 보지 않았을 것 같더냐?”
“……?”
“황제의 암살 정도야 일도 아니지. 이미 성공했던 적도 있었고.”
“설마?”
윤봉이 피 칠갑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전 황제의 죽음은 계획된 것이었군요.”
어쩐지 황제 정도나 되는 사람이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단악선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윤봉은 의외로 선선히 털어놓았다.
“효과가 없었으니까.”
그들이 의도했던 바와 달리 정치적 혼란은 야기되지 않았다.
황실의 핏줄들이 제위를 놓고 다투기도 전에 이미 발 빠르게 움직여 승계 작업을 마친 지금의 사례태감 때문이었다.
그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철저하고 신속하게 황위 승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단악선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황위에 등극하기 전에 황태후 모자를 노렸던 것도 당신이었군요.”
이마저도 실패하자 방법을 달리했을 터.
사례태감의 실각을 노리고 절치부심 기회만을 기다려 온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황제의 교지를 직접 다루는 사례태감의 자리만 손에 넣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형태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흐…….”
윤봉이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단악선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시답지 않은 질문 말고 다른 걸 물어봐라. 네가 알고 싶은 이야기는 정작 다른 것 아니야? 이를테면…….”
묘하게 말끝을 흐리던 윤봉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네 부모의 죽음과 같은 것 말이다.”
“……!”
단악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에 자신의 도발이 주효했다 여긴 윤봉이 키득대며 말을 덧붙였다.
“중원 천하 그 어디를 뒤져도 네 부모의 유해는 찾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온몸이 난도질당해 온전한 형태조차 남기지 못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산짐승들의 배 속으로 사라졌지.”
비틀린 웃음으로 단악선을 조롱하던 윤봉이 입을 다문 것도 그때였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단악선의 눈빛.
그리고 그런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묵빛 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윤봉의 눈 위로 결연한 각오가 일렁였다.
“만마봉공(萬魔捧恭), 앙세천하(仰勢天下)!”
쩌렁한 목소리로 외친 윤봉이 단악선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이미 나의 쓰임은 다했노라! 머지않아 재래(再來)할 공포와 절망 앞에 피와 눈물로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리라! 이 어리석은 중원의 머저리들…….”
윤봉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푹.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대침이 그의 정수리 부근 백회혈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떨며 경련하길 잠시.
독기가 줄줄 흐르던 윤봉의 눈에서 이내 초점이 사라지며 흐릿하게 변했다.
단악선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윤봉의 눈앞에 펼쳤다.
가두달과 유기진이 각자 지니고 있던 섭선이었다.
“이 그림은 지도인가요?”
윤봉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악선이 질문을 이어 갔다.
“이 지도가 가리키는 곳이 어디죠?”
“……신지(神地).”
처음 듣는 단어에 단악선이 되물었다.
“신지가 뭐죠?”
“본 교의 신비가 존재하는……. 천마께서 눈을 뜨는 곳…….”
“그토록 중요한 물건을 어째서 유기진이 지니고 있었죠?”
“그의 임무는 섭선의 회수……. 그리고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더듬더듬 이어진 윤봉의 설명에 단악선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마교의 추적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가두달은 계책 하나를 세웠다.
바로 가짜 그림이 그려진 섭선을 대량으로 강호에 뿌려 댔던 것이다.
그 때문에 유기진은 흑점을 동원해 닥치는 대로 이를 회수했고, 그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별수 없이 나머지 섭선을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제대로 마교를 골탕 먹인 셈이었다.
게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무림의 평화에 일조한 셈이기도 했다.
그만큼 저들의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윤봉이 돌연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어 대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하얀 거품을 물기 시작했고, 두 눈은 뒤집어져 흰자위만 보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이 황급히 핵심 질문을 던졌다.
“마교가 다시 준동하는 때는 언제죠?”
“늦어도 다음 해를 넘기지는 않을 것……. 이미 준비는 모두 끝났다.”
“마교의 전력은 어느 정도죠?”
“일천의 정예 마인……. 백 명으로 구성된 철혼유마군 여섯 개 조와 육마존…….”
단악선은 더욱 자세히 캐물었고, 그때마다 윤봉은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았다.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정작 마교의 전력 중 가장 중요한 존재 하나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련산에서 다친 천마는 부상에서 벗어났나요?”
지금까지 순순히 대답했던 것과 달리 윤봉이 한순간 멈칫했다.
“대답해요. 천마는 완전히 회복한 건가요?”
단악선이 재차 다그치자 윤봉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대 천마께서는…….”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전대? 그렇다는 건?’
아니나 다를까.
“……돌아가셨다.”
“……!”
이어진 윤봉의 대답에 단악선은 놀라 일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어떻게 죽었죠?”
“신의와 마의……. 그 두 사람에 의해…….”
단악선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진실을 마주하게 되니 새삼 슬픔이 북받쳤던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대의 천마는 누구죠? 그의 무공 수준은요?”
“……모른다. 직접 뵌 적이 없으니까.”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윤봉이 히죽 웃었다.
“하지만 당대의 천마께서는 본 교의 역사 자체를 새로 쓰실 분이라 들었다.”
어눌하던 윤봉의 목소리가 갑자기 뚜렷해졌다.
이에 단악선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것이 마지막 끝자락에 남은 생명을 불사르는 회광반조의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단악선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신의와 마의는…….”
단악선이 말끝을 흐리며 피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질문을 바꾸었다.
“마교의 침공 계획에 대해 말해요.”
“우리는…….”
윤봉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전부 남김없이 실토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동안 단악선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 * *
다음 날 단악선은 황실의 후원인 도화원에서 다시 한 번 황제를 알현했다.
“이번에도 원하는 것이 없다 하면 짐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야.”
“예?”
황제의 엄포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단악선은 이어진 황제의 웃음에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당금 천하에 이토록 짐을 염치없는 자로 만드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짐이 너에게 큰 빚을 졌음이야.”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한결같은 대답이로구나.”
문득 황제는 단악선의 분위기가 하루 만에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짐의 힘이 필요하다면 말하라.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니.”
그렇게 황제와의 알현을 마친 단악선이 도화원을 나설 무렵.
한 사람이 조용히 단악선에게 다가왔다.
혐의를 벗고 다시 사례태감의 자리에 복직한 노환관이었다.
“받으시게.”
그가 무언가를 단악선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