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8)
신마의선-398화(398/500)
신마의선 (398)
한 쌍의 해와 달.
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구름 문양이 새겨진 금패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흠차경락(欽差經略)으로 시작해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 끝나는 스물두 개의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각 지방에 파견되어 있는 동창의 제기를 비롯해 위소의 병력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신패일세. 이미 폐하께도 재가를 얻었으니 언제든지 필요할 때 쓰시게.”
단악선의 기지로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한 만큼 사례태감은 이전처럼 적대적이거나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목소리로 호의 어린 눈빛을 건네 왔다.
신패의 정체를 알게 된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본직도 고대하지.”
그렇게 동창의 전폭적인 협조를 약조한 사례태감은 내성의 남문인 승천문(承天門)까지 친히 나와 단악선을 배웅했다.
북경을 벗어나 무위로 돌아오는 내내 단악선은 말이 없었다.
오랜 시간 추적해 온 수보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들이 꾸미던 음모를 사전에 차단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윤봉과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범계위였다면 그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했을 테지만 한설화는 달리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단악선과 함께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이 걸음을 멈추었다.
“남궁가주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아요.”
뜬금없이 남궁호를 언급하는 단악선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설화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단악선이 분노 어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전 마교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전 그 어떤 것이라도 감수할 거예요.”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뼛속 깊이 사무친 원한이 느껴졌다.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넌 남궁호와 다르다.”
자신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와는 다르게 넌 혼자가 아니니까.”
한설화가 말을 이어 갔다.
“네 곁에는 내가 있다. 믿음은 안 가지만 무공만큼은 쓸 만한 두 사고뭉치도 있지. 널 위해 맞지도 않는 관복을 억지로 입고 있는 능가 녀석도 있고, 새로 얻은 삶은 온전히 너를 위해 바치는 사 총관도 있지 않으냐? 네 말이라면 기꺼이 웃으며 불 속에라도 뛰어들 무위 사람들도 마찬가지. 잊지 마라. 너는 홀로 그 길을 갈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함께하며 가장 많은 말을 한 한설화였다.
단악선은 문득 혼자 지내 왔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몰랐지만 분명 외로웠던 시절.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힘을 보태 주고 있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비록 고되고 힘들더라도 그들과 함께 하는 이상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터.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한설화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미소로 대답했다.
오직 단악선만이 볼 수 있는, 더없이 아름답고 화사한 미소였다.
* * *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은 수많은 고도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한때 장안(長安)이라 불렸던 이곳은 관중 지역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得天下)는 고사가 있을 만큼 중원 역사에서도 핵심적인 지역이었다.
도시와 평원을 진령산맥이 원형의 성벽처럼 에워싸고 있는 데다, 서쪽과 북쪽에 흐르는 세 줄기 강으로 인해 비옥한 평야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 이 지역을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워낙 지세가 뛰어났기에 명을 건국한 홍무제 역시 한때 이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려 검토할 정도였다.
세 번째 황제인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기 전까지 서안은 새로운 수도로 계속 물망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금의 서안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바로 정도를 떠받치는 기둥인 구파일방.
그중 화산파와 종남파가 서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종남파는 진령산맥의 지류인 종남산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화산파는 화음현에 위치해 있었지만, 서안 자체가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어서 이 지역에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만큼 두 문파가 이곳 서안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쾌(快)와 환(幻)을 중심으로 한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 대표적인 화산파.
그와 달리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처럼 진중하고 묵직한 중검(重劍)의 묘리를 지닌 종남파는 때론 경쟁하고 때론 힘을 합치며 발전을 도모해 왔다.
서안의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인 유려한 노을.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위에 내려앉는 장엄한 석양은 한적한 산자락에 위치한 장원도 아름답게 채색했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종남파.
그 종남파의 속가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품과 실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검객, 종남정검(終南正劍) 하운백이 장주로 있는 곳이었다.
그런 창연장으로 속속 집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호의 인사들에 대해 약간의 안목이 있는 자들이 보았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정도로, 하나같이 정도 문파의 핵심적인 명숙들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개방의 방주 홍적문이 환한 웃음과 함께 명숙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장 스님. 해남도에서 뵙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소림의 사대금강을 이끌고 장원을 방문한 법연이 소림 특유의 반장으로 답례했다.
범계위의 혼례식 날 소림에서는 방장의 사숙인 혜공선사와 계율원주인 법료만이 참석했던 것이다.
“아미타불. 쾌수여의께서는 더욱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하하, 술을 끊었거든요.”
“저런? 어찌하여?”
“어째 파리가 똥을 끊는다는 소릴 들으셨단 표정이십니다?”
법연의 반문을 농담으로 받아친 홍적문이 쓸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좋은 미주(美酒)도 친우와 함께 나누던 박주(朴酒)만 못하더군요.”
홍적문의 마음을 이해한 법연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웠다.
그런 그를 향해 홍적문이 너스레를 떨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모처럼의 회합이라 그런지 종남파가 제대로 마음먹고 곳간을 열었나 봅니다.”
법연이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홍적문은 이후로도 계속 귀빈들을 맞이했다.
매화검수들을 대동하고 도착한 화산파의 장문인, 화산신검 진명진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랜만에 외유에 나선 곤륜파의 장문인인 광진도장.
무당의 장문인인 단금진인과 종남파 장문인인 유현진인도 장원을 방문했다.
“허허, 이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곳의 주인이 바뀌었는지 모르겠구려?”
유현진인이 홍적문을 향해 슬며시 농을 건네 왔다.
이곳은 엄연히 종남의 속가 제자인 종남정검 허운백의 장원.
한데 마치 제집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는 홍적문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평소 그의 서글서글한 성품을 아는지라 홍적문도 농담으로 받아쳤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본 방 소속으로 적을 바꾸도록 허 장주를 꼬셔도 되겠습니까?”
“예끼, 이 사람. 멀쩡히 일가를 이뤄 잘 사는 사람을 거지로 끌어내리려 하다니. 양심이 있는 사람인가?”
“하하, 들어가십시오. 이미 도착하신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종남파의 장문인이 웃으며 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아미파의 장교인 정연신니와 점창파의 장문인인 사일검정 낙영음이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와 근황을 물은 뒤 정연신니는 곧장 장원 안으로 향했다.
낙영음 역시 마찬가지.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의례적인 인사만 나눈 뒤 이내 안으로 사라졌다.
반면 낙영음과 함께 방문한 점창파의 원로, 창염도객(昌髥刀客) 사공명은 홍적문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창을 상징하는 사일검(射日劍) 낙일도(落日刀).
그중 낙일도를 대성해 도법으로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칼의 고수가 바로 그였다.
무엇보다 전대 방주인 이립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래서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서로 많았다.
잠시 후 공동파의 장문인인 형진 도장과 도사들이, 마지막으로 쇠락한 청성파를 대신해 구대문파의 한자리를 갈아 치운 형산의 장문인인 진조운이 장원을 찾았다.
그렇게 당금 중원 무림을 움직이는 각파의 수장들이 내부에 마련된 회의실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사부님.”
종남파의 장문인인 유현진인이 건넨 농담에 저만치 떨어져 앉아 있던 무당파의 장문인, 단금진인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공교롭게도 유현진인의 사부인 종남파의 태상호법 역시 도호가 단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위한 덕담과 축원을 주고받던 것도 잠시.
문을 열고 회의장 안으로 누군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다들 모여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악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명숙들의 시선은 단악선의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까지.
하나같이 정파 입장에서 껄끄러운 관계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방과 곤륜은 예외였다.
화산파의 진명진인도 한설화를 향해 슬며시 눈인사를 건넸다.
하나 대부분의 명숙들은 불편한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반대로 신마삼존 역시 정파의 명숙들이 달가울 리 없었다.
단악선이 몇 번이고 당부해 툴툴대지 않았지만 초악량과 범계위의 얼굴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자리에 청성파가 없다는 점이었다.
초악량과의 은원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청성파는 최근 크게 세를 확장한 형산파에 밀려 구파일방의 자리를 내어 준 상태였다.
운 자 배 중 항렬이 가장 높은 운정진인이 새로운 장문인에 취임해 어떻게든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고군분투 중이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과거 청성칠자가 저질렀던 과오가 계속해서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어색한 자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회의실을 둘러보던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운을 뗐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러분을 뵙자고 한 것은 꼭 전해 드릴 정보가 있어서예요.”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단악선에게 모였다.
단악선은 그동안 모은 마교의 자료와 수보를 통해 입수한 정보들을 모두 앞에서 공개했다.
무림의 명숙답게 어느 누구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 위로 번져 가는 동요는 감출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단악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
“으음…….”
“허!”
몇몇 이들을 침음성을 흘리고, 또 몇몇 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마……. 온갖 이매망량(魑魅魍魎) 무리를 이끌던……. 그자가 죽었다고?”
무당의 단금진인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정마대전 당시 천마와 손을 섞어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련산에서 패퇴했던 천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그를 대신할 다른 천마가 마교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어요.”
“대체 어떻게?”
화산의 진명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자리의 대부분이 그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천마를 죽였다고 했어요. 그 일로 인해 부모님도 돌아가셨고요.”
담담한 단악선의 설명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천마가 전대의 천마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동안 사라진 사파 고수들과 실종된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마공을 연성하고 있고요.”
마교의 수보였던 윤봉이 실토했던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해 가늠한 마교의 예상 전력.
이를 단악선이 언급하자 좌중의 눈빛이 더없이 침중해졌다.
그토록 우려하던 마교의 재발호가 머지않았음을 모두가 직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