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99)
신마의선-399화(399/500)
신마의선 (399)
그런 좌중을 둘러보던 단악선이 이윽고 금일 회합을 마련한 진짜 이유를 꺼냈다.
“이제 우리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악선의 말에 아미파의 정연신니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예전처럼 무림맹을 다시 결성하자는 뜻이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정파만의 전력으로는 마교를 상대하기 힘들 거예요.”
“하면?”
“정파와 사파 구분 없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해요.”
모두가 놀라는 와중에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 저도 오늘부로 무위를 해금(解禁)하고자 해요.”
“괜찮겠느냐?”
정연신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악선이 무위를 금지로 선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공을 들였는지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를 이제 와 수포로 돌리겠다니.
그러나 단악선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반목하고 편을 가르기에는 곧 직면하게 될 마교의 발호가 더욱 위협적이니까요.”
단악선이 좌중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연판장에 수결을 채워 주셨던 여러분께 염치없지만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마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잠시 회의장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우리는 단 의원과 뜻을 함께하겠소!”
홍적문의 외침에 이어 화산과 형산, 아미 역시 단악선의 뜻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다른 문파 역시 마찬가지.
결국 공동파를 마지막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마교와 맞서기로 결정되자 홍적문이 물었다.
“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할 생각이오?”
단악선은 품속에서 한 쌍의 섭선을 꺼내 들었다.
천마의 물건이었기에 천마선(天魔扇)이라 부르기로 한 쥘부채였다.
단악선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섭선을 펼쳐 그림을 이어 붙였다.
“우선 이 장소를 찾아낼 생각이에요.”
마교의 정예들이 육성되고 있다면 저들이 신지라 부르는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지금 신마상단원 전체가 이곳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어요.”
“위치를 알아낸 이후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신가?”
법료의 물음에 단악선이 곧바로 대답했다.
“저들의 전력이 완성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 해요.”
그 말에 장내의 모두가 본격적인 마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말뿐인 위험이 아닌, 이제는 피부로 와닿는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구파일방 수좌들의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다.
각파의 정예를 중심으로 전력을 배분하고 구성하는 회의는 그만큼 지난했던 것이다.
단악선은 잠시 회의장을 벗어나 밖으로 나섰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던 곳을 벗어나 바람을 쐬니 그제서야 답답함이 가시며, 호젓한 여름밤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었다.
새카만 하늘에 수놓아진 푸른 별들.
흘러내리듯 사위를 적시는 달빛을 벗 삼아 발길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길 잠시.
이상한 기척을 감지한 단악선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 멀지 않은 어둠 속.
그 안에서 불쑥 신형을 일으키는 두 개의 인영이 있었다.
“흐흐. 드디어 명성 자자하신 신마의선을 만나게 되는군.”
음험하게 웃는 낮게 깔린 음성.
그 말을 다른 한 명이 받았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파에 단악선이 눈빛을 굳히며 묵룡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맞은편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있던 두 인영이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쾌액!
위화신공을 잔뜩 머금은 묵룡이 허공을 찢은 것도 동시였다.
그 순간 상대방이 멈칫했다.
“잠깐!”
“케헥! 악선아, 우리야! 우리!”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는 상대의 모습에 단악선이 황급히 내력을 거두었다.
동시에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누구……?”
정확히 정수리에서 한 치 남기고 멈춰선 묵룡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청년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와, 서운하네. 어떻게 우릴 몰라볼 수 있어? 우린 딱 보고 단번에 알아봤는데!”
단악선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뒤늦게 상대가 입고 있는 남루한 누더기와 개방도를 상징하는 허리춤의 매듭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방소방?”
단악선이 자신을 알아보자 거지 청년이 씨익 웃었다.
“그럼 너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방소방과 나란히 서 있는 청년을 바라봤다.
정갈한 도포를 갖춰 입은 반듯한 인상의 청년 도사가 아직까지 주저앉아 있는 방소방을 가리켰다.
“소방이가 하자고 한 거다.”
“어?”
“모처럼이니 놀래 주고 싶다나?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말렸다.”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굵어지고 앳된 티가 사라져 그야말로 청년이 된 친구들을 몰라보는 것도 당연했다.
특히 방소방은 우연히 만났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달라져 있었다.
단악선도 그리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셋 중 가장 왜소한 체구였던 방소방이 한 뼘 이상 더 키가 커져 있었던 것이다.
운중산 역시 마찬가지.
더욱 진중해진 눈빛과 분위기는 천년 거목처럼 근엄한 무당의 기풍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방소방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쳇. 한 놈은 보자마자 패려 들고, 다른 놈은 비겁하게 고자질이나 하고……. 에휴, 어쩌겠어? 이런 것들을 친구라고 둔 내 팔자를 탓해야지.”
“소방아!”
단악선이 와락 방소방을 끌어안았다.
그러곤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슬며시 자신을 밀어내는 단악선의 모습에 방소방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운중산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던졌다.
“냄새나니까.”
“뭐, 이 자식아? 거지가 그럼 냄새나지, 향기 날까?”
“그래도 넌 좀 많이 심해.”
“그래서 계속 그렇게 떨어져 있었던 거냐?”
운중산은 말없이 딴청을 피웠지만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그런 운중산을 지그시 쏘아보던 방소방이 냅다 팔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이리 와, 우리 친구! 오랜만에 우리의 뜨거운 우정을 확인해 보자.”
화들짝 놀란 운중산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어쭈? 제운종(梯雲縱)? 그사이 도사 밥 좀 먹었다 이거냐?”
개방의 절학인 취팔선보(醉八仙步)를 펼쳐 운중산을 따라잡은 방소방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형님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짜샤.”
“…….”
묵묵히 방소방을 노려보던 운중산이 소매를 휘둘렀다.
“엇!”
갑자기 짓쳐들어온 경력에 흠칫한 방소방이 황급히 손을 휘둘렀다.
운중산이 장력으로 자신을 떨쳐 내려 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역시 개방의 절학인 항룡십팔장으로 응수한 것이다.
팍.
서로의 장심이 맞닿는 순간.
방소방이 화들짝 놀랐다.
무수한 변화와 파괴력을 담고 있는 장력이 한순간 종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끈끈하고 질긴 경력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비겁하게 십단금을?”
신룡파미의 절초로 황급히 빠져나온 방소방이 운중산을 향해 황당한 눈빛을 던졌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담은 십단금은 강맹한 위력을 기반으로 한 항룡십팔장의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장법은 내가 더 위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운중산의 모습에 방소방이 피식했다.
“잘났다 그래.”
하지만 이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반가워, 내 친구들!”
어느새 두 사람의 배후를 잡은 단악선이 두 사람의 목을 얼싸안았던 것이다.
한편,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장원 뒤뜰.
“아, 불안해. 불안하다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투덜대는 범계위의 모습에 좌불안석 쩔쩔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철우와 종리추였다.
배가 슬슬 불러 오기 시작하자 벽화령은 해남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녀를 호위할 두 사람이 범계위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벽화령이 웃으며 범계위를 다독였다.
“어차피 저 둘에게는 저도 큰 기대는 안 해요. 그래도 먼 길 가는 동안 무료하진 않을 것 같아서 같이 움직이는 거죠. 게다가 저도 아직 움직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문제없어요.”
종리추와 장철우가 입술을 삐죽였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이유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감히 투덜댈 수도 없었다.
“어차피 제가 함께하면 두고두고 가가의 발목을 잡을 거예요. 큰일을 하려면 온전히 눈앞의 목표에 집중해야죠.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 데리러 오세요.”
“그래도…….”
“그렇게 제가 못 미더우세요?”
살짝 날이 선 벽화령의 음성에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응?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여자만큼은 믿지.”
그러곤 잠시 머뭇거리며 벽화령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해남도까지는 내가 함께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말에 종리추와 장철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범계위라면 치를 떠는 해남 문도들이었다.
기껏 힘들게 그를 밖으로 내보냈는데 다시 해남도로 돌아간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원망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의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 범계위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벌떡 신형을 일으켰다.
“단 의원에게 말하고 출발해야겠어.”
그런 그를 만류한 사람은 벽화령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초악량도 벽화령과 의견을 같이했다.
“가더라도 조금 있다 가라. 단 의원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으니 회포를 풀 시간은 줘야지.”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단악선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처음에는 셋이었던 인원이 지금은 한 명이 더 늘어 네 명이 되어 있었다.
“으음…….”
모처럼 환하게 웃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멋쩍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해남도로는 언제 돌아갈 거야?”
범계위의 물음에 벽화령이 배시시 웃었다.
“아직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어요. 어차피 이맘때 그 지역은 태풍 때문에 배를 띄우기 힘들어요.”
“그럼 그 기간 동안에 이 두 녀석을 좀 더 쓸모 있게 만들어야겠군.”
“……!”
“……!”
난데없이 자신들에게 튄 불똥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울상을 지었다.
* * *
얼굴을 마주한 지 오랜만이라서일까.
단악선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는지,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만 해도 밤을 지새울 기세였다.
“이야, 훌륭해. 우리 친구가 언제 이렇게 대단해진 거지?”
방소방의 너스레에 운중산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악선이는 원래 대단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흥! 왜 이래? 나도 나름 잘나간다고. 이거 보여? 내 나이에 매듭 네 개 단 사람은 개방 역사를 통틀어 내가 유일하다고. 심지어 우리 사부님도 내 나이 때는 삼 결 제자밖에 안 되셨어.”
“사부님?”
단악선의 반문에 방소방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 사부님이야 늘 한 분뿐이시지. 비록 지금은 홍 방주님께 무공을 사사하고 있지만…….”
말끝을 흐리는 방소방의 모습에 단악선도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방소방을 직전제자로 받아들였던 이립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잠시.
방소방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마교는 반드시 이 손으로 박살 내겠어.”
이립의 죽음에 있어 직접적인 흉수는 칠절마군 노단양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마교가 깊이 개입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불쑥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그 선봉에는 우리 곤륜이 서지.”
전의를 불태우는 굉성자의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조심해요.”
“하하! 걱정 마. 마교도 천 명을 베기 전까지는 절대 안 죽을 테니까!”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방소방이 히죽 웃었다.
“이야, 이 형님 패기 보게? 기세만큼은 장판파의 익덕이 따로 없는데?”
관우와 더불어 전설적인 무인으로 칭송받는 장비에 자신을 빗대는 방소방을 향해 굉성자가 호감 어린 눈빛을 건넸다.
“우리 악선이 친구들도 제법이야. 이런 후배들이 뒤를 받쳐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든든해.”
방소방, 운중산과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굉성자는 어느새 십년지기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같은 구파일방 소속이며 마교를 불같이 증오한다는 이유도 크게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단악선과 친분이 두텁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가 없는, 평화로운 강호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단악선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드시 살아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