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
신마의선-4화(4/500)
신마의선 (4)
한눈에 봐도 흉악하기 짝이 없는 무기.
사방에 가시가 비죽이 돋아난 쇠도리깨, 대초자곤(大硝子棍)이었다.
“초 형?”
호저처럼 비죽비죽한 수염을 지닌 대머리 거한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물끄러미 초악량을 응시하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천하의 혈수존자가 이렇게 쉽게 거리를 내준다고?”
“됐고 얼른 짐이나 챙겨라.”
“목소리나 생김새는 초 형이 맞는데?”
철그렁.
범계위가 무기를 거두며 반문했다.
“그런데 갑자기 짐은 왜 챙기라는 거요?”
“무림맹 놈들이 올 테니까.”
“응? 그놈들이 왜?”
“너 설마……,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이 십대악인의 토벌을 천명했다.”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또 시작이군. 내 이것들을 당장…….”
“아서라.”
“……?”
“내 꼴이 안 보이는 거냐?”
“어? 그러고 보니…….”
초악량을 뜯어보던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딱 봐도 숨넘어가기 직전이네?”
“…….”
자존심이 상한 초악량이 입을 다물었다.
“설마 십대악인의 최고 고수께서 쪽팔리게 무림맹 놈들에게 당한 거야?”
“너 은근슬쩍 말 놓는다?”
“지금은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초악량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분노를 억눌렀다. 이 멍청한 놈과 투닥거리는 걸로 허비하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 이 엉망진창인 몸으로 널 구해 주러 왔다.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짐이나 챙겨.”
“언제부터 내 걱정을 그리하셨다고? 내 수염을 뽑아다 똥구멍을 막아 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네놈이 내 눈알을 뽑아서 세 번째 부랄로 쓴다고 했잖느냐!”
둘은 가만히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초악량이 인내심을 발휘했다.
“일단 가자. 이야기는 가면서 나누고.”
“어딜 자꾸 가자는 거요? 무림맹 애들 온다며? 여기서 기다렸다 오는 족족 대가리를 깨부숴야지.”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네놈 병부터 고치자.”
“병? 무슨 병 말이오?”
“피만 보면 눈 뒤집혀서 날뛰는 그 광증(狂症) 말이다!”
“에이……. 그걸 고칠 놈이 있었으면 내가 세상천지 세 번을 뒤집어서라도 고쳤지.”
“있다. 네 천형(天刑)을 고쳐 줄 사람이.”
범계위는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의를 찾았다.”
“……!”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의도 찾았다.”
범계위가 미심쩍은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초 형, 혹시 무림맹 첩자요?”
“뭐?”
“나 꼬드겨 데려가서 무림맹에 팔아넘기려는 거지?”
초악량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범계위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거요?”
“확인해 봐라. 맥을 잡아 보면 알 거 아니냐.”
맥문을 내어 준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목숨을 맡기겠다는 의미. 수상하긴 했지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범계위가 아니었다.
범계위가 벼락같이 손을 뻗어 초악량의 맥문을 움켜쥐었다.
그러기를 잠시.
범계위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초 형, 혹시 강시요?”
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데다, 기맥과 기혈도 엉망으로 뒤틀려 있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신의를 만나서 살았다.”
“오호! 그래?”
초악량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범계위. 그런 그의 눈빛 위에 떠오른 살기를 읽어 낸 까닭이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대로 초 형을 보내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네?”
초악량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 추억을 생각해 봐!”
“추억은 개뿔. 지난번에 내 음식에 독 탄 거 잊었수? 내가 그 고약한 독 때문에 한 달 동안 설사만 했수.”
“네가 내 술에 오줌 쌌잖아!”
“자고 있을 때 불 지른 건 초 형이 먼저였지.”
“네가 내 정인을 건드렸으니까!”
“건드리다니? 그 여자가 알아서 온 거지. 그러니까 누가 바람 피우래?”
“그걸 알려 준 게 너잖아!”
“그거야…….”
그렇게 한참 꼬리를 물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천하를 떨어 울리는 고수 두 명이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 민망한 과거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한숨과 함께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내가 우화등선을 못 한다면 다 네놈 때문이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쇼.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뭐, 인마?”
“그렇게 사람을 죽여 놓고 신선은 무슨 놈의 신선. 우화등선해 보겠다고 심산유곡에 처박혀 있는 도사들이 들으면 웃다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질 거요.”
“원래 내 무공의 근원이…….”
설명하려던 초악량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이 통할 놈 같았으면 처음부터 사이가 이리 틀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튼 그 광증 때문에 네놈 무공의 진전이 막힌 상태라며? 그것만 고치면 지금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무림맹 놈들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할 테고.”
“으음…….”
범계위가 자신의 민둥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이 한계에 봉착한 것은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갑시다. 초 형을 한번 믿어 보지.”
“잠깐.”
“왜 그러슈?”
“어차피 여기 다시 올 일은 없으니 돈 되는 건 다 챙겨라. 약값은 가지고 가야지.”
범계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약값 때문에 온 건 아니지?”
“이 자식아! 기껏 살려 주려고 목숨 걸고 왔더니만! 어쨌든 이걸로 옛 은원은 갚은 거다!”
“아하. 그것 때문이셨어? 좋소. 초 형 말대로 치료가 된다면 그때의 은원은 퉁 쳐 드리지.”
* * *
반 시진 후.
초악량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물론 범계위의 등에 업혀서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범계위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 좀 움직이지 마쇼! 남자랑 살 비비는 취미 없다니까!”
“네놈 병 고치려면 닥치고 가.”
“그러니까 어딘지 말하면 내가 당장 달려간다니까?”
“나 버리고 가려는 거 모를 줄 알고?”
“나 못 믿수?”
“넌 나 믿냐?”
둘은 서로 말이 없었다.
* * *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나고 신마곡 안으로 초악량과 범계위가 들어섰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단악선이 초악량을 보며 반색했다.
“늦지 않으셨네요.”
“컥!”
초악량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범계위가 짐짝 다루듯 초악량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한 범계위가 다짜고짜 단악선을 다그쳤다.
“여기에 마의가 있다지? 안내해라! 어서!”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가셨는데요?”
“뭐?”
범계위가 눈을 껌벅였다.
“그럼 신의라도 데려와.”
“그분도 돌아가셨고요.”
휙.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초악량을 노려봤다.
“저 아이가 두 분의 아들이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아픈 허리를 문질렀다.
“두 분의 진전을 모두 이은.”
범개위가 단악선을 가리켰다.
“이 쪼끄만 놈이?”
범계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무림맹에게 혼쭐나더니 정신마저 나간 거요?”
“그새 잊은 거냐? 내 상태를 네놈도 확인했잖아.”
범계위가 단악선을 가리켰다.
“그게 저 녀석 솜씨라고? 저런 밤톨만 한 자식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범계위가 황급히 말을 삼켰다.
초악량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조심해라, 범계위. 내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시다.”
“아니, 내 말은…….”
움찔한 범계위가 말끝을 흐렸다.
초악량이 이처럼 대놓고 살기를 드러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초악량은 초악량이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혈수존자의 이름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눈빛이 바뀐 것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한순간 사람이 달라졌다.
‘설마 연기였나?’
그렇지 않고서는 저 존재감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범계위가 한발 물러섰다.
“커험. 알았소. 내 조심하리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정색을 하고 그러슈? 사람 민망하게.”
모양이 빠지지만 저런 눈빛의 초악량은 결코 건드려선 안 된다.
오랜 세월 무림을 구르며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진맥부터 해 볼까요?”
단악선이 다가서자 범계위는 얼떨결에 손목을 내밀었다. 눈을 감은 채 진맥하던 단악선이 한숨을 흘리며 눈을 떴다.
“쉽지 않네요.”
운을 뗀 단악선이 범계위를 바라봤다.
“가장 큰 문제는 머리로 가는 기맥이 제자리를 벗어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극한으로 진기를 운용하면 진기가 뇌호혈을 건드리는 거죠. 그러면 의식이 날아가게 되고요.”
“……!”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 형이 말해 줬수?”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피를 보면 눈 돌아간다는 것만.”
범계위는 초악량의 말을 믿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두 번째 문제는 왼팔의 곡택혈이에요. 심포경의 요혈이 이렇게 되었으니 팔을 접는 게 매우 힘드셨을 텐데…….”
범개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에 다치셨나 봐요?”
범계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소년이 지닌 의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언급한 부상은 초악량도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악선이 손짓으로 범계위를 가까이 불렀다.
그리곤 범계위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
범계위가 눈을 부릅떴다.
오랜 세월 자신만의 비밀로 묻어 두고 있던 약점! 이를 눈앞의 어린 의원이 정확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호, 혹시…….”
범계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것도 고칠 수 있나? 아, 아니. 고칠 수 있겠소?”
어느새 말투도 정중해진 범계위였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이죠.”
“그럼 속는 셈 치고 믿어 볼까?”
“그렇다면 잠깐 고개 좀 숙여 주시겠어요?”
“이렇게?”
“네. 그 상태로 숨은 편하게 고르시고요.”
그 순간 범계위는 정수리 부근이 따끔했다.
뒤늦게 단악선의 손에 들린 침을 발견한 범계위가 화들짝 놀랐다.
단악선은 태연하게 돌아서서 초악량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손을 뻗어 초악량의 명치 부근에 침을 찔러 넣었다. 초악량은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단악선이 침을 쑥 잡아당겼다.
침이 박혀 있던 곳에서 검게 죽은 핏물이 뿜어져 나온 것도 동시였다.
출혈은 금세 멎었지만 초악량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조심해라!”
초악량이 단악선의 어깨를 움켜쥐더니 재빨리 등 뒤로 숨겼다.
“말했지 않았느냐! 저 자식은 피를 보면 돌아 버린다고!”
초악량이 단악선과 범계위 사이를 막아섰다.
그런데…….
“어?”
초악량은 이내 할 말을 잃었다. 당사자인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범계위가 놀란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나 멀쩡한 거 맞지?”
“그러게. 평소라면 바로 눈이 돌아갔을 텐데…….”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단악선에게 모아졌다.
단악선이 웃으며 말했다.
“치료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완치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요.”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선생님!”
“단 의원이면 충분해요.”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신마곡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