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
신마의선-40화(40/500)
신마의선 (40)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참으려는데 휘하에 무인들을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려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구린내가 나는 거야!”
초악량의 말에 노단양이 걸음을 멈췄다.
“방금 나한테 한 말인가?”
“거, 귀도 밝다. 하긴 시류에 편승했으니 목숨 부지하려면 귀라도 밝아야겠지.”
“나를 아나?”
피부를 에일 것 같은 노골적인 살기에도 초악량은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조진모초(朝秦暮楚) 네 글자는 알지.”
아침에는 북쪽의 진나라로, 저녁에는 남쪽의 초나라에서 머문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한때는 사파인이었지만 지금은 무림맹 사람이 된 그를 향한 명백한 조롱이었다.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무림맹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이겠다? 어디 한번 해 봐라.”
손을 움직여 검을 잡아 가던 노단양은 문득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뜬금없이 시비를 거는 상대의 눈빛 때문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때 내단 경호를 담당하던 창천대 소속 무인 한 명이 노단양에게 황급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창천대 휘하 위일소가 파사단주님을 뵙습니다.”
“창천대가 내게 무슨 일이지?”
위일소라 자신을 밝힌 무인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저자는 남궁향 소저를 치료하기 위해 초빙한 의원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행사에 그 어떤 간섭도 하지 말라는 맹주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노단양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맹주님께서?”
초악량을 노려보던 노단양이 쓴웃음을 머금고 손을 거두었다.
“세상이 넓은 듯하지만 반대로 좁기도 하지.”
그렇게 운을 뗀 노단양이 목소리에 진한 살기를 담았다.
“언젠가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오늘이 얼마나 운이 좋은 날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초악량이 실소했다.
“과연 운이 좋았던 사람은 누구일까?”
초악량이 노골적인 비웃음을 던졌다.
“뭐, 그날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이 돌아섰다. 등 뒤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이 느껴지자 초악량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할수록 지금 상황이 우스웠다.
한때 십대악인이었던 노단양을 포함해 자신과 범계위. 세 사람이 정도 무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 한복판을 아무런 제지 없이 활보하고 있다니.
그렇게 잡아 죽이려 애쓰는 거마 둘이 자신들의 안마당을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남궁백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 * *
영문 모를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노단양은 현정전으로 향했다.
“파사단주 노단양이 정도 무림을 영도하시는 무림맹주님을 배알하옵니다.”
고개를 끄덕인 노단양이 곧장 입을 열었다.
“보고할 것이 있다고?”
“네, 사무심이 무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사무심? 그 돈벌레 말인가?”
남궁백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딴 피라미가 여기까지 찾아와 보고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내가 그대를 파사단주에 앉힌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만.”
“그 피라미에게 당한 희생자가 벌써 서른이 넘어갑니다. 그중에는 팽무위도 포함되어 있고요.”
남궁백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팽무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북의 강자로 군림하는 팽가, 그 명문가의 후예인 그가 고작 사무심에게 당했단 말인가?
“그자 뒤에 누군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군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사무심의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놈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남궁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딸려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백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할 것이 더 남았나?”
“속하, 맹주님께 독대를 청하옵니다. 부디 허하여 주소서.”
남궁백의 눈 위로 언뜻 불쾌함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허한다.”
남궁백의 말이 떨어지자 현정전 안에는 오직 그와 노단양,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래, 할 말이 뭐지?”
남궁백의 말에 노단양이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지난날 저와 약속했던 조건을 이행해 주십시오.”
남궁백이 짐짓 한숨을 내뱉었다.
“자네 보기보다 뻔뻔하군. 맡은 일도 마무리하지 못했으면서 말이야.”
“모든 것이 맹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다만?”
노단양이 눈을 들어 남궁백을 바라봤다.
“토끼 사냥이 끝난 후의 사냥개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날 믿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는군?”
“…….”
노단양을 가만히 응시하던 남궁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남궁백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노단양에게 던졌다.
툭.
그것은 한 권의 책자였다.
붉은색이 감도는 표지에 그보다 더 선명한 핏빛으로 적힌 책자의 제목.
“혈라진경(血羅眞經)…….”
노단양이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집어 말없이 책자를 넘기던 노단양이 한순간 멈칫했다. 그리곤 광망이 일렁이는 눈을 들어 남궁백을 노려봤다.
책자의 절반이 뜯겨 나간 것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기 부여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아니한가.”
남궁백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혈라진경을 완성하고 싶다면 남은 자들의 목도 내게 가져오라.”
“……그리하겠습니다.”
절반뿐인 책자를 품속에 갈무리한 노단양이 섬뜩한 안광을 뿌렸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긴 채 노단양이 돌아섰다.
* * *
노단양과 헤어진 초악량은 계속해서 무림맹 주변을 거니는 중이었다.
이때 근처를 수색하던 한 무리의 무인들이 초악량을 향해 다가왔다.
“오늘은 꽤 멀리까지 나오셨습니다?”
이미 여러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안면이 익은 무사였기에 초악량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
“이게 누구신가. 양 무사 아니오?”
초악량이 짐짓 주위를 둘러보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어지러워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니……. 이만 슬슬 돌아가야겠군.”
“그러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분위기가 뒤숭숭하거든요.”
“무슨 일이 있소?”
“철장패도 팽 대협을 살해한 자가 이곳 무한에 잠입했다고 합니다.”
“철장패도?”
들어 보지 못한 명호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상대가 설명을 이어 갔다.
“모르셨나 보군요. 수전귀야라고, 하북팽가의 일원인 팽무위 대협이 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제야 초악량은 사무심을 구해 준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의아함이 밀려왔다.
‘그놈이 왜 또?’
그렇게나 엄포를 놓았는데, 이곳 무한에서 얼쩡거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파사단주가 직접 나섰다 하니 얼마 못 가 처리될 겁니다.”
노단양은 십대악인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고수. 사무심 따위가 어떻게 비벼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알겠네. 내 조심하지. 그럼 고생하게.”
“살펴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초악량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외부와 차단된 무림맹의 담벼락을 향하고 있었다.
“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은밀하게 담을 타 넘는 사내, 그자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운 하나는 기가 막힌 놈이구나.”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왔는데 하필이면 자신의 눈에 띄다니. 숨죽인 채 은신해 있는 녀석을 향해 초악량이 다가갔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불안하게 흔들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초악량이 입을 여는 순간.
쉬익.
검은 그림자가 한 줄기 바람처럼 초악량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무공을 회복한 초악량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초악량이 그대로 손을 뻗어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시커먼 철척을 움켜쥐었다.
“조용히 숨어 때를 기다리라고.”
초악량이 손목을 틀자 달려들던 상대가 허공에서 몸이 뒤집히더니 거칠게 바닥에 처박혔다.
쿠웅.
“커헉!”
낙법조차 쓰지 못하고 등부터 떨어진 충격에 사지를 떨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무심.
그런 그를 향해 차가운 눈빛이 쏟아졌다.
“내 말이 그리 우습더냐?”
“……!”
뒤늦게 초악량을 알아본 사무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곳도 아닌, 무림맹 한복판에서 초악량과 마주치리라곤 꿈에서도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다시 걸리면 내가 죽인다고 했지?”
사실 범계위가 한 말이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초악량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 그걸 아는 놈이 왜 자꾸 죄송할 일을 만들지?”
“그, 그게…….”
“말해 봐라.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유나 알자.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묏자리를 찾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심이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목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했던 그거?”
“네.”
“그게 이렇게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이냐?”
“아이들의 흔적이 그 안에 있습니다.”
초악량이 물끄러미 사무심을 바라봤다.
“애들이라…….”
“네, 반드시 그걸 찾아야 합니다.”
“재미있군.”
초악량이 전혀 재미있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좋아, 그게 엄청 중요하다고 치자. 그래도 너처럼 계산적인 놈이 왜 이리 무모하게 행동하는 거지?”
머뭇거리던 사무심이 고개를 숙였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어? 그게 무슨 뜻이지?”
“제가…….”
사무님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말했다.
“주화입마에 빠졌습니다.”
“……!”
“이러나저러나 죽을 목숨, 죽기 전 그 목함을 찾으려고 합니다.”
“주화입마라…….”
잠시 생각하던 초악량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얼마 전 무림맹 창고에서 봤던 물건들. 붉은 글씨로 증제(證題)라 적혀 있던 상자가 떠올랐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걸로 미루어 최근에 압수한 물품일 터.
그 안엔 사무심이 설명했던 크기의 목함도 있었다.
‘그게 이 녀석의 것이려나?’
인연이 되려면 세상 어떤 방해가 있어도 되는 법이다. 어쩌면 사무심과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초악량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 목함이라는 게, 호두나무로 만든 게 맞느냐?”
“네? 네, 그걸 어찌…….”
초악량이 창고에서 봤던 목함의 크기와 특징을 설명했다.
“상단에 옻칠이 되어 있는데, 일부가 좀 벗겨진 목함을 하나 보았다. 오른쪽 구석 모서리 쪽에 갈지자 형태의 금이 가 있었고.”
사무심이 눈을 부릅떴다.
“맞습니다! 그게 제가 찾던 목함입니다.”
초악량에게 다가서던 사무심이 멈칫했다.
“지금까지 널 구해 준 게 두 번.”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초악량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번까지 포함하면 세 번짼가?”
사무심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세 번의 구원이 큰 의미가 없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저승 갈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무언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제게 남은 것이 없는 터라…….”
“돈 귀신이라 불리던 놈이 재물들은 어쩌고?”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거참, 특이한 녀석일세.”
이런 놈이 어떻게 악인이 된 거지, 라는 초악량의 중얼거림을 사무심은 애써 못 들은 척했다.
“할 수 없지. 몸으로 때워라.”
“네?”
“목함은 내가 가져다주마. 대신 넌 죽을 때까지 우릴 위해 네 재주를 써야 한다. 마침 계산에 밝은 놈이 필요한 참이었거든.”
사무심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남은 목숨은 서너 개월, 길어야 반년이다. 목함을 준다는데 그걸 못할까.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여길 떠나 감숙성으로 가라. 난주의 진성의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내가 곧 찾아가마.”
“하지만…….”
“내가 너에게 약속했다. 목함을 구해 주겠노라고.”
초악량의 심드렁한 말에 사무심은 굳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무심이 공손하게 예를 갖추더니 다시 담벼락을 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걸로 총관 문제는 해결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