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0)
신마의선-400화(400/500)
신마의선 (400)
서안에서의 구파일방 회합을 마친 뒤 다시금 무위로 돌아온 단악선은 신마삼존과 다시 한 번 회의를 진행했다.
그동안 구상하던 계획 하나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머잖아 움직일 거예요. 수보 역시 다음 해를 넘기지 않는다 단언한 만큼 우리도 나름의 대응책이 필요해요.”
“대응책?”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보의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당장은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이건 우리에게 기회라는 뜻이죠.”
“저들이 발호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자는 뜻이냐?”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
“싸우는 전장을 우리가 선택하자는 뜻이에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정마대전 당시 중원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중원에서 저들을 맞아 싸움을 치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들이 날뛴 피해가 고스란히 피해로 누적되었죠. 이를 수습하고 수복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요. 저들이 다시 발호할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정파의 그 고지식한 자들이 먼저 전면전을 감행하진 않을 텐데?”
“우리는 정파가 아니잖아요.”
단악선의 대답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어느새 자신도 사파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는 단악선의 태도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중원의 내로라하는 구파일방의 명숙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단악선을 사파인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단악선이 자신의 계획을 이어 밝혔다.
“강력한 전력을 지닌 소수의 인원으로 별동대를 구성해 그들의 거점을 공격하면 어때요?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면 그만큼 저들의 발호는 늦춰질 거예요. 반대로 중원 무림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고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의 이목을 분산시키고 불안감을 가중하는 효과도 있을 거예요.”
아무리 작은 피해도 누적되다 보면 결국 큰 피해로 이어지기 마련.
만약 마교가 여기에 반응해 본격적인 전력을 투입하는 경우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상대의 전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 그뿐이었다.
어지간한 고수라면 불가능한 작전이지만 신마삼존 정도라면 문제 될 게 없었다.
초악량과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가능성 없는 계획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군.”
기회를 틈타 상대방의 양을 슬쩍 훔쳐 내는 순수견양(順手牽羊)과 가마솥 밑에서 장작을 꺼내 상대의 근본이 되는 취약점을 흔드는 부저추신(釜低抽薪)의 계책.
거기에 호랑이를 산 밖으로 끌어내 유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유도하는 조호리산(調虎離山)의 원리도 녹여 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었다.
“자칫 놈들을 자극해 오히려 발호를 앞당길 수도 있다. 만약 저들이 전력으로 중원을 치고 들어온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적의 내부에 고립될 터. 또한 준비가 부족한 중원무림은 그들대로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거점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옥죄어 나가는 방식을 이용해 저들을 압박하려고 해요. 우리는 저들이 놀라 뛰쳐나오는 불길이 아니라, 천천히 적시는 가랑비가 되어야 해요.”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우리는 놈들의 거점은커녕 아직 천마선에 그려진 신지의 위치조차 알아내지 못하지 않았느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이미 밝혀진 곳이 하나 있잖아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초악량이 이내 하나의 장소를 떠올렸다.
“강명객잔 말이냐?”
“네. 가짜 마공 비급을 받은 자들이 스스로 찾아갔던 그 객잔에 분명 실마리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놈들이 쉽게 마각을 드러내지 않을 텐데.”
가짜 마공 비급 사건 이후 개방은 집요하게 강명객잔을 주시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마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뚜렷한 물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래저래 의심스러운 정황뿐인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은 것도 그때였다.
“미끼……라고 하면 좀 죄송하지만…….”
“……?”
“마침 우리에게는 적당한 사람이 있잖아요.”
단악선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린 초악량이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저 멀리.
눈치 없이 몸에 좋다는 약초를 주워 먹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군. 저놈이라면…….”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도라면 저놈을 발견하기 무섭게 한여름 밤의 부나방처럼 이성을 잃고 달려들 게 틀림없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낀 가두달이 흠칫하며 이쪽을 바라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 말부터 내뱉는 가두달의 모습에 초악량이 마른 웃음을 풀썩였다.
“죽이지 않고 살려 두길 잘했군.”
“전대 천마의 물건인 섭선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본색을 드러낼 거예요.”
빙긋 웃는 단악선의 모습에 정작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는 가두달이었다.
* * *
청해성 외곽.
먼 거리를 오가는 상인만 간간이 지나치는 작은 촌락.
이곳의 유일한 객잔인 강명객잔은 가끔씩 들리는 상인들 덕분에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오 무렵.
세월만큼 모진 풍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떠안은 객잔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쇼. 뭘로 드릴까?”
점소이도 없는지 주방 쪽에서 숙수가 직접 고개를 내밀어 손님을 맞았다.
칠십 대 정도 되었을까.
얼기설기 얼굴을 가득 메운 흉터 때문에 절로 섬뜩함을 자아내는 머리 희끗한 노인이었다.
손님이 없어 한적한 객잔 안을 둘러보던 손님이 피풍의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며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소면 하나.”
피풍의를 걷고 모습을 드러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숙수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숙수가 주방 안으로 사라지자 가두달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왜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듣자니 이곳이 마교의 소굴 중 한 곳인 모양인데, 그렇다고 이제 와 내뺄 수도 없는 노릇.
이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사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던 단악선을 그저 믿는 수밖에.
그렇게 두려운 마음 반, 복잡한 마음 반으로 좌불안석하던 그때.
주문했던 소면이 나왔다.
‘여기 독이라도 탄 건 아닐까?’
하지만 소면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고 무심하게 돌아서는 숙수의 모습 어디에서도 의심스러운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순 단악선이 잘못 짚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용기도 없었다.
별수 없이 젓가락을 휘저으며 먹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고 있던 그때.
객잔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이 지역을 지나다니는 상인들이 분명한 행색이었다.
그들 역시 각자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많고 많은 자리 중에 공교롭게도 자신과 가까운 탁자였다.
그것도 하필 자신과 입구 사이를 막는 위치.
가두달은 내심 긴장했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못 짚은 건가?’
고개를 갸웃한 가두달이 품속에서 천마선을 꺼냈다.
그러곤 아예 대놓고 보란 듯이 섭선을 펼쳐 부채질을 시작했다.
물론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진품이 아니었다.
과거 마교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만들었던 무수한 모조품 중 하나.
하지만 아무리 가짜 섭선이라 하더라도 일단 그걸 훔쳐 낸 당사자인 가두달의 손에 들려 있는 이상 그건 더 이상 모조품이 아니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영마자(鬼影魔子) 맞군.”
“제 발로 이곳을 찾아오다니. 눈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겁이 없는 것인가?”
“운이 없는 것이겠지.”
가두달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그시 자신을 응시하는 두 명의 행상.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상인들이 아니었다.
두 눈에서 일렁이는 자욱한 살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전신에서 뭉클거리며 쏟아지는 섬뜩한 기운은 마공을 익힌 자만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마기가 분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수다!’
저들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까지 꼭꼭 숨기고 있던 마기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 그 증거였다.
떨리는 눈빛을 애써 감추며 가두달이 사내들을 마주 노려봤다.
“실망이군. 협상을 위해 찾아온 사람을 무공으로 겁박하다니. 그렇게 잘난 척하는 마교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게다가…….”
주변을 한 차례 슥 둘러본 가두달이 자신만만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겨우 다섯 명으로 날 어찌해 보겠다고? 신투라 불리는 나의 경공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그사이 가두달은 객잔 밖에서 품자 형태로 에워싼 자들의 기파를 감지한 것이다.
그때였다.
“여섯이다.”
“……?”
가두달이 의아한 얼굴로 주방 쪽을 바라봤다.
처음 자신을 맞이했던 숙수.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가두달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상인으로 위장했던 사내들과 달리 섬뜩한 살기를 드러낸 것도, 요란한 마기를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답답해지며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적어도 다른 다섯 명보다 몇 수는 앞서 있는 고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걸어 나온 숙수는 곧장 가두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한번 달아나 보든가.”
그렇게 운을 뗀 숙수가 차가운 안광을 번뜩였다.
“교주님의 물건을 훔쳤을 때부터 간덩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감히 본 교의 수준을 운운해?”
상대의 눈빛 속에서 고요하게 휘몰아치는 위험을 감지한 가두달이 짐짓 태연한 척, 그 말을 받아쳤다.
“손님을 이리 함부로 대하는데 당연히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손님?”
가두달이 섭선 하나를 품속에서 더 꺼냈다.
“설마?”
숙수로 위장하고 있던 마교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흑점주인 유기진이 지니고 있던 나머지 다른 하나의 섭선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가두달이 으스대며 웃었다.
“그 괴물들의 이목을 피해 이것을 훔쳐 낼 수 있는 건 천하에 오직 나만이 가능할 터.”
지그시 가두달을 노려보던 숙수가 서늘한 안광을 뿜어냈다.
“감히 본 교와 흥정을 하겠다고?”
“나도 살길은 찾아야 하지 않겠나? 그 악귀들에게 도망쳐 나온 이상 이젠 중원 어디에도 발붙일 길이 사라졌으니까 말이야. 잠적하려면 주머니라도 넉넉해야지.”
“…….”
“아! 목숨을 걸고 감행한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던 만큼 멋대로 가격을 후려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슬쩍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는 두 사내의 기척에 가두달이 빙긋 웃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아. 당신들이 나를 잡는 시간보다 내가 섭선을 망가트리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만약 거절한다면?”
숙수 노인의 스산한 눈빛에 가두달도 배짱으로 응수했다.
“신마곡으로 다시 가져가야겠지? 이곳이 마교 소굴이라는 정보를 가져가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하지 않을까?”
“하!”
노인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리며 짧게 코웃음 쳤다.
그때였다.
가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곧장 노인에게 보고했다.
“주변은 깨끗합니다.”
“확실한가?”
“반경 백 장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오히려 가두달이 내심 크게 놀랐다.
비록 표정 위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갑자기 간담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뭐야? 근처에 있겠다더니?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걱정 말라던 단악선의 말을 그렇게 믿었건만…….
‘설마 날 버린 건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노인이 눈앞의 탁자를 내려친 것도 그때였다.
꽈앙!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가두달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섰다.
“……?”
가두달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굉음과 달리 의외로 탁자는 멀쩡했던 것이다.
그 순간.
풀썩.
한순간에 형체를 잃고 가루가 되어 주저앉는 탁자의 모습에 가두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득 이런 무공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사람의 이름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