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1)
신마의선-401화(401/500)
신마의선 (401)
노인의 손에 맺혀 일렁이는 섬뜩한 핏빛 서기가 눈에 들어온 것도 동시였다.
가두달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상대의 무공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서, 설마…… 당신은?”
가두달이 내심 비명을 질렀다.
‘강살명음(絳殺冥吟) 곽사운!’
정마대전 당시.
십마존의 존재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알려진 게 적었지만 마교의 전위대(前衛隊) 격인 혈염대를 이끌던 그의 손에 쓰러진 정파의 고수들은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마교의 절학인 혈라강기를 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무공만큼이나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이런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무엇보다 그는 기련산에서 벌어진 최후의 일전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눈앞에 마주 앉아 있다니.
‘강명이라는 객잔 이름을 그의 명호에서 따온 것이었어?’
분위기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마교에서도 손꼽히던 고수일 거라곤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뒤늦게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다시 살펴라. 숨어 있었다면 반드시 반응을 보일 테니.”
곽사운의 지시에 주변을 샅샅이 수색한 마교도들이 다시 돌아온 것은 일각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아무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하들의 보고에 곽사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가두달을 지그시 응시했다.
폐부를 낱낱이 훑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에 가두달이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어떻게 단 의원마저!’
곽사운이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따라와라.”
가두달이 홀로 왔다 확신한 곽사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 밖으로 나섰다.
‘튀려면 지금뿐인데…….’
곽사운의 뒤를 따르면서도 가두달은 고민을 이어 갔다.
그러나 끝내 도망칠 수가 없었다.
―절 믿으세요.
그 말을 하던 단악선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단악선의 약속이었기에 일단 믿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마음을 졸이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가두달이었다.
강명객잔과 한참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
새가슴인 가두달이 한참 마음을 졸이고 있던 그때.
철저하게 기척을 감춘 단악선과 신마삼존은 멀리 보이는 객잔을 주시하고 있었다.
행상처럼 보이는 수상한 인물들이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는 이대로 제압하고 들이닥쳐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상대는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안력을 최대한 돋워 객잔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이대로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방금 전 객잔에서 뿜어져 나왔던 맹렬한 마기.
그것만으로도 가두달의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악량은 태연했다.
“걱정 마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정 재수가 없어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제 팔자인 것이다.
하지만 단악선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럼 언제…….”
“놈이 도망쳐 나올 때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놈은 아니니까.”
얄미운 것과는 별개로 제 한 몸 보전하기 위해 도망치는 실력 하나만큼은 신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두달이었다.
느긋하게 엎드려 있던 범계위가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저기 있는 놈들이 전부 마교도일까?”
살짝 들떠 있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어째선지 기대하는 눈치구나?”
“초 형은 몰라.”
“……?”
“육아가 얼마나 힘든 건데. 난 지금 폭발 직전이라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를 두고 육아는 무슨?”
“쯧. 배 속에서 자라고 있잖아. 이거 뭐, 혼인을 해 봤어야 알지.”
“그건 육아가 아니라 태교…….”
“됐어. 육아도 안 해 본 사람하고는 대화가 통할 리 없지. 어쨌든 저놈들 전부 마교도 맞지?”
초악량이 입을 다문 채 지그시 범계위를 노려봤다.
길게 말을 섞어 봐야 자신의 속만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때였다.
“온다.”
한설화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객잔 너머 마을 쪽으로 향했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한 대의 화살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효시(嚆矢).
화살 끝에 촉 대신 신호용 호각을 매단 대초명적(大哨鳴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전 객잔을 벗어나 마을 안으로 사라졌던 가두달이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내 잽싸게 이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쪽으로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대놓고 마기를 뿌리며 뒤따르고 있었다.
마치 꿀에 모여든 개미 떼처럼 집요하게 따라붙는 그 모습에 초악량은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자.”
단악선과 신마삼존이 전면을 향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자 뒤늦게 단악선 일행을 발견한 가두달이 억울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 사기꾼들아! 걱정 말라며? 지켜 준다며?”
그 와중에 부상을 당했는지 가두달은 한쪽 손이 이미 피투성이였다.
“으헉!”
그 순간 가두달이 헛바람을 터트렸다.
돌연 목덜미 근처가 서늘해지나 싶더니 소름 끼치는 예기가 등판을 향해 내리꽂혔던 것이다.
지긋지긋한 마교도 놈들이 제대로 독기를 품은 것이 분명했다.
놈들도 맹인이 아닌 이상 단악선 일행을 못 볼 리가 없었다.
이대로 죽나 싶어 눈을 질끈 감으려면 찰나.
눈앞에 흐릿한 묵빛 잔영이 번뜩이나 싶더니 등 뒤에서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두둑.
“……!”
뒤늦게 자신의 뺨을 아슬하게 스쳐 뒤쪽으로 뻗어 있는 묵봉과 이를 움켜쥔 단악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뜨뜻한 무언가가 뒷덜미에 떨어진 건 그 직후였다.
“……!”
힐끔 고개를 돌린 가두달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묵빛 봉에 가슴이 짓이겨져 절명한 마교도.
그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온 핏물이 고스란히 자신의 목덜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가두달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단악선의 손속.
그런데 더 소름 끼치는 건 흔들림 없이 차갑게 번뜩이는 단악선의 눈빛이었다.
단 일 수에 마교도의 목숨을 거둔 단악선은 주저하지 않고 다른 상대를 찾아 신형을 날렸다.
신마삼존 역시 마찬가지.
우두둑.
“으하하!”
특히 범계위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닥치는 대로 마교도들을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가 마기를 드러낸 이상 거리낄 게 없는 그였다.
한때 피를 보면 광분하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동안 많이 쌓였나 보군.”
반면 한설화는 시종일관 단악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살수를 쓰고도 곧장 다른 상대를 찾아 움직이는 단악선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가두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가 기억하는 단악선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가두달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였다.
“이자들의 책임자는 누구죠?”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단악선의 음성에 가두달은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강살명음 곽사운! 그가 숙수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해 그리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저자 말인가요?”
단악선의 반문에 의아해하길 잠시.
단악선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린 가두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저들도 이변이 생겼음을 직감한 것일까.
일제히 촌락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는 무려 백여 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선두에는 특유의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무리를 이끄는 곽사운이 있었다.
“저렇게 마인들이 득시글대고 있었는데, 어째서 개방도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거지?”
초악량의 혼잣말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마기를 숨기는 저들만의 방법이 있었겠죠.”
그 와중에도 거리를 좁혀 온 마인들은 이미 지척에 이르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뿜어내는 마기.
구름처럼 뭉친 그것이 하나로 뒤엉켜 들이닥치자 가두달은 숨도 쉬기 어려웠다.
단악선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 나간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의 시선은 오직 한 명.
선두에 선 곽사운을 향하고 있었다.
초악량과 한설화, 범계위 역시 별말 없이 전면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콰콰콰쾅!
사람과 사람이 부딪쳤음에도 믿을 수 없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밀려든 후폭풍과 시야를 뒤덮는 먼지구름에 가두달이 기함하며 고개를 숙였다.
꽈릉!
돌연 지척에서 뇌성이 터져 나온 건 그 직후였다.
“……?”
난데없는 우렛소리에 가두달의 눈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비가 올 날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꽈앙!
바로 옆에서 터져 나온 폭음에 가두달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폭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콰쾅!
연달아 세 번이나 이어진 충격이 일대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 여파에 밀려 휘청이며 밀려난 가두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마른벼락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폭음의 진원지.
그곳에서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실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악선이 휘두르는 묵봉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그 끝부분의 경물이 이지러지며 뇌광(雷光) 같은 불꽃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웅혼한 우렛소리.
압축된 대기가 묵봉에 실린 경력에 찢겨 나가며 빚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놀란 사람은 비단 가두달만이 아니었다.
정작 단악선과 손을 섞던 곽사운은 찢어질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전력을 다한 자신의 암경을 찢으며 그대로 파고드는 묵빛 섬광.
그 전율스러운 궤적이 그대로 벼락처럼 자신의 어깨로 작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앙!
일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훨훨 날아갔다.
그러곤 그대로 십 장을 넘게 날아가 거칠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우웩!”
한 움큼의 피를 토한 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사람은 곽사운이었다.
온통 피투성이인 그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충격과 당혹감이 이를 대신했다.
그의 오른팔은 본래의 형체를 잃고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최선을 다해 방비했음에도 뼈가 부서지는 걸 피하지 못한 것이다.
‘빌어먹을!’
정마대전 당시 입었던 부상.
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비록 전성기 시절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구파일방의 장로들 정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자부하던 그였다.
한데 솜털도 가시지 않은 눈앞의 애송이에게 이토록 호된 꼴을 당하게 될 줄이야!
더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살핀 곽사운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백여 명에 달하던 교의 정예들이 고작 세 명에게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신마삼존의 무위에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
곽사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교의 수뇌부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해 들었던 신마삼존의 무공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눈앞의 소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직은 현역이라 자부하던 자신이 이런 몰골로 패배감을 곱씹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과 함께하던 교도들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참혹하게 삼도천 안으로 갈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 자리 잡은 깊은 절망이 결연한 독기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
갑자기 어깨의 견정혈 부근이 따끔했다.
“……!”
더없이 치켜뜬 곽사운의 눈에 단악선의 모습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침으로 곽사운의 마혈을 짚은 단악선이 그대로 그의 턱을 벌려 어금니 사이에 감추어져 있던 독단을 꺼냈다.
“신지의 위치가 어디죠?”
“…….”
어디 알아낼 테면 알아내 보라는 광망 어린 곽사운의 눈빛을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품속에서 다른 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른다.”
단악선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진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는 금제.
그 앞에서도 곽사운은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실마리를 추적할 방법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