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2)
신마의선-402화(402/500)
신마의선 (402)
단악선이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불완전한 마공을 익힌 채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 그들을 어디로 데려갔죠?”
잠시 침묵을 이어 가던 곽사운이 흐릿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적단령에 위치한 홍산.”
그 말을 끝으로 곽사운이 부르르 신형을 떨더니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무심히 그를 내려다보던 단악선이 가두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홍산이 어딘지 알고 계시죠?”
가두달이 깜짝 놀랐다.
“안내해 주세요. 우리는 그곳에 가야만 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가두달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우리가 저들의 턱 밑을 겨눈 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시켜야 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저들의 발호를 늦출 수 있어요.”
머뭇거리는 가두달의 어깨에 범계위가 팔을 둘렀다.
“어딘지 알지?”
“딸꾹. 그, 그게…….”
“중원 각지 안 돌아다녀 본 곳이 없다며?”
초악량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왜 이래? 마교의 교주전까지 들락거린 사람이.”
이 순간 가두달은 자랑스레 업적을 늘어놓았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아…….”
주위를 둘러보던 가두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온통 죽음만이 즐비한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니 절로 진저리가 쳐진 것이다.
결국 가두달이 할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미련과 후회를 내려놓자 거짓말처럼 딸꾹질이 그쳤다.
* * *
야심한 시각.
하남에서 섬서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야산을 흐릿한 달빛에 의지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덜컹거리는 수레에는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짐이 한가득이었고, 수레를 이끄는 사내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이들이 오랜 세월 공들여 마련한 터전을 포기하고 밤을 지새워 길을 재촉하는 이유는 단 하나.
최근 들어 무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불 감시가 느슨해지는 야음을 틈타 서둘러 야반도주를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오래가지 못했다.
저 멀리.
관도 중앙을 점령한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둘러싼 거적을 벗으며 다가서는 인물.
그가 다름 아닌 개방의 방주인 홍적문임을 알아본 사내들의 얼굴 위로 짙은 암운이 드리웠다.
밀려드는 절망감에 저마다 깊은 탄식을 터트리는 일행을 향해 홍적문의 날 선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대들이 중원에서 쌓은 명성과 인망이 마교를 돕기 위한 위선이었다니……. 이 홍 모는 진심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는 바요. 이제 그 죗값을 치를 때가 되었소.”
“모, 모함입니다.”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 수보를 대신해 암약하던 윤흠, 그리고 흑점이 모두 당신이 자신들의 협력자임을 실토했소.”
“……!”
“정 억울하다면 성실히 본 방의 조사에 임하시오.”
결국 홍적문과 대화를 나누던 중년인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나름 중원의 명망 있는 상단을 이끌며 유명세를 떨치던 그였지만, 결정적인 증언이 자신을 지목한 이상 눈앞의 위기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부디 제 식솔들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들은 죄가 없습니다.”
눈물로 애원하는 상대의 모습에 홍적문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수레 뒤쪽에는 아녀자와 어린아이도 타고 있었다.
“자세한 조사를 거쳐 모든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오. 그 결과에 따라 죄가 없다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소.”
“협조하겠습니다.”
상대가 선선히 수긍하자 홍적문이 방도들을 향해 눈짓했다.
뒤쪽에 도열해 있던 개방의 제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포승줄로 사내와 일행들을 포박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중원 전 지역에 걸쳐 마교와 내통하거나 그들에게 협력한 인물에 대한 토벌과 추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수보인 윤봉은 죽었지만 그를 대신해 활동하던 윤흠이 알고 있는 정보 역시 적지 않았던 것이다.
동창의 끔찍한 심문에 그는 아는 바를 남김없이 실토했다.
거기에 흑점의 지부장들 역시 마교의 주구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전폭적으로 협조했다.
그렇게 중원 내부에서 암약하던 마교의 주구들을 쳐 내는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막상 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수많은 정도 무림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상당했고, 각 분야에 뻗어 있는 그림자도 뿌리가 깊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교의 방수 중에는 구파일방에 속해 있는 자들도 있었다.
이전처럼 자파의 일로 묻어 두고 쉬쉬하던 것과는 달리, 모든 것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자정 작용은 둘째 치고, 자신들의 오점을 털어 내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마교의 협력자를 색출하기 위해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무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동창과 금의위의 위사들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관무 불가침의 원칙에 따라 구파일방과의 조율을 거치진 않았지만 관도를 중심으로 물샐틈없는 경계를 강화한 것이다.
뒤늦게 위기를 직감한 몇몇 이들이 도주를 시도했지만 관과 무림이 이중으로 구축한 천라지망을 빠져나갈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발본색원(拔本塞源).
철저한 진상 규명과 단죄를 통해 중원에서는 마교의 흔적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다.
* * *
중원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신강의 모처.
천혜의 요지 깊숙이 위치해 있는 마교의 내전에서는 심각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신마삼존 놈들이 강명객잔을 쳤다고?”
부복해 있는 수하의 보고에 한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은 네 명밖에 남지 않은 사마존.
그중 한 명인 권존 혁련강이었다.
“생존자는?”
“새, 생존자는 전무……. 곽 단장을 비롯한 모두가 장렬히 산화했다고…….”
“놈들의 이동 경로는? 다음 목적지는 파악했나?”
“그것이…….”
보고를 이어 가던 수하가 쩔쩔매며 말을 흐렸다.
정보를 취합할 방법이 전무한 현 상황에서는 적의 이동 경로는커녕 다음 목적지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혁련강이 침중한 표정으로 침묵하던 그때.
“방심하다 제대로 허를 찔렸군.”
내전을 울리는 한 줄기 음성에 보고를 하던 마교도가 사색이 되어 바닥에 엎드렸다.
“마, 만마봉공! 앙세천하!”
앞서 마존들에게 보고를 하면서도 쩔쩔매던 그였다.
하물며 방금 울려 퍼진 목소리의 주인이 진정한 교의 주인인 당대 천마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마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하나같이 극공의 예를 갖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야성적인 눈썹과 그 아래 자리 잡은 심유한 눈동자.
단단한 턱선만큼이나 강인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하나 주위를 압도하는 위엄 넘치는 눈빛과 깊이를 짐작기 어려운 존재감은 그 나이마저 무색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마존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지금은 사라진 수보.
그의 역할을 대신해 교의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는 역할을 맡은 음마(音魔), 명환혈적(冥換血笛) 조음서였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중원 내부에 심어 두었던 본 교의 협력자들과 조직 체계가 일거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책은?”
“당장은…… 놈들의 양동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도 조음서는 불안한 눈빛으로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실망이군.”
“…….”
“상황이 이리되었는데도 그저 관망하자는 그대들의 안일함에는 슬슬 진저리가 나.”
소리 없이 번져 나가는 숨 막히는 기파.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천마의 분노에 마존들조차 숨죽여 몸을 떨었다.
조음서가 황급히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하나 지금은 때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 때라는 것이 대체 언제 오는 것이지?”
천마가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언제 올지 모를 때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자는 것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지독한 압박에 조음서는 한차례 몸을 떨었다.
하나 지금은 무조건 기다려야만 했다.
비록 눈앞의 교주인 종극진이 전대 천마였던 종여의를 뛰어넘는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
당장은 섣불리 움직이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노복이 감히 아뢰옵건대…….”
다른 마존들과 눈빛을 교환한 조음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당금 천하에 감히 그 누구도 무공으로는 교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신마삼존 가운데 능히 두 명은 교주님 홀로 상대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 셋은 교주님조차 승리를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노복들의 생각입니다.”
종극진의 눈 위로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셋은 감당할 수 없다?”
말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비대한 체구에 사자의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린 장년인.
염마, 마영기였다.
“외람되오나 그리 사료되옵니다.”
그는 이미 검마 모규광과 함께 한설화와 손을 섞어 본 적이 있었다.
결과는 참패.
비록 한설화에게 부상을 입히기는 했지만 모규광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만이 분루를 삼키며 후일을 기약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무공 수준이 그녀와 비슷하다 가정했을 때, 교주인 종극진이 그들 모두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자신들 수준의 여섯을 쓰러트릴 수 있어야 했다.
하나 지금은 암존 마저 초원에서 사망해 육마존은 네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
“천극신단(天極神丹)의 완성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미 교주님의 무공은 완벽한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여기에 천극신단이 더해진다면 그들 셋도 더 이상 교주님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업을 위해 조금만 더 인내를 부탁드립니다.”
“흠…….”
종극진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사마존을 응시했다.
하나 스스로 노복을 자처하며 고개를 조아린 그들의 읍소에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천극신단이라.”
정파인이 들었다면 치를 떨었을 것이 분명한, 천인혈정(千人血精)의 다른 이름.
말 그대로 천 명의 무인으로부터 정혈을 뽑아내 하나의 단환으로 응축시켜 낸 금단의 비법이었다.
마교 내에서도 섣불리 시도할 수 없어 오랜 시간 비전으로만 전해지던 금용술이었지만 오직 자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해 낸 것이다.
종극진의 눈 위로 일렁이는 갈등을 확인한 사마존이 일제히 부복하며 외쳤다.
“노복들의 간청을 부디 헤아려 주소서!”
그런 그들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종극진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비로소 안도한 사마존이 더욱 깊게 고개를 조아릴 때였다.
종극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데 이렇게 웅크리는 것이 최선이라 확신하는가?”
이어진 종극진의 말에 네 사람은 표정이 복잡해졌다.
“놈들의 목적은 분명 본 교의 신지를 찾기 위함일 터.”
조음서가 대답했다.
“일천의 정예로 구성된 호교마군(護敎魔軍) 가운데 이미 백 명이 무공을 완성해 신지를 나섰습니다. 거기에 저희 넷이 함께 움직여 놈들을 반드시 영격(迎擊)하겠나이다.”
그 순간, 종극진의 눈에서 섬전과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차라리 이렇게 하지.”
의아해하던 조음서가 이어진 종극진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놈들이 조호리산의 계략을 획책한다면 이쪽에서도 성동격서(聲東擊西)로 받아치면 그뿐.”
종극진이 회심의 웃음을 말아 올렸다.
“마침 호교마군 일부가 완성되었다 하니 이 기회에 그들이 지닌 힘을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오나…….”
반대 의견을 내려 했던 조음서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응시하는 천마의 눈빛.
그 안에 담겨 있는,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의지를 읽어 낸 까닭이다.
“하면 하나만 약조해 주십시오.”
조음서의 말에 종극진이 슬쩍 웃었다.
“걱정 마라. 신마삼존과는 부딪치지 않을 테니.”
종극진이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자욱한 마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져 내렸다.
“놈들은 결코 신지를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놈들의 발길을 돌려세울 뾰족한 수가 없다면 억지로라도 방향을 틀게 하면 그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