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4)
신마의선-404화(404/500)
신마의선 (404)
단악선 일행은 하루 동안 녹주 근처에서 머물며 그간 쌓였던 피로를 풀었다.
“이제 목적지가 머지않은 것 같아요.”
어둠을 밀어내는 작은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일행을 향해 단악선이 운을 뗐다.
“하지만 천산 일대까지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
초악량의 충고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섣불리 마교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아요. 그래서 이제부터 더욱 은밀하게 움직이려고요. 신지의 위치만 알아낸 뒤 중원으로 복귀할 거예요. 그리고 힘을 모아 단번에 칠까 해요.”
“그게 좋겠구나.”
초악량이 흡족한 눈빛을 흘리며 단악선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우려가 기우로 그쳐 다행이었다.
최근 꽤나 저돌적인 행보를 보였던 단악선인 만큼, 행여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던 것이다.
단악선이 새롭게 얻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다음 목적지를 물색하던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시끄러운 놈은 이쯤에서 돌아가야겠군.”
별생각 없이 늘어져 있던 범계위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한설화의 시선 때문이었다.
“나?”
“그럼 달리 누가 있을까.”
비로소 한설화가 언급한 시끄러운 놈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범계위가 정색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왜 나를 그렇게 못 보내 안달이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령이 해남도에 데려다준다며?”
범계위가 멈칫하더니 돌연 한숨을 터트렸다.
“이 일이 끝나야 가지. 이대로 가면 화령이가 실망할걸?”
“언제부터 사람 말을 그리 잘 들었다고?”
“너도 혼인해 봐. 애까지 가지면 더 좋고. 그럼 알게 될 거야.”
한설화의 아미가 꿈틀했다.
그게 어디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할 말이던가.
하물며 아직까지 청백지신(靑白之身)인 그녀였기에 더욱 황당할 뿐이었다.
“응? 왜? 내가 또 무슨 말실수라도 했어?”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의 모습에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초악량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고, 가두달은 가슴 졸이던 그 순간.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는 신마상단에 우리 행보를 알리고 올게요.”
중원 무림과의 연계를 위해서라도 주기적인 연락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사막 지대는 워낙 광활했기에 전서구를 활용할 수 없었다.
먼 거리를 오갈 수 있는 전서응을 사용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상황에 따라 이동 경로를 달리했기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교역을 위해 서역을 오가는 상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신마상단과 거래를 위해 중원으로 가는 상단과 다시금 귀환하는 상단을 통해 짧게나마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신마상단과 서역의 거래량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자연히 사막을 가로질러 중원으로 향하는 서역 상인들의 숫자 역시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찾는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닥불에서 잠시 거리를 둔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곤 단숨에 도약해 허공 높이 몸을 솟구쳤다.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
별빛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명멸하는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야영을 위해 불을 피운 것이다.
이 지역의 도적 무리는 근절된 지 오래였으니 무위를 오가는 서역 상단일 가능성이 컸다.
바닥에 착지한 단악선이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혹시 모르니 함께 가자꾸나.”
초악량이 일어서자 범계위도 따라 일어났다.
“너는 왜?”
“마녀랑 둘이 남겨지는 게 싫어서.”
가두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범계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시무룩해진 가두달은 괜히 애꿎은 모닥불만 들쑤셨다.
“가요.”
단악선이 신형을 날리자 초악량과 범계위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모닥불을 중심으로 에워싸듯 늘어선 천막과 수레들이 눈에 들어오자 단악선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도 짧은 호각 소리가 돌아왔다.
적아 구분을 위해 사전에 서로 숙지해 두었던 신호였다.
“역시 우리 쪽 사람이었어요.”
빙그레 웃은 단악선이 이내 야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미리 나와 자신들을 맞이하는 상단원들의 표정이 어째선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상단의 책임자로 짐작되는 인물이 단악선을 향해 다가섰다.
“이렇게 만나 다행입니다. 마침 저희도 곡주님을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저를요?”
고개를 끄덕인 상단의 책임자가 모닥불 근처의 천막으로 단악선을 안내했다.
그 안에 들어선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탈진한 듯 힘없이 늘어져 있는 삼십 대의 라마승.
행색으로 보아 포달랍궁 소속이 분명했다.
단악선을 발견한 라마승이 힘겹게 신형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일이죠?”
황급히 라마승을 부축한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물음에 라마승이 길게 탄식을 터트렸다.
이윽고 이어진 그의 설명에 단악선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마교가 포달랍궁을 무너트렸다고요?”
그것도 교주인 천마가 직접 나섰다니!
하지만 불행한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달뢰라마의 부고를 전해 들은 단악선은 우두커니 선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멍하니 서 있던 단악선이 황급히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런 단악선을 초악량이 붙들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이미 늦었다.”
단악선을 만류한 초악량이 냉정한 눈빛으로 라마승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나?”
라마승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침묵하던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우리가 그들을 자극한 걸까요?”
침통한 단악선의 눈빛에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네 탓이 아니다. 원래부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자들이니까.”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곤륜! 곤륜파에 경고를 해야 해요!”
천마가 이끌고 있다고는 하나 저들의 전력은 고작 백여 명 남짓.
아무리 정예라 하더라도 그 정도만으로 곧장 중원 침공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천마가 직접 나선 이상 포달랍궁을 무너트린 것으로만 만족할 리 없었다.
자신들이 마교의 거점을 무너트린 것만큼 저들 역시 비슷한 성과를 얻어 내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당장 짐작되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바로 곤륜파였다.
오랜 세월 마교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위치적 특성도 그랬지만 서로를 향한 그간의 원한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말이냐?”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를 찾는 것보다 당장은 곤륜으로 향하는 것이 먼저였다.
기우에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말만큼은 애써 삼키는 단악선이었다.
* * *
곤륜산맥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분지, 삼성요(三聖坳).
그곳을 방문한 무림인들 대부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혹한의 날씨를 자랑하는 곤륜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따듯한 공기가 늘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사방을 에워싼 높은 산들이 찬 공기의 유입을 차단했고 무엇보다 지대 자체가 지열을 품고 있어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삼성요 중앙에 위치한 태청각.
유독 볕이 잘 드는 그 주변에 오늘도 노도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둑돌을 나누어 쥐거나 햇살을 즐기며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더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만끽하던 그들이었지만 유독 단 한 곳.
승부의 결착을 코앞에 둔 바둑판 앞은 예외였다.
왜소한 체구에 몸은 나뭇가지처럼 말랐지만 눈빛만큼은 정정한 노도사가 입을 열었다.
“허어, 여기 바둑 두던 늙은이 어디 갔나?”
“…….”
“바둑판 뚫어지겠네. 뚫어지겠어. 그렇게 바둑판만 노려본다 해서 없던 수가 생기나? 대충 둬.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 몰라?”
맞은편에서 흑돌을 쥐고 있던 작달막한 체구의 노도사가 그 말에 새하얀 눈썹을 꿈틀했다.
“원로라는 작자가 채신머리없이?”
“그러는 자네는 채신머리가 있어서 승복하는 법을 모르냐?”
“끄응. 기다려 보게. 그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테니.”
“내 코가 납작해지기 전에 해가 먼저 떨어지겠는걸.”
“아, 글쎄 재촉하지 말래도!”
두 노도사가 그렇게 서로 아옹다옹하는 사이.
그곳을 스치듯 지나가던 노도사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렇게 정가운데만 치중하면 크게 된서리를 맞을걸? 거기 곡삼궁을 왜 빈삼각이라고 하는지 몰라?”
그 훈수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던 두 노도사의 표정이 엇갈렸다.
흑돌을 쥐고 있던 노도사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지만, 반대편에서 백돌을 쥐고 있던 노도사는 와락 얼굴이 구겨진 것이다.
따악.
흑돌이 어느 한 점에 놓이는 순간.
“내가 끼어들지 말랬지!”
쫘라락!
시종일관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 가던 노도사가 백돌을 집어 던지더니 바둑판을 뒤엎어 버렸다.
“다시 해! 저 늙은이 없는 곳으로 자리 옮겨서!”
그때였다.
훈수를 건넸던 노도사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적연(赤鳶)이네?”
그 한마디에 저마다 소일거리에 심취해 있던 원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 멀리 허공에 나부끼는 붉은 연으로 향했다.
이 지역은 바람이 많이 불어 연기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 봉연(烽煙)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색이 다른 연을 띄우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붉은 연은 누군가와 조우했다는 뜻의 적(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길 잃고 근처를 배회하는 상인이라도 발견했나 보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저마다 다시금 고개를 돌리던 그때.
“흑연(黑鳶)도 떴는데?”
“……!”
원로들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볕 아래 꾸벅꾸벅 졸던 노도사조차 삼엄한 눈빛을 흘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검은 연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바로 마교였다.
적연이 뜬 직후에 흑연이 올라왔다면?
척후로 나선 본문의 제자가 마교와 조우한 것이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경종(警鐘) 소리가 삼성요 전체로 번져 나간 건 그 직후였다.
장문인인 광진도장을 비롯해 곤륜파의 전원이 산문 앞에 집결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파른 경사 끝자락.
자신들을 보고도 멈춰 서지 않고 삼성요로 향하는 마인들을 응시하던 광진도장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고작 저 인원으로?’
기껏해야 백 명 남짓한 숫자에 처음에는 협상을 위해 보낸 사자들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적대감을 흘리며 거리를 좁혀 오는 상대의 위협적인 기파에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광진도장이 차가운 미소를 말아 올렸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물끄러미 산 아래를 응시하던 원로들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종여의, 그 늙은이는 죽었다 했으니 저 새파란 애송이가 당대의 천마인가?”
그 말에 광진도장이 선두에서 마인들을 이끄는 청년을 주시했다.
당대의 천마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압도적인 존재감.
“끌끌. 꼴에 교주랍시고 사마존도 대동하고 나왔군그래.”
천마 뒤를 따르는 네 명의 노고수를 발견한 원로 한 명이 대놓고 비웃었다.
한때는 호교십위였으나 정마대전을 겪으며 네 명이 죽어 육마존이 되었고, 그조차도 이제는 둘이 죽어 넷밖에 남지 않은 자들.
하지만 정작 곤륜의 장문인인 광진도장은 웃을 수가 없었다.
태연자약한 천마의 눈빛.
그 너머에 자리한 자신감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