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5)
신마의선-405화(405/500)
신마의선 (405)
무엇보다 저들의 의중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성동격서?’
이곳을 흔들며 실질적인 주력을 따로 운용해 다른 곳을 공격할 의도라면?
하지만 천마 정도나 되는 거물이 미끼를 자처할 리 만무했다.
저들은 세력 이전에 하나의 종교.
그리고 천마는 저들의 상징 그 자체였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광진도장의 두 눈에서 자욱한 투지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이 자리에서 천마만 죽일 수 있다면 마교는 한동안 준동을 꿈꾸지 못할 터.
‘아니.’
이 땅에서 마교를 완전히 솎아 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이윽고 십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 세력이 서로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먼저 입을 연 쪽은 광진도장이었다.
“그쪽이 새로운 천마인가?”
슬쩍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종극진의 모습에 광진도장이 삼엄한 기세를 드러냈다.
“마교의 주인께서 친히 이 궁벽한 곳에 왕림하시다니. 영광이라 해야 할까?”
종극진이 나른한 눈빛을 흘리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본 교의 상냥한 이웃에게 한 번쯤은 제대로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첫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겠군.”
고개를 갸웃한 종극진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군. 그 말대로야.”
종극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오늘 이후 곤륜산은 주인을 잃은 공산(空山)이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백여 명의 마인들이 일제히 전면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
광진도장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선점한 상태였다.
지형의 불리함을 안고도 이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체계적인 진형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달려들 뿐인 것이다.
‘어리석은!’
얼핏 보기엔 사나워 보이는 맹공이었지만 광진도장 입장에서는 더없이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구대문파 가운데 인원은 가장 적었지만 마교를 상대로 다져 온 그들의 전력은 그 어느 곳과 견주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것도 평균적인 전력을 감안했을 때가 그 정도였지, 실질적으로 개개인의 저력은 오히려 타 문파보다 우위에 있었다.
“광 자 배는 앞으로 와서 방첨진(方尖陣)의 선두에 선다! 이대 제자들은 태청검진(太淸劍陣)으로 그 뒤를 받치도록!”
굉진도장의 지시에 그의 사제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뾰족한 형태를 갖춘 곤륜의 진형에 마인들이 들이박자 두 세력이 뒤엉켜 순식간에 난장판을 이루었다.
카카카캉!
병장기와 병장기가 부딪치며 새파란 불꽃이 튀어 오르고.
“크악!”
“끄어어!”
곳곳에서 핏물이 솟구치고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곤륜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서로 격돌한 지 고작 두어 호흡 지났을 뿐이었지만 일방적으로 쓰러지는 쪽은 마교도 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들의 무공도 만만치는 않았다.
일개 마졸(魔卒)이라 하기에는 개개인이 상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호응하며 연수하는 이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전황을 둘러보던 종극진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도 그때였다.
그사이 스무 명도 넘게 쓰러졌지만 애초에 호교마군은 고작 백 명 남짓.
곤륜의 총전력을 상대로 이 정도로 버티는 것 자체가 처음 상정했던 것 이상의 결과였다.
“확실히 포달랍궁과는 다르군.”
공격의 인지와 대비 유무.
그 차이는 명확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자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으르렁댔던 만큼 마공을 상대하는 요령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종극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신마삼존 일행의 행보를 돌려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은 어차피 명분이었을 뿐.
이번 원행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완성을 목전에 앞둔 호교마군.
그 일부를 운용해 온전한 교의 저력을 가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유리한 상황을 선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곤륜의 장문인, 광진도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얼마든지 전황이 바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여유를 보이는 천마의 존재 때문이었다.
뚫어져라 천마만을 주시하던 광진도장의 눈이 차갑게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
그 말과 함께 이윽고 천마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심해라!”
웅혼한 내공이 실린 쩌렁한 일갈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놀라운 광경이 광진도장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직후였다.
믿을 수 없게도 눈앞에서 진형이 그대로 붕괴되고 있었다.
눈앞의 목표를 잃고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 들 듯 천마를 향해 몰려가는 곤륜 문하의 모습.
광진도장이 미처 경고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이미 전신을 지배하는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빛에 이끌려 불 속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상대가 흘리는 마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종극진의 손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허공에서 흐릿한 잔영이 너울거리나 싶던 순간.
정체 모를 무언가가 광폭한 기세로 일대를 집어삼켰다.
“……!”
광진도장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종극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묵빛 강기.
용틀임하듯 한 차례 꿈틀거린 강기가 그대로 묵빛 호선을 그리며 허공을 긋는 것을 분명히 목도한 것이다.
그 소름 끼치는 묵빛 호선과 곤륜 문하들이 겹쳐진 것은 거의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궤적을 따라 짙은 피 안개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요란한 폭음도, 처절한 비명도 없었다.
열 명이 넘는 곤륜의 제자들이 피 안개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허공에 흩어진 것이다.
“말도 안 돼…….”
단 일 합이었다.
공방이라 부르기도 힘든 한 번의 손짓.
마인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 곤륜의 정예가 그 한 수에 목숨을 잃었다.
종극진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평소 누구보다 담이 크다 자부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떨리는 신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괴물!’
놈의 경지는 그로선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천마를 상대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천마!”
광진도장의 신형이 한 줄기 그림자가 되어 종극진을 덮쳐 갔다.
“장문인! 무언가 이상합니다! 조심……!”
광진도장의 사제인 광령도장이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경고했지만 이미 광진도장은 천마의 지척에 이른 상태였다.
종극진의 눈썹이 꿈틀한 것도 그때였다.
퍼엉!
자욱한 피 보라와 함께 광진도장이 있던 곳에서 흙더미가 솟구쳐 올랐다.
털썩.
뒤늦게 떨어져 나간 팔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광진도장의 팔이었다.
그러나 광진도장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어깨 아래로 한쪽 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음에도 처음 기세 그대로 종극진과 부딪쳐 간 것이다.
콰득.
푸욱.
두 사람 사이에서 상반된 두 종류의 기음이 터져 나왔다.
“장문 사형!”
광령도장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광진도장의 등을 뚫고 나와 꿈틀대는 묵빛 강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반면 검강을 실어 뻗어 낸 광진도장의 검 역시 종극진의 몸에 박혀 있었다.
“아아!”
광진도장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고작 한 치.
종극진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 검강이 상대의 심장을 앞두고 아슬하게 멈춘 거리였다.
하지만 생사의 경계를 가르는 간극이기도 했다.
검강을 맨손으로 움켜쥐고도 멀쩡한 종극진의 무위는 둘째 치고, 천천히 밀려 밖으로 빠져나오는 검에 더욱 안타까운 눈빛을 던지는 광진도장이었다.
종극진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너희 곤륜은 그래.”
“……?”
“몽둥이질을 하면 달아났다가, 돌아서면 발꿈치를 무는 사나운 개 새끼들이지.”
그만큼 곤륜은 아주 오래전부터 귀찮은 존재였다.
퍼엉!
그 순간 광진도장의 등짝이 갈가리 터져 나갔다.
“장문인!”
곤륜 문하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동요는 고스란히 전장으로 옮겨 갔다.
“사제 조심! 아악!”
“사혀엉!”
“크헉!”
곳곳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마의 난입 직후 진법의 가장 선두에 있던 날카로운 첨진 부분이 그대로 갈려 나갔고, 그 공간을 채운 것은 한층 더 사나워진 마인들의 기세였다.
이를 본 광진도장의 눈 위로 진한 아픔이 떠올랐다.
육신의 고통보다 속절없이 쓰러지는 제자들의 모습이 이 순간 더욱 고통스러웠다.
턱.
검을 놓은 광진도장이 종극진의 손목을 움켜쥔 것도 그때였다.
“곤륜지의(崑崙之義)…….”
“……?”
광진도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종극진이 의아한 눈빛을 흘렸다.
반면 그 말을 들은 곤륜 문하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안 됩니다! 장문인!”
저 멀리서 검진의 한 축을 맡고 있던 굉성자가 해연히 놀라 부르짖었다.
“사부님!”
울컥울컥 검은 피를 게워 내면서도 광진도장은 힘겹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곤륜 문하들과 자신의 늦둥이 제자를 눈에 담은 광진도장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무처부재(無處不在).”
곤륜의 의로움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의미.
굉성자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꽈앙!
가공할 충격이 일대를 짓이긴 것도 동시였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곤륜 문하들과 마인 모두가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십 장 이상 나가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아!”
곤륜 문하의 입에서 슬픔에 겨운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일반적으로 어느 문파에나 동귀어진의 수법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일 뿐, 곤륜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의 생명을 무기로 쓰는 법을 터득했다.
아예 처음부터 동귀어진만을 노리고 만들어진 무공.
옥쇄곤강(玉碎崑岡)이었다.
마교의 역혈대공이 있다면 곤륜에는 옥쇄곤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곤륜의 독기와 집념 그 자체였다.
진기를 역행해 사용한다는 원리는 마교의 역혈대공과 유사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역행시킨 진기를 기존의 진기와 충돌시켜 응축한 뒤 한 번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육신이 남아날 리 없었다.
시전자의 육체는 갈가리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조각난 뼛조각과 육편은 하나하나가 가공할 암기가 되어 일대를 쓸어 버린다.
그 위력은 어지간한 호신강기로는 버텨 내지 못할 정도.
실제로 정마대전 당시 마교의 주요 인물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 간 수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름도 옥쇄곤강이었다.
부서진 옥이 산을 무너트린다는 의미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한 놈은 데려간다는 처절한 의지를 반영한 무공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곤륜 최고의 고수였던 만큼 광진도장이 시전한 옥쇄곤강의 위력에 경악한 마인들도 일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허허. 도처(到處)가 낭패(狼狽)로다!”
허허로운 웃음소리에 곤륜 문하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어느새 자신들의 전면을 막아선 원로들의 모습이 보였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원로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읊조리자 다른 원로가 탄식으로 그 말을 받았다.
“이건 종여의보다 더한 괴물 아닌가.”
장로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곤륜 문하들의 얼굴에 짙은 절망이 드리웠다.
비산한 먼지구름.
그 사이로 형형한 안광을 뿌리며 멀쩡히 서 있는 종극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야.”
비록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었지만 종극진의 안색은 처음과 달리 여유를 잃고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시선을 마주한 원로들이 조용히 웃었다.
“가세.”
“그러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 장로들을 향해 곤륜 문하들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장로님들!”
“안 됩니다!”
그 말에 원로들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끌끌. 이 녀석들아. 우리가 가야 니들이 살아.”
“이 늙은 목숨들로 천마를 잡는다면 아주 크게 남는 장사 아니겠느냐?”
“놈의 끄나풀들도 한꺼번에 데려가지.”
원로들의 신형이 한순간 현란한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평생을 수련한 곤륜의 절학, 절정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 보인 신위였다.
순식간에 자신의 지척에 이른 노도사들을 발견한 종극진이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지긋지긋한 놈들.”
곤륜산의 봉우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건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