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7)
신마의선-407화(407/500)
신마의선 (407)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단악선은 본능적으로 신형을 날렸다.
우우웅.
단악선의 손에 쥐어진 묵룡이 나직한 울음을 토했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강기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묵룡을 후려갈긴 것도 동시였다.
쩌엉!
“……!”
그 순간 단악선은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절감했다.
가공할 힘으로 찍어 누르는 강기 벽.
그 압력에 밀려 순식간에 발목이 흙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콰콰콰.
단악선의 신형이 깊은 고랑을 새기며 그대로 주르륵 밀려났다.
단악선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휘어진 묵룡은 둘째 치고, 손목을 타고 올라온 반탄력이 순식간에 내부를 진탕시켰기 때문이다.
“큭!”
단악선이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국 이조차 한계에 이르렀다.
피잉.
손안에서 부러질 듯 요동치던 묵룡을 더욱 힘껏 움켜쥐었지만 결국 호구를 찢으며 날아가 버렸다.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비릿한 무언가가 목을 타고 넘어온 것도 동시였다.
“왁!”
한 움큼의 피를 토한 단악선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그때.
“흥!”
한 줄기 차가운 냉소와 함께 누군가가 단악선 앞을 막아섰다.
한설화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지독한 냉기가 일대를 송두리째 얼리나 싶더니.
카카카카캉!
한설화가 휘두른 소매를 따라 허공에서 솟구친 무수한 얼음 창이 흑색 강기 벽을 두들겼다.
쩌적.
순식간에 얼어붙은 강기 벽이 주춤하는 사이.
“어딜!”
어느새 한설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 범계위가 쩌렁한 기합성을 터트리며 일 권을 내질렀다.
꽈앙!
사방으로 비산하는 얼음 파편과 함께 흑색 강기 벽 전체가 크게 출렁했다.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곤 있었지만 처음에 비해 확연히 위력이 줄어든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초악량이 뛰어든 건 그 직후였다.
그의 손에는 한눈에 봐도 명검이 분명한, 고색창연한 검이 들려 있었다.
곤륜파의 장문인이었던 광진도장의 검이었다.
검 끝에서 맹렬하게 일어난 기세.
붉은 노을처럼 삽시간에 일대를 아우른 선명한 검기가 강기 벽 위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오래전 사부로부터 사사했던 단운적하팔식(丹雲赤霞八式).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온전한 모습을 갖춘 희대의 검공이 그 신위를 드러낸 것이다.
소름 끼치는 위용을 자랑하던 천마의 강기 벽이었지만 그 마지막 일 검은 버텨 내지 못했다.
서억.
그대로 양단되어 둘로 나뉜 강기 벽은 이내 단악선 일행을 그대로 지나치더니 허물어지듯 급격히 허공에 흩어졌다.
초악량이 방금 전 종극진이 서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마는?”
“튀었나 본데?”
범계위의 대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마인들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시신을 수습하는 건 포기하고 부상자들을 추려 후퇴한 모양이었다.
초악량의 눈 위로 잠시 갈등의 빛이 일렁였다.
호흡을 고르며 내상을 다스리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질문을 던졌다.
“어찌할 것이냐?”
“네?”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 의원. 신지고 나발이고 천마만 잡으면 이 지겨운 싸움도 끝낼 수 있어.”
한설화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처럼의 기회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단악선이 멈칫했다.
뒤늦게 자신의 뒤쪽에 널브러져 있는 부상자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인들의 공격에 부상을 당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옥쇄곤강에도 휩쓸린 그들의 상세는 한눈에 봐도 위중해 보였다.
“…….”
단악선은 갈등했다.
초악량의 말대로 천마를 추적하면 그대로 방치될 저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악선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기를 잠시.
“일단 곤륜파의 부상자들부터 치료해요.”
초악량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단악선의 결정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늘 그랬듯 단악선은 눈앞의 생명이 먼저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 * *
늦은 밤.
폐허로 변한 비탈 곳곳에 피어오른 모닥불이 어둠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사위는 적막했다.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신음, 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흐느낌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산정을 향해 내달리는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추위를 피할 공간도 여의치 않았다.
이미 삼성요 일대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닥불의 온기에 의지한 채 혹한의 칼바람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피부를 에이는 찬 바람에 의식을 회복한 굉성자가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굉성자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윽고 얼마 안 가 현실을 제대로 인지한 굉성자가 목이 터져라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부니임! 사혀엉!”
주먹으로 흙바닥을 내려치며 통곡하는 그 모습에 곳곳에 누워 부상을 추스르고 있던 곤륜 문하의 입에서도 오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과 반나절 전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문 대부분이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척박한 곳에서 함께 부대껴 온 세월이 얼마던가.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쌓아 온 추억이 이제는 날카로운 아픔이 되어 그들의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그때였다.
“형! 정신 차려!”
자신의 어깨를 붙드는 누군가의 억센 손길을 깨달은 굉성자가 눈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한 굉성자가 돌연 울컥 핏물을 게워 냈다.
미처 내상을 완벽히 다스리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이 격동하자 애써 눌러 두었던 내상이 다시 도진 것이다.
자칫 주화입마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
황급히 굉성자의 혈도를 짚은 단악선이 침을 꺼내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신중하게 침을 놓길 잠시.
단악선이 창백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조치해 상태가 악화되는 건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고 좀 쉬어라.”
“그래, 단 의원. 이러다 단 의원이 먼저 쓰러지겠어.”
범계위도 초악량을 거들었다.
천마를 상대했던 탓에 정작 단악선 본인도 부상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내상을 다스리긴커녕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전 아직 여유가 있지만 다른 환자들은 아니에요.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해요. 때를 놓쳐 후회하느니 지금 당장 힘든 것이 나으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색은 그게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호흡도 거칠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단악선은 계속해서 환자들을 찾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곤륜 문하들 중 그나마 운신이 가능한 몇 명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무너진 전각을 뒤져 내상을 다스리기 위한 치상단과 붕대로 쓸 면포를, 다른 이들은 담요와 식량 등을 꺼내 왔다.
신마삼존 역시 곳곳으로 흩어졌다.
혹시 모를 다른 생존자를 수색하는 한편, 내공을 이용해 죽어 가는 이들의 생명을 붙들어 조금이라도 치료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되진 않았다.
쉰 명이 넘는 곤륜 문하를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시켜 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꼬박 밤을 지새운 단악선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내상을 다스릴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좌정한 채 운기요상을 하는 단악선 주변을 신마삼존이 품자 형태로 에워싸 호법을 섰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곤륜 문하들은 동문의 시신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굉성자도 있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굉성자는 쉬지 않고 비탈 곳곳을 누볐다.
당장 감내해야 하는 슬픔과 분노가 버거웠지만 비통함을 안고 먼저 간 동문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둘, 주변에 늘어 가는 돌무덤을 눈에 담은 굉성자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밀려드는 암담함에 눈앞이 아득했다.
사부님을 포함한 광 자 배 항렬 위로는 생존자가 전무했다.
가장 선두에서 천마와 맞섰기 때문이다.
졸지에 자신을 포함한 굉 자 배가 곤륜파의 가장 웃어른이 된 상황.
그것도 고작 오십 명 남짓에 불과했다.
제대로 운신할 수 있는 사람은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사숙…….”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굉성자는 울먹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어린 제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도적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수습 제자였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굉성자는 울컥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겁먹고 당황한 어린 문하 앞에서 이를 내색할 순 없는 노릇.
“장문인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더냐.”
굉성자의 두 눈 위로 결연한 의지가 자리 잡았다.
비로소 자신들이 나아갈 길이 보였던 것이다.
“곤륜지의, 무처부재.”
그렇게 운을 뗀 굉성자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을 이어 갔다.
“앞서 보여 주신 어른들의 의지에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또한 그 유지를 이어 나갈 뿐. 몇 번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우리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굉성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마지막 한 명만 남더라도 우리는 곤륜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가슴속으로 되뇌고, 또 깊이 새기는 굉성자였다.
다음 날 아침.
단악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슴에 쌓였던 탁기를 길게 뱉어 내며 신형을 일으킨 단악선은 곧바로 환자들의 치료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천운으로 환자들의 상세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사이 곳곳에 새로 생겨난 돌무덤을 바라본 단악선의 눈 위로 저릿한 아픔이 번져 갔다.
곤륜에 머무는 동안 친분을 다졌던 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단악선은 다시 한 번 치료를 강행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이르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저 멀리.
눈 덮인 산맥을 응시하던 단악선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다.
“정말 강했어요.”
말없이 자신 곁에 선 세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직접 마주한 천마의 무위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껏 몇 번이고 벽을 넘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천마를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무모했다.”
초악량의 지적에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에는 정말…….”
잠시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을 토해 냈다.
“그자를 죽이고 싶었으니까요.”
슬쩍 일행 쪽으로 다가오던 가두달이 흠칫하며 걸음을 멈춰 세웠다.
서슬 퍼런 단악선의 눈빛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본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린 것도 그때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굉성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 무엇으로도 지워 낼 수 없는 아픔이 배어 있는 눈빛은 마주하기 힘들었다.
‘내가 저들의 신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단악선이 자책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이 마치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굉성자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고맙다, 악선아.”
그 한마디에 단악선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미안해. 굉성자 형. 나 때문에…….”
굉성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잖아? 마인 놈들을 지옥에 처넣는 걸 하늘이 부여한 소명으로 삼은 우리라는걸. 그런 우리가 네 탓을 할 리가 없잖아.”
굉성자가 단악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교와의 싸움은 우리의 삶 그 자체고, 때론 기쁘게 맞는 죽음이야. 그러니 안타까워하지 마.”
이어진 굉성자의 말에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보다는 우리를 자랑스러워해 줬으면 좋겠어. 먼저 가신 영령들께서 가슴을 펴고 웃으실 수 있도록.”
“흐윽…….”
결국 단악선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