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8)
신마의선-408화(408/500)
신마의선 (408)
“그럴게. 늘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곤륜을 기억할게.”
단악선의 말에 굉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누구보다 가장 앞서 마교를 상대하고 있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아.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알지. 그러니 괜한 죄책감은 갖지 마. 무엇보다 네가 있어서 이 정도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어.”
마교와의 싸움은 언제나 있어 왔고, 이와 같은 상황도 늘 각오하고 있던 곤륜이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야.”
눈앞에서 죽어 가는 동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지독한 무력감에 굉성자가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숙인 채 분한 눈물을 떨구던 굉성자가 눈을 들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니 절대 멈추지 마. 마교 놈들을 이 땅에서 쓸어 내 버릴 때까지.”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당부하는 굉성자의 말에 단악선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단악선의 연락을 받은 신마상단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곤륜파의 생존자들을 중원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남아 있어 봐야 온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곤륜 문하들은 순순히 단악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악선의 요청으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무위 소속의 사파 고수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부상자들을 호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동 중에 혹시라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었기에 신마의가 소속 의원들도 동행했다.
풍진성이 직접 이끌고 나선 의원들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단악선의 당부에 풍진성이 안쓰러운 눈빛을 흘렸다.
“걱정 마십시오. 그보다 곡주님이 더욱 걱정입니다.”
“전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어련할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풍진성이 쓰게 웃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떠나는 내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풍진성이었다.
그렇게 풍진성과 헤어진 단악선이 향한 곳은 행렬의 후미 쪽이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단악선의 인사에 유달리 큰 키를 지닌, 비쩍 마른 초로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위룡이었다.
그가 바로 이번 행렬의 호위 책임자였다.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에 대비해 단악선은 현재 무위 안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인 그에게 호위를 맡아 달라 부탁했고, 의외로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강위룡의 대답에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마상단 덕에 최상의 재료를 수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만들어 온 도원향의 품질을 더욱 높일 수 있었지.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에 비해 호위 한 번 해 주는 거야 어렵지도 않았다.
주광도귀다운 대답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 역시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윽고 부상자들을 실은 신마상단의 행렬이 모두 하산하자 강위룡도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 단악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굉성자와 그의 사형들인 굉 자 배 곤륜 문하였다.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려요.”
단악선이 굉도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태로 졸지에 곤륜파에서 가장 높은 배분이 된 그였다.
“우리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 말과 함께 굉도자는 뒤쪽에 서 있던 자신의 막내 사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실 그는 부상을 입지 않은 곤륜 문하를 모아 추격대를 결성하려 했었다.
말이 좋아 추격대지, 결사대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긴 시간에 걸친 단악선과 굉성자의 설득에 결국 고집을 꺾었다.
“챙겨야 할 건 모두 챙겼나?”
“예, 대사형. 몇몇 유실된 물품을 제외하면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수습했습니다.”
굉도자의 물음에 그의 사제들이 곧장 대답했다.
그들은 저마다 큰 짐을 둘러매고 있었다.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독문절학과 진산절예가 기록되어 있는 비급들이었다.
굉도자가 단악선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곤륜은 귀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돌아서기 직전 그들은 곤륜의 봉우리 하나하나를 자신들의 눈에 깊이 새겼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면서.
굉 자 배 곤륜 문하들마저 산을 내려가자 상단을 따라왔던 승려 한 명이 단악선을 향해 합장했다.
포달랍궁의 소식을 전했던 라마승이었다.
“저도 이만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하고 싶었지만 당장 주어진 일이 있어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단악선의 심정을 헤아린 라마승이 조용히 웃었다.
“저는 이대로 큰 스승님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단악선은 문득 저들이 믿는 윤회 사상을 떠올렸다.
“부디 뜻하시는 바를 꼭 이루세요.”
“그분만 찾는다면 흩어진 사람들도 다시 모일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일단 힘을 모으겠습니다. 저희와의 약조는 언제나 유효하니 필요할 때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는 라마승을 배웅하며 단악선은 한참 동안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악선을 부르는 음성이 있었다.
“단 의원. 이쪽으로.”
초악량이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초악량을 따라 멀리 떨어져 있는 공터로 향한 단악선은 봉분조차 쓰지 못하고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을 마주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사망한 마교 쪽 무인들이었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보니 얼굴이 익숙한 자들이 있더구나.”
초악량이 가장 가까운 곳에 누워 있는 시신을 가리켰다.
“이자는 청면수라(靑面修羅)라 불리는 자로, 이름은 원효상이다. 사천 일대에서 꽤나 악명을 날리던 놈이었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악량은 시신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들의 명호와 이름을 열거했다.
“하나같이 사파에서는 한가락 하던 놈들이었지. 무림맹의 토벌 선언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들 상당수가 마교가 포섭한 사파의 고수들이라는 뜻이군요.”
일부는 얼굴이 크게 손상되어 신원을 알아내지 못한 시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사파에 적을 두고 있던 중원의 고수들이었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고작 일개 마졸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공 수위가 높다 싶었다.
마공을 익혀 기존의 무위가 한 차원 더 높아진 것이 분명했다.
“수보의 말에 따르면 마교가 완성을 앞둔 호교마군의 숫자는 천 명에 달한다고 했어요. 만약 이들이 그 일부라면…….”
단악선이 말끝을 흐렸다.
이 정도 수준의 정예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온다면 과연 어느 문파가 막아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파일방이 한자리에 결집해 정면으로 싸운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어 보였지만, 과연 마교가 그렇게 싸워 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자들은 이지를 상실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이성을 가지고 마교의 명을 수행한다는 의미죠. 어째서 그들은 마교에 충성하고 있는 걸까요?”
“그야 천마의 무공에 압도되어 그런 것이겠지.”
초악량은 과거 남궁세가를 방문했을 당시 남궁백과 나누었던 대화를 언급했다.
정마대전 당시 회수했던 마공의 비급들을 바탕으로 그 파훼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던 남궁백이었다.
나아가 마공과 상극인 반마공(反魔功)을 창안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그러나 결국 이를 포기했다.
마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연구를 하던 이들 중 마공에 심취해 심마에 빠진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공에는 상위 무공을 지닌 자를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속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했지.”
그게 마교의 무서운 점이기도 했다.
상급자의 명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데에는 그와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그 명령을 내리는 상대가 천마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남궁백도 결국 뜻을 꺾고 모든 계획을 폐기했다.
마공 연구가 오히려 무림맹 내부에 마교의 세작을 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있어요.”
눈빛으로 반문하는 초악량에게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바로 반발심이에요.”
아무리 무림맹의 토벌을 피해 마교에 의지했다 하더라도 심리적인 저항감이 없을 리 만무했다.
사파인도 결국에는 중원의 무림인.
마교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증오하는 건 정파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초악량과 범계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정파와 사파가 유일하게 협력하는 때가 바로 마교가 발호했을 때라고 할까?
아무리 서로를 증오하더라도 그때만큼은 합심하며 마교에 맞서는 것이다.
모르면 몰랐을까, 자신들을 회유한 곳이 마교라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을 리 없었다.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시신에 남겨진 상흔이나 주변의 남겨진 전투의 흔적이 어딘가 눈에 익은 건 왜일까요?”
비로소 초악량도 이상함을 느끼고 유심히 시신과 주변을 관찰했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나직하게 탄성을 터트렸다.
“이건?”
“아무래도 비슷하죠?”
초악량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황보세가를 습격해 전멸시켰던 남궁호.
몇 번을 다시 봐도 당시 황보세가 소속 무인들의 주검에서 발견한 흔적과 매우 흡사했다.
“앵속분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남궁가주는 이지가 온전히 남아 있었죠. 하지만 감정은 몹시 격앙된 상태였어요.”
그처럼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라면 마공을 통한 정신적인 구속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무엇보다 앵속분은 자체적인 중독성과 의존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약을 이용해 이자들을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구나.”
앵속분과 이를 정제해 더욱 위력을 높인 마약을 유통한 곳이 백사회였으니 얼추 이야기가 맞아떨어졌다.
가만히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 아냐? 이놈들이 마교의 명령을 따른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잖아.”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남아 있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탄성을 흘렸다.
“전 이들을 치료할 수 있거든요.”
“아하!”
“일단 이자들 중 한 명이라도 생포를 해야겠어요. 마약을 끊고 마공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분명 우리 쪽으로 돌아설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호교마군에 속한 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정보가 많을 가능성이 컸다.
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한 단악선이 눈빛을 빛냈다.
* * *
“그래도 이번 원행으로 인한 소득이 아주 없지는 않군. 본 교의 전력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었으니까.”
일렁이는 불빛을 흔들며 내실 안에 울려 퍼진 음성.
조음서를 필두로 한 사마존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깊게 고개를 조아렸다.
“하나…….”
태사의에 앉아 있던 종극진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방해 세력인 신마의선과 신마삼존.
그들과 조우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물러선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나는 처리할 수 있으나, 둘은 무리다.’
직접 손을 교환해 본 망산초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른 두 사람.
초악량과 한설화였다.
사마존과 격돌한 두 사람의 무위는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것 이상이었다.
‘그사이 더 강해졌다는 것인가.’
초악량은 둘째 치고, 한설화는 분명 검마와 염마 둘을 상대로 비등한 싸움을 이어 갔다 하지 않았던가.
비록 검마가 죽고 염마는 부상을 않고 돌아서야 했지만 한설화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들었다.
그런데 막상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한설화의 무공은 기존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사마존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을 터.
눈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천극신단은 언제 완성되지?”
종극진의 물음에 조음서가 황급히 대답했다.
“앞으로 한 달 안에 완성해 보이겠나이다.”
“보름 주지.”
조음서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곧바로 부복하며 외쳤다.
“명을 이행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