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09)
신마의선-409화(409/500)
신마의선 (409)
종극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일으켰다.
“연공을 준비하도록. 신단이 완성되는 즉시 폐관에 들겠다.”
그 말에 사마존이 반색했다.
“그동안 교의 운영은 맡기겠다.”
사마존이 동시에 외치며 부복했다.
“앙세천하! 만마봉공!”
종극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비로소 사마존은 신형을 일으켜 시선을 교환했다.
“시간이 별로 없소.”
음존 조음서의 말에 염존 마영기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래서 교주님께서도 천극신단의 완성을 앞당기라 하신 것이겠지.”
사마존의 나머지 두 사람.
각각 도존과 권존이라 불리는 척대광과 혁련호가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호교마군이 완성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오.”
“하지만 지금도 놈들은 신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터. 이미 범위를 바짝 좁혀 오고 있소.”
“하필 이럴 때 수보를 잃다니.”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윤봉의 죽음은 그만큼 뼈아팠다.
교의 행보와 관련된 계획 대부분을 실질적으로 입안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방법을 찾아야 하오. 아무리 교주님께서 연공을 마친다 해도 신지가 먼저 무너지면 방법이 없소.”
아무리 고금제일의 무공을 지녔다 해도 천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뒷받침해 줄 정예 전력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계속 겉돌기만 하는 이야기가 답답했던지 혁련호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다른 세 사람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현재의 상황이 답답하기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교주인 종극진과 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신묘한 계책을 내는 건 다른 영역이었다.
애초부터 의지와 재능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이래서야 시간만 낭비할 뿐이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소?”
척대경의 반문에 조음서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말을 흘리는 그 모습에 다른 마존 셋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지 조음서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곤 고민 끝에 한 사람의 존재를 언급했다.
“상당히 뛰어난 머리를 지닌 자가 있소.”
“그게 누구요?”
혁련호의 반문에 조음서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자요.”
“설마……?”
뒤늦게 조음서가 언급한 자가 누구인지 깨달은 마존들이 저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그자를 믿을 수 있겠소?”
마영기의 물음에 조음서가 쓰게 웃었다.
“일단 의견을 들어 보고 판단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소만…….”
무엇보다 당장은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만큼은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자존심 문제를 떠나, 이 사실이 보고되었을 때 떨어질 천마의 추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저마다 생각에 잠긴 채 고민을 거듭하기를 잠시.
마영기를 시작으로 이윽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본 단의 요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하 뇌옥이었다.
빛 한 자락 들지 않아 온통 어둠으로 가득한 곳.
교 내에서도 가장 지독한 장소인 금명옥(禁明獄)이었다.
본래는 정마대전 당시 붙잡았던 중원 무림인을 구금하기 위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당시의 생존자가 남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그런 그곳에 유일하게 투옥되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윽고 금마옥에 도착한 사마존은 곧바로 지하로 이어진 수레에 몸을 실었다.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해 오르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잠시 후 수레가 바닥에 닿자 그들은 횃불을 밝히고 전면에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로 들어섰다.
그런데…….
뇌옥 안으로 들어선 직후 사마존은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본래 금마옥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덧없이 흩어져 간 생명들로 인해 피맺힌 원한과 음습한 귀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상당히 깔끔하고 제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던 컴컴한 내부 천정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야명주(夜明珠)가 박혀 있었고, 곳곳에는 산더미 같은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던 뇌옥의 모습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들고 온 횃불이 머쓱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뇌옥 중앙에서 태연히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여유롭게 책을 넘기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분명 자신들의 인기척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사마존으로서는 몹시 생경한 태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 놀랄 것 없소. 그대들의 수보가 나름 친절을 베푼 것이니까.”
청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한 채였다.
“보통 이곳에 갇히면 머지않아 눈이 멀거나, 미쳐 버린다고 하더군.”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은 가장 먼저 인간의 감각을 앗아 가고 종국에는 정신도 붕괴시키는 법.
“그만큼 내가 당신들에게 중요한 인질이라는 것이겠지.”
탁.
책을 덮은 청년이 눈을 들어 사마존을 응시했다.
“그래서? 내게 무슨 볼일이요?”
사마존의 눈썹이 꿈틀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청년의 태도에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놈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 마뜩지 않기도 했다.
사마존이 입을 다물고 있자 청년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펼쳐 놓은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변색되어 바스러진 종이 상태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오래전부터 해 온 작업인 듯싶었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청년의 행동에 사마존은 내심 이를 갈았다.
그러나 자고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눈빛으로 채근하는 다른 마존들의 등쌀에 조음서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그럼 당신도 여기 갇혀 보든가.”
“뭐라?”
발끈하는 조음서를 향해 청년이 피식 조소를 던졌다.
“이딴 곳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소?”
청년이 손에 든 목탄을 내려놓으며 조음서와 시선을 마주했다.
“딱 봐도 나를 세가로 돌려보내기 위해 내려온 건 아닌 듯싶은데……?”
“…….”
“게다가 육마존 중 네 명이나 이곳에 왔다는 건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의미고.”
청년이 얄밉게 씨익 웃었다.
“어디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왔나 봅시다.”
“놈! 어디서 감히 그딴 허장성세를!”
조음서의 일갈에도 청년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일신의 모든 무공이 전폐된 상태에서도 태연하게 그의 살기를 받아 내는 배포 하나만큼은 사마존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햇볕을 쐬지 못해 창백한 청년의 얼굴 위로 한 줄기 음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묘한 힘을 지닌 미소였다.
“아쉬운 쪽이 패를 먼저 까는 건 거래의 기본 아니오?”
“거래?”
조음서의 반문에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말이오.”
청년이 손을 들어 바닥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켰다.
“신지에 설치되어 있는 극멸혼돈암진의 약점을 보완했소. 여기에 표시된 부분만 보완해도 생문은 사라질 터. 이름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절진으로 거듭날 것이오.”
그 말에 조음서를 비롯한 사마존이 깜짝 놀랐다.
“극멸혼돈암진이라면…….”
“설마 귀수(鬼手)의?”
“허튼소리! 탁요신이 괜히 불가해(不可解)라 불리겠는가!”
사마존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강호의 전설적인 기인인 무불능요(無不能要) 탁요신.
강호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혼천미리암진(混天迷理暗陳).
이와 더불어 그의 마지막 역작으로 알려진 완벽한 기환진(奇幻陳)에 약점 따위가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반응에 청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들……. 수보가 보낸 것이 아니었군?”
“……!”
뜨끔한 사마존이 침묵을 이어 가고 있을 때.
청년이 돌연 바닥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알 만하군, 알 만해!”
뭐가 그리 웃긴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포복절도하는 청년의 모습에 참다못한 혁련호가 고함을 내질렀다.
“닥쳐라! 그 혀를 뽑아 버리기 전에!”
“수보에게 문제가 생겼소?”
사마존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이곳에 갇혀 있어 외부의 정보가 단절되어 있음에도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해 낸 청년의 비상함에 기가 질린 것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사마존의 모습에 청년이 아쉽다는 듯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하긴, 그와 대화를 나눈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
언제 웃었냐는 듯 금세 우울한 눈빛을 흘리는 청년의 모습에 조음서는 내심 당황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서로 간만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지.’
결국 아쉬운 사람이 먼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윽박질러 봐야 역효과만 날 것이 분명했기에 조음서는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탁요신의 역작에 약점이 존재한다니 놀랍군. 그리고 그걸 발견해 보완한 네 역량은 더욱 놀랍고.”
청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완벽했겠지. 하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어람(靑於藍)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오. 완벽하게 보이던 것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지. 학문이나 무공도 마찬가지고.”
“과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신산효재(神算曉才)라는 수식어에 부족함이 없군. 제갈세가의 차기 가주다워.”
청년의 눈에 기광이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차기 가주? 내가 말이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조음서가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거짓말을 늘어놓아 봐야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이다.
“차기 가주를 결정하는 조령을 자네 부친이 발표했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야.”
“결국……. 그리되었나.”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홀로 침음성을 흘리는 제갈산에게 조음서는 제갈연의 주도로 남궁백이 실각한 사실과 구파일방을 배제한 채 명망을 지닌 무림의 세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무림맹이 재결성된 이야기를 언급했다.
마치 외부와의 소식과 단절된 그를 위해 인심을 쓰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제갈산은 그런 조음산을 빤히 응시했다.
“결국 무림맹은 와해되었겠지?”
조음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어떻게?”
“단능단제, 남궁백. 애석하게도 연 누님은 그분의 역량에 한참 미치지 못하니까. 구파일방이 마지못해 무림맹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던 것도 오직 그분에 대한 마음의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고.”
한숨을 내쉰 제갈산이 재차 물었다.
“그래서? 누님은 어찌 되었소?”
“이만큼 내어 줬으니 이제는 네 차례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생색은……. 뭐,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말이야…….”
메마른 웃음을 풀썩이던 제갈산이 웃음을 거두며 조음산을 응시했다.
“내 능력은 이미 몇 번이나 증명하지 않았소? 내가 보완해 준 마공의 약점과 진법만 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
조음산은 침묵했다.
그로서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제갈산이 어이없는 눈빛을 흘렸다.
“그런가? 윤봉 그 늙은 고자가 자신의 업적인 양 가로채 간 것이로군. 고작 이따위 알량한 대가로 말이야.”
상황이 이쯤 되니 조음서는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봐야 의미가 없다 판단했다.
“네놈의 머리가 필요하다.”
“그럼 나를 풀어 줄 것이오?”
“솔직히 말해 그건 내 권한 밖이다.”
“훗. 그나마 감언이설로 흔들어 대진 않으니 윤가 늙은이보다는 낫군.”
제갈산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뭘 지불하겠소? 내 머리를 빌리는 값은 결코 싸지 않소. 게다가 방금 전에 가격이 더 올랐지.”
“어째서지?”
“더 이상 헐값에 넘기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리고 당신들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아 버렸거든.”
제갈산의 움푹 팬 두 눈에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안광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천하의 조음서조차 간담이 서늘해지는 눈빛이었다.
그만큼 섬뜩한 광기로 점철된 기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