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0)
신마의선-410화(410/500)
신마의선 (410)
조음서가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다른 마존들을 바라봤다.
이미 협상의 주도권이 완벽하게 제갈산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그들이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자, 말해 보시오.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특유의 서늘한 미소를 말아 올리는 제갈산의 모습에 조음서는 순간 울컥했다.
“적어도 네놈의 목숨은 보장하마.”
계속해 보라는 듯 제갈산이 고개를 까닥였다.
“거기에 중원의 모든 문파를 쓸어버리더라도 제갈세가만큼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겠다 약조하지.”
“그리고?”
“…….”
이어지는 조음서의 침묵에 제갈산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고작 그것뿐이오?”
제갈산이 피식 웃었다.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웃음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말씀드렸을 텐데? 더 이상 헐값에 나를 넘기지 않겠다고.”
“노옴!”
권존.
척대광의 쩌렁한 음성이 뇌옥 안을 흔들었다.
불같은 성정을 지닌 그가 사실 이만큼 참은 것도 용한 일이었다.
콱.
철문을 움켜쥔 척대광이 섬뜩한 안광을 흘리며 으르렁댔다.
“관을 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릴 종자로고! 정녕 뜨거운 맛을 보고 싶은 것이냐?”
“이런 것 말인가?”
“……!”
척대광이 멈칫했다.
웃으며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이는 제갈산의 모습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손톱을 뽑고, 그러고 나서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 냈지. 지혈을 빙자해 절단면을 불로 지져 가면서 말이야. 그것도 정성스레 공을 들여 아주 느리고 천천히.”
제갈산의 양손은 손가락이 모두 한 마디씩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제갈산이 키득대며 사마존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윤봉, 그 늙은 고자가 동창에서 잔뼈가 굵었음을 몰랐을 리 없을 텐데? 그래서 그런지 고문 수법에는 도가 텄더군.”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척대광을 향해 제갈산이 광기 어린 미소를 던졌다.
“기대하지. 부디 수보보다는 실력이 나았으면 좋겠어. 결국 그자도 밑천이 떨어져 내게 애원했거든.”
“이 미친놈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척대광이 살기를 뿜어내는 순간.
“그만!”
이대로는 답이 없다 판단한 조음서가 척대광을 막아섰다.
그러곤 나직한 한숨과 함께 제갈산을 노려봤다.
“원하는 걸 말해 봐라.”
“처음부터 그리 나왔어야지. 나를 살려 준다? 우리 세가를 건드리지 않겠다?”
제갈산이 픽 웃었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게 살아남아 봐야 어차피 이 안에서 썩어 갈 내게 하등 영향도 없는 이야기인데. 하물며 세가는 중원을 배신한 변절자 취급을 받을 테고.”
“원하는 걸 말하라 했다.”
조음서가 자신의 말을 자르자 제갈산이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제갈산의 눈빛.
그 안에서 일렁이는 광기에 가까운 열기를 마주한 조음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조음서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제갈산이 불쑥 입을 열었다.
“비급을 원한다.”
“비급?”
조음서의 반문에 제갈산이 느긋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한때 호교십위라 불렸던 당신네들의 진짜 마공 비급. 그 절학들을 가져다주면 내 입이 열릴 것 같소.”
조음서를 비롯한 마존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미친놈이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문득 조음서는 과거 제갈산이 마교의 이목에 걸려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중원에 혼란을 야기하고, 주화입마에 이른 고수들을 포섭하기 위해 뿌렸던 가짜 마공 비급.
놈은 그 마공서에 현혹되어 강명객잔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걸로 뭘 하려는 거지?”
조음서의 반문에 제갈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뭘 하긴. 연구지.”
“연구?”
“그것 말곤 달리 할 것도 없으니까.”
“하!”
조음서는 기가 막혔다.
공대와 반말을 오가는 놈의 태도는 둘째 치고, 자신들의 성명절학이 놈에게는 그저 무료함을 달랠 심심파적(破寂)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조음서가 말이 없어지자 이를 오해한 제갈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혹시나 내가 마공을 연성할지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소. 그 고자 영감이 내 단전을 이리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 말과 함께 제갈산이 윗옷을 걷어 올렸다.
그의 아랫배에 남겨진 끔찍한 흉터.
화상으로 일그러져 아무렇게나 아문 흔적으로 한눈에 봐도 기해혈이 망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저래서야 무슨 수를 쓴다 해도 내공을 담을 수 없었다.
조음서가 다른 마존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놈에게 비급을 넘긴다 한들 나중에 죽이면 그만.
자신들의 절학이 외부로 유출될 일은 없었다.
더구나 무공을 익히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니 후환을 우려할 필요도 없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천마의 무공이라면 그들의 권한 밖이었지만 자신들의 무공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그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좋다. 그리하지.”
조음서의 대답에 제갈산이 빙긋 웃더니 살가운 눈빛을 건네 왔다.
“자, 그럼 이제 문제를 말해 보시오.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요. 그래야 혹시 모를 변수가 없도록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
자존심이 몹시 상했지만 조음서는 이내 현재 처해 있는 마교의 상황과 당면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언급했다.
그렇게 설명이 길게 이어지는 와중에 제갈산은 간혹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탄성을 흘리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흠. 신마삼존의 무공이 그렇게까지 강해졌단 말이오? 놀랍군, 정말 놀라워.”
고개를 끄덕이던 제갈산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뜬 제갈산이 슬며시 웃었다.
“기실 어려운 문제도 아니로군.”
“방법이 있느냐?”
“간단하오. 그 해결책이 너무 쉬워 미안할 만큼.”
“간단하다고?”
“그렇소. 그러니까 핵심은 신지의 마인들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만 벌면 된다는 것 아니오?”
조음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산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들이 신지를 발견하게 내버려 두시오.”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발끈하는 조음서를 향해 제갈산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신지를 발견하면 이후 어찌 행동할 것 같소?”
“중원의 힘을 모아 치려 하겠지.”
“맞소. 정마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단번에 승부를 결정지으려 하겠지. 신지를 쓸어 낸 뒤, 그 기세를 몰아 바로 이곳 마교의 근거지로 올 것이고.”
“그걸 알면서 그딴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중원과 이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 생각하시오?”
“……?”
“저들이 세력을 집결시킨다면 그 지역은 필시 사천이 될 터. 많은 인원이 일시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동도 더뎌질 것이오.”
이어진 제갈산의 말에 조음서가 침음성을 삼켰다.
“저들이 힘을 모아 신지로 향한다면 반대로 중원은 텅텅 빈 무주공산과 다를 바 없소. 당신들이 중원으로 치고 들어가 난장을 벌인다면 결국 저들의 보급에도 문제가 생길 터.”
“으음…….”
“저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대로 신지를 공격하면 자신들의 터전이 쑥대밭이 될 것이고, 애써 결집한 세력을 물리자니 그건 그것대로 성과 없이 일방적인 피해만 입게 되는 걸 테니까.”
“서로의 요지를 맞바꾼다는 것이냐?”
“이 계획의 핵심은 상대에게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히느냐요.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소모전은 피할 수 없소.”
제갈산의 여유로운 미소 너머로 분명한 확신이 느껴졌다.
“신지에서 육성하는 호교마군이 아직 부족하다곤 하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 않았소? 어느 정도는 시간을 끌며 버틸 수 있겠지. 반면 정예가 빠져나간 중원은 빈집이나 마찬가지고. 어느 쪽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소?”
“…….”
“결국 그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소.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저들의 근거지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태겠지. 이 시점에서 중원을 쓸어버린 당신들의 정예가 힘을 결집해 농성에 들어가고, 연공을 마치고 나선 천마가 남은 병력을 이끌고 놈들의 배후를 친다면 중원 측은 고립된 상태에서 앞뒤로 적을 맞아 싸우게 될 것이오. 상황이 그리된다면 어느 쪽이 유리하고 불리한지는 굳이 가늠할 필요도 없지.”
듣고 보니 매우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조음서를 향해 제갈산이 씨익 웃었다.
“그럼 약속은 지키리라 믿소.”
제갈산의 말에 조음서가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
이 정도면 얻어 낼 건 얻어 낸 셈.
고문으로 어딘가가 망가진 것이 분명했지만 확실히 놈은 쓸모가 있었다.
“걱정 마라.”
돌아서는 조음서를 제갈산이 황급히 불러 세운 것도 그때였다.
“아! 그리고 또 하나!”
“……?”
“소군을 불러 주시오.”
“소군?”
의아한 눈빛을 흘리던 조음서가 뇌옥 입구 쪽에서 죽은 듯 부복하고 있던 간수를 향해 물었다.
“아는 바가 있느냐?”
간수가 황급히 대답했다.
“왕소군(王昭君)이라고, 놈에게 제공되는 창부(娼婦)의 이름입니다.”
이어진 간수의 설명에 조음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열흘에 한 번씩 그 여자를 놈의 뇌옥 안에 넣어 줍니다.”
조음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수보가 그런 걸 허락했다고?”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그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혹 어린 조음서의 눈빛에 간수가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혹시라도 그 여자로 인해 이곳 내부의 사정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우려하시는 것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째서지?”
“그건…….”
한쪽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염존 마영기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데려와라.”
조음서와 달리 마영기는 한껏 호기심을 드러냈다.
왕소군은 서시, 양귀비, 우희와 더불어 전설 속의 사대 미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여인.
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제갈산 정도나 되는 자가 저토록 목을 매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뭐야?”
잠시 후 간수가 데려온 여인의 용모를 확인한 마영기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내심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다른 마존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같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여인에게 왕소군이라는 이름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처럼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음서는 어째서 수보가 그 여인에게 이곳 중지의 출입을 허락했는지 깨달았다.
“맹인에 귀머거리인가?”
못생긴 건 차치하고, 이 안의 정보를 가지고 외부에 전달할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눈이 멀어 있으니 글을 읽을 리 만무했고, 귀가 들리지 않으니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보를 전달할 방법 자체가 없는 것이다.
조음서가 실소하며 제갈산을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천생배필이군.”
끼리끼리 잘 만났다는 의미가 담긴 노골적인 조롱에도 제갈산은 히죽 웃었다.
“이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해 봐야 몇 가지나 되겠소?”
조음서는 제갈산의 눈빛 너머로 일렁이는 욕정의 불꽃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조음서가 조용히 웃었다.
“우리에게 협력한다면 이 정도 아량이야 얼마든지 베풀어 줄 수 있지.”
의외로 제갈산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앞서 놈을 겪어 왔던 수보가 이런 방식을 취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음서가 비릿한 웃음을 건네며 돌아섰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게.”
결국 아무리 잘난 척해 봐야 결국에는 놈도 나약한 인간.
이곳 금명옥에 갇힌 이상 밑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제갈산과 대화하던 내내 불쾌했던 기분이 단번에 사라졌다.
천기신산(天機神算)의 재능을 가졌다는 신기제갈의 차기 가주.
그의 몰락이 중원 무림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매우 기꺼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