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1)
신마의선-411화(411/500)
신마의선 (411)
먼동이 터 오는 이른 새벽.
가부좌를 튼 채 운기행공을 하던 단악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단악선 곁을 지키며 호법을 서고 있던 초악량이 말을 건넨 것도 그때였다.
“서두르는구나.”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신형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따라잡고 싶어서요.”
“조급해할 것 없다. 이미 네가 도달해 있는 경지는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단계를 아득히 넘어섰다. 조바심을 낸다 한들 도움 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사실 단악선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린 나이에 고수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다.
“천마를 네가 직접 상대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보고만 있지도 않을 테고.”
“알아요. 다만 시간이 주어진 이때 조금이라도 노력할 뿐이에요. 적어도 그때와 같은 무력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묵룡을 집어 든 단악선이 천마와 부딪쳤던 당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묵룡을 휘두르며 땀을 쏟던 그때.
후욱.
갑자기 밀려든 후끈한 열기에 단악선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범계위의 손에는 벌겋게 달궈진 칼과 검이 들려 있었다.
마교도들이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흘리고 간 무기들이었다.
끼기긱.
범계위의 손에 들려 있던 병장기들이 비명을 토한 것도 동시였다.
벌겋게 달궈진 금속을 힘으로 욱여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삼매진화를 운용하는 범계위의 손에서 시뻘건 쇳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뭐 하냐? 너.”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손이 허전해서.”
잠시 후 완성된 쇠몽둥이들을 몇 번 휘둘러 본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이 느낌이 아닌데…….”
“그새를 못 참냐. 기다리면 알아서 가져다줄 것을.”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버럭 역정을 냈다.
“언제 또 놈과 마주칠 줄 알고? 다음에는 반드시 그놈 대가리를 깨야 하니까 그렇지!”
천마에게 밀린 것이 아직까지 분한지 범계위가 씩씩대며 콧바람을 뿜어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부서진 범계위의 대초자곤은 그 파편을 모두 수거해 신마상단에 맡겼다.
남창에 있는 묵가철장.
운철을 벼려 단악선에게 묵룡을 만들어 준 그곳의 장주 묵비가 흔쾌히 직접 대초자곤을 다시 만들어 주겠다 장담했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진 것도 그때였다.
“아직도 무기 따위에나 의지하다니.”
“뭐?”
발끈하던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도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어쩌겠나? 실력이 모자라면 무기에라도 기대야지.”
범계위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휘둘러 천강마벽을 갈라 낸 인간이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분한 표정으로 초악량과 한설화를 노려보던 범계위가 홱 고개를 돌려 단악선을 바라봤다.
“들었지? 단 의원.”
“예?”
“방금 저 말은 나뿐만 아니라 한시도 묵룡을 손에서 놓지 않는 단 의원도 모욕한 거라고.”
그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멈칫했다.
“흥! 가자, 단 의원. 우릴 무시하는 저 인간들하고 같이 움직일 필요 없어.”
별 시답지도 않은 일로 티격태격하는 세 사람의 모습에 가두달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끌려오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며칠 후.
신강과 접경한 야산에 도착한 단악선 일행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응시했다.
마교의 거점 중 한 곳으로 파악해 놓은 마을이었다.
“역시로군요. 이곳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청야전술(淸野戰術)인가.”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물자를 없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초토화 전술.
그래도 혹시 몰라 마을에 들어섰지만 폐허가 된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옥은 모조리 불에 타 잔해만 남아 있었고, 심지어 우물도 메워져 있었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예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도 상황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구나.”
곤륜파에서의 혈사가 일어난 지 한 달째.
그 이후로 단악선 일행은 마교도와 조우한 적이 없었다.
범계위가 나직이 툴툴댔다.
“그럼 어떡해? 이제 더 이상 추적할 곳도 없잖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고개를 들어 가두달에게 시선을 던졌다.
“남은 곳이 하나 있긴 해요.”
“……?”
의아한 표정을 짓던 가두달이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아니지?”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어요. 분명 가 아저씨는 마교의 본거지를 알고 계시죠?”
“그, 그게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애써 말끝을 흐리며 상황을 모면해 보려 하는 가두달이었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울상을 지었다.
“부탁드려요. 그곳으로 우릴 안내해 주세요.”
가두달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자신이 천마의 교주전에 들어가 섭선을 들고 온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시에 저들의 방비가 허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마대전을 치르느라 전력 대부분이 중원에 결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를 설명한들 단악선은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가두달이 애원하듯 초악량을 바라봤다.
다행히 초악량은 단악선의 의견에 반대를 표명했다.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한설화는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범계위조차 초악량의 의견에 동의했다.
“위험하다.”
“그래, 단 의원. 아무리 열 받아도 그건 아닌 것 같아.”
모두의 우려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걱정 마세요. 당장 쳐들어가자는 게 아니니까요. 최대한 조심히 접근해 거리를 두고 정보를 모으자는 것뿐이에요.”
천마를 비롯한 마교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당연히 경계가 삼엄할 터.
그중 일부를 나포해 마교의 동향과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향후 머지않은 마교와의 일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단악선의 설명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초악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군.”
그 말에 가두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가는 겁니까?”
말없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에 가두달이 마지못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 * *
마교의 본단이 위치해 있는 신강의 묘처에 단악선이 일행이 도착한 것은 열흘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저 산만 넘어가면 놈들의 본단이 보일 겁니다.”
가두달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안전한 경로로 이동해 왔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마교도와 조우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마교도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은신한 채 기척을 감춘 채 이동하길 잠시.
기감을 펼치며 이동하던 초악량이 멈칫하며 일행을 제지했다.
“이건…… 진법?”
“어? 지난번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가두달이 의아해하는 사이 주위를 살피던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꽤나 정교한 진법이에요. 진입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우리의 존재가 드러날 거에요.”
나름 진법에 조예가 깊은 단악선이었다.
신마곡에 남겨진 혼천미리진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묘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형산파의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회하도록 하지.”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도 동의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진법이었다.
‘이건 마치…….’
유심히 진법을 관찰하던 단악선은 일대를 둘러싼 진법의 배치와 흐름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법을 건드리지 않도록 유의하며 이동하길 잠시.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 있었다.
이런 오지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저런 마을이 본단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기 사는 인간들이 전부 마교도라고?”
범계위가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당장 보이는 눈앞의 마을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이천 가구 이상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마을이 세 개나 더 있다니.
대충 가늠해도 적게는 만 명에서 많게는 이만 명은 헤아리는 규모였다.
“네. 마을들의 중앙에 위치한 계곡 내부에 거대한 공간이 있고, 가장 깊숙하게 자리 잡은 교주전을 필두로 마교의 핵심 전력이 머무는 전각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가두달의 설명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혜의 요새와 다름없는 지형과 건물 구조들로 인해 퇴로가 막히면 그곳이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접근하는 건 위험하겠어요. 일단 주변을 돌면서 기회를 봐요.”
유심히 마을을 관찰해 보니 급히 지어진 것이 분명한 가옥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각 거점에서 철수한 마교도들로 인한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경계가 꽤 삼엄하군.”
은신한 채 주변을 정찰하던 초악량의 말을 단악선이 받았다.
“분명 저들도 우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을 테니까요.”
확실히 마교의 본단답게 곳곳에 펼쳐진 감시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나마 신마삼존이나 단악선 정도나 되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였다면 진즉 들통이 났을 게 분명했다.
물론 타고난 도둑인 가두달은 예외였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봐야 의미가 없겠어요. 이제 목표를 정해야 해요.”
단악선의 말에 신마삼존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놈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던 건 주변을 에워싼 칠흑 같은 어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이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에요.”
분명 날이 밝으면 마교 측에서도 자신들의 사람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될 터.
그런 만큼 정보를 캐낼 대상을 물색하는 작업은 그 여느 때보다 신중했다.
그런데 그때.
“어?”
마을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범계위가 눈을 비비고 다시 전면을 응시했다.
“쟤들, 그때 그 얼빠진 형제 놈들이잖아?”
범계위가 가리킨 곳.
“삼몰쌍괴로군.”
“아! 그때 그…….”
초악량의 말에 뒤늦게 상대를 알아본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무림맹을 방문하기 위해 처음 여행길에 올랐던 당시.
범계위의 협박에 구지선엽초를 내놓았던 쌍둥이 형제였다.
쌍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극단적으로 다른 외모를 지닌 두 사람.
한데 그 두 사람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사이한 느낌을 자아내는, 알록달록한 핏빛 옷을 걸친 기괴한 느낌의 늙은 도사였다.
왕염과 왕결, 두 형제는 그 늙은 도사의 앞뒤로 나란히 서서 마치 호위하듯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면 되겠군.”
누구보다 교활하고 뻔뻔한 자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마교에 붙을 만큼 이기적이고, 그만큼 눈치가 빠른 놈들이었다.
또한 저들이 마교에 포섭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아는 바가 적지 않을 터.
“어? 쟤들 갑자기 멈춰 서는데?”
자신들이 은신해 있는 곳을 노려보는 기괴한 차림의 노도사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범계위가 튀어 나간 것도 동시였다.
돌연 노도사의 입에서 불길한 주문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급급여울(急急如律)…….”
그러나 노도사는 주문을 채 완성하지 못했다.
우둑.
마지막 한 글자만 남겨 둔 채 그대로 목이 거꾸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감히!”
노도사를 호위하던 왕씨 형제가 노성과 함께 달려든 건 그 직후였다.
하지만 채 손을 뻗기도 전에 흠칫하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웃는 섬뜩한 미소.
그리고 그보다 더욱 가슴 철렁한 음성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여어, 오랜만이야?”
“헉!”
“서, 설마…….”
경악성과 함께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물러서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배후에는 초악량이 서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당신들이…….”
덜덜 떨며 사색이 되어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다가섰다.
“인상 펴, 이것들아. 구해 주러 온 거니까.”
사색이 되어 안쓰러울 만큼 몸을 떨어 대는 왕씨 형제.
그런 저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건 이 자리에 오직 한 명, 가두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