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3)
신마의선-413화(413/500)
신마의선 (413)
단악선이 삼몰쌍괴를 향해 물었다.
“혹시 신지를 찾을 만한 방법을 알고 있나요?”
삼몰쌍괴가 쓴 입맛을 다셨다.
“그건 저희도 잘…….”
“그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대부분 약에 취해 있었거든요.”
단악선의 얼굴 위로 떠오른 실망을 마주한 삼몰쌍괴가 염치없단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이 다시 물었다.
“사소한 것도 상관없으니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뭐든지 괜찮아요.”
삼몰쌍괴가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군요.”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두 분 거기 앉아 눈을 감아 보세요.”
영문을 모른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삼몰쌍괴와 달리 초악량과 범계위는 단악선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어? 그거 심리 치료?”
앞서 두 사람은 단악선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지 않았느냐?”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효과가 있길 기대해야죠. 그동안 연구를 거듭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으니까요. 그리고 당장은 이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삼몰쌍괴를 향해 입을 여는 단악선이었다.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하세요.”
삼몰쌍괴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앉아 있는 곳은 바람이 잔잔히 부는 초원이에요.”
차분하고 느긋한 단악선의 음성에 삼몰쌍괴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저 멀리 다가오는 마차가 보이나요? 두 분을 신지로 데려갈 마차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두 분은 이제 마차 안에 있어요. 그런데 의식이 몽롱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맞아. 놈들이 이상한 약을 먹였어.”
“……어지럽고 졸리군.”
어느새 목소리마저 나른해진 삼몰쌍괴가 술 취한 사람처럼 가부좌를 튼 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주변을 둘러보세요. 몸은 천근만근이고 눈꺼풀도 무겁겠지만 우리 함께 노력해 봐요. 뭐가 보이죠?”
끙끙대며 힘겨운 숨을 몰아쉬던 삼몰쌍귀가 느리게 대답했다.
“물이 담긴 주머니…….”
“건량이 담긴 상자…….”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단악선은 눈빛을 반짝였다.
당시처럼 몽롱한 상태에 접어든 두 사람의 무의식.
그 기저 밑바닥에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질문을 바꾸어 다시 물었다.
“이제는 귀를 기울여 보세요.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나요?”
“……저 자식들 우릴 비웃는데?”
“……죽여 버릴까?”
단편적인 기억들을 되짚으며 두 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주절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잠깐만요.”
황급히 두 사람을 제지한 단악선이 재빨리 물었다.
“마차 틈 사이로 보였던 풀. 그게 어떻게 생겼다고 했죠?”
“풀……, 아니, 나무인가? 선인장처럼 생겼는데 가시가 없고, 두꺼운 줄기에는 붉은 꽃이 곳곳에 피어 있습니다.”
“맞아. 중원에서는 본 적 없는 특이한 형태였어.”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육종용(肉苁蓉)이에요!”
그리고 신지를 추적할 결정적인 단서였다.
“육종용?”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강 지역에서 자생하는 전통 약재 중 하나예요.”
신강의 척박한 자연은 농사를 짓기에는 매우 열악했다.
반면 그곳의 가혹한 환경을 극복한 약재들은 그 효능이 뛰어나 중원 전역에 유통되고 있었다.
약전(藥典)에 수록된 약재의 종류만 백여 종에 달하고, 심지어 중원에서 취급하는 감초(甘草)의 절반은 신강에서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육종용은 이곳 신강에서만 자생하는 약용 식물이었다.
그 자체로 자보(滋補)의 효능이 뛰어나 사막인삼(沙漠人參)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만큼 유명한 약재인 것이다.
“무엇보다 육종용은 신강 내에서도 자생 지역이 한정되어 있어요.”
화전(和田), 아극소(阿克蘇), 파음곽릉(巴音郭楞), 창길(昌吉), 박이탑납(博爾塔拉) 정도.
‘수레에 물과 식량이 많이 실려 있었다고 했지?’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동 경로에는 녹주나 민가가 없었을 터.
그리고 다행히 삼몰쌍괴는 의식이 흐릿하던 와중에도 자신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대략적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강명 객잔에서 북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면…….”
천마선을 펼쳐 그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확인하던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어쩌면 신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 *
빛 한 점 들지 않는 컴컴한 뇌옥.
흔들리는 유등 불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것을 본 제갈산이 희미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잠시 후.
덜컹.
뇌옥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소?”
상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갈산은 인사를 건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상대는 눈이 먼 맹인이었다.
그런데도 제갈산은 미소를 건네며 뇌옥에 들어선 여인을 반겼다.
유등을 양손으로 받쳐 든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왕소군을 향해 제갈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옷깃을 잡았다.
왕소군이 움찔하며 제갈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초점 없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공허할 뿐이었다.
박색(薄色)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못난 얼굴이었지만 제갈산은 그녀의 얼굴을 한참 동안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제갈산이 천천히 그녀를 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뇌옥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침상으로 향한 두 사람의 몸이 포개어졌다.
사락.
옷을 벗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흐릿한 유등 불빛 아래로 매끈한 나신이 드러났다.
제갈산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린 것도 그때였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지켜보겠다는 건가? 관음(觀淫) 쪽에 취향이 있으신 줄은 몰랐소만?”
뇌옥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던 누군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까지 왕소군을 데려온 뇌옥의 간수였다.
“감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까.”
간수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라 해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제갈산이 피식 웃었다.
“뭐, 상관없지. 사실 나도 관전하는 사람이 있는 쪽이 더 흥분되거든.”
“퇘앳!”
그 말에 뇌옥의 간수가 역겹다는 눈빛으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갈산은 여인을 끌어안으며 침대 위에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끈적한 열기와 달뜬 교성이 뇌옥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짐승처럼 헉헉대던 숨소리가 잦아들자 창부는 다시 옷을 들어 알몸을 가렸다.
돌아서는 그녀를 제갈산이 붙잡은 것도 그때였다.
말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왕소군의 얼굴을 제갈산은 말없이 응시했다.
그러곤 이내 쓰게 웃으며 그녀를 뇌옥 입구 쪽으로 이끌었다.
이내 간수와 함께 멀어지는 왕소군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제갈산의 눈 위로 일순 진한 아픔이 번져 갔다.
그녀의 눈에 비쳤던 자신의 얼굴.
흔들리던 눈빛 너머로 웃던 자조 섞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 * *
뇌옥을 벗어난 왕소군은 다시 한 번 나신이 되었다.
빈틈없이 곳곳을 확인한 뇌옥의 간수는 그 어디에도 서찰이나 연락 수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섰다.
“됐다. 이제 옷 입어도 된다.”
무심코 입을 열던 간수는 여전히 멀뚱히 서 있는 왕소군의 모습에 마른 웃음을 풀썩였다.
매번 깜빡하게 되는 것이다.
툭.
간수가 왕소군의 어깨 어름을 건드리자 비로소 그녀가 주섬주섬 옷을 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 어떤 감흥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추녀에게 매번 발정하는 제갈가의 미친놈이 신기할 정도였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오늘 그에게 주어진 일은 끝났으니 상관없었다.
이대로 돌아가 독한 화주와 아리따운 여인으로 두 눈에 새겨진 불쾌한 광경을 잊고 싶을 뿐이었다.
어차피 왕소군은 이곳의 창부들을 관리하는 노파가 알아서 할 터.
왕소군만 덩그러니 남겨 둔 간수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잠시 후.
“쯧쯧.”
한 사람이 혀를 차며 왕소군에게 다가섰다.
구부정한 허리에 허옇게 센 머리칼을 지닌 노파였다.
노파가 왕소군의 손을 붙잡았다.
긴장으로 바짝 얼어 있던 왕소군은 노파의 주름진 손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희미하게 웃었다.
“뭐가 좋다고 그리 웃누.”
왕소군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안쓰러운 마음에 말을 건네는 노파였다.
“가엾은 것…….”
손을 뻗어 왕소군의 어깨를 쓸어내리길 잠시.
노파가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허름한 모옥이었다.
사방에 즐비한 삼엄한 감시의 시선들을 뒤로한 채 노파가 왕소군을 모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의자에 왕소군을 앉힌 노파는 차 한 잔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빙그레 웃은 왕소군이 따듯한 한 잔의 차로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건지.”
안타까운 눈빛을 흘리던 노파가 이내 의자 하나를 가져와 왕소군 맞은편에 놓았다.
탁.
손을 뻗어 다탁을 더듬거리던 왕소군이 찻잔을 내려놓은 것도 그때였다.
노파가 복잡한 표정으로 왕소군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노파의 눈빛이 깊어졌다.
툭. 투욱. 툭툭.
왕소군의 길고 고운 손가락이 일정한 박자를 두고 손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짧고, 길게. 그리고 연달아 짧게 두 번.
이 세 가지 표현을 조합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마교 놈들이 알면 얼마나 혼비백산할까?
뇌옥 안에서 왕소군은 단순히 정사를 나눈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달자였다.
제갈산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그녀인 것이다.
그녀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제갈산이 자신의 몸을 쓰다듬으며 새겨 넣었던 정보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 차례였다.
왕소군은 제갈산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방법으로 노파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 * *
“거의 다 왔어요.”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단악선은 삼엄한 눈빛으로 주변의 지형을 확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저 멀리 기이한 안개에 휩싸여 있는 계곡.
강물은커녕 녹주조차 없는 이곳에서 안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단악선이 품속에서 천마선을 꺼내 펼쳐 들었다.
천마선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주변을 번갈아 보며 살피던 단악선이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천마선에 그려진 한 폭의 신선도는 역시나 지도가 맞았다.
단악선이 손을 들어 안개가 일렁이는 계곡을 가리켰다.
“신지는 저 안에 있어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계곡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신마삼존과 가두달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만요!”
단악선이 황급히 신형을 멈추더니 일행을 제지했다.
그리고 일행들 역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느낌, 어딘가 익숙한데?”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진법이에요.”
마교의 본단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진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잠시 전면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