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4)
신마의선-414화(414/500)
신마의선 (414)
“어어? 단 의원!”
범계위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이 붙잡기도 전에 단악선의 신형은 이미 안개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일단 제가 먼저 살펴봐야겠어요. 그러니 다른 분들은 여기서…….”
처음에는 뚜렷했던 단악선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아스라이 멀어졌다.
당황한 두 사람이 서둘러 단악선을 따라 안개 속으로 신형을 던지려 했다.
그 순간, 그런 두 사람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안 됩니다!”
가두달이었다.
“비켜!”
범계위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심지어 급한 마음에 그를 걷어차려고까지 했다.
한설화 역시 마뜩잖은 눈빛을 던지며 가두달을 지나치려 했다.
덥석.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가두달이 두 사람의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가두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지척에서 내리꽂히는 절대고수의 기파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사색이 된 채 벌벌 떨면서도 가두달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단 의원을 위험하게 만들 겁니다!”
“뭐?”
“저건 보통 진법이 아닙니다!”
가두달이 황급히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중에서 이 진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의원뿐입니다.”
그저 발이 빠르고 은신술이 뛰어나다 해서 신투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가늠하고 목표의 심리를 파악할 줄 아는 안목과 경험이 필요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과감한 배포 역시 갖춰야 했다.
무엇보다 목표를 향한 집요함은 도둑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덕목이었다.
그 집요함 덕분에 가두달은 어지간한 진법은 통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눈앞의 진법은 예외였다.
앞서간 희대의 천재 탁요신.
그를 가리켜 괜히 무불능요(無不能要)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역작이 분명한 눈앞의 진법은 그조차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했다.
중원의 내로라하는 진법의 운용법과 묘리를 숙지한 그조차도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저 안에 들어섰다가는 오히려 화만 자초할 터.
자칫 엉뚱한 변화로 이어져 단악선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가두달의 설명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말대로다.”
“하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는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이 말을 덧붙였다.
“그나마 탁요신의 진법을 직접 겪어 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단 의원뿐이다.”
신마곡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혼천미리암진(混天迷理暗陳) 역시 그자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단 의원은 과거 형산에서도 운진암의 연공실에 설치되어 있던 진법을 파훼한 전력이 있지 않으냐?”
“끄응.”
결국 범계위가 앓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물러섰다.
불안한 눈빛으로 눈앞에 펼쳐진 진법을 응시하던 한설화도 마지못해 시선을 거두었다.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그저 단악선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 * *
진법의 내부로 들어선 단악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안개.
망망대해 같은 운무 속에서는 방향조차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시험 삼아 몇 번 크게 고함도 질러 봤지만 소용없었다.
반향 되어 돌아오는 소리가 전무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만큼 짙고 농밀한 안개는 사물을 구분하는 시야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완벽히 삼켜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끝이 존재하지 않는 공허 그 자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달라.’
단악선이 신중하게 발을 디디며 더욱 진법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지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
단악선이 멈칫하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원래대로라면 한참 전에 마주했어야 할 진법의 초석이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방위를 가늠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어야 할 그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을 채운 것은 그저 끝없이 일렁이는 안개뿐.
당혹감이 밀려들었다.
‘갇혔어.’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왔던 길을 되짚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단악선의 표정이 더없이 심각해졌다.
기존의 진법에 무언가 인위적인 변화가 더해진 것이 분명했다.
우두커니 서서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직접 부딪혀 알아내는 수밖에.’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스럭.
단악선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펼쳐 들었다.
삼몰쌍괴가 호위하던 사이한 분위기의 도사.
그자의 품속에 있던 종이였다.
종이 위에 적인 팔괘의 문양과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주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몇 번이고 눈에 새겨 넣은 단악선이 왼손을 들었다.
진법의 기초가 되는 팔괘를 손에 담아 내기 위해서였다.
무명지를 팔괘의 시작인 초효로 삼아서 중지와 검지를 각각 이효와 상효로 정한 뒤, 그 기준으로 하나의 괘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엄지와 맞닿은 손가락을 양(陽)으로, 떨어진 손가락은 음(陰)으로…….
만약 엄지가 세 손가락과 떨어져 있으면 곤삼절인 곤괘가 되고 세 손가락과 맞붙어 있으면 건삼련인 건괘를 나타내는 식이었다.
본래 진법의 기초인 기문둔갑은 각각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각 방위들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
당장은 이렇게라도 진법 안에서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어?”
수결을 짚으며 계산을 이어 가던 단악선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이효인 장지와 떨어져 있는 엄지.
“이허중(離虛中)인 이괘(履卦)에서 어째서 갑자기 태상절(兌上絶)인 태괘(泰卦)로?”
그 변화를 꾀하는 진법의 흐름이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 몇 번이고 반복해 계산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단악선이 뒤늦게 아연실색했다.
만약 그리되면 생문(生門)은 사라지고, 상문(傷門)과 휴문(休門)을 떠받치는 나머지 다섯 개의 문도 모조리 사문(死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죽음만이 존재하는 절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실로 모골 송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그 도사와 조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범계위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분명 종이 안에 적혀 있는 설명대로 진법을 수정했을 터.
만약 그랬다면 이곳에 들어서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하니 그때 범계위가 그 도사를 죽인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대체 왜?’
마교에 협조하는 것이 분명한 그 도사가 스스로 이곳 신지의 진법을 죽음의 절진으로 바꾸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미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자는 몰랐을지도 몰라.’
단순하게 진법만 연구한 사람이라면 그 안에 숨어 있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워낙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깨달은 것은 오직 단악선이 의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자신이 진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의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신마곡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혼천미리암진.
그 안의 담겨 있는 원리는 의술의 기본인 오행의 이치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된 계기도 있었다.
기문둔갑과 관련된 내용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언젠가 읽었던 책의 서문.
‘황제(黃帝)가 용도(龍圖)의 법을 받고, 풍후(風后)가 이를 부연하여 둔갑(遁甲)으로 삼고 법식(法式)을 삼중(三重)으로 만들었다.’
뒤이어 천지인(天地人)과 삼재(三才)를 바탕으로, 상층은 하늘을 본받아 구성을 펼치고, 중층은 사람을 본받아 팔문을 열며 하층은 땅을 본받아 팔괘를 펼쳐 놓아 여덟 방위를 누른다는 글귀가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단악선은 팔괘를 기본으로 하는 진법의 묘리와 의술의 근간인 오행의 원리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체의 각 기관들은 기본적으로 오행의 섭리를 따르고 있었다.
심장이 불의 기운을 담고 있다면 신장은 물의 기운을 담고 있다는 식이었다.
진법의 기본이 되는 팔문(八門) 역시 마찬가지.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은 토(土), 상문(傷門)과 두문(杜門)은 목(木), 경문(景門)은 화(火), 다른 경문(驚門)과 개문(開門)은 금, 휴문(休門)은 수(水)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의술과 진법을 연결하니 기존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던 진법의 운용 방식이 한결 쉽게 다가왔다.
형산파의 독문심법을 바탕으로 설계된 운진암의 진법을 파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행을 기반으로 진법의 응용 원리를 녹여 내면, 팔문 중 하나만 알아도 전체적인 흐름과 대체적인 파훼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준으로 삼을 팔문 중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는 건데…….’
다시 한 번 종이 위에 적힌 주석을 두 눈에 새긴 단악선이 이를 갈무리하여 품속에 넣었다.
그러곤 천천히 묵룡을 움켜쥐었다.
만약 가두달이 보았다면 무모하다며 기함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우웅.
위화신공을 한껏 머금은 묵룡이 웅혼한 울음을 토했다.
전면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목룡을 휘두른 것도 동시였다.
쾌애액.
묵룡에서 뿜어져 나온 경력이 안개를 길게 가르며 사라졌다.
드드드.
주위를 가득 메운 안개가 꿈틀거리며 진법이 변화를 일으킨 건 그 직후였다.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경문을 건드렸어!’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제 곧 경문이 품고 있던 화기가 움직여 자연스럽게 수의 기운에 해당하는 휴문이 반응할 터.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눈앞의 안개가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야!’
생문을 찾기 위한 시도.
그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 *
범계위가 초조한 얼굴로 눈앞에서 일렁이는 안개를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단 의원이 너무 늦는데?”
단악선이 안개 너머로 사라진 지 이미 반 시진이 넘어 한 시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바심을 내던 범계위가 성큼 안개를 향해 다가섰다.
“안 되겠수. 이깟 진법 그냥 부숴 버려야겠어!”
“아서라. 단 의원이 어째서 홀로 들어갔는지 모른단 말이냐?”
팔을 걷으며 나서는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이 핀잔을 던졌다.
“그랬다가는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걸 저 안의 마인들에게 알리는 꼴이 될 것이다.”
마교의 본단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발걸음을 돌린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럼 어쩌자는 거유? 이대로 계속 기다리기만 하자고?”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만약 저 안에서 변고가 일어난 거라면?”
“…….”
“진법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불길한 생각을 부추기는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마침 그도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던 참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나서야겠지.”
“그때 나서나 지금 나서나 뭐가 다른데?”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일각.”
한설화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앞으로 일각을 기다려도 변화가 없으면 내가 들어가겠어.”
그때였다.
우르릉.
안개 너머로 들려온 희미한 뇌성.
그 심상치 않은 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하던 것도 잠시.
“진입하자.”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와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안개 안으로 뛰어들려던 찰나.
“단 의원!”
범계위가 신형을 날려 비틀거리며 안개를 벗어나는 단악선을 붙들어 품에 끌어당겼다.
창백한 안색과 흔들리는 눈빛.
비 맞은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은 후줄근한 옷으로 저 안에서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를…… 확인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