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6)
신마의선-416화(416/500)
신마의선 (416)
서로를 노려보며 기세를 드높이던 일촉즉발의 상황.
“저…….”
월동문 사이로 빼꼼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손님이 오셨는데요.”
아두였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 이 시간에?”
“네. 급한 일이시라고…….”
아두의 뒤쪽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 것도 그때였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초악량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하늘하늘한 옥빛 능라의.
온몸의 굴곡을 아슬하게 내비치고 있음에도 천박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청초함과 묘한 기품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무엇보다 최근에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단악선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지?”
싸늘한 초악량의 표정에 하오문의 서안 지부를 책임지고 있던 설난영이 그녀만의 고혹적인 미소를 베어 물었다.
하지만 그 안에 묻어나는 곤혹스러움은 감출 수가 없었다.
“저도 오고 싶어 온 건 아니랍니다.”
설난영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비단으로 감싼 배첩이었다.
“……!”
이를 확인한 초악량의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배첩 위에 새겨진 눈처럼 새하얀 배꽃 문양 때문이었다.
“이화궁…….”
으르렁대듯 나직하게 씹어뱉는 초악량의 말을 듣고 나서야 단악선은 비로소 그 문양이 상징하는 곳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신비문파.
위치는 말할 것도 없었고, 구성원도 알려진 바가 전무했다.
간혹 모습을 드러내는 궁주와 그녀를 호위하는 사선녀(四仙女) 정도만의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화궁의 궁주인 월령궁주(月靈宮主) 연옥상은 일찍이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린 절대고수 중 한 명이었다.
“이화궁이 어째서 내게 배첩을 보낸 것이지?”
설난영이 고개를 저었다.
“존자께 보낸 배첩이 아니에요.”
“뭐?”
초악량을 지나쳐 단악선에게 걸어간 설난영이 배첩을 내밀었다.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이화궁과는 딱히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배첩을 받아 든 단악선이 그것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
단악선이 당황해 설난영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배첩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초악량은 노성을 터트렸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서슬 퍼런 초악량의 눈빛에 설난영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천첩에게 화를 내신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저는 그저 그분의 전언을 옮기는 심부름꾼에 불과한걸요.”
말없이 설난영을 노려보던 초악량이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 여자가 전하라 한 말이 뭐지?”
질문은 초악량이 했지만 설난영은 단악선을 향해 대답했다.
“마교를 무너트리기 위해 미리 안배해 두었던 이화궁의 복안이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으시다면 뵙기를 청한다 했습니다.”
초악량이 실소했다.
“이제 와서?”
그때까지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장소는요?”
단악선의 물음에도 설난영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불안한 눈빛을 흘리며 연신 초악량을 힐끔거릴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달 무지개가 누워 쉬는 곳…….”
설난영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순간 초악량의 눈매가 꿈틀하나 싶더니 전신에서 섬뜩한 살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막상 초악량의 분노를 마주하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단악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초악량과 설난영 사이를 막아섰다.
그제서야 숨통이 트인 설난영이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설난영을 노려보는 초악량의 눈빛.
그건 마치 오래된 기억 너머,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의 초악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때처럼 한없이 차갑고 독기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맹렬한 적의는 설난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전언을 전하도록 한 당사자인 이화궁주, 연옥상을 향한 분노였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단악선은 몹시 궁금했지만 당장은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슨 영문에서인지 범계위는 아까부터 초악량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한설화 역시 우려를 담은 눈빛으로 초악량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여움을 애써 억누르는 초악량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라도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감히…….”
분노를 씹어 삼키듯 읊조린 초악량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설난영을 응시했다.
“다른 말은 없었나?”
“그게 전부였어요.”
그 말을 끝으로 설난영이 달아나듯 서둘러 장내를 벗어났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초악량은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화궁주를 만날 의향이 있느냐?”
“초 아저씨도 함께 가시려고요?”
“그 여자가 만나자고 한 곳. 그 장소를 아는 사람이 당장은 나뿐이니까.”
초악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게다가 복안 운운하는 것도 그저 빈말은 아닐 게다.”
이화궁주가 먼저 보자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만큼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끔찍하게 미워하고 싫어했다.
“이곳과는 그리 멀지 않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네. 그렇게 해요.”
단악선도 달리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초악량이 앞장서 신형을 날리자 그 뒤를 단악선이 바짝 뒤쫓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멀리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이었다.
위치상 인적이 닿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의외로 주변이 말끔했다.
본래는 무성했을 수풀이 누군가가 손을 본 것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뒤늦게 언덕 한쪽에 위치해 있는 야트막한 봉분을 발견한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봉분 앞에 놓여 있는 술잔.
그 안에 담겨 찰랑이는 술은 무위에서 만들어진 도원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단악선의 표정을 읽은 초악량이 짧게 헛기침을 흘렸다.
“개방 방주와 네가 회의를 하는 동안 잠시 이곳에 들렀었다.”
“그럼 이건 초 아저씨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혼자서 찾곤 했던 곳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봉분을 눈에 담았다.
“친한 분이셨나요?”
초악량이 더없이 착잡한 눈빛으로 무덤을 응시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느냐?”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당시의 난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널 만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숨이 끊어졌을 테고.”
죽음을 눈앞에 두자 떠오른 장소가 여기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곳을 찾고 싶었던 초악량은 무작정 이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안개가 짙어 방향이 어긋났지.”
그래서 신마곡에 처음 발을 들였고, 단악선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봉분을 바라보던 초악량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나를 이끌어 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녀요?”
단악선의 반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름은 월홍(月虹).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다.”
“아! 그래서…….”
달빛에 기대어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희미한 무지개.
비로소 단악선은 달 무지개가 누워 쉬는 곳이란 의미를 깨달았다.
월홍이라는 이름의 여인.
그녀가 잠들어 쉬는 안식처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흥! 웃기시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범계위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유일한 사랑은 개뿔! 그런 사람이 왜 화화공자로 소문이 나셨대?”
뒤이어 범계위 옆에 내려선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가두달을 잡기 위해 내붙였던 방문을 보고 찾아온 노파를 한설화가 언급하자 초악량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첫사랑! 첫사랑이다! 이제 됐냐?”
발끈해 버럭 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두 사람 덕분에 평소의 초악량으로 돌아온 것이다.
범계위와 한설화가 한순간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도 이화궁과 초악량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오래 알고 지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만에 하나 이화궁주를 만난 초악량이 분노에 눈이 돌아간다면 자신들 외에는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단악선이 애꿎은 상황에 휘말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범계위가 실소했다.
“누가 초 형을? 단 의원이 걱정돼서 온 거지.”
웃으며 뭐라 한 소리 하려던 초악량의 낯빛이 굳어진 것도 그때였다.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어둠 속을 응시하는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두 사람도 이내 입을 다물었다.
단악선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강렬한 존재감을 느낀 것은 그 직후였다.
그리고 잠시 후.
쏟아지는 달빛을 등에 업은 거대한 무언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뒤로 네 명의 사람이 떠받치고 있는, 화려하리만치 눈부시게 치장된 사인거였다.
놀랍게도 수레를 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었다.
하지만 단악선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그녀들의 발이 흙바닥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중한 사인거를 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초상비의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촤락.
눈처럼 새하얀 능라 비단이 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사인거가 천천히 내려섰다.
그리고 주렴을 헤치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악선은 단번에 그녀가 이화궁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없이 차가운 눈빛이 유일한 흠이었지만, 그래서 반대로 투명하게 느껴질 만큼 새하얀 피부가 더욱 선명히 대비되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기품.
그 신비로운 분위기는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절대고수 특유의 압도적인 분위기와 존재감은 지금까지 만나 본 천하오절 그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여인은 단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있었다.
이화궁주를 상징하는 신물인 배꽃 문양의 하얀 비녀였다.
천하오절 중 유일하게 단악선이 만나 보지 못했던 마지막 한 명.
월령궁주(月靈宮主) 연옥상이 바로 그녀였다.
단악선이 그녀를 향해 정중히 예의를 갖췄다.
“무위의 의원, 단가 악선이 이화궁주님을 뵙습니다.”
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연옥상은 뜻밖에도 따듯한 눈빛을 건네 왔다.
“당금 중원을 떨어 울리는 신마의선이 이토록 헌앙한 청년이었다니. 향후 강호의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다정함이 깃든 음성과 온화한 눈빛으로 연옥상이 말을 덧붙였다.
“신의와 마의. 두 사람의 변고를 일찍이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하마.”
단악선의 눈 위로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제 부모님을 알고 계시나요?”
연옥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산검림에 몸담았던 사람치고 그들과 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특히 네 어미와는 더없이 각별한 사이였단다.”
마의를 떠올린 연옥상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네 어미만큼은 어떻게든 우리 이화궁이 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지.”
그래도 여전히 단악선은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단지 인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과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문을 뒤로한 채 연옥상이 재차 입을 열었다.
“네 곁에 머무는 껄끄러운 악연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널 찾았을 텐데…….”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단악선을 지나 초악량에게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