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7)
신마의선-417화(417/500)
신마의선 (417)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껄끄러운 악연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한설화를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마녀 넌 이화궁하고는 또 언제 원한을 맺은 거야?”
한설화는 일순 어이가 없어 범계위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찔끔한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뒤늦게 서늘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서로를 노려보는 연옥상과 초악량,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범계위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초 형이었어?”
범계위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첫사랑이었다는 그 여자 때문인가?”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예 대놓고 떠들지?”
한설화의 핀잔에 범계위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연옥상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월홍, 그 아이는…….”
그러나 그 순간 초악량의 일갈이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자격?”
연옥상이 차가운 미소를 말아 올렸다.
“그 아이가 그리된 것이 나 때문이라 말하는 건가?”
이어진 연옥상의 말에 초악량의 눈에서 전율스러운 살기가 일렁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뻔뻔함은 여전하군.”
연옥상 역시 살기를 드러내며 초악량을 노려봤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아이는 여전히 본 궁의 사람이다. 너 따위는 절대 넘볼 수 없는.”
“……!”
초악량의 분노가 비등점을 넘기 직전.
단악선이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단악선이 연옥상과 시선을 마주했다.
“궁주님께서는 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배첩을 보내신 게 아닌가요?”
그 말에 연옥상은 나직이 한숨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서로를 향한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내려 두도록 하지.”
그렇게 운을 뗀 연옥상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만간 마교가 중원을 향한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화궁주 정도나 되는 사람이 그런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단악선이 표정을 달리했다.
“중원의 정예 병력이 신지로 향하면 이곳 중원은 그야말로 무주공산. 사마존이 이끄는 마교의 선봉 전력이 그때를 노리며 모처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걸 어떻게……?”
반문하던 단악선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신지에서 연공을 마치고 본단에 결집했던 삼백 명의 호교마군.
행방이 묘연해 목적을 짐작할 수 없었는데, 연옥상의 말을 듣고 보니 비로소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들의 무공 수준이 곤륜에서 조우했던 자들과 필적하는 수준이라면 전력의 공백이 생긴 구파일방의 피해는 그야말로 막대할 터.
당황한 단악선을 향해 연옥상이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필요 없다.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단악선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오랜 시간 마교 내부에서 암약해 왔던 우리 쪽 사람. 그가 최근 건넨 정보이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화궁에서 마교 내부에 간자를 심었을 줄이야.
“그분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의 이름은 제갈산이다.”
“혹시 제갈세가의……?”
연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 제갈세가 가주의 막내아들이다. 몇 해 전에 제갈세가의 가주가 그에게 차기 가주 직위를 물려주겠다는 조령을 발표했었지.”
단악선도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장남인 제갈진과 둘째인 제갈연이 아닌, 행방이 묘연한 셋째 아들에게 가주직을 계승한다는 발표는 당시에도 여러 의구심을 자아냈다.
“마교는 제갈산에게 중원 침공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그는 중원 세력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각파의 근거지를 먼저 타격해 혼란을 야기하는 조호리산(調虎離山)의 계책을 내놓았지. 그리고 마교의 인사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제갈세가의 사람이 마교를 돕고 있는 건가요?”
“그럴 리가.”
연옥상이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상대방의 계략을 이용해 역으로 상대를 치는 장계취계(將計就計)의 작전. 어디까지나 이를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일환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마교의 뇌옥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다.”
단악선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연옥상의 입에서 누구도 모르는 비사가 흘러나왔다.
“그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마교에 붙잡혔다.”
그 시작은 마교가 반쪽짜리 마공 비급을 중원에 흘렸을 때부터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제갈산은 그때부터 한 가지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
바로 반마공이었다.
마공의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반마공의 구결을 연구해 중원 전체에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반복되는 마교의 발호 자체를 완전히 억누를 수 있다 생각했다.
“대체 언제부터…….”
“그가 나를 찾아온 것이 오 년 전이었다. 자신이 마교에 투신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지.”
단악선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미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 마교와 싸우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 생각을 짐작한 한 연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마교의 발호를 늦추고 있었던 사람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네 부모님들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
그래도 여전히 의문점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떻게 이화궁의 위치를 알고 찾아가신 건가요?”
“그건…….”
처음으로 연옥상의 말문이 막혔다.
그때였다.
단악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뇌옥에 갇혀 있다는 그분과 따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건, 마교 쪽에 들키지 않은 연락 수단이 존재한다는 뜻이군요. 이는 마교 내부에도 이화궁 사람이 있다는 의미고요.”
이번에는 연옥상이 깜짝 놀랐다.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건만, 그 안의 단편적인 정보들만으로 이처럼 구체적인 정황을 짚어 낼 줄은 그녀도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연옥상이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 마교의 계획을 알았으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는 잘 알겠지?”
단악선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이쪽의 대응에 정확하게 허를 찔린다면 마교 역시 자신들의 계획이 새어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되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이가 제갈산이었다.
“그러면 그분이 위험해지지 않나요?”
연옥상의 눈 위로 한순간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때 연옥상이 소맷자락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옥소(玉簫)였다.
연옥상의 손짓을 따라 허공에 떠오른 퉁소가 느리게 단악선을 향해 움직였다.
단악선이 손을 뻗어 퉁소를 받아 들자 연옥상이 입을 열었다.
“나와 연락하고자 한다면 이걸 이용하면 된다. 한동안은 가까운 곳에 우리 쪽 사람이 머물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연옥상은 다시 사인거 안으로 사라졌다.
초악량과는 더 이상 말도 섞기 싫다는 노골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인거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단악선은 초악량을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사인거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던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저 오만한 여자가 이렇게 직접 움직인다는 건, 이화궁에서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거겠지.”
“이화궁도 마교와 원한이 깊은가 봐요.”
“정마대전 당시 궁주였던 그 여자의 사부가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나도 한 사람을 잃었지.’
복잡한 눈빛을 흘리던 초악량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교에 대한 그 여자의 적개심만큼은 믿어도 된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이 사는 이유의 전부인 여자니까.”
* * *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단악선은 홍적문을 만나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누군가의 행방을 수소문해 달라는 단악선의 부탁에 홍적문은 기꺼이 개방을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단악선이 찾던 사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단악선은 곧장 홍적문이 알려 준 곳으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무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로군요.”
예상치 못한 단악선의 방문에도 설난영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초악량과는 다르게 눈앞의 소년은 그나마 대하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어느 정도는 단악선의 방문 목적도 짐작하고 있었다.
“혈수존자와 이화궁주 사이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신 거겠죠?”
“네.”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부탁하면 거절할 초악량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묵은 아픈 기억을 새삼 헤집는 것 같아 내키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이화궁은 향후 힘을 합쳐 마교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세력.
그 전에 이화궁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적대적이고 편향적인 시선이 아닌, 제삼자의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했다.
“하긴. 당사자에게 본인의 과거사를 묻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긴 하죠. 그의 오래된 역린 중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설난영이 겉옷을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산책 좀 할까요?”
밖으로 나선 설난영이 단악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청성혈사에 관해서는 알고 계시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난영이 말을 이어 갔다.
“복수할 힘을 얻기 위해 그분이 폐관 수련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심산유곡.
그 안에서 매일같이 자신을 다그치며 수련에 매진하던 초악량이 한 여인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정말 우연이었다.
“당시 사부였던 이화궁주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모처로 향하던 여인은 땀을 씻어 내기 위해 폭포수에 몸을 담갔어요.”
그런데 마침 그곳은 초악량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폭포 너머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초악량은 기척을 숨긴 채 그녀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딱 걸린 거죠.”
목욕을 마친 여인은 뒤늦게 근처에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평소 수련을 하던 장소이니만큼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그곳을 떠났다.
한참의 시간을 두고 동굴을 나선 초악량은 깜짝 놀랐다.
떠난 줄 알았던 여인이 서슬퍼런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인은 그를 죽이려 했다.
“어째서죠?”
“자신의 나신을 훔쳐봤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고작…… 그 이유만으로요?”
설난영이 특유의 고혹적인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게 이화궁의 여인들이에요. 예전부터 그래 왔지만 그녀들은 청백지신(靑白之身)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사내를 멀리하는 엄격한 규율.
집착에 가까운 생각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 두 사람의 무공 수준이 엇비슷했다는 점이에요.”
그녀는 당시 이화궁주의 둘째 제자로, 대제자였던 연옥상과 함께 차기 궁주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래서 기를 쓰고 초악량을 죽이려 했다.
이화궁의 절학을 대성한 그녀는 중원에서도 쉽게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초악량 역시 당시 출관을 코앞에 앞두고 있던 상태.
두 사람은 하루 밤낮을 꼬박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다음 날 다시 겨뤄 결착을 짓자 약속했어요.”
하지만 초악량은 처음부터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당시에는 복수만이 삶의 전부였기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악량은 여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대로 그곳을 떠났다.
그러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더욱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렸다.
다행히 이후 무공을 완성할 때까지 초악량은 단 한 번도 그녀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이 다시 조우한 곳은 청성산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