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18)
신마의선-418화(418/500)
신마의선 (418)
복수를 시작한 지 삼 개월이 지난 시점.
청성칠자 중 네 명을 죽이고 이제 막 혈수존자라는 명호를 얻은 직후였다.
그동안 초악량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일개 단신으로 거대 문파를 상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복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집요하게 청성산 근처를 맴돌며 치고 빠지는 유격전(遊擊戰)을 반복해 이어 가던 어느 날.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은신처로 물러나던 그를 한 사람이 막아섰다.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초악량을 공격했고, 초악량은 자신의 불운을 한탄했다.
내상이 깊어 도저히 반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통렬한 일격을 허용한 초악량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초악량은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숨이 끊어지긴커녕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각했던 내상도 호전된 상태였다.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이유를 묻는 초악량에게 여인은 싸늘하게 응수했다.
약해진 상대를 쓰러트려 봐야 그동안 쌓아 온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뒤늦게 자신의 내상을 치료하는 데 대단한 영단이 사용되었다는 걸 알게 된 초악량은 오래전 자신이 그녀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집착에 가까운 그녀의 기행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여인은 매일 같이 초악량 근처에 머물며 감시를 이어 갔다.
초악량도 그런 그녀를 떨쳐 낼 방법이 없었다.
당장은 청성칠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했기에 그녀를 상대로 힘을 낭비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불편한 동거를 계속했죠.”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초악량.
그런 그를 돌보는 것도 어느새 그녀 몫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미안함은 이내 고마움으로 이어졌고, 초악량은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여인은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청성칠자를 죽이는 데 자신이 손을 보태 돕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악량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사부의 복수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손에 의해 이루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미 여인에게는 마음의 빚이 상당했다.
자신을 치료해 주고 귀한 영단을 내어 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청성파와 자신의 은원에 한 발을 걸친 셈.
이 이상으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건 염치없는 짓이었다.
“결국 청성칠자 모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존자는 청성산에서 돌아섰고, 그 여인과 다시 마주했어요.”
그간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초악량은 기꺼이 그녀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생각이었다.
이미 복수는 마쳐 여한이 없는 상황.
막상 삶의 전부였던 복수가 끝나니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을 터.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던 초악량에게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버릴 목숨이라면 자신에게 달라고.
초악량은 당황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호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런 여인에게 초악량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당장은 누군가를 오롯이 마음에 담기에는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시간은 여인의 편이었다.
결국 그녀의 뜨거운 마음이 얼어붙어 있던 사내를 녹였다.
그렇게 불붙기 시작한 연심.
서로를 향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만큼 커져 갔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강호를 주유하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했다.
“그분이 바로 연월홍이라는 분이셨군요.”
단악선의 말에 설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어요. 세상을 등지고 함께 은거하기로 마음먹었을 만큼.”
단악선은 이후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만약 그걸로 두 사람이 맺어졌다면 초악량이 그토록 이화궁주에 대한 증오를 내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두 사람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옥상이었다.
사부인 이화궁주의 명에 의해 행방이 묘연해진 자신의 사매를 추적하던 그녀가 결국 연월홍을 찾아낸 것이다.
비록 차기 궁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친자매 이상으로 각별했다.
그래서 연월홍은 연옥상에게 애원했다.
모든 것을 포기할 테니 못 본 척 돌아서 달라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초악량은 연인의 진정한 신분 내력을 알게 되었다.
사매의 행복과 사부의 엄명.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연옥상은 결국 연월홍을 사문으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히 이를 보고만 있을 초악량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초악량과 연옥상이 서로를 향해 살수를 쓰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초악량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연월홍이 초악량의 마혈을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사저를 따라 나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내내 깊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거죠.”
떠나기 전 연월홍은 사문에 죄를 고하고 파문을 허락받은 뒤 돌아오겠노라 약속했다.
“문제는 이화궁이 이를 용납할 리 없다는 거죠.”
이화궁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순음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물며 그 사람이 궁주의 자리를 물려받을지 모를 제자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화궁은 그런 금기를 깨트리는 전례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연월홍에게서 소식이 없자 결국 초악량이 직접 이화궁을 찾기 위해 중원 전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초악량도 점차 지쳐 갈 즈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정마대전이 반발했다.
불길한 소문이 들려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천마가 이끄는 마교의 전위대에 의해 이화궁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초악량은 절망했다.
사망자의 명단에 연월홍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를 수습해 후방으로 탈출한 연옥상과 조우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초악량은 연월홍이 묻힌 곳을 알려 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끝없는 원망과 저주뿐이었다.
“어째서 그런 거죠?”
단악선의 물음에 설난영은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목 부근에 찍혀 있는, 선명하리만치 붉디붉은 핏빛 점 하나가 단악선의 눈에 들어왔다.
“수궁사(守宮砂)예요.”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주사지(朱砂痣)라고도 부르는 그것은 여성들의 정조(貞操)를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특수한 약물을 이용해 사내와 정을 통하면 사라지는 일종의 금제.
“이화궁의 내공신법인 명옥신공(明玉神功)은 천녀옥연심법(天女玉練心法)이라고도 해요.”
순음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그 무공의 특징 때문이었다.
동자공과 마찬가지로 파과(破瓜)의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내공심법보다 빠르고 정순하게 공력을 쌓을 수 있지만 이성과 통정하는 순간 그 위력을 잃는다.
한순간의 선택에 의해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셈이다.
초악량만 아니었다면 연월홍은 순결을 유지했을 테고, 지닌바 무공 역시 온전했을 터.
그랬다면 그토록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연옥상은 끝내 연월홍이 묻힌 곳을 알려 주지 않았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두 분이 그렇게나 서로를 미워하는 거였군요.”
설난영이 슬쩍 웃으며 소매를 덮었다.
“사실 거기에는 저도 크게 한몫했고요.”
“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설난영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제 수궁사는 가짜거든요.”
“……?”
“저도 한때는 이화궁의 사람이었어요. 그때는 연난영이라는 이름을 썼죠.”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화궁 내에서도 연씨 성은 궁주와 그 직계 제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성씨였기 때문이다.
“그럼?”
“맞아요. 지금의 이화궁주, 그분이 제 사부님이셨어요. 물론 지금은 파문당했지만요.”
그러곤 배시시 웃는 설난영이었다.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였군요.”
언젠가 초악량과 대화하며 사내 때문에 신세 망친 년이 어디 저 하나뿐이냐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사부님께 죽을 뻔한 저를 존자께서 구해 주셨죠. 그 과정에서 당시 제 사부셨던 이화궁주와 크게 부딪쳤고요.”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놓쳐 버린 인연.
연월홍과 비슷했던 설난영의 처지가 겹쳐져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 그분에게 사고(師姑)께서 잠들어 계신 곳을 알려 주었어요.”
단악선은 그제야 언젠가 초악량과 설난영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거래가 서로에게 만족스러웠다 했던 거였구나.’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대화들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은 단악선이었다.
* * *
며칠 후.
구대문파의 장문인과 원로 고수, 거기에 각파의 정예들이 무위로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소림의 나한들과 화산의 매화검수.
무당산 깊은 골짜기에서 독야청청하던 전대 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정연신니를 필두로 한 아미파의 여승들도 대거 산문을 나섰다.
종남과 형산파, 그리고 점창파 또한 각파의 고수들을 이끌고 무위에 합류했다.
최근 두문불출하던 공동파도 복마검수 전원을 대동하고 무위를 방문했다.
심지어 초악량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놓여 있던 청성파 또한 자신들의 전력 대부분을 보내왔다.
비록 지금은 형산파에 밀려 구대문파 자리를 내어 줬다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구대문파의 자리를 지켜 온 그들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곤륜 또한 굉성자를 필두로 최대한 전력을 꾸려 토벌대에 합류했다.
무위에 정착했던 사파 무인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교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파와의 원한은 잠시 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손에 익은 망치와 농기구를 놓고 한때 자신들의 성명병기였던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모인 토벌대의 규모는 무려 이천 명에 달했다.
신마상단 전각에 마련된 회의실.
각파의 수장들이 모인 가운데 홍적문이 회의를 주도했다.
단악선이 얻어 온 정보를 토대로 의견을 주고받던 중.
“그렇다면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신지가 되겠군요.”
천하오절의 일인이자 화산파의 장문인인 화산신검 진명진인.
마찬가지로 천하오절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소림의 나한당주, 법료가 나직한 불호와 함께 그 말을 받았다.
“시간을 다투는 일인 만큼 최대한 속전속결로 저들의 허를 노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이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런 두 사람을 따라 각파의 수장들의 시선이 단악선에게 모아졌다.
거대한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뚫어져라 응시하길 잠시.
이윽고 단악선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짚었다.
감숙성 난주였다.
“각자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해 이곳에서 집결하는 걸로 해요.”
자칫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보급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먼 길을 경유하지 않고 신강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었고, 만에 하나 필요할 경우 조정의 군사들을 동원하기에도 용이했다.
그렇게 이 차 집결지가 정해지고 회의가 끝나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단악선 역시 회의실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단악선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초악량의 눈 위로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곧바로 난주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느냐?”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들러야 할 곳?”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세가의 가주님을 만나 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