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
신마의선-42화(42/500)
신마의선 (42)
모든 준비를 마친 단악선이 침상에 누워 있는 남궁향을 향해 미소를 건넸다.
“지금까지 잘 견뎌 줬어요.”
남궁향이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겠어요?”
“약속이라면……?”
“치료 방법에 대해 함구해 주세요.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세요. 이번 치료의 성패는 환자의 믿음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향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켜야 할 비밀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제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거겠죠?”
남궁향이 단악선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의원님들을 믿어요.”
“그럼 시작할게요.”
단악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설화와 범계위가 남궁향의 양쪽에 나누어 섰다.
그리고 각자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처음엔 눈빛이 흔들리던 남궁향이었지만 이내 단악선의 말을 떠올리며 차분한 신색을 되찾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호법을 서 주세요.”
단악선의 지시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단악선이 선앙침과 마령침이 든 목갑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 * *
밤이 깊은 자시 말엽.
무림맹의 고수들이 별채를 에워싼 채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한편 남궁백은 별채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전각에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지킨 지 벌써 세 시진째.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별채의 상황을 알 수 없어 더욱…….
그러다 순간 남궁백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음?”
멀리 보이는 별채에서 새어 나오는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칠고 패도적인 극양의 기운과 섬세하지만 섬뜩한 극음의 기운, 남궁백조차 전율이 일 만큼 대단한 양이었다.
‘이만큼이나 약력을 뽑아낼 수 있다니!’
남궁백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독문의 비전이라 그토록 자신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가져다 바친 영약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절대 고수 둘이 저 안에서 생사를 건 내공 대결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 순간 서로를 견제하듯 점차 위력을 높여 가던 음양의 기운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하나로 융화되나 싶더니 전혀 다른 느낌의 기운으로 변화했다.
한없이 따듯하면서도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정순한 진기의 운무(雲霧). 느끼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기운이었다.
“이런!”
남궁백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전각의 난간에 바짝 다가서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거리에서 이 정도라면…….”
별채 쪽을 확인한 남궁백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호위대를 지휘하고 있던 창천단주를 향해서였다.
―정신 차려라!
깜짝 놀라는 창천단주의 모습이 남궁백의 눈에 들어왔다.
별채를 향해 다가서던 자신의 상태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문제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위를 위해 별채 주변에 배치했던 무인 상당수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진영을 이탈해 별채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 수하들을 뒤로 물리도록.
남궁백의 지시가 떨어지자 별채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잠시 후 전각에 오른 창천단주 양불위가 벌게진 얼굴로 부복했다.
“속하의 추태를 용서하소서.”
남궁백은 딱히 양불위를 꾸짖지 않았다.
그만큼 별채를 에워싼 기운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무공의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 터.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방문좌도의 사이한 술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궁세가의 전통적인 내공심법인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은 본래부터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파사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어떤 거부감과 반발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삿되지 않고 정순한 기운이라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이런 정도의 내력을 보인단 말인가? 대체 어떤 치료법이기에…….”
남궁백이 뚫어져라 별채를 응시했다.
가슴을 졸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어쩐지 마음은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 * *
치료가 네 시진째로 접어들 무렵.
“잘 버텼어요. 이제 마지막 관문이에요.”
“네. 할 수 있어요.”
단악선의 말에 남궁향이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에는 수십 개의 침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의지가 느껴지는 그녀의 눈빛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침을 하나씩 뽑아 그쪽으로 기가 흐르게 할 거예요. 아주 조금씩 천천히요.”
말이 끝나자 단악선이 남궁향의 목과 어깨 사이에 박혀 있던 침을 조심스럽게 뽑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돼요. 최대한 호흡의 유지에 집중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고요.”
남궁향이 눈을 깜박여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완전히 침이 뽑히자 남궁향이 움찔했다. 기맥을 타고 진기가 흐르기 시작하자 저릿하고 간지러운 느낌이 낯선 자극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은 계속해서 침을 제거해 나갔다. 그러다 배꼽과 치골 사이, 중극(中極)과 관원(關元)혈에 놓인 침을 잡아 갔다.
그 순간.
여자에게 예민한 부위니만큼 남궁향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극히 미묘한 차이였으나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짧은 감정의 동요가 애써 유지했던 호흡의 파탄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맥을 통해 세맥으로 뻗어 나가던 진기가 균형을 잃고 날뛰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지독한 한기와 엄청난 열기가 동시에 몰아치자 남궁향은 눈앞이 아득해지며 깜빡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에 들린 대침이 남궁향의 명치 아래를 파고들었다.
“하아…….”
겨우 숨통이 트인 남궁향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쩌저적.
지독한 한기가 담긴 입김이 천장에 닿자 그대로 새하얀 서리로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전신에서 강렬한 열기가 솟구친 것도 동시였다.
단악선조차 놀라 물러설 만큼 가공할 열기였다.
순식간에 남궁향의 옷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
나체가 된 남궁향이 당혹감에 휩싸였을 때, 한 줄기 단호한 외침이 그녀의 정신을 붙들었다.
“정신 차려요!”
흔들리던 남궁향의 눈빛이 제자리를 찾자 단악선은 한설화와 범계위를 확인했다.
이미 진즉에 한계를 넘어선 두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비 오듯 쉬지 않고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손끝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힘내요! 거의 다 왔어요!”
안타까움이 가득한 단악선의 음성에 두 사람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리고 단악선의 신호와 함께 다시 한 번 사력을 다해 진기를 운용하는 데 모든 정신과 의지를 집중했다.
* * *
덜컹.
별채 문이 열리고 단악선이 걸어 나왔다.
그 뒤로 한설화, 범계위가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남궁백은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거대한 대붕처럼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별채 앞에 내려섰다.
“어찌 되었습니까?”
초조함이 가득 담긴 남궁백의 음성에 녹초가 되어 흐느적거리던 단악선이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남궁백은 단악선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
그 위로는 흐르던 땀자국이 선명했다.
푸석푸석한 소금기만 남기고 땀이 모두 증발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입술도 메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한설화와 악일이라는 의원 역시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남궁백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느꼈다.
악일이라는 자는 의원이라니 그렇다 쳐도 한설화 정도 되는 고수가 이렇게 초췌한 안색을 드러내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기 때문이다.
“향이는 무사한 겁니까?”
남궁백의 다그침에 한설화와 악일은 단악선을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단악선 역시 마찬가지.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진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남궁백이 별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턱.
그 순간 그의 손목을 붙드는 사람이 있었다.
단악선이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단악선이 남궁백과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
남궁백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향아!”
남궁백의 신형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별채로 쏘아졌다.
때마침 별채에서 나서던 풍진성이 황급히 남궁백을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남궁백을 꾸짖던 풍진성이 깜짝 놀랐다.
그의 눈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살기 때문이었다.
남궁백이 낮게 으르렁댔다.
“만약 그 아이가 잘못되었다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잘못되다니요?”
“……?”
풍진성의 말에 남궁백이 당황한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료는 성공했어요.”
단악선이었다.
“그렇다면 어째 방금……?”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 남궁백을 향해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안정이 우선이니 면회는 조금 미루라는 말을 하려던 차에 맹주님께서 달려가셨죠.”
“그렇다면 향이는 살 수 있는 겁니까?”
“네. 특별한 일만 없다면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거예요.”
“특별한 일이라면?”
“성격 급한 보호자가 환자의 안정을 방해하는 일이요.”
“……!”
남궁백이 황급히 별채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후 별채에서 초악량이 걸어 나왔다.
호법을 위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가 의식을 회복했다.”
그 말에 풍진성이 다시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초악량은 일행에게 다가와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모두 고생 많았다.”
한설화와 범계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힘겹게 웃으며 초악량을 바라봤다.
“아저씨도 고생하셨어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단 의원이 제일 힘들었지.”
그 말대로였다.
치료 도중 찾아온 여러 번의 위기에 단악선이 침착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분명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의원이라곤 하나 단악선은 아직 아이다.
그런데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체력과 심력을 한계까지 쏟아부으며 치료하는 모습은 초악량에게 묘한 감동을 주었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혹독한 무림.
이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뭘요. 당연한 일인 걸요.”
돌아온 대답 역시 단악선다웠다.
그때였다.
“향아!”
남궁백의 놀란 음성에 일행들의 시선이 별채 입구로 향했다. 풍진성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는 남궁향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까지 안색은 창백하고 몸도 여위었지만 적어도 눈빛에서만큼은 생기가 가득했다.
이를 본 남궁백의 얼굴에 격동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병으로 쓰러진 이후 이렇게 두 발로 걷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남궁백이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얼어 있던 그의 마음을 조용히 녹여 왔다.
늘 고통에 일그러져 있던 얼굴 역시 더없이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남궁백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인사는 나중으로 미룹시다. 이들도 쉬어야 하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초악량의 말에 남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으로 남궁향에게 말했다.
“다시 오마.”
남궁향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아니다. 이제 다 괜찮다.”
자식 때문에 힘든 건 세상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과는 비견할 수 없다.
비록 남궁향을 살리기 위해 가세가 기울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후회도 남지 않았다.
그게 남궁백의 솔직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