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1)
신마의선-421화(421/500)
신마의선 (421)
“…….”
주위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천하오절을 상대로 한 범계위의 당당한 선전 포고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정신이냐?”
“왜? 이제 와 후회되시나?”
“뭐, 인마?”
초악량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결전을 앞둔 마당에 우리끼리 싸워서 뭐 하자고!”
결과를 떠나 사기의 문제였다.
한껏 드높아진 기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비 걸 땐 언제고 이제 와 발을 빼시겠다? 흥! 어림없지.”
그러나 범계위는 좀처럼 물러설 눈치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곡주님.”
범계위를 만류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단악선을 사무심이 급히 불러 세웠다.
단악선은 사무심이 가리킨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허공을 맴도는 한 마리 전서응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심이 품속에서 작은 호각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전서응이 반응했다.
매섭게 내리꽂힌 매가 사무심이 뻗은 팔에 내려앉았다.
매의 다리에 묶여 있던 전서를 펼쳐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사무심이 단악선을 향해 무언가를 속삭였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어딘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설화 역시 단악선을 따라 신형을 뽑아 올렸다.
초악량과 범계위를 스쳐 지나는 순간.
“멍청한 짓도 적당히 해.”
결국 그녀가 한 소리를 했다.
* * *
경공을 펼쳐 이 각쯤 달렸을까.
전서에 적혀 있던 장소에 도착한 단악선은 저 멀리 자신을 기다리는 이화궁주를 발견하고 속도를 늦췄다.
“절 보자고 하셨다고요.”
연옥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앞서 몇 차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일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연옥상은 스스럼없이 입을 열었다.
“마교가 만수산장과 소뢰음사를 움직였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미 어느 정도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일단 가담한 이상 변황오세의 세력을 순순히 놓아줄 마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아마도 점창파일 거예요.”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변방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문파는 한정적이니까요.”
곤륜파는 이미 삼성요를 떠났으니 남은 곳은 하나.
바로 운남 대리 지역의 점창파뿐이었다.
게다가 묘강 지역과 인접한 운남은 그들에게 있어 지리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위치였다.
무엇보다 상대가 만수산장이라면 필시 그들의 절예인 만수대진(萬獸大陣)을 앞세울 터.
온갖 맹수들을 이끌고 이동하는 데에는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한계가 있었다.
만수산장이 남만 일대를 벗어나 중원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화궁에서 그들을 막아 주세요.”
당당한 단악선의 요구에 연옥상이 아미를 찡그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마교와의 결전을 직전에 둔 현재 상황에서 이화궁의 전력을 따로 돌리겠다니.
연옥상 입장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마교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아 온 만큼 그들을 베어 넘기는 선봉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단호했다.
“저들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만수산장과 소뢰음사로 하여금 정예가 빠져나간 점창을 친다.
당연히 토벌대에 참여한 점창의 고수들은 복귀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질 터.
그렇게 토벌대의 이목을 분산시키고 발목을 잡아 진격을 늦춘 뒤, 별동대로 구성된 마교의 고수들이 전력의 공백이 된 다른 문파를 노린다.
이후 그곳을 거점 삼아 농성을 벌이며 시간을 끈다는 계산이었다.
이후 신지의 천마가 완성된 호교마군을 이끌고 나오면 마주 호응해 중원 무림의 정예를 에워싸 협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황을 주도하려면 처음부터 저들의 예봉을 꺾어야 해요. 그리고 당장 그만한 전력을 지닌 곳은 이화궁뿐이고요.”
이미 사전에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어 이화궁의 전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놓은 단악선이었다.
정마대전 이후 오랜 시간 칩거하며 과거의 성세 회복에 힘써 왔던 이화궁의 저력은 실로 대단했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연옥상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녀를 수행하는 사선녀 역시 개개인이 홍적문에 필적하는 상당한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이화궁 소속의 고수들 역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변황오세 중 두 곳을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거기에 이미 단악선은 해남파에 서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했고, 언젠가 사례태감이 하사한 군령패(軍令牌)를 이용해 소집한 금군과 동창 역시 출정 길에 올랐다는 보고를 들은 뒤였다.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앞으로 감행할 단독 작전을 통해 연이어 마교를 흔들어 놓을 수가 있어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지는 단악선의 말에 연옥상이 짐짓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계획한 대로 그 일을 감행할 생각이냐? 사실상 가장 큰 위험을 동반할 터인데…….”
그 말과 함께 연옥상은 단악선 뒤에 서 있는 한설화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째서 만류하지 않느냐는 의미가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이에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물며 자칫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대세에 큰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후회를 남기긴 싫거든요.”
고집스러운 의지가 느껴지는 단악선의 눈빛에 연옥상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알았다. 그리하마.”
단악선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잠시 후.
단악선과 한설화가 떠나자 연옥상을 수행하던 사선녀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궁주님, 본 궁이 어째서 저 아이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내심 단악선의 부탁이 내키지 않았던지 그녀의 음성에는 감출 수 없는 불편함이 묻어났다.
“누구보다 앞서 마교와 계속 싸워 왔던 본 궁입니다. 한데 그 아이는 마치…….”
“그만.”
제자의 말을 자른 연옥상이 준엄한 태도로 그녀를 꾸짖었다.
“구파일방은 생각 없이 움직이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하물며 내키는 대로 살아온 사파인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 모두를 한데 모을 수 있는 자가 과연 당금 무림에 누가 있을까. 게다가 그 아이의 말 중에 명분과 원칙에 어긋난 점이 단 하나라도 있더냐?”
그 말에 처음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던 여인은 이내 함구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운남 지역에 위치한 대리(大理).
이곳은 예부터 웅장한 산세와 수려한 물줄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거울같이 맑은 호수.
거기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푸른 산과 골짜기마다 굽이쳐 흐르는 맑은 물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절경을 만들어 냈다.
창산이해(蒼山洱海) 혹은 청이은창(靑洱銀蒼)이라 불리는 절경을 간직한 곳.
그 중심이 되는 곳은 단연 창산이었다.
일 년 내내 푸른 산 빛을 간직하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운남의 명산.
하지만 이곳이 가장 유명해진 데에는 이 지역에 일찍이 뿌리내린 명문 정파의 역할이 지대했다.
바로 점창파였다.
짙은 운무가 에워싼 창산 기슭.
그곳에 자리 잡은 전각들을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인물이 있었다.
창산 특유의 변화무쌍한 구름과 더불어 고아한 정취를 지닌 전각들이 만들어 낸 신비한 풍광이 마치 그림 속의 선경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이를 응시하는 그의 눈에는 그 어떤 감흥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짙은 흑색 야행의와 피풍의를 걸쳐 어둠 속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던 사내의 입이 열렸다.
“시작되었군.”
그 순간,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운무가 옅어지며 그 사이로 속속 거대한 진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인원은 이백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거느린 맹수들의 규모는 육안으로 전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남만에서만 볼 수 있는 코끼리였다.
날카로운 상아와 거대한 위용을 앞세워 진격하는 코끼리의 숫자는 무려 이십여 마리.
그 뒤로는 곰과 표범을 비롯한 늑대 무리와 성성이가 마치 조직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동해 점창파를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도 할 일을 해야겠지.”
사내.
한때 천축에서 크게 융성했으나 지금은 쇠퇴해 얼마 남지 않는 좌도밀교(左道密敎)의 마지막 전인이 바로 그였다.
아울러 천축 소뢰음사의 지도자이자 밀종(密宗)의 종주(宗主)인 그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훌쩍 신형을 날렸다.
날듯이 달리는 그의 뒤로 비슷한 복장을 갖춘 무승들이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그 숫자는 무려 삼백을 헤아리고 있었다.
* * *
“마음을 가다듬어라.”
익덕(益德)의 화신처럼 비죽한 수염을 지닌 초로인이 정문 쪽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점창파의 장로 중 한 명인 사공명이었다.
점창을 상징하는 절학인 사일검(射日劍)과 낙일도(落日刀).
그중 낙일도를 대성해 도법으로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칼의 고수가 바로 그였다.
어둠 너머로 밀려드는 요란한 살기에도 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란 도신을 지닌 협도를 움켜쥐는 그의 눈 위로 짙은 투지가 일렁였다.
그에게 창염도객(昌髥刀客)이라는 명호를 안겨 준 애병 역시 어느새 진한 검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는 일찍이 정마대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결전을 앞둔 순간의 긴장감은 익숙했다.
반면 어린 제자들의 상황은 달랐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맹수의 날카로운 포효.
그 안에 실려 있는 섬뜩한 살의에 잔뜩 위축된 제자들의 모습을 일별했음에도 사공명은 그저 조용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제자들을 믿기 때문이다.
점창은 후기지수를 대충 키워 내지 않았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 하나 경험이 적을 뿐, 엄연한 점창의 이름을 허락한 정식 제자들이다.
당장은 긴장으로 굳어 있을지 모르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무수한 담금질을 통해 심신에 새겨진 점창의 혼이 빛을 발할 터.
그런 그들을 독려하기 위해 사공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흘린 땀을 믿고, 거기에 쏟아부은 노력을 믿어라.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라. 본 파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다.”
진중한 그의 음성에 제자들 몇 명이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는 점창파의 최고 고수인 장문인도 없었고, 점창이 자랑하는 이대 제자들도 대부분이 부재중인 상황이었다.
장문인인 사일검정 낙영음이 정예들을 이끌고 마교 토벌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비록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 사공명이 함께하고 있다 하나 기껏해야 삼대 제자에 불과한 자신들이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걱정할 것 없소. 저들은 금일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
삽십 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사공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던 사내였다.
여유로운 미소로 입을 여는 그의 말에 점창의 젊은 제자들이 못 미더운 눈빛을 던졌다.
그만큼 그는 대단히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
한때 무림인이었던 그는 정사 중간의 정보 단체를 이끌었던 전력이 있었다.
한데 지금은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관리가 되어 있었다.
그전에는 정파인들의 금지였던 무위를 기반으로 상단을 일으켜 지금은 중원 제일 상단으로 성장한 신마상단의 단주를 지냈다는 전력도 있었다.
한데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승진을 거쳐 황제의 명을 대행하는 흠차경력진녕(欽差經歷鎭寧)으로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불신 가득한 점창파 제자들의 눈빛에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긴.’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그랬을 것 같았다.
관직명 앞에 흠차(欽差)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더 이상 일반 관리가 아니게 된다.
황제가 특정의 중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직접 임명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비록 품계가 사품(四品)에 머물러 있어 흠차 관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삼품(三品) 이상의 흠차 대신 이상의 권한을 손에 쥔 상태였다.
‘승진은 고사한다 그리 상소했건만…….’
능소밀이 내심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관직에 몸담은 이상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명령보다 더욱 거부하기 힘든 단악선의 부탁 때문이라도 이번 대리행은 마다할 수 없었다.
“온다!”
한동안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공명이 내력을 실어 외친 것도 그때였다.
사공명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능소밀은 정문 반대쪽에서 능선을 타고 빠르게 접근하는 다수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