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2)
신마의선-422화(422/500)
신마의선 (422)
사이한 눈빛과 분위기를 지닌 흑의인들은 하나같이 경시할 수 없는 고수의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선두에서 달려오는 장신의 흑의인은 눈빛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엄청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우지끈.
육중한 굉음과 함께 점창파의 대분이 경첩째 뜯겨 나간 것도 동시였다.
거대한 체구로 정문과 담벼락을 무너트리며 산문 안으로 진입하는 코끼리들과.
크아앙!
크르르.
그 뒤로 섬뜩한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는 온갖 맹수들의 파도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적의 규모와 기세에 점창의 제자들은 애써 다잡은 평정심을 잃고 그만 안색이 해쓱해졌다.
“흥!”
능소밀이 차가운 코웃음을 말아 올린 것도 동시였다.
“황제 폐하의 대리인인 나 능소밀이 명하노니! 대명의 정예들은 눈앞의 적도들을 섬멸하라!”
쩌렁한 능소밀의 음성이 울려 퍼진 그 순간.
펄럭.
연무장 아래쪽.
기름 먹인 새카만 방수포가 걷히며 그 아래 숨겨 놓고 있던 여덟 기의 화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문을 향해 도열한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은 건 그 직후였다.
꽈르르릉!
동시에 발포된 화포의 굉음이 우레처럼 천지를 뒤흔들었다.
꽈꽈꽈꽈꽝!
사방으로 비산하는 건물의 잔해들 사이로 자욱한 피 안개가 뒤섞였다.
“……!”
수왕(獸王).
만수산장의 장주이자 만수대진을 지휘하던 거력신군(巨力神君) 사맹강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자욱한 포연과 함께 허공을 찢는 포탄의 비.
만수대진과 함께하는 이상 천하의 그 무엇도 두렵지 않던 그였지만 난데없이 들이닥친 가공할 화망(火網) 앞에는 의미가 없었다.
‘홍이포(紅夷砲)!’
바다를 건너온 붉은 머리를 한 오랑캐, 홍모이(紅毛夷)들이 자랑하는 화포였다.
그것도 최근 개량을 통해 위력이 더욱 높아진 조정의 비밀 병기였다.
‘빌어먹을!’
뒤늦게 진형이 와해된 것을 깨달은 사맹강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눈앞의 화포가 불을 뿜었다.
꽈릉!
어둠을 찢는 화광.
벼락처럼 쇄도한 포탄의 두 번째 파도가 쇄도하며 순식간에 만수대진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야말로 걸리는 족족 그대로 피 보라로 화해 갈려 나가는 것이다.
“이대로 돌진한다! 놈들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맹강의 처절한 외침에 만수대진을 지휘하던 수하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으득.
사맹강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지금껏 만수대진의 유일한 상극은 독(毒)뿐이라 믿어 왔다.
남만을 양분하고 있던 독곡(毒谷)을 마교의 힘을 빌려 무너트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한데 아니었다.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화포야말로 만수대진의 진정한 천적이었다.
만수대진은 기본적으로 소리와 냄새를 이용해 맹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한데 소리는 폭발의 굉음에 삼켜져 무용지물이었고, 또 다른 수단인 수연향(獸延香) 역시 매캐한 포연 냄새에 섞여 평소의 위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번 겁을 집어먹은 맹수들의 전의가 문제였다.
일찍이 겪어 본 적 없는 재앙 앞에 공포를 느낀 맹수들이 지휘를 따르지 않고 우왕좌왕하며 지시를 벗어났다.
꽈앙!
다시 한 번 화포가 불을 뿜었다.
“……!”
순식간에 눈앞에서 지워지는 수하들과 맹수들의 모습에 사맹강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사이 포탄이 노리는 방향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포격은 공교롭게도 만수대진의 지휘 체계를 순차적으로 붕괴시키고 있었다.
눈앞의 관군을 지휘하는 관리가 시야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놈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포신이 방향을 틀고 있었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포신이 향한 곳은 맹수들을 지휘하는 수하들을 교묘하게 노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 순간 그는 짙은 의혹에 휩싸였다.
놈이 어떻게 만수대진의 지휘 체계를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능소밀은 자신에게 황망한 시선을 던지는 사맹강을 한껏 비웃었다.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얼마 안 가 전멸할 텐데?’
위화신공을 익히며 얻은 부작용.
그것을 이처럼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위화신공에 이끌려 반응하는 짐승들이 귀찮기만 했던 그였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동물들의 의지를 읽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쓸모없다 여긴 능력이 오늘날 만수대진을 상대로 주효할 줄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했다.
눈앞에서 날뛰는 맹수들의 반응을 통해 만수대진을 제어하는 흐름 자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포의 사용과 그로 인한 피해 복구에 관해서는 이미 황제의 재가가 떨어진 상황.
앞서 점창파 장문인에게도 동의를 받았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거침없이 화포를 갈겨 댔다.
“쏴라!”
병사들의 당혹성이 돌아온 것도 그때였다.
“아직입니다!”
“포신이 덜 식어 시간이 필요합니다!”
능소밀이 쓴 입맛을 다셨다.
홍이포는 위력이 뛰어나지만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었다.
무리했다가는 포신이 깨지거나 포탄이 내부에서 걸려 폭발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까가가가강!
“조심해!”
등 뒤에서 어지러운 금속성과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새카맣게 밀려든 소뢰음사의 요승들이 점창파의 무인들과 뒤얽히고 있었다.
게다가 그러고도 여력이 남았는지 일부는 전력을 나누어 곧장 이쪽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귀하들의 차례입니다!”
능소밀의 외침에 관병들 사이에서 피풍의를 벗어 던지며 일제히 앞으로 나서는 검수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전의를 불태우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들은 해남도의 정예 무인들이었다.
본래는 해적들을 상대로 한 해상전에 특화되어 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범계위와 벽화령에 의해 지옥 같은 훈련을 거친 그들은 더 이상 바다와 육지를 가리지 않았다.
카라라락.
“크아악!”
“컥!”
어둠을 가르는 차가운 검광과 고함 소리.
그 사이로 한데 뒤얽힌 비릿한 피 냄새와 단말마의 비명이 사방에서 난무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전황을 가늠하던 능소밀이 침음성을 삼켰다.
원래 계획은 화력을 전부 욱여넣어 눈앞의 만수산장 전력을 지워 버린 다음, 이쪽의 우위를 앞세워 오롯이 소뢰음사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소뢰음사의 합류가 너무 빨랐다.
게다가 저들의 무공 역시 상당했다.
기괴 난측한 유가술 계열의 무공은 중원과 궤가 크게 달랐고, 위력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온갖 사투를 겪어 온 사공명이나 해남검파의 무인들은 그럭저럭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점창파의 젊은 제자들이었다.
놈들의 음험한 무공 앞에 적잖게 애를 먹고 있었다.
게다가…….
“칫!”
능소밀이 고개를 돌려 전면을 노려봤다.
어느새 전열을 정비한 만수산장의 전력이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소뢰음사의 합류가 그만큼 저들에게 시간을 벌어 준 셈이다.
“창을 잡아라!”
능소밀의 지시에 관병들이 서둘러 화표 옆의 창을 들어 비스듬히 모로 세웠다.
장내는 이미 혼전의 양상으로 치달은 상태.
더 이상 화포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화력에 자칫 아군이 휩쓸릴 수도 있었다.
반면 사맹강은 드디어 아군의 복수를 할 수 있다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의 점창은 주력인 정예들이 전무했다.
먼저 화포를 다루는 관병들을 쓸어 내 버리면 그야말로 자신들이 원하는 전황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대로 밀어 버려라!”
사맹강은 자신감이 넘쳤다.
난데없이 자신을 향해 뛰어든 표범 한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앞발을 휘두를 때까지만 해도 그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크앙!
“……!”
퍼억!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러 자신에게 달려드는 표범의 머리통을 짓이겨 버린 사맹강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눈치채는 것이 늦었지만 비슷한 상황은 만수대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크악!”
“아악!”
코끼리에 짓밟히고 곰에게 물어뜯기는 수하들의 모습에 사맹강은 이 순간 자신이 악몽을 꾸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나 눈앞에 벌어진 일은 현실이었다.
이 순간에도 만수대진을 구성하고 있던 맹수들끼리 적, 아 구분 없이 어지럽게 뒤얽혀 상잔하고 있었다.
사맹강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된 것도 그때였다.
기이한 서기를 몸에 두르고 있는 한 사람.
‘설마 저놈이?’
바로 화포를 지휘하던 조정의 관리였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놈이 맹수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순간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능소밀이 씨익 웃었다.
짐승들과 교감을 가능하게 한 위화신공.
이를 이용하면 전황을 달리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시도해 보았는데 의외로 효과가 상당했다.
물론 만수산장 측의 지배력이 강했던 처음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화포의 섬광과 포성, 그리고 화연에 의해 이미 한차례 만수대진의 지배력이 흔들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능소밀은 일부 맹수들을 장악해 버렸다.
덕분에 만수산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다루던 맹수들에게 되레 공격을 받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히!”
쩌렁한 포효와 함께 사맹강이 신형을 날렸다.
꽈앙!
“큭!”
일 수를 교환한 능소밀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이며 뒷걸음질 쳤다.
위화신공을 익힌 이래 무공에 큰 진전을 이뤘다곤 하나 남만의 패주로 군림하고 있는 만수산장의 장주는 그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단 일격에 눈앞이 노래지고 온몸의 기혈이 들끓었다.
“흠차대인!”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사람이 능소밀 앞을 막아섰다.
창염도객 사공명이었다.
적의 피를 뒤집어써 온몸이 붉게 물든 그가 흉흉한 안광을 뿜어내며 으르렁대는 사맹강을 향해 도를 겨누었다.
잡아먹을 듯 사공명을 노려보던 사맹강이 의외로 훌쩍 물렀다.
그러곤 싸늘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 섬뜩한 웃음의 의미를 깨달은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사이 만수산장은 다시금 맹수들을 장악해 그 지배력을 회복한 것이다.
화포에 휩쓸리고 서로 상잔해 규모가 크게 줄었다곤 하나 아직도 저들은 삼 분의 일에 해당하는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안 좋은데…….’
재빨리 주변 상황을 파악한 능소밀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애써 억눌렀다.
점차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해남검파의 무인들과 점창의 삼대 제자들이 소뢰음사를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지만 머릿수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세를 회복한 눈앞의 만수산장 역시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어쩌라고.’
능소밀의 눈에 독기가 일렁였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자 오랜 관리 생활로 인해 잠들어 있던 그의 지독한 성격이 다시금 깨어난 것이다.
“폭약을 한곳에 모아!”
능소밀의 지시가 떨어지자 관군들은 충실하게 명령을 따랐다.
능소밀의 의도를 짐작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흔하디흔한 일반 병사들이 아니었다.
황제의 명에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정예 중의 정예.
금군과 동창에서 차출된 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능소밀이 섬뜩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대로 전황이 불리해져 돌이킬 수 없다 판단되는 순간.
화약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이 자리의 모두를 데려갈 심산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적절한 시기만을 가늠하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새하얀 구름이 밀려들었다.
“어?”
눈을 껌벅이고 다시 보니 그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백색 무복을 걸친 여인들이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그녀들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을 발견한 능소밀은 흠칫하며 그대로 굳어졌다.
신마삼존을 익히 보아 온 능소밀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중원의 모든 고수들을 통틀어 한설화를 제외하면 그 정도 수준의 여인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화궁주?’
연옥상을 필두로 한 이화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