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3)
신마의선-423화(423/500)
신마의선 (423)
연옥상이 가장 처음 노린 대상은 점창파의 삼대 제자들을 협공하는 소뢰음사의 승려 둘이었다.
유독 눈에 띄는 노회한 고수.
그들은 각각 소뢰음사가 자랑하는 절학인 흑운강기(黑雲罡氣)와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을 앞세워 거침없이 점창 제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두 명에 불과한 그들의 협공에 점창파의 제자들은 제대로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피를 뿌리며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졌다.
종주인 가울랍을 보필하는 좌우 호법승.
실제로 소뢰음사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바로 그들이었다.
“크큭. 쉽구나, 너무 쉬워.”
“고작 이 정도밖에 못하느냐?”
점창문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록 천축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음침한 웃음소리에 담긴 의미는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공명이 지휘할 때는 어느 정도 버틸 만했는데, 능소밀을 구하기 위해 그가 자리를 비우니 삽시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두 노승은 점창 문하들이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쓰러져라!”
자신만만한 웃음과 함께 좌측의 노승이 전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에워싸고 있던 흑빛 강기가 점창의 검수들이 만들어 낸 검영을 찢어발기며 그대로 가까운 삼대 제자를 집어삼켰다.
점창문하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풍전등화의 상황.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도 그때였다.
돌연 두 호법승이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 황급히 물러선 것이다.
점창 문하들이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돌연 폭죽처럼 피어오른 눈부신 검광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두 호법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근접전에 있어서만큼은 중원 누구와 싸워도 승리를 자신하던 그들이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검기 따위는 맨손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눈앞의 검기는 소름 끼치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들을 노리며 날아드는 현란한 검광을 걷어 내기 위해 두 사람이 전력을 기울여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대경실색했다.
호신강기를 제대로 두르기도 전에 삽시간에 들이닥친 검기의 파도가 그들을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크악!”
서늘하고 예리한 무언가가 가슴을 긋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 노고수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그대로 가슴이 쩍 갈라지더니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명의 최후는 그보다 더 비참했다.
바닥에 몸을 굴려 목을 향해 날아드는 첫 번째 검광은 어찌어찌 피했으나, 채 균형을 잡기도 전에 뒤이어 날아든 검기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베어 놓은 것이다.
그가 휘청이며 비틀거리는 순간.
어느새 재차 날아든 세 번째 검기가 그의 허리를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
눈을 부릅뜬 그의 신형이 썩은 짚단처럼 양분되어 무너졌다.
심지어 그는 비명조차 남기지 못했다.
내장과 함께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보며 그대로 절명(絶命)해 버린 것이다.
“……!”
멀리서 그 광경을 확인한 능소밀과 사공명이 표정을 달리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화궁주의 무공은 그야말로 명불허전.
괜히 천하오절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목숨을 거두고도 모자랐던지 연옥상은 그대로 신형을 날려 다른 소뢰음사의 승려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은 무시무시한 검기가 종횡으로 허공을 찢어 댔다.
두 호법승의 죽음을 목도한 소뢰음사의 승려들은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사력을 다해 맞섰다.
그러나 벼락처럼 들이닥친 연옥상의 검기를 막아 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사방으로 핏물이 뿌려지고.
“크아아악!”
“으아악!”
경악과 공포가 한데 뒤섞인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승려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 기세는 그야말로 만부부당(萬夫不當)!
“멈춰라!”
결국 보다 못한 소뢰음사의 종주, 가울랍이 나섰다.
그의 손에는 양 끝에 날카로운 칼날이 비죽 솟은 금강저가 들려 있었다.
은은한 핏빛 서기가 맺혀 있는 금강저를 마주한 연옥상이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쩌엉!
고막을 찢는 듯한 충격음과 함께 연옥상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정작 공격을 가한 가울랍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건 대체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시큰한 충격에 가울랍이 침음성을 삼켰다.
모든 내력을 실은 일격이 고작 상대를 물러서게 하는 데 그치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반면 연옥상의 표정에서는 이렇다 할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가울랍과 거리를 좁혀 왔다.
그녀의 무위를 눈으로 확인한 가울랍은 앞서 비명횡사한 호법승들과 달리 행동했다.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눈앞의 검영을 향해 뛰어든 것이다.
우우우웅!
연옥상의 검이 묵직한 진동음을 토한 것도 그때였다.
검 끝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서기가 눈부신 광채로 검신을 휘어 감은 건 그 직후였다.
가울랍의 눈 위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카라라라락!
대기를 찢는 듯한 소음이 터져 나오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 먼지구름 사이로 금속성의 충격음과 경악성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먼지들을 흩어 내자 장내의 광경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연실색한 얼굴로 서 있던 가울랍.
“우웩!”
가울랍이 돌연 허리를 꺾으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한 가울랍은 경악 가득한 눈을 들어 연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울랍은 채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시커먼 핏물을 게워 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소뢰음사 승려들이 재빨리 자신들의 종주를 부축해 물러섰다.
그런 그들의 뇌리에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반면 연옥상은 검을 늘어트린 채 처음처럼 오연(傲然)한 눈빛을 뿌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처음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오랜 세월 쌓아 두었던 마교를 향한 원한.
이를 쏟아 내기 시작한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숨이 막힐 듯한 가공할 살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쾌애액!
그녀의 등 뒤로 섬뜩한 파공음이 쇄도한 것도 그때였다.
“흥!”
차가운 웃음을 말아 올린 연옥상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콰드득.
바닥을 후려치는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비산했다.
뒤집힌 땅거죽 사이로 꿈틀거리는 철 채찍.
이를 발견한 연옥상이 채찍의 주인인 사맹강을 향해 섬뜩한 안광을 쏟아 냈다.
만수산장의 장주인 그가 나서자 가울랍 역시 재차 연옥상에게 달려들었다.
내상을 입은 데다 무리해서 진기를 끌어 올린 그들의 입에서는 연신 폭포수처럼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연옥상을 향해 금강저를 휘두르는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사맹강의 손을 따라 철 채찍이 꿈틀거리며 튀어 오른 것도 동시였다.
순간 연옥상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따당!
그러자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가울랍의 금강저가 박살이 난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파편들 중 일부는 연옥상을 에워싸고 합공하던 사맹강에게 날아갔다.
“큭!”
어쩔 수 없이 사맹강은 허리를 틀어 날카로운 파편들을 피했다.
그리고 연옥상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사맹강과 거리를 좁힌 그녀가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그었다.
촤아악!
비단 폭이 찢어지듯 허공을 반으로 가르는 백색 섬광이 망막에 맺히는 순간.
“……!”
사맹강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사맹강이 남은 힘을 쥐어짜 황급히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연옥상의 검이 손에 들려 있던 채찍과 함께 그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린 뒤였다.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피 분수가 솟구쳤다.
그 비명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연옥상의 신형은 어느새 가울랍의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시커멓게 죽은 안색으로 가울랍은 급히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연옥상의 검은 순순히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물러나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소름 끼치는 섬광이 가울랍을 덮쳤다.
푸하학!
자욱한 피 보라와 함께 번져 나가는 짙은 피비린내.
그것이 자신의 목에서 뿜어진 피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가울랍의 머리는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일대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압도적인 연옥상의 신위에 적, 아 구분할 것 없이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나직한 한숨을 토한 능소밀이 어이없단 눈빛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신마삼존의 압도적인 무공은 이미 몇 차례 겪어 본 적이 있던 그였다.
하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연옥상처럼 진심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천하오절…….’
이름값의 무게가 다른 존재들.
그들 정도 되는 고수가 진심을 다한다면 이처럼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공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원에서 손꼽히는 도객이라 자부해 왔건만 막상 천하오절의 무위를 목도하니 자신의 명성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빙한지옥의 밑바닥처럼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쓸어 내라.”
연옥상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화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소뢰음사의 승려들을 덮쳐 갔다.
우두머리를 잃은 소뢰음사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이화궁의 고수들이 쉴 새 없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터지는 피와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난무하며 소뢰음사 측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번 꺾인 기세는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었다.
상황은 만수산장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포!”
꽈꽈꽈꽝!
능소밀의 명령을 따라 그사이 재정비를 마친 홍이포가 또다시 화광을 토해 냈다.
이미 앞서 화포에 크게 덴 적이 있던 맹수들이 분분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주의 죽음으로 인해 만수대진은 이미 장악력을 상실한 상태.
항전을 포기하고 달아나던 만수산장 무인들 역시 얼마 안 가 모두 쓰러졌다.
며칠 후.
하나의 소문이 중원을 들끓게 만들었다.
변황오세의 일익을 담당하던 소뢰음사와 만수산장.
그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이었다.
* * *
난주를 떠나온 지 보름째.
이렇다 할 큰 충돌 없이 신강 지역으로 접어든 토벌대 일행은 목표했던 신지를 지척에 두고 야영지를 꾸렸다.
속도를 조절해 이동해 온 만큼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범계위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몇 번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마음을 알기에 초악량도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 대놓고 핀잔을 던지지는 않았다.
신지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범계위의 인내심이 결국 한계에 달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요?”
초악량이 복잡한 눈빛을 흘리며 나직이 읊조렸다.
“방법이 없지 않느냐?”
“그래도…….”
“단 의원의 말대로 이것이 최선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악량 역시 내심 걱정이 앞섰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했다.
말없이 뒤따르던 단악선이 두 사람의 눈빛에 움찔하며 멈춰 섰다.
이 계절에는 유독 모래바람이 잦았다.
그래서 깊은 죽립을 눌러쓰고, 하관에는 천을 둘러 코와 입을 가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 단악선은 가짜였다.
상대를 교란하기 위해 내세운 대역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단악선은 일행과 떨어져 따로 행동한 지 오래였다.
“휴…….”
범계위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